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ne-ment’
-영화 <어톤먼트>을 보고
2026171612 김규리
이안 매큐언의 소설 <속죄>를 원작으로 하는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어톤먼트>는 한 소녀의 오해가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1935년 영국의 한 저택,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소녀 브라이오니의 눈에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의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은밀한 순간들을 목격한 그녀는 자신이 본 것과 상상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이 증언은 두 사람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는 저택의 아름다운 여름날을 뒤로하고 전쟁터를 헤매는 로비와 간호사가 된 브라이오니를 비추며, 짧은 순간의 오해가 남긴 길고 깊은 상처를 따라간다.
모든 순간의 미장센과 음향이 아름다웠던 영화이지만, 특히 영화의 시작부터 들려오던 타자기 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의 삶을 무너뜨린 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을까. 타자기 소리를 리듬으로 활용한 다리오 마리아넬리의 〈Briony〉는 브라이오니가 이야기를 지어내던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통해 속죄하려는 순간까지, 아름답고도 잔인하게 영화를 관통한다. 브라이오니가 희곡을 쓰는 장면에서 시작된 이 음악은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 뒤 상황을 지켜보는 장면, 간호사로 일하는 장면, 롤라의 결혼식을 보고 돌아가는 장면 등에 등장하며 그녀의 삶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타자기를 두드리며 희극을 쓰던 어린 브라이오니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현실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잘못된 비극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 장면에서의 〈Briony〉는 가장 인상적인 음악이었다. 반면 같은 음악은, 어른이 된 브라이오니가 속죄를 위해 혹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진실을 고백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소리로 변화한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사가 된 그녀의 첫 등장에 이 음악이 흐르는 것은 타인을 돌보며 나름의 속죄를 시작했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한때 두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허구의 소리가 훗날 그들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돌려주려는 글쓰기의 소리로 바뀐다는 점에서 그 여운은 더욱 깊어진다.
타자기가 긴장을 만든다면, 서정적인 음악은 아름다움과 참혹함 사이의 거리를 만든다. 초반의 저택과 사랑의 감정에 어울리던 고전음악의 아름다움은 전쟁 이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브라이오니가 죽어가는 프랑스 병사를 돌보는 장면에 흐르는 드뷔시의 <달빛>은 음악이 아름다울수록 현실은 더 잔인해진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덩케르크 해변을 길게 따라가는 카메라 역시 전쟁을 단순한 배경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로비와 함께 혼란스러운 해변을 지나며 지친 병사들을 바라보는 동안, 관객도 그곳의 시간을 함께 견디게 된다. 이 모든 장면이 결국 브라이오니가 써 내려간 이야기라는 점에서, 참혹한 묘사는 그녀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죄의 무게를 마주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속죄를 위해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이기적이라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인 ‘속죄’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Atonement’의 어원인 ‘at one’에는 하나가 됨과 화해의 뜻이 담겨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인간과 신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라이오니의 <atonment>는 자신이 갈라놓은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려는 시도로 읽히지만, 그 재회가 오직 허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속죄의 한계를 드러낸다. 간호사로서의 헌신과 뒤늦은 고백은 잘못에 대한 응답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잃어버린 삶을 되돌려 주지는 못한다. 영화가 전쟁과 상처를 오래도록 보여주었기에 관객은 마지막의 평온한 풍경 역시 온전한 위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 결말에는 두 사람에게 행복을 돌려주려는 마음과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이 겹쳐 있는 듯하여, 결국 나를 포함한 관객에게 남은 것은 속죄의 성공 여부보다 이미 일어난 비극 앞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