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들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은 현대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대인들 역시 불면증으로 고생을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의 해결책으로 다량의 알코올을 섭취했다는 고대의 기록이 있다.
알코올은 신경계를 억제해 진정 작용을 하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 수용체에 결합한다. 때문에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잠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개운하게 숙면을 취하지는 못한다. 의식은 흐려지지만 수면의 각 단계를 충분한 시간만큼 거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 세기 전에는 밤에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걸 해결하는 게 더 급했을 테니 과량의 알코올 섭취가 적절한 해결책으로 쓰인 게 이해는 간다.
의식을 흐릿하게 만드는 각종 약초도 불면증의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약물을 함부로 사용했다간 의존증이 생겨 약물 없이는 잠을 못 이루는 지경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환각증세를 비롯한 수많은 부작용이고 말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현대적인 의미의 수면제는 언제 등장했을까? 19세기에 화학이 발달함에 따라 수면제도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외과 수술을 위한 마취제로 에테르가 이용되었는데, 이 약물이 종종 불면증을 치료하는 용도로 처방되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들은 단순히 의식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뇌와 몸을 잠든 상태로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 이용되는 약물들은 크게 수면제와 수면유도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수면제는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반면에 수면유도제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사의 복약 지도만 있으면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두 가지 모두 불면증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물이지만, 약효나 성분 등의 특성에 차이가 있다. 보통 수면유도제의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이고, 수면제의 경우 적게는 네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까지 효과가 지속된다.
가장 흔한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는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다
수면제는 수면진정제(sedative-hypnotics)라고도 부른다. 이름 그대로 수면 효과뿐 아니라 진정 작용을 하는 효과도 가지기 때문이다. 수면제는 불면증의 치료제로만 쓰이는 약물이 아니다. 수술 시에 마취보조제로도 쓰인다.
수면내시경 검사 같이 비교적 간단한 시술을 할 때 주사제로 쓰이는 약물이 사실은 수면제로 처방되는 약물과 동일한 성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수 세기 전의 사람들이 마취제를 수면제로 쓸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수면제는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의 약물이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과거에 많이 사용되었다가 부작용과 단점이 많이 드러남에 따라 점차 그 사용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뇌신경계에서 전반적으로 진정, 이완 작용을 하는 가바(GABA)라는 물질의 수용체에 작용한다. 가바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진정, 이완 작용을 더욱 강하게 일으킴으로써 잠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효과 때문에 공황장애나 광장공포증 같은 불안장애의 치료에 쓰이기도 했고, 항경련제나 근이완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뇌에는 가바 수용체가 여기저기에 존재하며 종류도 매우 많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가바 수용체들 모두에 작용한다.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효과 이외에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지럽거나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부작용은 약물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복합적인 작용을 일으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각각의 부작용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기 어려워 더욱 위험하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그 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해독제도 존재한다. 하지만 의존성이 매우 높아 함부로 복용했다간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렘수면(REM sleep)과 서파수면(slow wave sleep) 시간을 모두 감소시킨다. 즉, 복용을 하고 잠을 청해도 깊은 잠에 들어가진 못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바비튜레이트(바비탈)계 약물이 있다. 이 약물은 작용을 완화시킬 해독제가 없고, 복용했을 때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용량인 ‘치사량’이 작아 매우 위험하다. 이는 바비튜레이트계 약물이 전반적인 중추신경계의 작용, 그중에서도 특히 호흡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비튜레이트계 약물은 과거에 마취 보조제나 항경련제로 이용되었으나 요즘은 이 같은 위험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세 번째로 비(非)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들 수 있다. 여기에도 몇 가지 세부 종류가 있는데, 졸피뎀이라는 약물도 이에 포함된다.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의존성이 낮다. 즉, 몇 번 먹는다고 해서 그 약 없인 잠을 이룰 수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약물 역시 부작용이 있다. 함부로 복용할 경우 기억에 혼란이 생길 수 있고 환각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수면제로 복용한 뒤 몽유병 증상을 보이거나 약에 취해 잠이 든 채로 운전을 한 경우도 보고된 바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마찬가지로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도 각성과 이완 상태를 조절하는 가바 수용체에 작용한다. 하지만 신경계에 분포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바 수용체에 모두 작용하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달리,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특정 종류의 가바 수용체에만 작용한다.
그 때문에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에 비해서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수면을 좀 더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되고 있다. 또 비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작용이 빠르게 나타나고, 저녁에 복용할 경우 아침에 잠에서 깨기 전에 체내 대사작용을 통해 약물 성분이 전부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항우울제를 수면제 대신 쓰기도 한다. 일부 항우울제는 만성 통증의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만성 통증 환자의 경우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있어 이같은 항우울제를 통해 잠드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항우울제로 쓰이는 약물 일부(TCA계열 약물)는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중 단일 아민계열 물질의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함으로써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비벤조디아핀계 약물처럼, 벤조디아핀계 약물에 비하면 낮은 의존성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경우에 따라 어지럼증, 입 마름, 속 쓰림, 성기능 저하, 몸무게 증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나 나타나는 경우에도 대부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작용과 약물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단정짓기는 어렵다.
항우울제는 렘수면과 수면의 단계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울증세를 완화시키면서 동시에 실질적으로 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이다. 하지만 수면 유도작용 외에도 다른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불면증의 근본 원인이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작용과 연관이 있거나 우울증 때문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복용해야 한다.
가벼운 감기나 두통, 알러지를 치료하기 위해 먹는 항히스타민제 역시 수면제로 쓰인다. 감기약이나 타이레놀을 먹었을 때 졸음이 쏟아졌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런 약물 속에 신경을 진정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어 수면제처럼 잠이 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물들은 단기적으로 불면증을 치료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일시적인 수면장애를 불면증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애매한 면이 있다.
수면제의 복용은 전문의와의 상담을 거치는 게 좋다
오랜 기간 불면증을 겪는 경우 무턱대고 수면제를 먹기보다 먼저 수면 습관과 잠자리 주변의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불면증이 수개월간 지속되고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면 반드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것을 권한다.
일부 수면유도제는 약사의 복약 지도에 따라 약국에서의 구입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래도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전문의의 처방을 받은 경우에도 복용량이나 기간, 복용 시점 등 자세한 복용 방법에 대해 적절한 지도를 받고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수면제를 처방받아 일정 기간 복용할 경우, 함부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약물에 대한 신체의 반응 양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수면제의 경우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에도 전문의의 지시를 받는 것이 좋다.
불면증은 수면제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현재 수면제로 쓰이고 있는 약물들은 뇌신경계의 작용을 안정시킴으로써 잠을 유도하거나, 한번 잠이 들고 나면 각성상태로 쉽게 돌아오지 않게 함으로써 잠든 상태를 오래 유지시킨다. 단기적으로 한두 번 잠이 너무 오지 않을 때, 또는 불면증으로 인해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할 때는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수면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면제는 사실상 불면증을 직접적으로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수면제들은 간접적으로 신경 작용을 조절하여 잠이 오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줄 뿐이다. 수면제는 일시적인 효과를 주지만 약물이기 때문에 의존성, 중독, 내성, 금단증상을 비롯해 심하면 합병증을 일으키거나 근본적인 질병을 감출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면증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평소 올바른 수면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 글 박솔 |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석사재학생.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 연수생.
-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졸업 후 동물의 마음을 조종하는 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지학사 중학 독서평설 <꿈꾸는 과학의 세상 뒤집기> 연재, <세상을 만드는 분자>
- 번역, 네이버 포스트 ‘뽐내는 과학’, 트위터: @solle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