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다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十字架)
고전1:18절,135.136.138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해골“이라 불리어지던 갈보리 산언덕에 새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중앙에 우뚝 선 십자가는 예수께서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달리셨던 십자가였습니다. 그 좌우편에 선 두 십자가에는 강도들이 함께 못 박혀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고 갖은 욕설과 저주의 말을 내뱉던 강도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모습은 평온하며 엄숙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편 강도가 조롱하며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그러나 주님의 모습에 감동 받은 다른 편 강도가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음이 없느니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자신의 죄인 됨을 시인하고 주님께 믿음의 소원을 아룁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 개의 십자가에 대해서
각각 멸망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 그리고 능력의 십자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먼저 세 개의 십자가가 주고 있는 교훈을 생각해 보면 주님의 죽으심과 구원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멸망의 십자가가 있습니다.(눅23;39절) 1)죄를 행함으로 오는 멸망입니다. 로마 시대에 시행되었던 십자가 형벌은 죄수 중에서고 가장 흉악한 죄수에게 가해지던 참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좌우 편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들의 이름은 '다이스미스'와 '가이스미스'였다고 합니다. 이름이 비슷한 것으로 볼 때 가까운 친척이나 또는 형제지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강도들이 '달린 행악 자'라고 성경에 기록된 점을 볼 때, 이들은 모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행악 자들이었고, 죄를 행한 결과로 멸망의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사형수의 집행 현장을 지켜 본 어느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사형이 집행될 때 골고다 언덕의 좌우 십자가가 재현되는 장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이는 원만하고 저주하면서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은 이는 죄를 참회하면서 영생을 믿고 평안한 중에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들 모두 흉악한 사형수들이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네 인생 모두가 하나님 앞에 사형선고를 받은 행악 자들이요, 살아간다기보다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지 못하면 멸망의 십자가에서 죽은 강도나 다를 바 없는 사형수들입니다. 우리가 모두 죄의 십자가, 사망의 십자가, 그리고 멸망의 십자가에 매여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2)주님을 부인함으로 오는 멸망입니다. 막15:32절에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처음에는 좌우 편 강도 모두 예수를 부인하며 조롱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주님을 알아 본 강도는 구원함을 받았지만,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고 조롱한 강도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똑같은 장소와 시간에 함께 주님을 뵈었지만,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지옥으로 두 인생이 갈라진 것입니다.
같은 이슬이지만 벌이 마시면 꿀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어떤 이들은 치유와 은혜를 체험하는데 다른 이들은 상처와 시험을 받는 것을 봅니다.
주님을 시인하고 영접한 강도는 구원받고 낙원에 이르렀는데 주님을 부인하였던 강도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10: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2.구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눅23:41,42절) 2)죄를 고백함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파스칼은 '자신의 죄 인됨을 알지 못하는 이는 희망 없는 죄인이요, 죄 인됨을 깨달아 아는 이는 소망 있는 죄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총독 등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면서도 예수님을 심문하고 유죄로 판결하여 십자가 형체 처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의 무고함을 믿고 오히려 자신의 죄 인됨을 시인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위선자들이 그들의 법률과 종교적 의로움을 내세우지만 자신들의 죄 인됨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자신의 죄 인됨을 시인함으로 주님 안에 있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병자가 자신의 질병을 시인하고 의사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듯이 우리가 죄 인됨을 시인할 때 구원의 주님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고백합니다.
시32: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하나님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죄 인됨을 고백할 때 십자가의 구원이 임합니다.
2)주님을 시인함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모두들 십자가 위의 예수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는 오히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며 예수님의 왕 되심과 영혼을 의뢰할 주님이 되심을 시인합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히려 그에게 '구원의 기회' 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그물을 내렸을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서 비로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시인하였습니다.(눅5:8).
도마는 그 손의 못자국과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주시며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라고 시인합니다.(요20:29).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비출 때 비로소 '주여 뉘시니이까?' 하며 주님을 시인하였습니다(행9:5).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는 아무런 이적이나 표적 없이, 오히려 치욕적이고 절망적인 상태의 예수님을 보면서도 주님 되심을 시인하고 그 영혼을 의뢰하였던 것입니다. 흔히들 은혜를 입고 만사형통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 되심을 쉽게 시인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고 역경에 처하면 주님을 주님으로 시인하지 못합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주님의 응답은 주님의 주님 되심을 시인할 때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 되심을 시인할 때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되심을 시인할 때 잃었던 실낙원의 비극이 회복된 낙원의 축복으로 임합니다.
3.능력의 십자가가 있습니다.(눅23:43절) 1)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충족시키는 십자가입니다. 흉악범들을 처벌하는 치욕적인 형틀인 십자가였습니다.
잔인무도한 헤롯왕이나 배신자였던 가룟 유다가 달렸으면 참으로 어울림직한 십자가 형틀에 왜 무고하신 예수님께서 달려야 했을까요? "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여야 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공의의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 된 우리 인생의 죄과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롬5:8).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십자가에 담겨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숨겨진 구원의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하셨습니다.
2)성도의 생활과 섬김의 증표인 십자가입니다. 간혹 어떤 이들이 말합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어렵게 살기보다 마지막 순간 숨 거두기 전에 구원받은 강도처럼 주님을 영접하겠노라' 그러나 누구도 마지막 순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아도 주님 안에서 성장하며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기에 우리의 구원은 하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주님께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생활까지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삶은 풍성한 삶이요, 십자가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는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멸망의 십자가가 아닌 구원의 십자가에 속한 은혜를 감사드리면서 능력의 십자가 안에 있는 구원과 풍성한 삶을 누리며 이번 사순절 기간에 구원과 능력의 십자가를 증거 하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료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