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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알림방 스크랩 지명으로 보는 해남의 역사⑤ `역`과 관련된 마을들 [해남신문]
박 생수 추천 0 조회 12 10.04.12 20: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암행어사 출두요! 즐비하게 차려진 술상앞에 거나하게 취한 사또와 벼슬아치들에게 내밀어진 암행어사 마패, 마패를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패는 암행어사가 사용한 마패뿐만이 아니다.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마패가 있었야만이 역에서 말을 빌릴수 있었던 만큼 역을 이용한 사람들 모두가 마패를 사용했다.

역에 내민 마패에는 말의 수가 새겨져 있었는데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수만큼 역에서는 말을 내어주었다.
역이란 긴급한 공무문 전달이나 공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말을 갈아탈 수 있게끔 말을 빌려주는 역할을 했던 곳으로 육상 교통수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였다.

아무리 벼슬이 높고 권세를 누리는 지위에 있다하더라도 공무수행이 아닌 개인적인 여정에는 이 역의 말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정인지 이극기가 이지역에 와서 읊었던 시속에서도 말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지역에도 관리들에게 새말을 내어주었던 별진역(계곡면 성진) 녹산역(삼산면 나범리,해남읍 신안리) 남리역(황산면 남리)등이 있었는데 이번호에서는 이 역들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별진역(계곡면 성진)

풍연을 굽어보며 술잔을 드니, 붓 끝의 조화로 교묘하게도 그려낸 듯 서리맞은 대가 난간을 둘러 성긴 듯 빽빽하고, 이슬 젖은 꽃잎은 섬돌위에 피고 지는구나. 산은 백번을 돌고 촉나라 비단을 땅에 비뚜름이 깔아 놓은 듯 물은 천구비 구비치네. 건을 재켜쓰고 난간에 의지하여 간파람하니, 자리에 가득한 맑은 바람 상쾌하기도 하여라. 

별진역의 난간에 기대어 바라다보이는 주변 풍경을 읊은 이극기의 시이다.
이 시에서도 볼수 있듯이 당시 바닷물이 별진역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주변의 경치 또한 붓 끝이 교묘한 조화를 부릴 만큼 아름다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별진역은 현 계곡면 농협과 파출소 부근으로 이곳에는 많은 비석들이 남아 있어 비석등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계곡 성진에서 광주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옛 약수터와 미륵불을 모신 조금만 기와집이 나온다. 이곳 약수터가 역이 있을 당시 말이 물을 먹었던 샘인 마정이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곳을 말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별진역은 진도 삼지원과 문내면 우수영, 목장이 있었던 화원면을 가기위해 이용했던 역으로 마산면 화내리를 거쳐 육일시로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마산면 고암에는 도중에 말이 쉬었다는 터가 전하고 있다.

 

녹산역(삼산면 나범리)

삼산면에 있었던 녹산역은 고려시대 해남현의 치소가 현산면 고현에 있었을 때 이용했던 역이였다. 그러나 이곳 역은 고현에 있던 치소가 삼산면 계동으로 옮겨오면서 폐지되고 이후 해남읍 신안리로 역이 옮겨지게 된다. 녹산역터는 나범리와 중리 사이 산 중턱에 있는 저수지 부근으로 지금은 우거진 산과 개간된 땅만 있을 뿐 그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삼산면에 있었을 당시 녹산역에서 말을 갈아탄 관리들은 삼산면 매정리에서 현산면 만안리재를 넘어 고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고현에는 말에서 내린 지점인 하마장의 지명이 전하고 있다.

녹산역(해남읍 신안리)

해남읍의 치소가 현재의 읍으로 옮겨온 시기에 삼산면 나범리에서 옮겨온 역이다.
해남읍성을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했던 이곳 역은 읍을 들어오는 통제소 역할과 함께 역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안리에는 역밭이라는 지명만 전할뿐 그때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신안리에서 읍쪽으로 조금 들어오다 보면 평동 오거리에 있는 축협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말에서 내려 읍성까지는 걸어갔다는 하마비터가 있었던 곳이다.

 

남리역(황산면 남리)

별진역에서 출발한 관리들이 우수영이나 진도 삼지원, 화원 목장 등을 가기위해 이곳 남리역을 들렀을 것이다 이곳에서 말을 갈아타거나 아니면 말에게 물을 먹이고 죽을 먹이며 말과 사람이 함께 쉬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역이 있었을 만큼 위용이 있을법도 하지만 그 흔적은 찾을 길 없다. 다만 말들에게 죽을 먹였던 말죽거리 이름만 남아 있어 한때 이곳에 역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주고 있을 뿐이다. 말죽거리 터는 황산 초등학교에서 진도쪽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황산 우회도로와 만나는 지점인데  사람들은 이곳을 죽거리 잔등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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