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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선교장 모습. 최근 이곳에 희귀 유물과 옛 생활용품을 모아 놓은 문물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그 도시를 사람들은 예로부터 ‘문향’ ‘예향’이라고 칭송했다. 명품 반열에 이름을 올려도 손색없는 도시 도처의 소나무 숲과 소나무 향이 자랑거리가 되면서 최근들어 ‘솔향’이라는 자연친화적 수식어도 붙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든 만나면 역사가 되는 도시’, ‘옛것을 되새겨 큰 울림을 창조하는 도시’라고 규정하고 싶다.
다름 아닌 동해 바닷가 ‘강릉’ 얘기다.
강릉은 다들 주지하다시피 해발 860m 고개(대관령)를 내려서야 만날 수 있고, 또 그 고개에 올라서야 벗어날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얼마나 힘겹게 강릉을 오갔는지 기록을 살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천년의 통로’ 대관령은 옛 사람들의 표현에서 ‘鳥道(조도·나는 새도 넘기 어려운 험로)’, ‘棧道(잔도·벼랑에 선반처럼 걸린 길)’라고까지 일컬어졌다. 1700년대 무려 30년간 조선 8도를 발로 답사하고, 지리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강릉·평창·정선 일원 기행에서 “사흘을 걸었는데도 아직 하늘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봉준령의 삼림이 너무 울창해 하늘마저 가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서울에서 볼 때 그렇게 멀고 먼 외진 바닷가에 자리 잡은 강릉이 자연과 문화·예술, 인물 등 다방면에서 독보적 ‘아우라’를 뽐낸다는 것이다. 강릉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13호)를 넘어 유네스코(UNESCO)가 선택한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이름을 올렸고, 강릉이 배출한 어머니(신사임당)와 아들(율곡)은 오늘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지폐의 주인공으로 환생했다. ‘조도’, ‘잔도’로 묘사됐던 대관령 고갯길은 지금, ‘옛길∼바우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탐방객들을 불러들이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최근들어 ‘박물관’이 곳곳에 둥지를 틀면서 강릉을 만나는 설렘을 더하고 있다.
오죽헌·대관령 등지에 있는 정통 역사 유물 박물관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축음기 박물관(경포동)’과 시계 박물관(정동진)에서부터 ‘커피 박물관(왕산면)’, ‘컵 박물관(대전동)’, ‘동양 자수박물관(죽헌동)’ 등 이색 박물관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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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오죽헌 율곡기념관 |
가장 최근(지난 15일)에는 우리나라 사대부가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선교장(船橋莊)이 희귀 유물과 옛 생활용품 등을 모아 놓은 ‘문물 박물관’을 개관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현판(홍엽산거·紅葉山居)과 고종 황제 하사품인 궁중모란도 병풍에서부터 발명가 에디슨의 축음기,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멈춰버린 회중시계, 19세기 티베트의 ‘두개골 컵’ 등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희귀품이 이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바야흐로 강릉과 만나는 모든 것이 ‘역사’가 되고,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물관은 강릉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문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언필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도시’이기에 옛 선인들의 혼과 열정이 깃든 문물이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만나 가치 창조에 시너지 효과를 유발해내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단오제와 관노가면극, 강릉 농악 등 ‘무형(無形)’문화재가 즐비한 도시에 ‘유형(有形)’의 문화·관광 소재가 겹겹이 더해지니 윈∼윈이 따로 없다.
이 도시에 다음에는 또 어떤 박물관이 들어설까? ‘2018 동계올림픽’을 치른 뒤 ‘겨울’이나 ‘올림픽’을 소재로 한 박물관이 들어서지나 않을까. 아니 몇 년 뒤까지 갈 필요도 없고, 당장 내일이라도 일상사 무심코 보아 넘겼던 소재를 모아,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박물관이 또 하나 만들어지지는 않을까. ‘무엇이든 만나면 역사가 되는’ 박물관 도시 강릉에서만 가능한 질문이기에 상상과 기대만으로도 행복하다.
강릉/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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