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사 가십니까? 아주 좋은 고찰입니다. 우리 상주의 자랑이지요. 그곳 주지스님은 또 얼마나 훌륭하신지 모릅니다. 상주냉림사회복지관도 남장사에서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주지스님이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십니다.”라는 택시 운전기사의 싱글벙글한 미소와 마치 자신의 친인척 자랑하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상주 고속터미널에서 20여 분 남짓 되었을까, 사람 좋은 운전기사 덕에 찰나간에 남장사에 도착했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청솔 숲속에 자리한 남장사에는 고즈넉한 적막이 흘렀다. 청정한 가람의 향기, 그러면서도 ‘전법도량’이라는 현판이 무색하지 않은 포교도량으로서의 법열이 넘쳐 흐르는 분위기, 성웅 스님과 첫 대면을 하면서 그 택시기사의 칭송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자에게 맞절을 하시는 스님의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자비로운 위의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스님, 먼저 사죄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주에 내려 오면서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수행과 포교에 열심이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동안 가져 왔던 주지 소임에 대한, ‘수행보다는 대중들 뒤치닥거리하고 포교하고 살림살이하느라 바빠서 본말이 전도되기 쉬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스님께서는 강원 졸업 후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주지 소임을 맡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을 일러 주지스님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칭송이 자자합니다. 이 시대에 주지 소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둥근 돌은 둥근 돌대로 쓸 데가 있고, 모난 돌은 모난 돌대로 쓸 데가 있듯이 선승, 학승, 율사, 포교사, 소임자 등 갖가지 분야를 두루 평등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를 다 스승이요, 선지식으로 모시고 탁마하고 살면 수행 아닌 게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선이 제일이다, 염불이 제일이다, 소임을 맡으면 수행이 뒤처진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과 염불이 둘이 아니고 수행과 포교가 둘이 아닙니다. 모든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전공을 통한 특기를 살려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모두가 교단의 주체로서 화합승가를 이룰 때 나라에 기여하고 나아가 불국토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주지 소임은 최일선에서 수행하며 포교하는, 그야말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중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사찰의 주지는 대중교화 현장의 구도자로서 이 시대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병고를 치유해야 할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지 소임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수행의 힘 없이는 제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해도 대중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또한 사찰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한 운영을 해야 합니다. 역대로 수행을 통한 지혜와 복덕을 갖춘 출중한 대덕스님들이 대중을 잘 통솔하고 원융한 살림살이를 통해 수행가풍을 진작시키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 왔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런 선대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일단 수행력의 증진에 힘쓰는 한편 포교와 아울러 지역사회의 제반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 애쓰고는 있는데 항상 부족한 생각이 듭니다.”
부족하시다니요? 항상 초발심으로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남장사를 상주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변신시키고, 상주사암연합회는 어느 지역보다 화합이 잘 되고, 청소년불자연합인 파라미타 상주지회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족시키는 등 유교적 전통이 강한 이 지역이 전국적으로 신심이 깊은 곳으로 손꼽히게 된 데는 상주에서 20년 넘게 주지소임을 맡아 수행하고 포교한 스님의 덕택이라고 합니다.
“당치 않습니다. 사부대중 모두의 힘이지 그게 어디 제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다만 처음 불문에 들어와서 굳게 다짐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삼계 대도사(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중생을 인도하는 큰스승)이시고 사생자부(태생·난생·습생·화생 등 모든 生類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조금이라도 부처님께 허물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세상에는 네 가지 중한 은혜(나라, 부모, 부처님, 단월의 은혜)가 있는데, 특히 단월(施主者)의 은혜를 지중하게 알고 시주한테 빚을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 두 가지만 철저하게 지키더라도 중노릇의 절반은 된 것이라는 확신하에 항상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살다 보니 다행히 욕은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님, 대중과 함께하는 포교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어떻게 초지일관 처음 먹은 마음으로 수행하고 포교하실 수 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해인사 학인 시절에 초발심자경문의 ‘재색지화(財色之禍)는 심어독사(心於毒蛇)’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뜨였지요. 물욕과 본능적인 욕망을 잘 제어하지 않으면 중노릇 못하겠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학인들은 시간 제약이 많았는데 어떻게든 틈을 내어 절하면서 항상 초발심으로 살겠노라는 서원을 올렸지요. 71년도 동안거 때는 ‘출가를 했으니 모든 욕망을 끊고 불법문중에서 물러나지 않고 마침내 대도업을 성취하겠습니다’ 발원하며 매일 천배를 하며 백일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었지만 초발심 단계에서는 마음 속의 갈등이 치성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특히 인간의 욕망 가운데서도 수행에 장애가 되는 물욕, 수면욕, 식욕, 성욕을 이기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절을 한참 하고 있는데 그 큰 해인사 도량에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살펴보니 밤을 꼬박 새워 절을 했더군요. 그날의 그 환희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기백이 샘솟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했지요. 그날 이후로 중노릇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지식으로 보이고 부처님처럼 보이고 감사해서 진심으로 하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 가피를 입은 뒤 기도수행의 중함을 알았고, 강원을 마친 뒤부터 줄곧 주지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앉아서 참선할 새가 없으니 또 기도를 열심히 했지요. 지내놓고 보니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수행방편이 다를 뿐이지 기도와 참선이 둘이 아닙니다. 어쨌든 기도를 생활화하며 살아온 덕분인지 세세생생 짊어지고 온 습기, 번뇌는 남아 있으나 덜 헐떡거리고 아직까지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일은 없습니다.”
해인사 강원에서 수학하실 때의 이야기를 좀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시 해인사에는 종정이신 성철 스님을 위시해서 3사7증(三師七證:비구가 구족계를 받는데 필요한 전계화상, 갈마아사리, 교수아사리와 덕이 높은 스님 7인을 뽑아 증인으로 함)이 계셨는데, 큰스님들 한 분 한 분이 공부 분위기를 저절로 만들어 주셨고 여러 큰스님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요. 어느날 츄리판타카 얘기를 들었는데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너무나 지능이 낮아서 우둔한 바보였던 판타카에게 부처님께서 아주 간단한 게송 하나를 일러 주셨는데, 그 짧은 게송 하나 외우지 못해 쩔쩔매던 츄리판타카가 수년 동안 그 게송을 열심히 외우고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여 필경에는 아라한이 된 이야기를 들으며 서원을 견고하게 세웠지요.
‘계속 물러나지 아니하고 정진하겠습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서원이 다할지라도 제 원력과 정진은 다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원을 항상 마음속 깊이 화두로 들고 때때로 게으른 생각이 일 때마다 과거로부터 익혀온 나쁜 습기가 고개를 들고 일어날 때마다 삼독(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불을 잠재우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대분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해인사에서 사실 때 인욕보살, 하심보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셨고, 노스님 간병 소임을 맡았을 때 꼬박 6개월 동안 변을 받아내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게 고마워서 하심이 절로 되었습니다. 행자 때부터 스님들을 열 번 뵈면 열 번 고개숙여 합장하고 절을 하니 제 절 받기 싫어서 피해 다니는 스님이 계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원의 학인들은 3개월씩 돌아가며 소임을 맡았는데 제가 나이가 많다고 수월한 일을 시켰지만 쉬운 일 마다하고 힘든 일을 자청했지요. 궁현당 화장실 청소를 맡았을 때 매일 솔질을 하고 뜨거운 물을 끓여서 붓는 등 열심히 했더니 ‘미안해서 궁현당 화장실을 못 가겠다, 너무 깨끗해서 부끄러워 오줌이 안 나온다’는 말들이 오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명허(明虛) 스님께서 중풍이 들으셔서 간병 시봉을 했는데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더럽다는 생각, 냄새가 고약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수행과 둘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익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달프다기보다는 노스님 간병을 통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벗을 몸 아끼지 않고 수행하고 포교하다가 병원 신세 지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꼿꼿하게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원을 하나 세웠지요.”
스님, 이십대 후반에 출가하셨는데 그 인연 이야기가 남다를 듯싶습니다. 방송을 통해 은사스님을 구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출가하기 전 희방사로 고시공부하러 갔다가 새벽 예불을 드리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스님이 되지’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군대 갔다 와서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계모 슬하에서 자랐는데 사회에 주저앉게 되면 물려받은 재산문제로 다툴 것 같아 철저하게 버리기로 하고 당시 동양라디오의 전파 교차로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방송을 들은 스님이든지 불교신도든지 훌륭한 스승을 만나 스님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라는 편지내용을 듣고 의룡 스님께서 제 속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불문(佛門)에 들었고,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 꼬박 3년의 행자기간을 마치는 동안 항상 마음속으로 ‘금생에 성불해서 부처는 못 되더라도 애욕을 끊어버리고 세상일 그리워하지 않으며 출가자의 본분사를 잊지 않고 중노릇 잘 하겠습니다’ 발원하며 살았습니다.”
은사이신 고암 스님께서 많이 아끼셨고, 전법게를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비제일 고암 스님이라는 별호처럼 아무리 당신 뜻에 안 맞는 일이 있더라도 화 내시는 것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나는 좀 성질이 급한 편인데… 평소에 선방에 가라는 말씀, ‘중노릇 잘할 사람’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신심을 고취시켰지요. 74년도에 전법게(傳法偈 秀峯堂 性雄 丈室 佛祖正法眼 不識又不會 趙州茶香味 南泉月正明 佛紀 2518年 解夏日 比丘 震鍾 大宗師 受法弟子 古庵 祥彦 說 於雪岳山)를 주셨는데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스님, 수십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절을 하고 끊임없이 기도정진해오셨는데 특별한 체험이 있으실 듯합니다만.
“그런 것을 얘기하면 못씁니다. 무념무상으로 욕망을 없애면 식이 맑아지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체험을 하기 마련이지요. 누가 오는 것도 알고 가는 것도 알고, 심지어 신도님 댁의 우환이며 그댁 조상들 묘자리까지도 생생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통력인 줄 알고 얘기하면 불법과는 멀어지고 사도가 됩니다. 아무리 맑은 물도 객관대상의 파동에 불과하듯 그 모든 것이 환(幻)이요, 그림자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것은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구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도하면서 소원성취해주십사 매달리는 것에서 나아가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원력이 있는 곳에 부처님의 가피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정성을 다해 원력을 세워 기도하면 못 이룰 일이 없지요. ‘내가 이제 발심하오니 스스로 인간과 천상의 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성문, 연각 내지 권승 제위 보살의 최상승을 의지하여 보리심을 발하오니 원컨대 법계의 모든 중생이 일시에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여지이다’하는 원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p>? 어린이포교, 청소년포교는 물론이고 재소자 교화도 십수년 동안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없으신지요.
“죄의 성품이 본래 없는 것인데 재소자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지요. 부처님 말씀을 해주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롭게 삶의 의지를 다지도록 독려해주고 있는데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재범하지 않고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여 사회에 나가 잘 살겠다’는 각오를 내보일 때 보람을 느끼지요. 출소해서 절에 찾아오는 이들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 일을 거들어주러 오기도 합니다.”
수행과 포교뿐만 아니라 평소 보살행을 강조하시며 사회복지사업에도 온 힘을 기울이셔서 지역민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일에 귀감이 되고 계신 스님의 좌우명과 불자들에게 한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해인사 강원 시절 영암 큰스님께서 들려 주셨던 ‘입을 잘 지키고 뜻을 잘 거두며 몸으로 범하지 말라.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이라야 능히 도를 성취할 수 있다(守口攝意身莫犯 如是行者能得道)’는 말씀을 되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불법 문중에 들어 왔으면 일단 세속적인 속된 생각과 행동을 뛰어넘고, 불교적인 생각으로 차차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대승불교의 제일가는 덕목인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실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실천입니다. 진리는 실천이 수반되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가 아무리 온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는 진리라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됩니다. 실천이야말로 불교의 생명인 것입니다.
말 한마디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하고 자비심으로 만물을 대할 때 내 안의 부처님이 발현합니다. 부처님은 이론과 실천을 완성한 분입니다. 우리도 믿음을 견고하게 가지고 끊임없이 수행정진하면서 자비행, 보살행을 하면 필경에는 완성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허물을 참회하고 내 이웃에게 공양을 올렸는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보살행을 실천할 때 그대로 이 땅에 불국토가 구현됩니다. 백마디 말이 필요없고 한 가지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웃과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진정한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