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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大邱] - 희망의 도시 일류 대구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는 대한민국 동남부 내륙의 광역시이다. 팔공산과 비슬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편에 속하는 도시이며, 2002년 FIFA 월드컵,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등을 개최. 곽재우 장군의 호로 공원명을 지은 망우당공원, 달서구 두류동에 위치한 두류공원 등이 있다.
대구 문화관광 http://tour.daegu.go.kr/kor/
대구 관광정보센터 http://www.daegutour.or.kr/
대구근대역사관
http://artcenter.daegu.go.kr/dmhm/
대구의 역사와 문화
http://tour.daegu.go.kr/kor/guide/news/pr/1192451_5561.asp
대구 팔공산 가을여행
http://tour.daegu.go.kr/kor/guide/news/pr/1192452_5561.asp
대구 투어 & 주요관광명소
http://tour.daegu.go.kr/kor/guide/news/pr/1192453_5561.asp
도동서원[道東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현풍)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동화사[桐華寺] http://www.donghwasa.net/
대구12경
팔공산, 비슬산, 낙동강 강정고령보, 신천, 수성못, 달성토성,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구스타디움, 대구타워, 동성로, 서문시장, 대구옛골목으로 선정됐다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갓바위)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해발 850m에 위치하며 높이는 약 6m이며 머리의 갓 지금은 1.8m이다. 신라 선덕왕 때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대학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철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해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경상감영공원[중앙공원. 제7경] 중구 포정동
공원 안에는 경상감영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대구유형문화재 1)과 경상감영 관찰사 처소로 쓰이던 징청각(대구유형문화재 2)이 남아 있고, 관찰사와 대구판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그밖에 옛 건물의 멋을 살린 정문, 분수, 돌담, 통일의 종 등이 있다. 자유당 독재정권에 항거한 대구시내 고등학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2.28기념 중앙공원이 들어서 있다.
계산성당(桂山聖堂)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제8경)
녹동서원[鹿洞書院]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서원.
달성공원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동상과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적격이다.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의 남쪽에 포정문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관풍루였다. 정문 누각인 관풍루(문화재 자료 제3호)와 향토역사관도 공원에 들어서 있다. 향토역사관은 대구지역의 역사, 민족, 생업과 관련된 유물자료 등을 두루 전시해 놓고 있다.
달성 인흥마을
수석노태지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수석, 묵은 이끼,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이란 뜻
현재 인수문고 소장 책은 약8500종류 약 2만여 권으로 만권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산서원(약4천400권)보다 2배 이상 책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인수문고는 장서의 양뿐만 아니라, 어느 책도 책의 권수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낙질(落帙)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어느 책도 낱권이 아닌 전집으로 완벽히 갖추고 있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중문고이다.
달성토성(제6경) 달성공원
달성공원은 원래 대구의 옛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토성 '달성'을 축조했던 곳으로, '달성공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토성에서 유래한다. 달성공원은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원래 대구의 옛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토성 ‘달성’은 사적 제 62호로 우리나라 성곽 발달 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성곽으로 ‘달성공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토성에서 유래한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해왕(沾解王)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1969. 8. 1 현재의 달성공원으로 개원되었다,
대구의 옛지명은 ‘達句伐(달구벌)’이다. 達句伐(달구벌)이 大丘(대구)로 바뀐 것은 통일 이후 唐(당)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신라가 모든 제도 문물을 중국식으로 정비해 가는 변화의 한 산물이다. 종래 여러 가지로 불리우던 벼슬 이름이나 지방 이름을 원칙적으로 2자의 한자로 개칭하였다. 개칭의 방법은 음을 딴 것, 뜻을 따르는 것, 아름답게 고치는 것, 글자를 줄이는 것 등이 있는데 달구벌이 大丘(대구)로 바뀐 것은 음을 딴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다.
伐(벌) "벌"은 평지, 평야, 촌락, 성읍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대구근대역사관http://artcenter.daegu.go.kr/dmhm/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됐습니다.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이 건물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증했으며 이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돼 2011년 1월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호)
도동 측백나무숲은 전체 면적 3만 5,000㎡를 웃도는 절벽에 1,000여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숲은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측백나무 군락지로 식물 유전학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측백나무 숲은 조선시대 대학자인 서거정이 대구 10경에 포함시킬 정도로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대구수목원[大邱樹木園] http://www.daegu.go.kr/Forestry/
연면적은 24만 4630㎡이며, 화목원·약초원·야생초화원·침활엽수원·습지원·수생식물원·약용식물원·무궁화원·유실수원·염료식물원·철쭉원·방향식물원·괴석원·죽림원·생태천이관찰원·잔디광장 등 21개의 주제로 꾸며진 전문 수목원이 있다. 보유 식물은 초본류 1300종 27만 포기, 목본류 450종 8만 그루 등 총 1750종 35만 본의 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제3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우리를 부르는 풍경’ 이라는 주제로 유럽 및 아시아권 22개국 245명의 정상급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그 동안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유럽 사진대가들의 오리지널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 http://safe119.daegu.go.kr/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의 중앙로역 구내에서 50대 남자가 휘발유를 담은 페트병 2개에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져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린 대형참사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에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50대 중반의 한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하다 판단착오로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출근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타고 있어서 인명피해도 엄청나 192명(신원 미확인 6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대구 진골목
진골목은 짧다. 100미터 남짓이다. 하지만 골목이 지닌 내력은 깊다.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그의 형제들이 모여 살았다. 정소아과 건물의 주인은 서병국의 방계 형제인 서병기의 저택이었다.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건물이다. 대구 최초의 2층 양옥 건물이다(1937년 건립)
진골목에는 ‘미도다방’이 있다. 미도다방은 1982년 문을 연 뒤로 대구∙경북 지역의 정치인과 유림, 문인 사이에서 명소가 됐다.
진골목의 마지막은 대구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다. 대구에 화교가 정착한 때는 1905년. 대구화교협회는 1929년에 지어진 서양식 붉은 벽돌건물이다.
화교협회를 나오면 길은 대구제일교회와 계산성당, 동산 선교사 저택으로 이어진다. 대구제일교회는 대구의 기독교 건물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건물이다. 멀지 않은 곳에 계산성당이 있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한 계산성당은 서울, 평양에 이은 세 번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서울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인들이 내려와 1902년 지었다고 한다. 시인 이상화가 이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침실로’를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한 곳도 계산성당이다. 성당 맞은편으로 대구제일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3∙1운동길. 1919년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이 길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명 ‘90계단길’로 불린다. 계단 끝에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이 세 채 서 있다. 1900년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배경이 워낙 예뻐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도동서원[道東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현풍)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김굉필[金宏弼]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현풍(달성)출신.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리고 6년 뒤, 김굉필은 갑자사화가 벌어지면서 결국 목숨을 잃는다. 김굉필은 김종직의 수제자였다는 이유로 결국 사약을 받아야 했다. 김굉필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의 뜻을 따르겠다며 사약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림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 그는 부모의 삼년상을 무려 세 번을 치렀다(아버지-어머니-계모) 그의 깐깐하고 지독한 성격, 꼬장꼬장하고 과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훤당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증조부가 현풍 지동(池洞)에 은거하면서 이곳을 드나들며 비슬산과 인연이 닿았다.
도동서원 수월루(水月樓) 서원의 정문. 수월루는 애초 이곳에 서원이 들어설 때는 없었던 건물로 1855년 창건되었으며, 1888년 불타버려 오랫동안 터만 남았다가 1973년 복원되었다. 누각 아래가 출입문이다. 누각에 올라 앞의 낙동강에 비친 달을 보고 수월루라 명명하게 되었다. 수월루(水月樓)는 물위에 비친 달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의미이다.
도동서원 중정당(中正堂) 도동서원 강당사당부장원(講堂祠堂附墻垣)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 계단의 돌들에 새겨진 태극무늬·연꽃무늬, 완(卍)자쌓기 기단, 높은 기단에는 물고기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네 마리의 용머리. 용(龍)은 물을 다스리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용두석은 홍수로 강이 넘치는 수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 들어있다.
그리고 2개의 다람쥐 무늬, 담장에 박힌 암키와와 수막새의 조화, 지붕 끝 기와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와 제작연대 표시 등,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것들이 숨어 있다. 돌은 거의 같은 모양을 볼 수 없을 정도로, 6각형 내지 심지어 12각형 모양으로 하나하나 다듬어서 모든 정성을 기울여 끼어 넣었다.
강당인 중정당과 사당, 이를 둘러싼 담장이 모두 보물(제350호)로 지정돼 있다. (담장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전국 최초이다)
중정당 옆에는 다른 서원에서 보기 힘든 돌 받침대가 하나 있다. 이름은 생단(희생단).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수로 쓰는 짐승을 올려놓는 곳이다. 중정당 마루안에는 선조대왕께서 하사하신 사액(賜額)현판이 걸려있다.
도동서원 전사청(典祀廳) 지금 관리소로 쓰이는 전사청에는 유생 식당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도동서원 동재 거인재(居仁齋)와 서재 거의재(居義齋) 유생들이 기숙사. 거인(居仁)과 거의(居義)는 맹자 이루 상(上)장에 자신이 인(仁)에 머물러 의(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吾身, 不能居仁由義, 之謂自棄也)에서 나오고 있다.
군자는 생활에 편안함을 찾아서는 안 된다(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는 공자의 말씀에 따라, 선비들은 불편한 생활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좁고 답답한 방이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을 익히는데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다.
도동서원 장판각(藏板閣)·고직사(庫直舍) 서재,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과 서원 관리인 숙소인 고직사
도동서원 차(次) 사당의 동쪽 담장에는 차(次)라고 하는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제사에 쓰인 제문을 태워버리는 설비이다.
한훤당을 존경하는 유생들이 전국유림대회를 열어 임진왜란으로 불탄 서원을 복원하자고 결의해 돈을 갹출하여 전국의 돌을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원건물의 돌들이 제 각각이다.
동화사[桐華寺] http://www.donghwasa.net/
심지왕사가 중건할 때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워 이 절의 이름을 오동나무를 상징하는 동화사(桐華寺)라 하였다. 동화사의 오동나무 동(桐)를 쓰고 화(華)는 꽃필화 자를 쓴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1732년 8번째 중건한 대웅전·극락전을 비롯하여 연경전(蓮經殿)·천태각(天台閣) 등 20여 채의 큰 규모의 건물이 있고, 당간지주(幢竿支柱)·비로암(毘盧庵) 3층석탑·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금당암(金堂庵) 3층석탑·석조부도군 등 보물 6점이 있다. 이밖에도 홍진국존진응탑비 등이 있다. 이곳에 1992년에는 높이 30m나 되는 석불인 약사대불(藥師大佛)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대웅전 안에 들어가면 천장에 세 마리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봉황이 날개를 달고 극락세계로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스님이 전한다.
현재 동화사는 지금 겨울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오동나무 꽃을 피우기 위한 불사에 한참입니다
봉서루는 불이문 혹은 해탈문이라는 이름이 붙는 중문에 해당한다. 대웅전 앞 누각인 봉서루에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 영남승군사령부를 두어 승군을 조련, 지휘하던 곳인 영남치영아문 (嶺南緇營牙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치영(緇營)이란 말은 승군의 군영(軍營)이란 말입니다
두류공원[頭流公園] http://www.daegu.go.kr/Duryupark/
대구타워(제11경) 두류공원(頭流公園) 내에 위치한 유럽형 테마공원에 조성된 대구타워(높이 202m)는 대구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불 수 있는 관광명소로 다보탑 형태의 팔각형 탑신을 자랑하며 한국의 전통 건축미를 재현하고 있다.
두류공원 현진건문학비 현진건은 일제 강점 하에 살면서 그 시절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소설가이다. 43년의 생애를 통하여 끝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굳은 의지와 그 철저한 문학정신의 자취를 후세에 전하고자 1996년 이 비를 세웠다(두류공원 인물동산 내)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한 팔공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2층(대지면적17,880㎡ 건축연면적 3,758㎡)의 규모로 유기문화실, 기증실, 재현실 등 3개의 전시실과 문화사랑방, 영상교육실, 야외공연장, 기획전시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요 소장품은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유기장 이봉주翁이 평생 제작하고 수집한 방짜유기 275종 1,489점으로서 대구광역시가 무상 기증받아 소중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1983년 이옹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4년에는 지름 161㎝, 무게 98㎏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징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고, 청와대 및 아셈회의장 등에 공식 납품하면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상도’나 ‘대장금’ 같은 인기드라마의 소품으로 이옹의 유기들이 단골로 사용되었다. 문경에는 방짜유기촌이 있다
부인사[符仁寺]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이다.
경내에 선덕여왕을 모시는 사당인 숭모전에는 매년 음력 3월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부인사는 고려시대에는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각한 초조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불로·봉무동(목공예, 화훼단지)
1985년 불로동과 봉무동이 불로·봉무동으로 통합되었다. 1995년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대구광역시 동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동서로 경부고속국도가 지나간다. 명물거리로 불로화훼단지와 불로목공예단지가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로니에 나무만을 가로수로 심은 마로니에거리가 있다.
불로목공예단지 불로동과 도동 일원에서 생산하는 목공예는 전국 목공예 생산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다. 전통가구는 물론 국악기, 불교용품, 생활소품,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자랑한다.
불로화훼단지 사람들에게 화초를 판매하는 곳으로 인식돼 있지만 사실은 대규모 화훼생산지다.
3.1만세운동 90 돌계단 길
이어 탐방객들은 영남 최초 고딕양식 건축인 계산성당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1901∼1943)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1850∼1913) 고택, 3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전골목, 400m 길이의 '진(긴) 골목'을 거쳐 화교소학교를 방문하는 것으로 2시간에 걸친 골목 투어를 마쳤다. 대구고보 등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 길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3.1운동길로 지정된 길. 계단 올라가는 중간중간 대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중한 사진자료들을 볼수가 있다.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890년대 후반 기독교와 서양의학이 최초로 전파된 동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동산에 자리 잡은 청라언덕에는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등 근대건축물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상돈 고택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계산동 2가 84번지
수성유원지[수성못 제5경]
1986년 빗물과 폐수 분리지역을 설치하고, 수성못 바닥 준설공사로 못의 물을 정화하였으며, 수성못 남동쪽에 880m에 달하는 녹도를 조성하여 느티나무·은행나무·백자작나무·백일홍 등 화목류 26종 1만 8000그루를 심었다. 범물동의 용지봉(634m)에서 북서부로 뻗어내린 완만한 산지와 수성못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신숭겸장군 유적지
고려 태조 왕건을 모시기 위해 신숭겸을 비롯한 8명의 공신들이 목숨을 바쳤다 하여 팔공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절공 신숭겸장군이 백제의 견훤과 싸우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왕건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장렬하게 전사 한다 전사한 자리에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표충단을 설립하였다
약령시한의약문화관[藥令市場韓醫藥文化館,]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안에 있다. 대구광역시 소속 약령시보존위원회에서 관리한다. 대구약령시는 조선시대부터 전국적으로 이름난 약재시장으로 전성기 때에는 일본과 중국에까지 알려질 만큼 번성하였다. 국내 유일의 한약재 도매시장(경매장)을 갖추고 있는 대구 약령시장
약령시전시관은 대구약령시의 명성을 되살리려는 목적에서 1993년 설립되었다. 전시실에는 인삼·산삼·녹용·해마 등 각종 한약재를 비롯하여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등의 한의서와 약연·약작두 등의 한방기구 등 한방관련용품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 http://dgom.daegu.go.kr/
도심에서 4.5㎞이내에 위치하여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체력단련이 용이하다. "앞산"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은 대구의 앞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불리워지던 것이 고유명사로 굳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남구, 수성구, 달서구에 위치하고, 공원내에는 크고 작은 8개골과 20여개의 약수터 및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우방타워랜드 http://www.eworld.kr/
우방타워랜드 안에 있는 우방(주)이 시공한 우방타워는 탑높이 202m(탑신 153m, 철탑 49m), 해발 312m로 1984년 10월 대구직할시 승격(1981. 7. 1) 기념으로 건립을 시작하여 1992년 1월 개관한 국내 최대의 전망탑이다. 다보탑 형태의 팔각형 탑신으로 안정감과 한국의 전통적 건축미를 재현해냈다.
유가사[瑜伽寺] http://www.yugasa.net/
건물로는 대웅전과 용화전·산령각·범종루·천왕각·백화당·나한전 등이 있다. 유물로는 괘불과 삼층석탑·부도 15기가 전하며, 이 중 괘불은 가뭄과 질병, 왜군의 침략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찾아가 소원을 빌던 유물이고, 삼층석탑은 1920년 인근 원각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높이 3.64m로서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한편 수도암에서 150m 떨어진 곳에는 낙암과 월호(月湖) 등 15인의 부도가 모여 있다. 모두 석종형 부도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사당.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박팽년만 후손에 의해 배향되다가 나중에 현손(玄孫) 계창이 박팽년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사우건물인 숭정사에는 육신과 더불어 박팽년의 부친인 중림(仲林, ? ~ 1456 )의 위패도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의료선교박물관[醫療宣敎博物館]
건물들은 한식과 양식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기초는 조선 영조 때 대구읍성 축성 당시 사용된 성돌로 하였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이었으나 뒤에 함석으로 개조하였다.
이상화[李相和] 고택
이천동 고미술거리
따라서 건들바위 네거리 중남부수도사업소 옆 쌈지공원에 이천동 고미술거리를 상징하는 사인조형물이 연내 설치될 예정이며 고미술거리 상징조형물과 경관등을 설치하고 문화재매매업소 사인시스템을 제작. 설치할 계획이다
건들바위 1982년 대구광역시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건들바위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예로부터 바위의 모습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笠巖),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려왔다.
자연염색박물관 http://www.naturaldyeing.net/
청라[靑蘿]언덕 푸른 댐쟁이 덩굴
이 담쟁이는 미국 선교사들이 대구의 더운 날씨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갖고 와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대구가 낳은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님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의 로맨스가 담긴 노래 <동무생각(思友)>은 시인 이은상님이 박태준님의 연애사를 듣고 쓴 시에 박태준님이 곡을 붙인 가곡이다. 바로 이곳이 푸른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던 청라언덕이고 백합화는 박태준님이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이라고 한다.
또한, 청라언덕은 대구의 기독교가 지역에 뿌리내려 정착하고 지금의 동산의료원(동산병원)이 사회에 봉사하면서 성장한 중심지이다. 대구 근대화의 빛이 태동한 곳이며, 지난 100여 년간 지역 역사와 함께 호흡해 온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놀랄만한 변화의 과정이 녹아 있다.
동산은 제일교회를 설립한 아담스 선교사와 동산의료원(동산병원)을 설립한 존슨 선교사가 1899년 달성 서씨 문중으로부터 매입한 자그마한 산이었다. 달성토성(현 달성공원) 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다하여 東山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병원, 교회뿐만 아니라 당시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청라언덕은 선교사 주택을 비롯해 제중원(동산의료원 전신), 종탑,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갖고 왔다고 한다) 등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아랫쪽에 선교사 가족이 묻힌 무덤(은혜정원)이 있다.
이 나무는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미국인 존슨(Woodbridge O. Johnson·한국명 장인차)이 1899년 의료원 개원 당시 레드베아밍 등 3개 품종 72그루를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다.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생존, 의료원 주변에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사과나무는 이 품종에서 떨어진 씨앗이 발아된 것으로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2세)에 해당된다. <사진 : 대구 동산의료원 선교박물관에 있는 2세목>
또한 그 아래쪽에 삼일절 노래가 새겨져 있는 문이 있고 그 문 한 쪽벽에는 3.1 독립만세를 부르던 애국자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으며 맞은 편 벽에는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곳이 있다. 청라언덕 노래비 옆에서 시내 쪽으로 내려가는 90 계단까지는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서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통과 했던 솦밭길이었다고 한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일제의 감시가 심해 3월1일 보다 늦은 1919년 3월8일 오후 큰장( 현 섬유회관 건너편)에서 학생과 교회 지도자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태고정[太古亭] 달성군 하빈면 묘동
파계사[把溪寺]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문화재로 보물 제1214호 파계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있다.
팔공산[八公山 제1경]
팔공산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통일구상을 하면서 수행했던 곳이며, 고려를 세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원래 산의 명칭은 공산이라고 불렀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고 불렀다.
한국영상박물관 http://www.kvm.or.kr/
소형 영화카메라는 1930년 미국에서 제작된 키스톤 K-8 더블 등 50점, 영사기는 16㎜와 8㎜를 합해 약 50점, 비디오카메라는 세계 최초로 제작된 소니 분리형 베타1100 등 400여 점, 카메라는 1916년 미국의 코닥사에서 나온 베스트코닥 스페셜 등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미래 영상산업의 발전과 영상교육의 장을 만들고 영상예술의 진흥과 발전의 역활을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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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팜스테이 마을
여러 가지 농촌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둔 마을이다. 두부 만들기, 트렉터 타기, 칼국수 만들기, 곤충만들기, 나무 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한제국 말기에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1907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조성했다.
금호강 자연생태공원 이 공원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도 수변공원을 개발 할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자연친화적인 생태 공원이다
나비생태원 나비생태원은 봉무공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환경교육을 모토로 2002년에 건립되었다. 나비생태원, 영상관, 나비학습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나비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생태 테마파크이다.
대구 동성로축제 대구의 도심인 동성로의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1990년부터 개최하여 왔으며,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가 추진되는 도심축제로서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 및 문화시민 활력소 도모, 각종문화행사 및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음
대구 맛집 동인동 찜갈비 찜갈비 골목은 1970년대 공사장 인부들의 반찬이나 술안주 삼아 나왔다는게 시초란다. 1970년대부터 소갈비를 찌그러진 양은냄비(열전도율이 빠르다)에 담아 매운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주양념으로 해서 조리, 간장으로 맛을 낸다
대구 맛집 따로국밥 따로국밥의 유래는 50여년 전 현재의 대구 중앙사거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거리 건너편은 대구 인근에서 나뭇짐을 지고 들어와 땔나무를 사고파는 나무전이 섰다고 하는데, 솔잎이나 솔가지, 장작 등 다양한 땔감들을 줄지어놓고 잠시 요깃거리로 즐겼던 장터국밥이 바로 오늘의 따로국밥으로 발전했다는 것. 흥정하러 나온 사람들 가운데는 연세가 지긋한 이들도 있어, 국밥을 낼 때 “밥은 따로 내라”고 이르던 것이 그 후 “나도 따로 주소” 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따로”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대구 맛집 반야월막창(Abomasum)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짐승의 제4위(곰양/벌양,절창/처녑/막창) 즉 마지막 위를 고기로 이를 때 쓰는 말로 '홍창' 이라고도 한다.
혹위(1위) ·벌집위(그물위)(2위) ·겹주름위[重瓣胃](3위) ·주름위[皺胃](4위)라고 합니다.
막창은 소한마리에 생산량이 200~400g 정도로 극히 소량이며, 막창은 창자의 마지막 부분을 말하는 것이고 곱창은 막창을 뺀 나머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막창(제4위)은 위를 갈라서 손질을 하기 때문에 동글게 나오지 않고 펼쳐져서 나오며 두께도 도톰하고 구웠을 때 질감이 부드럽고 씹히는 맛이 좋게 느껴지고,
돼지막창(큰창자)은 뒤집어서 깨끗이 손질하여서 다시 뒤집어 원형대로 하여 판매를 하기 때문에 막창을 구웠을 때 동글동글하게 됩니다. 막창은 곱창(작은창자)보다 도톰하고 맛이 담백하며 씹히는 질감과 맛이 좋습니다.
곱창(작은창자)은 소나 돼지의 소장을 가리키는 말로 튜브상태로 탄력섬유가 많은 곳이다. 곱창은 기름기가 유난히 많은 '기름창자'인데다가, 그 생김새가 '곱슬머리'처럼 꼬부리듯 굽은 모양의 창자라는 뜻에서 나온 말 입니다.
옛날에는 '곱'이 '기름'의 뜻을 가져서 그 흔적이 '눈곱· 곱돌· 곱똥' 등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합니다.
대구반야월 생막창은 23가지 천연재료로 숙성한다. 기존의 막창은 90%이상이 삶은 막창으로서 막창을 삶으면서 세포내의 수분과 육즙이 외부로 용출되어 막창의 고유한 맛이 사라지는 점이 단점입니다.
양곱창에서 양은 소의 4개 위 중 제 1위를 말하는 것으로 소의 위를 말하는데, "그것 먹고 양이 차냐?" 이때의 양이 바로 이 양입니다. 곱창은 소의 창자를 말하며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은 소의 위장을 말하는 것이고, 곱창은 소의 소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같이 나오는 것을 양곱창이라고 부릅니다. 소곱창은 없는 말로 아마도 소의 곱창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대구반야월막창 본점(동구 동호동. 지하철 1호선 반야월 역 하차)
대구섬유축제 대구의 주력 산업인 섬유산업을 육성하고, 첨단 섬유패션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산업축제이다.
대구국제섬유박람회 2002년부터 대구에서 개최하였으며, 세계적인 유행 경향을 예측하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여 제안하는 국제적인 섬유소재 전문전시회
지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외관과 전통적인 지붕의 곡선은 녹음의 대덕산을 배경으로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최신기술공법의 푸른색 ‘몬도트랙’은 선수에게 최상의 경기환경을 제공하며, 최신 영상장치와 음향시설 또한 경기장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고조시킨다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 대구약령시는 1658년(효종 9)에 개장하여 수백 년간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한약재를 공급해 온 한약 물류유통의 거점이다. 오늘날까지 남성로 약전골목 일대에는 한약방·한의원·약업사·인삼사 등 350여 개의 한방 관련 업소가 밀집해 있고 약령시 전시관과 약재도매시장이 있어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 컬러풀대구페스티벌 대구가 직할시(광역시)로 승격한 이듬해인 1982년부터 해마다 개최했던 ‘달구벌축제’가 2002년에 중단되고, 2004년부터 새롭게 시작된 대구광역시의 대표적인 시민축제이다.
동촌유원지
MMC(만경관) 대구 최대, 최고의 멀티플렉스 MMC만경관은 국내 최초, 순수 국내자본과 국내 노하우로 24시간 운영되는 MMC는 24시간 365일 언제나 열려있다. 영화가 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들러보게 되는 곳이다.
모영재 이 재실은 1931년 고려 개국 공신인장절공과 심숭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인데 매년 음력 9월9일에는 신씨문종에서 합동으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백불암 종가 옻골마을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소재한 경주 최씨 칠계파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로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1616년에 정착한 이래 380여 년간을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봉산문화거리 서울 인사동 거리와 비견되는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거리로 꼽히고 있다.
뽕나무 골목 대구 계산동 계산성당과 앞밖걸 사이 골목을 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지리전략가인 두사충(杜師忠 또는 杜思忠) 장군이 귀화하여 인근 경상감영공원 터에 살다가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오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정착한 곳이 지금의 계산성당 인근 지역(계산동)이다. 두사충은 그 일족과 함께 길쌈을 하여 먹고살고자 계산동 일대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뽕나무 밭을 일궜다. 그 후 두사충은 최정산(最頂山·현 대덕산) 기슭으로 옮겨가고 민가가 들어섬에 따라 뽕나무는 대부분 사라졌으나 뽕나무 골목이란 이름으로 두사충의 전설은 아직까지 전해온다.
1770년에 이르러 시장이 형성되었고 1920년대에 대구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대구 중심의 서남쪽에 있던 천황당 못을 매립하여 다시 장을 옮긴 것이 오늘날의 서문시장 위치이다. 현재 서문시장(대지면적 27,062㎡)은 6개 지구와 약 4,000여 점포가 들어서 있는 지역 최대의 종합시장이다. 본래 주거래 품목은 주단·포목이었으나 그릇, 청과, 건어물, 해산물 등 갖가지 상품이 거래되는 장으로 발전하였다.
안심 습지 하양 가는 국도에서 지하철 1호선 안심 기지창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1km 남짓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연이 유명하다.
쌈지 조각공원 대구 남구는 앞산 고산골에 '쌈지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남구에 따르면 이 조각공원은 봉덕2동 고산골 심신수련장 입구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조각가들이 기증한 추상 조각 작품 6점이 전시돼 있다.
한티재 높고 큰 고개를 뜻하는 ‘한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팔공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상부의 남사면과 북사면 모두 가파르다. 한티재를 넘는 길은 이러한 경사를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굴곡을 만들었다. 건설교통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허브힐즈 365일 숲과 함께 하는 관광지 허브힐즈는 자연주의를 지향하여 에코테마파크의 선두주자로 자부하고 있다. 숲과 허브농장의 여러 구역을 테마별로 나누어 다양한 볼거리와 허브 관련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분식점이나 비빔밥전문점도 운영하고 있다.
현풍곰탕 소꼬리와 양지머리, 우족, 양을 넣고 푹 고은 탕요리. 황해도에는 해주곰탕이 있고 경상도에 현풍곰탕이 있으며 전라도에는 나주곰탕이 있다.
곰탕의 어원은 여러가지설이 있는데, 《역어유해(1682년)》에는 고기 물을 ‘쿵탕’으로 표기했고 ‘쿵탕’이 곰탕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외에도 뼈 조각을 넣어 국물을 우러내기 위해 ‘곤다’는 뜻이 곰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내려 오고 있다.
"설렁탕"은 사골과 잡뼈로 육수를 끓이고 소머리고기와 양지머리를 넣어서 삶기에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고 "곰탕"은 소고기와 내장을 오랜시간 푹 고아 끓이는 것이기에 뼈국물 보다는 맑은 국물이 우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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