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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폭격기
[옮긴 글]
1948년 7월 어느날 서베를린으로 생필품을 공수하는 C-47과 C-54 수송기를 조종하던 게일 할보르센 중위의 사탕 폭격기
다음 영상을 참고하세요!
더 캔디 봄버(The Candy Bomber)
사탕 폭격기
1948년,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자, 28세의 미 공군 파일럿 게일 헬보슨 대위는 서 베를린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당시의 공군 기지 주변에는 두려움과굶주림으로 지친 수 십 여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아이들을 불쌍히 여겼으나,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헬보슨 대위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날개를 흔드는 비행기가 보이면, 활주로 끝에 모이렴. 사탕주머니를 떨어뜨려 줄게."
대위는 막사에서 이들에게 줄 사탕주머니를 정성스레 포장했고, 그가 출격할 때마다 활주로 끝에서는 사탕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군법을 위반한 것으로, 그는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으며 결국, 군 당국의 후원을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50년이 지난 1998년, 대위의 사탕을 받았던 아이들은 그 고마움의 보답으로 헬보슨 대위를 독일로 초청했으며, 베를린 시의 어린이들에게 50년 전의 선행을 재연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사랑은 어떤 법보다도 위에 있으며, 어떠한 지식보다도 오랜 감동을 선물해 줍니다
[옮긴 글]
전쟁 후 독일 어린이들 감동시킨 美 '사탕 폭격기' 아시나요?
세계일보 김태훈입력 2019.11.05. 15:01수정 2019.11.05. 15:47
올해는 흔히 '동·서 냉전의 첫 충돌'로 불리는 옛 소련의 베를린 봉쇄(1948∼1949)와 그에 맞서 1년간 지속된 영·미 연합군의 베를린 공수작전이 끝난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다.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미국와 영국 조종사, 그리고 당시 서베를린에 살던 어린이로서 공수작전의 은혜를 똑똑히 기억하는 독일 여성 이렇게 3명이 마주앉아 그 시절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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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스탈린, 서독 공산화 위해 베를린 봉쇄 /
'어제의 적' 독일 구하기 나선 영·미 조종사들 /
폭탄 대신 사탕 실어날라 '사탕 폭격기' 별명 /
'서베를린 공산화' 스탈린의 음모 좌절시키다
1948∼1949년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해 ‘사탕 폭격기’ 조종사로 유명해진 미 공군의 게일 할보르센 예비역 대령.
사진은 93세이던 2013년 조종복 차림으로 미 공군의 옛 수송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미 공군
올해는 흔히 ‘동·서 냉전의 첫 충돌’로 불리는 옛 소련의 베를린 봉쇄(1948∼1949)와 그에 맞서 1년간 지속된 영·미 연합군의 베를린 공수작전이 끝난지 꼭 70주년이 되는 해다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미국와 영국 조종사 그리고 당시 서베를린에 살던 어린이로서 공수작전의 은혜를 똑똑히 기억하는 독일 여성 이렇게 3명이 마주앉아 그 시절을 회상했다
◆폭탄 대신 사탕을 실어나른 미 공군 수송기
5일 미 공군에 따르면 베를린 공수작전 70주년을 맞아 당시 작전을 수행한 역전의 용사들을 기리고자 최근 아주 특별한 대담 자리가 만들어졌다
공수작전에 참가한 미 공군 조종사 게일 할보르센(99), 영국 공군 조종사 데렉 허미스턴(90) 그리고 당시 서베를린 주민이었던 독일인 메르세데스 빌트(78) 세 명을 한 자리에 모아 1948∼1949년 베를린 공수작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청취한 것이다
이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점령한 동독 영토 안에 있던 서베를린을 공산주의화하려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야욕에서 비롯했다
스탈린의 명령을 받은 소련군은 1948년 6월을 기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잇는 모든 육상 교통로를 차단했다
이른바 베를린 봉쇄다
이렇게 하면 식량과 연료 생활필수품이 부족해진 서베를린 주민들이 소련에 굴복하고 결국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서베를린 주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과 연료 생필품 등을 공군 수송기로 실어나르는 공수작전으로 맞대응했다
당시 28살 나이로 공수작전에 참여한 미 공군의 게일 할보르센이 조종한 수송기는 ‘사탕 폭격기(Candy Bomber)’라는 귀여운 별명을 얻었다
2차 대전 후 가뜩이나 굶주림에 시달리던 서베를린 어린이들을 위해 사탕, 건포도,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를 소형 낙하산에 매달아 마치 폭탄을 투하하듯 땅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미 공군의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가 서베를린 어린이들을 위해 사탕 등 군것질거리가 매달린 소형 낙하산을 투하하는 모습. 미 공군
◆영·미 조종사들, '어제의 적' 독일 구하러 나서
공수작전이 장기화하자 어느덧 미국 비행기가 날아올 시간이 되면 서베를린 어린이들이 줄을 서 기다리며 사탕 투하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봉쇄된 서베를린에서 힘겹게 지내는 어린이들에게 작지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머물고 있던 공군 기지에서 동료 조종사들과 함께 사탕, 초콜릿, 건포도 등을 모았고 입지 않는 옷으로 작은 낙하산을 만든 후 모은 사탕과 초콜릿 등을 헝겊에 싸 매달았죠.”(할보르센)
당시 19살이던 영국 공군 조종사 데렉 허미스턴은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조종사 가운데 가장 어렸다
그의 주된 임무는 서베를린 주민들이 난방이나 자동차 운전 등에 쓸 기름을 실어나르는 일이었다
부친도 공군 조종사로서 2차 대전에 참전해 독일 공군과 싸운 경험이 있는 허미스턴은 어제까지 ‘적’이었던 독일 국민을 돕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무척 묘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영국군 장교로서 저는 우리가 미군과 함께 베를린을 숱하게 폭격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겁니다
이제 우리는 소련의 억압적 정권으로부터 서베를린 주민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죠
제가 만난 소련군 장교들은 ‘독일은 다시는 예전처럼 강력해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아주 확고하더군요.”(허미스턴)
◆'서베를린 공산화' 스탈린의 음모 좌절시키다
당시 서베를린에 사는 7살 꼬마로서 미군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사탕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메르세데스 빌트는 할보르센과 허미스턴 두 참전용사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녀는 독일 어린이들 사이에서 ‘초콜릿 아저씨(Chocolate Uncle)’로 불렸던 할보르센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정상적인 서베를린 주민 어느 누구도 소련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소련 정권은 나치와 다를 바 없었고 우리 모두 소련군을 두려워했죠
그때 할보르센 선생님이 저 같은 서베를린 꼬마들한테 사탕을 투하한 건 아주 훌륭한 일이었어요
당시 저는 ‘이분이야말로 인류애를 상징하는 평화의 대사와 같은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베를린 공수작전에 참여한 모든 조종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빌트)
미국과 영국의 공수작전으로 베를린 봉쇄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소련은 이듬해인 1949년 5월 봉쇄를 풀었다
영·미 공군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서베를린에 주요 물자를 비축해놓을 목적으로 그해 9월23일까지 공수작전을 계속 진행했다.
서베를린을 공산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스탈린의 계략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서베를린은 이후 공산주의 동독 영토 안에 서방 자유주의 진영의 ‘요새’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베를린 봉쇄 후 꼭 40년이 지난 1989년 11월9일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차단했던 베를린 장벽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이듬해 독일은 통일됐다.
김태훈 기자
[옮긴 글]
[월드피플+] 1948년 베를린에 폭탄 대신 '사탕' 투하한 조종사 세상 떠나다
박종익 입력 2022. 02. 18. 16:26 수정 2022. 02. 18. 16:26
지난 1948~1949년 소련군에 의해 봉쇄된 서베를린에 이른바 '사탕 폭탄'을 투하해 감동을 준 게일 할보르센이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할보르센이 지난 16일 저녁 유타 벨리 병원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생전 미국과 독일 양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던 할보르센에 얽힌 사연은 지금도 회자될 만큼 큰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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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나우뉴스]
게일 할보르센의 생전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1948~1949년 소련군에 의해 봉쇄된 서베를린에 이른바 '사탕 폭탄'을 투하해 감동을 준 게일 할보르센이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할보르센이 지난 16일 저녁 유타 벨리 병원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생전 미국과 독일 양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던 할보르센에 얽힌 사연은 지금도 회자될 만큼 큰 감동을 준다. 사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이 서베를린의 육상길을 봉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스탈린은 서베를린을 공산화하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가는 육상길을 완전히 봉쇄했다. 식량이나 연료 등 생활필수품이 떨어지면 서베를린 시민들이 알아서 소련에 굴복할 것이라 계획을 짠 것.
이에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은 막힌 육로 대신 물자를 항공기로 실어나르는 대규모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이 기간은 무려 15개월이나 지속됐으며 엄청난 물자가 서베를린에 공급되면서 약 200만 명의 시민은 굻어죽을 위기를 넘겼다.
최근 사망한 할보르센은 당시 공수작전에 참여했던 28살의 미 공군 조종사였다. 당초 미국과 영국 조종사들은 막 전쟁을 끝낸 독일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으나 처참한 서베를린의 상황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고있던 것은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이에 할보르센은 초콜릿과 사탕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낙하산에 담아 공중에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이것이 소위 '사탕 폭탄'의 시작이었으며 할보르센은 ‘사탕 폭격기'(Candy Bomber)라는 별명과 함께 우정의 상징이 됐다. 할보르센은 생전 CNN과의 인터뷰에서 "식량이 필요한 베를린 시민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면서 "이후 베를린 사람들에게 내가 '초콜릿 삼촌'으로 알려지게 됐으며 수많은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스펜서 콕스 유타주 주지사는 "고인은 세계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에 감동을 준 국제적인 영웅"이라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가 남긴 모범적인 삶과 유산을 기리겠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서울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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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