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이런 글을 쓰냐면요.
얼마전에 굶주리고 있는 저를 어여삐여기셔 부모님께서 용돈을 하사하셨습니다.
저는 머리를 조아리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밥 사먹으라고 준 돈으로 당연히 시약을 사러 기자재 쇼핑몰에 들어갔더랍니다.
그런데 처음 구입했던 허름한 동네에는 크리스탈 바이올렛 용액을 안 판다네요?
어라?
그게 없으면 그람 염색을 못 하잖아.
안 되지, 안 돼.
그래서 다른 동네로 가 보니....
"개인 고객은 꺼져주시겠습니다, 고객님^^"
어?
아니 잠깐만요. 아가씨. 그게 무슨소리요, 멀쩡히 상품 리스트에 있는데 살 수가 없다니!
...요는그겁니다.
어떤 중 2 병X들이 시약을 사다가 장난을 쳤네요?
근데 그 장난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나왔네요?
그래서 법으로 금지됐다네요?
아 좀 제발.
진짜 그렇게 밥 먹고 할 일이 없거든 소금이나 처먹고 영원한 잠이나 푹 잘것이지.
누군 화약 못 만들어서 총 안 만드는 둘 아나.
니트로 글리세린은 또 뭐하러 만들려고 한 건지...
진짜 사람 죽이고 싶거든 호수 밑바닥 까서 삐~ 균 배양하고 밀봉한 뒤에 스포어 생기면
통조림에 타서 먹이면 될 것을.
사망 확률이 30%라도 신경독이니 확실하게 헬 앤 헤븐을 관광시킬 수 있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식중독 판정나서 통조림 회사만 문 닫고 끝날수도 있으니
겁쟁이 병신들한테는 딱인 방법일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혼자 열불내다가
그럼 교수님한테 근처 시약상을 물어보자!
"교수님... 그람 염색, 염색이 하고 싶어요..."
해서 시약좀 구할 만한데 없을까요. 헤헤.
그랬더니 진지한 교수님.
"그냥 연구실 들어가서 선배들하고 교수님한테 배워"
전 그냥 관찰만... 어떻게 안될까요? 교수님?
"여러가지 장비도 필요하고, 혼자서는 힘들지. 혹시 자네 벤처기업 할 건가?"
아뇨... 그렇게 본격적인 건 아닌데요.
"시약이라는 거 사 봤자 멸균도 해야 하고 배지도 있어야 하고..."
아, 오토 클레이브요.(이 땐 말만 들어봤음. 차라리 아는 척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그래, 그거 없이 어떻게 실험하겠다는 건가?"
(별 생각없이) 그것도 사면....(웃음. 역효과)
(급 정색하시면서) 허, 참.
.....나가버리시더군요.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처음엔 화도 좀 나고.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근데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교수님하고 저 하곤 온도차가 있더군요.
몇 십년간을 미생물 연구만 하시면서 프로의식을 가지고 계신 교수님.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밥은 딴 걸로 빌어먹고 살면서 취미로 현미경을 갖고 놀려는 저.
전 그냥 이 현미경으로 가지고 놀 수만 있으면 장땡인데,
그 교수님의 입장에선 미생물 관찰이란 일종의 직업이니까요. 돈을 받는 일이니 철저해야죠.
그제서야 아, 내가 오히려 우습게 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미생물 실험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이 바로 다른 미생물이 끼어드는 "오염"인데요.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이놈이든 저놈이든 눈만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글 쓰면서도 느끼지만 확실히 제 생각이 짧았네요. 다음 수업때 사과드릴 생각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본격적으로" 미생물을 관찰할 때 필요한 소품 몇가지를 찾아봤습니다.
가격이 엄청나네요.
현미경만 있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제가 바보였습니다.
1. 배지
배지는 미생물들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밥이라고 해도 영양소를 조금씩 달리해서 특정 환경을 만드는 밥이지요.
그리고 페니실린같은 걸 첨가해서 저항성 없는 애들을 솎아내는 배지도 있습니다.
사실 미생물을 배양하는 데는 필수적입니다. 아니, 그냥 필수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2. 마이크로톰
마이크로톰(microtome)은 말 그대로 시료 제작용 미세 절단기입니다.
우선 관찰 대상을 파라핀으로 굳혀서 틀을 만들고 그 다음에 저 가운데 고정시킨 뒤 슥삭슥삭 잘라냅니다.
이것도 박편을 만들려면 필수입니다. 현미경은 빛을 투과할 만큼 얇은 대상만 볼 수 있으니까요.
3. 그리고 대망의 오토 클레이브.(고압 멸균기)
설명은 위에 나와있네요.
시험관, 샬레, 시약병등 가지가지 미생물 오염을 막는 데 씁니다.
...아하하하하
그래도 이게 그나마 좀 싸군요.
4. 마이크로 피펫.
엄청 정밀하게 조작하는 스포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그래도 이거 하나는 들고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전 연구실 안 들어갔으므로 패스.
5. "그럼 커버글래스는 싸겠지?"
"님 돈 썩어남?"
커버글래스는 슬라이드 글래스 위에 얹는 그 얇은 유리조각을 말합니다.
슬라이드 글래스보다 더 비싸지요. 보니까 한 70~80장에 2만원 정도네요.
...말이 7~80장이지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데다 제대로 된 샘플 구경하려면 한 번에 한 서너개는 만들어야 하는데...
뭐 실험실 장비야 워낙 고가의 물건이다보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 교수님도 흘리는 말처럼
"요즘은 옛날이랑 다르단 말이야"
음.
글 쓰다보니 괜히 더 기분이 가라앉네요.
어쩔 수 있나요. 현실이 그런 걸.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여자들 명품 백 같은거 사진 오려서 스크랩 해놓는거.
그런 기분입니다.
언젠가 돈 좀 벌면 저도 저런 장비 만지며 놀 수 있겠지요.
그러니 결론은 과학계를 망쳐놓는 중2병신들과 황우석 모가지를 따자! 입니다.
첫댓글 좋은 장난감들이네요.
좀 비싼 장난감들이지요. 하긴 생각해 보면 유모차도 몇 백만원 짜리에다 어린애들 장난감도 몇십만원하는 세상이니;
우리나라는 저런 것 탄압을 즐겨합니다. 그래서 덕후들이 덕질하기엔 매우 힘들다죠.;쩝.;-_-; 역덕후도 힘듬.;-_-
ㄷㄷㄷ떨어트리면 빛쟁이되겟네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