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는 시인의 주관적 정서나 내적 세계를 드러내며 음악적 언어의 리듬으로 이뤄지며 대체로 "시는 서정시부터"라고 얘기한다. 서정시에서 리듬과 문장은 어울려 발생하므로 시의 내용과 형식을 나눌 수 없고 각 문장들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정적인 흐름을 이룬다. 이와 조금 다르게 어느 순간만을 가져온다면 자연스러운 천착의 과정을 함께 하게 된다. 시인의 시가 이러하다. 주관이라 부르기 어려울 시적 운용과 일관된 내면의 표현들이 세속(도망갈 곳) ㅡ 비 세속(흰 눈물)을 오가며 몰입하게 만든다. 물질세계의 삶은 때로는 아픔의 궁기가 가득하지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알면서도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인식의 교란과 착오의 중첩을 불러온다. 비슷해 보이지만 "원래 그러하다"는 체념과 "다른 듯 다르지 않다"는 동종 공간(isotopie)에서의 주체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 부정적 종결의 공간에 반해 동종 공간임을 인식하게 되는 주체로 하여금 유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영화감독인 아쉬가르 파라디는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라고 얘기했다. 하나의 프레임이 연결되어 완성하는 영화처럼 순간과 순간의 자연스러운 이음으로 삶은 영위된다. 일상일 수 있는 노을에서 부여한 유의미를 다시 볼 수 있다. 노을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접점接點이다. 저무는 시간의 마지막이란 이미지, 새로움의 경계가 가져오는 변화무상의 텍스트에서 화자의 아쉬움은 확장한 이미지로 몰입이 된다. 아름다움이 된다. 의인관적(anthropomorphism)적 성질을 부여하면서 끝없는 서정의 이미저리(imagery)로 생동하는 시적 발상의 서정을 읽어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작년에 출간한 책인데 이리 찾아주시니...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오늘입니다
네 선생님
새해복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