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과 구체적 내용은 준이와 완이의 도움이 너무 큽니다. 두 녀석이 제게온 이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녀석의 행동을 통해 타고난 것과 교육되어지는 것에의 차이도 명확히 보게 되거니와 양자 조화의 중요성도 크게 느끼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문제는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점이 많습니다. 발달장애 뿐 아니라 일반사람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양육환경에서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았느냐에 따라 개념도 달라지고 실제 사랑을 실천하는 법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동일한 것일지라도 각자가 타고난 성향이나 환경 속에서 목격하고 체득한 실천형태는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완이의 사랑법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귀여워했던 손자가 할아버지 상투잡고 흔드는 행동과 비슷합니다. 칭찬해주고 다소 오버하는 행동들을 기분좋게 받아주게 되면 완이는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바로 공간침범, 신체적 의존 (계속 몸에 들러붙고 사람 품에 있으려함)으로 바로 변질시킵니다.
얼핏보면 마치 사람을 무척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게하는 이런 행동들이라 무엇이 문제일까 반문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문제의 핵심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행동을 수시로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추구에서 오는 행동인지 진짜 너무 좋아서 하는 행동인지의 명확한 구분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에게 들러붙고 계속 비비적거리는 이런 행동의 본질에는 고유수용계와 촉각자극이라는 중대한 감각추구 욕구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계속 자기몸을 의존할 대상을 찾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이불과 커텐입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계속 거실로 끌고나온다든지 커텐으로 몸을 휘감고 계속 집착하는 행동과 사실 유사합니다.
문제는 이런 행동들을 사랑의 표현으로 착각하고 계속 받아주고 허용한 경우, 버릇처럼 굳어져서 누구나 자신에게 신체적 접촉을 허락한다는 오해를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완이를 처음 돌보게 되었을 때 야외나가면 아주 곤란했던 사건들이 바로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안기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그림이할머님이랑 같이 야외나갔을 때도 처음 보았는데도 가까이가서 신체적 접촉을 하려는 것을 바로 제지시켰는데요,
처음보는 어른이 제 차에 같이 타서 함께 있으면 완이의 이런 행동은 더욱 심해집니다. 차 안에서 사람에게 비비적거리는 행동은 늘 허용되었던 것 같고 그래서 통제시키기 어려운 차 속에서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소위 사람간보는 이런 행동은 완이에게 상습화되서 몇 번찔러보고 틈새가 많으면 계속 신체적 접촉을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이런 접촉행위를 할 때는 유난히 더 깔깔거리고 웃는 표정을 지어대니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귀여워서 허용을 해주며 자기를 마음에 들어하는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완이의 행동을 길게 예를 든 것은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의 행동의 배경은 감각추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고유수용계와 촉각자극 욕구는 신체적 의존이나 접촉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사랑의 감정 혹은 사랑의 갈구표현으로 일반사람들은 충분히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사랑의 내면은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고, 상대의 나를 향한 감정과 관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사랑이란 감정의 속성은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의 입장을 내것처럼 느끼는 사회적 배려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흔히 저지르게되는 사랑하는 사람에의 집착이나 스토킹행위는 바로 사랑의 사회성을 뇌적으로 충분히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완이의 일방적 신체접촉 행동처럼 일방적이며 자기욕구만이 내재된 행동인 것과 똑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만이 중요하게 작동한 이기적 사랑방식입니다.
준이는 반대로 전형적인 거리두기의 냉정파입니다. 준이를 꼬박 8년 키웠지만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 준이네의 태균이에 대한 안부문의입니다. 태균이 수술이나 검진때문에 준이가 며칠 집에 가야한다고 말해 줄 때도 태균이가 어디 아픈지, 수술은 잘 되었는지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준이네를 보면서 준이가 좀 많이 냉정하고 스킨쉽이나 사랑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행동의 이면에는 사랑의 표현이 극히 적었던 가정환경도 한 몫할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아이들을 양육해보면 부모의 사랑이 담긴 스킨쉽에 얼마나 노출이 되었었는지도 짐작을 하게 되는데요, 기본적으로 촉각방어 기전이 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담은 스킨쉽에 얼마나 자주 노출이 되었는지에 따라 중요한 치유책이 될수도 있습니다. 이런 애정어린 스킨쉽에의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촉각방어 기전이 커서도 많이 남아있게 됩니다.
전두엽 성장이 잘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퍼붓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됩니다. 자신에게 베풀어진 사랑에 감사하고 보답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전두엽 성장이 약하거나 늦어지는 아이들에게 일방적 사랑을 퍼붓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받은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지 않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사랑하는사람을 조정하려고하기 때문입니다.
전두엽 성장이 약하거나 느린 경우에는 사랑과 더불어 훈육을 통한 사랑의 기준제시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아이의 감각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 신체접촉을 오래 허용한 완이네나 사랑의 일상적 표현없이 꾸지람과 부정적 피드백이 보편적이었던 준이네나 두 녀석의 현재 모습은 과거 양육환경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실 저한테 양육이 맡겨졌던 아이들에게 가족의 개념이 남아있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가족이 잘했건 못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의미 파악을 할 수 있는 전두엽 가동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감각문제 비중이 크면 클수록 오로지 현재 밖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과 달리 기억에 의미를 입히는 뇌작업이 안되면 현재 밖에 남지않습니다. 현재라는 시제만 살아가는 방식은 결코 인간 방식이 아니며 동물들 삶의 법칙입니다. 유전프로그램에 따라 생존방식 행동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전두엽이 있어 비슷한 유전자에도 얼마든지 다른 행동양식을 보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오히려 전두엽이 마비됩니다. 특히 남녀사랑은 모든 감각적 정보가 거쳐가게되는 시상이란 영역이 미치도록 활성화되는 초이성적 감각흥분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초감각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지속적인 사랑의 감정은 반드시 전두엽이 제대로 가동해주어야 가능합니다.
전두엽 기능이 마비된 초이성적 사랑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감정을 자주자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사랑방식이 우리 아이들의 현재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기술도 남달라야 한다는 것을 힘들지만 인지해가야 합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사람을 조종하려 한다는 대목에서 강하게 접수해 봅니다.
오늘도 유익한 공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