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도로 가는 날 (목)
아침8시에 인천공항 도착 여러 일행들을 보았다. 오후1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한달동안 한국이라는 나라를 잊어 버리고 떠나는 인도여행 이었다.
인도시간으로 오후7시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쯤에 인디라 간디공항에 도착했다.
인디라 간디항공에 있는 환전소에서 120불을 환전하고
미리 기다린 선재랑 떠나는 인도여행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버스를 탔다.
메인 바자르(메인시장)거리에 내려서 아눌게스트 하우스에서 이틀밤을 묵기로했다.
처음내가 대면하고 말을걸고 비행기 안에서 애기를 나누고 같이자게 된 일행은 이상일 이라는
중학교 들어가는 동생이었다. 아눌게스트 하우스에서 여려아이들과
처음 대면이라 그런지 서먹서먹 했다. 저녁 시간에 원카드 라는
게임을 하고나니 서먹서먹한 기분은 사라졌다.
1/3--인도 뉴델리에서의 첫 아침!(금)
아침일찍 여러군대를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아침을 때우고
오전 10시쯤 법사님, 편혜문 선생님(놀이강사), 이한솔, 육동우, 이상일과 오토릭샤 두 대를 빌려서
오토릭샤 투어를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어린이 박물관(내셔날 휠드런)
눈 앞에는 여러새들과 토끼들을 키우는 장소가 보였고 바로 앞 에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이
보였다. 박물관에 들어가보니 인도 사람들의 생활상이 있는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도 산업화 된 모습 여러종교 사진과 인도 옷, 음식, 의식주의 모습이 잘 보여졌다.
법사님과 편선생님은 뚜려져라 처다 보시는데 다른 아이들은 지겹다며 운동장에 있는 여러새들구경을 하고 박물관을 둘러싼 조그마한 철로를 따라 두바퀴 돌고 나니 편선생님과 법사님이 나오셨다. 오토릭샤를 타고 인도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이라고 하니까 더 좋겠지? 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립박물관에서 여러일행들을 만나기로 했다. 역시 국립이라서 볼 것이 굉장히 많았다.
한국 박물관은 도자기, 붓 으로 그린수묵이 많이 전시돼어 있는데 인도국립박물관은 주로 신상과 불상이
많은거 같다. 법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했다. 힌두교를 제대로 알려주는 신상들과
불교 미술사의 대표적인 간다라 미술 불상조각도 보였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스투파(탑)을 조그마하게
박물관 안에 세워진 모습도 보이고 부처님 모습을 그린 불상이 그리스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들어 낸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도 뉴델리에 있는 가장 인도답지 못하다고 하는 코너 플레이스를 보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도에서 가장 서구화 된곳이다. 그리스에 있는 기둥과 그리스양식이 많이 돋보이는 건물들이 곡선을 이루며 정말로 코너처럼 쭉 이어져 있었다. 지하상가에서 인도 옷 꾸르따도 사고 늦은 점심을 코너 플레이스에서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때
까지 게임으로 때우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한국음식 식당으로가서 김치전골을 먹었다. 생각의외로 굉장히 가격이 저렴했다. 5명이 같는데 총230루피(한국돈 6천9백원정도) 들었다. 100루피씩 내고 내일 버스투어 하기로 했다.
1/4--델리 버스투어 (토)
오전 10시쯤 델리의 역사적건물 그리고 시내 곳곳을 보러 버스투어를 하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투어를 같이하는 인도일행 26명이 타니 차안이 꽉찼다. 8코스정도 되는데 처음으로 갈 곳은
락슈미 나라얀사원이었다. 힌두교 사원이고 여러 힌두신들이 모셔져있다.
사원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신발을 벗고 가죽으로 된 옷과 혁대 여러 물품들을 가지고 들어가면 않된다. 나는 다행히 옷과 모든 물품이 면재질이라 쉽게 들어갈수 있었다. 힌두교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굉장히 특히하고 화려했다. 비쭉하게 올라선 탑 세개가 보였다. 밑바닥은 대리석으로 쭉 깔았다. 3개의 탑중 가장 크게보이는 탑안에는 비쉬누신과 략슈미라신이 있었다. 략슈미 나랴얀 사원에서 중심이 되는 신이다. 락슈미는 락슈미 신을 말하고 나라얀은 비쉬누 신을 말하기 때문에 이 사원에서 중심이 되는 신일 것이다. 비쉬누신은 평화 유지신이고 락슈미는 부업의 신이다. 다 열거 할수 없지만 건물안에는 10명이 넘는 신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인디라 간디가 27년동안 살았던 곳 가는도중 대통령의 집과 대통령 수령에있는 땅이 보였는데
그 크기가 엄청났다. 잔디로 쭉늘어진 평원이 보이고 여러 조각물들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쳐놓은 철조망들
대통령집이 보이고 난후 얼마안가 인도수상(국무총리)의 집이 보였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4차선으로 이어진 고속도로 같았다. 주변은 거의 숲속 수준이었다. 인도수상이 사는집 옆쪽을 보니 우리코스 인디라 간디 하우스
가 보였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많은 신문 보도기자가 있었고 인디라 간디가 자기경호원에게 암살 당했을 당시 입었던 옷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문 보도기자사진 그리고 인디라간디 암살당시 입었던 옷을 보고난 다음 주변 친척들에 대한 신문보도사진이
걸려 있었다. 인디라간디가 수상이 될 때 가장많이 힘을 쓴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 사진도 있었고
인디라 간디 아버지 네루와 여러 일가친척들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었다.
27년동안 이하우스에서 살았고 가장많이 지내셨던 곳이다. 인디라 간디 방을 볼 차례다. 처음으로 본 곳은 집무실이었다. 마하트마 간디 사진도 있었고 인디라 간디사진, 네루사진도 있었다. 집무실, 그리고 잠을 자는 안방의
분위기는 유럽풍이 었고 온화하고 단순하면서도 멋있는 클래식 한 가구들이 많았다.
인디라 간디는 초대수상 네루 다음으로 등급한 수상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자라는 것일 것이다.
옥스포트대학을 졸업하고 인도를 위해 일해온 인디라 간디 운명을 했을 땐 아쉽게도 암살을 당했지만
인도 사람들은 인디라 간디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델리에있는 약30개국이 모여져 있는 대사관을 보았다
끝이 않보이게 쭉이어진 8차선 도로와 가는 길마다 보이는 여러나라의 대사관에 있는 국기 너무나도 멋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대사관이 없는 것이다. 인도 전지역에는 약130정도 되는 대사관이 있는데
내가 본 곳은 그중에 약30개의 대사관이었다, 그 길을따라 가면서 인디아 게이트가 보였다.
세계2차대전에 있어서 2만명의 전사자의 넋을 기리기위해 세운 인도 델리에 있는 기념문이다. 주위는 커다란 정원이 엄청나게 크게 있었다 중국에 있는 천안문 광장 수준이 었다.
꾸뜹미나르를 보려고 할때 점심시간이라 인도정식 탈리로 점심을 먹고 이슬람 왕조가 힌두교, 자이나교와 여러종교 종교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여 세운 70m나 되는 커다란 기둥이다. 미나르는 이슬람들이 말하는 커다란 기둥이다. 건물을 건축할 때 힌두교사원의 잔해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입장료250루피를 준후 미나르를 보았다. 정교하게 무늬가 세겨져 있었고 이슬람의 특이한 문자무늬가 인상 깊었다. 커다란 이슬람 사원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미나르만 빼고 잔해물로 남아있다. 흙으로지어진 벽돌로 쌓여진 형태로 되어진 탑봉우리가 아주크게 보였다.
꾸뜹미나르에서 미나르 다음으로 알려진 것은 순도100%로 되어진 순철일 것이다. 5m정도 되게 보이는 기둥이고 아쇼카 석주를 많이 닮았다. 사자가없고 기둥 무늬만 있는 아쇼카 석주를 많이 닮은 것 같다. 현대기술로도 힘든 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슬람 사람도 대단하다.
인도 국회의사당과 정부 중앙청사, 경제부, 국방부등 여러 건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풍경을 보니 굉장히 멋있고
자동차들은 별로 않지나가는데 왜 도로가 고속도로 수준인지? 인도사람들은 너무 땅을 소비한다. 국회의사당 과 정부 중앙청사와 여러 건축물이 함께있지않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굉장히 특이하고 양식이 멋있는 그리스 양식 같았고 건물 색깔이 황토빛이 났다. 호수가 보이고 비둘기가 아주 많았았다.
저녁이 되어가는 오후4시 바하이 사원을 보니 연꼿모양으로 햇빛을 크게 받으면서 피어오를 듯한 모습으로 있었고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연상 시키기도 했다 바하이 사원은 전 세계각지에 있고 그 사람들의 이념은 유일신을 믿고 전 종교가 하나로 통합되고 가르침을 중시한다. 사원주변은 아주 큰 정원으로 연꼿모양 건축물과 조화가 잘 맞았다. 저기 멀리서 보이는 방금 다녀온 락슈미 나라얀사원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원 안에는 2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대리석으로된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집회장 장소같고 사원이라고 하는데 신상이나 어떤 상징물이 보이지는 않았다. 전세계에서 인도델리에 있는 바하이 사원이 가장많은 관람객수를 자랑한다고 하서 기대한만큼 사원안은 좋지는 않았다. 그냥 보통 집회장소 같았다. 하지만 풍경은 정말로 좋았다 공원도 이만한 공원이 없을 것 이다. 시간이 많이지나 델리성 랄낄라와 이슬람 사원 자마마스지드 그리고 타지마할의 모테 후마윤 묘당을 못 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 화장터에서 꺼지지 않는 불등을 보았다. 화장터 지단에는 여러꽃으로 치장을 해 놓고 간디가 암살당하고 난 다음에 화장을 하고 꺼지지 않는 불을 켜놓았다고 한다. 인도사람들이 지단에 손을대서 이마에 찍는 모습이 장엄함을 주었다.
1/5--델리에서 사랑의 도시 아그라로.... (일)
9시40분까지 아눌하우스에 모여 10시쯤 떠나 20분이상을 도로변을 따라 걷자 선재일행60명을 태워줄 버스 두 대가 보였다. 어른들 30명 중.고 30명해서 2대를 나눠탔다. 편선생님과 조정호형이 학생을 태운 버스를 타고 병욱이형과 법사님은 어른이 탄 버스를 탔다.
오후1시가 되니 4차선쯤 되는 도로옆에 호텔같이 보이는 붉은사암으로 궁전같이 지어진 건물에서
잠시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저녁이 되어 갈 무렵 어른이 탄 버스와 학생들이 탄 버스가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버스기사가 이 자리가 만나는 자리라고 우겨서 기다렸는데 시간은 6시가 넘으면서 밤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어른들없이 타지마할 근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기로했다.
1/6--문화유산 장대한 타지마할 !
아침8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부폐식으로 나오는 음식을 먹고 타지마할을 볼려고 타지마할의 서쪽문으로가는 길로 향했다. 서쪽문 도착 우연히 어른들이 탄 버스에 계셨던 법사님을 만날수가 있었다. 급히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짐을 옮기고 법사님과 어른들이 계시는 곳으로 향했다.
오후2시... 짐정리가 되자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전기로 달리는 릭샤를 타면서 타지마할의 동쪽문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보이는 건물은 타지마할의 정문이었다. 붉은사암을 바탕으로 햐얀대리석에 보석으로 박혀진 꽃이 상감기법으로 섬세했다. 타지마할도 마찬가지였다. 샤자한이 정말 철저하게 이슬람양식을 쓴 것처럼 보인다. 커다란 정문을 통과하자 눈앞에 하얀대리석으로 보이는 커다란 타지마할이 보였다. 안개가 끼어 재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전에 온것처럼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타지마할 좌 우에있는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곳에 들어가면 숲속에서 타지마할을 본 것처럼 느껴진다. 타지마할 양옆에는 모스크처럼 보이는 타지마할의 분위기를 더욱더 향상 시키는 건물이 보였다. 타지마할은 전 바탕이 하얀 반면에 정문과 여러문 그리고 모스크 처럼생긴 건물까지 바탕이 붉은사암 이었다. 샤쟈한의 이 행동은 타지마할을 주시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예를들어 하얀바탕에 빨간색으로 된 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몇 발자국 않가서 여러층으로 된 계단이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철조망으로 관계자를 막았다. 계단을 내려가면 뭄 타즈 왕비의 진묘가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가묘를 보고 틈이 보이지 않게 보석을 조각에 박혀놓은 상감기법이 아주 화려했다. 굉장히 섬세했다. 천장은 둥그스러운 형태를 가지고 사람들이 소리가 타지마할 안에서 울렸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갖가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어 샤자한 왕의 뭄타즈 왕비의 사랑을 짐작해한다. 안에는 통제시키는 곳이 많아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2시간이 흘러 여러 곳 을 둘러보았다. 정문으로해서 타지마할에 이르는 중앙에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인공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물빛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뭄 타즈 왕비가 16번째 마지막 왕세자를 낳은 후 뭄 타즈는 한가지 소원을 한다. 세계가 놀랄만큼으로 나의묘당을 만들어 달라고... 얼마나 고심했던지 뭄 타즈가 죽고 이틀 후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뭄 타즈 왕비는 얼마나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을까? 무굴제국의 번영기에 샤쟈한 왕의 사치도 절정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가버린 왕비를 그리워하는 왕의 깊은 사랑이 이처럼 정교하고 우아한 묘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