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 드러난 우정
임병식rbs1144@hanmail.net
'得好友來如對月'
좋은친구를 사귀어 서로 왕래하는 것은 달을 대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 글귀는 옛 시편의 한 구절이다. 이 표현에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이 아름다운들 사람 만나는 것보다 나을까. 회갑을 넘기면서 부쩍 세월이 빠르게 지나감을 많이 느끼는데 이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표인지도 모르겠다.
한 해는 어느 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해마다 대하는 느낌은 다르다. 근자에 들어서는 더욱 그러함을 느끼는데 허허롭고 쓸쓸한 마음이 많이 든다. 아무리 먹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시로 밀려드는 허무감은 거울을 들여다보면 실감을 하게 된다. 거울 속의 모습이 나날이 사위어가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패인 주름은 말할 것이 없고 성긴 머리도 스산하기 짝이 없다. 이런 때에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벗을 만나는 것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연천리 래상회(有緣千里 來相會),무연대면 불상봉(无緣對面不相逢)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이 말은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 하여도 만나지 못한 다는 말이다. 그리고 공자 님도 말씀했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 라고. 벗이 찾아와 즐기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하루는 벗들이 그리워 여수의 바다 물빛이 고우니 한번 다녀가라고 기별을 넣었다. 그랬더니 금방 응답이 왔다. 다녀가겠노라고. 그러더니만 거짓말 같이 불언천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저 멀리 강원도 춘천에서 부터 서울, 경기, 대전, 전북 고창에 이르기 까지 원근각지에서 타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왔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나, 대접은 먼 길을 오는 발품 판 노고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박주 산채에 이밥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찾아온 분들은 온종일 밝고 환한 모습들로 즐거워했다.
식사를 마치자 나는 자연스럽게 일행을 안내하여 친구네 별장으로 갔다. 친구에게 인사를 시키려는 요량이었지만 담소 장소로 그만한 곳이 없겠다 생각되어서였다. 통성명이 오가고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가시자 대화가 무르익었다. 다과와 함께 내온 약주 하수오(何首烏)가 간격을 좁히고 흥취을 불러일으켰다. 그 바람에 마이크를 끌어 잡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거기다가 친구는 준비한 약술까지 모두에게 한 병씩 안겨주었다.
나는 그 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 것 것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벗은 또 다른 벗이다 ’는 평범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고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이런 때 쓰려고 친구는 그렇게 열심히 약술을 담갔을까.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지만 하수오에 대해선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중국에서 기력이 떨어진 한 노인이 이 약초의 뿌리를 먹고 머리가 검어지고 회춘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당신의 머리는 어찌 검으오’라는 뜻으로 하수오(何首烏)로 붙어졌다고 한다. 그런 술을 맛보고 선물까지 받았으니 어찌 감격하지 않았을까.
지인들은 내가 친구 최대식사장과 사귀게 된 연유와 우정을 지속해온 비결이 내내 궁금한 모양이었다. 태어난 고향과 출신학교, 젊어서 했던 직장환경도 판이한데 어찌 가까워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궁금해 하는 마음을 서로 배려하는 것 이외는 없노라고 웃어 넘겼다.
나는 이번 모임을 초대하면서 새삼스레 친근한 사람의 교류가 얼마나 훈훈한 감동을 주는가를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고시에서도 놀란 새는 서로 따라날고 (驚翔之鳥경상지조) 여울아래 물은 함께 흐른다( 瀨下之水因復俱流뇌하지수인부구류)고 했듯이 뜻이 맞는 사람은 함께하게 되어있는 것인가. 시간과 돈으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다.
이날 내가 지인들을 초대했지만, 한편 생각하면 내가 초대를 받은 기분이다. 새삼 문우지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집은 팔백금을 주고 사고 친구는 천금을 주고 산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2008)
첫댓글 좋은인연, 좋은만남.
囊中之錐요
평소 쌓은 業에
積善之家 必有餘慶
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인연을 쌓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많은 기대를 하시던 J선생의 은둔이 못내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습니다.
J선생이 하수오주에 심취하여 좋은 양주를 챙겨 일주일만에 슬그머니 다시 여수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귓전을 맴돌고 그때에 선생님을 찾아 불원천리하신 분들은 우리 수필계의 원로로서 존경을 받으면서 건필하고들 계시니 선생님의 아름다운 관포지교를 곁에서 지켜본 후학은 술 한잔 마시지 않았건만 훈훈한 봄기운에 취하여 희희낙락하였습니다.
이선생님도 그날 함께해 주셨지요. 그분은 언제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정을 느끼면서 항상 행복합니다. 훌륭하신분들 만나서 즐거웠구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뵙기를 기대합니다.
최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특히나 윤행원 선생님은 전화할 때마다 안부를 여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들이 함께 해줌을 크나큰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에 만남을 더 한번 주선해 보겠습니다.
친한 벗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지요. 하수오주 맛이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술을 잘 못해서 좋은지 어쩐지는 잘 모르지만 숙취에 기가막히게 좋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