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와 중국 초나라 문화의 연관성 탐구[文化特性面面观]韩国文化与中国楚文化联系蠡探)"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중남민족대학 남방소수민족 연구센터 杨万娟(양만연)교수가 작성한 글을 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의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에 의거하여 추적한 중국어 기사 원문을 아시아연방론 카페지기 주창웅씨가 초벌 번역한 것으로
꽤 재미있게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의 초나라와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몇몇 지명 분포의 유사성과 소위 단오제등의 우리문화와 중국 초나라 문화가 비슷하다는 것으로 마치 중국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하는 또하나의 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在韩国,除江陵外,还有与楚国地名相同的丹阳、襄阳、汉阳(今汉城)、汉江等地名,查韩国地名设置史料,这些地名设置距今已六百多年。从表面上看,韩国的地名和两千多年前就存在的楚国地名好像没有什么关联性,但我看了石泉先生近期出版的《古代荆楚地理新探·续集》一书,很受启发,认为它们之间有联系。据石泉考证,楚国古都江陵并不是在长江中游,而是在汉江中游的湖北宜城。按照新论,楚人建国初期在汉江上游丹江支流的丹阳,发展成熟时期政治文化中心在汉江中游的江陵(宜城)、襄阳一带。另外上溯中国汉江的源头,是在陕西秦岭的太白山下,尽头则在下游的汉阳。比较一下韩国的几个地名分布:丹阳属于忠清北道在汉江的上游,汉阳在汉江的下游,属于江原道的江陵和襄阳均在汉江上游不远处,洞庭湖也在江原道。最有趣的是韩国汉江发源于江原道和庆尚北道连接处的太白山下。韩国地名分布几乎和中国古代楚国地名的分布同出一辙。
한국에서 강릉을 제외하고도 초나라 지명과 같은 단양, 양양, 한양(지금의 서울), 한강 등 지명이 있으며, 한국 지명 설치에 관한 사료를 살펴보면 이들 지명의 설치는 지금으로부터 600년 정도 됩니다. 표면상으로는 한국의 지명과 2천여년 전에 존재한 초나라의 지명은 아무 관련성이 없어 보입니다만, 제가 석천 선생의 최근에 출판된 <<고대형초지리신탐.속집>> 한 권을 보고 그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천의 고증에 의거하면, 초국의 옛 도읍인 강릉은 장강의 중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강 중류인 호북성 의성에 있었습니다. 새 이론에 비추어 보면, 초나라 사람들은 초기에 한강 상류인 단강의 지류에 있는 단양에서 건국하였고 발전 성숙기에 정치문화 중심은 한강의 중류인 강릉(의성), 양양 일대에 있었습니다.그 밖에 위로 중국 한강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섬서성 진령의 태백산 아래에 있는데, 그 하류에 한양이 있습니다. 한국의 몇개 지명 분포와 비교해 보면; 단양은 충청북도 속하고 한강의 상류에 있으며, 한양은 한강의 하류에 있으며, 강원도에 속하는 강릉과 양양은 모두 한강 상류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동정호도 강원도에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한강이 강원도와 경상북도가 맞닿은 태백산 아래에서 발원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지명의 분포가 중국 고대 초나라 지명의 분포와 같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중국인들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이렇게 치밀하게 우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양교수는 단군신화에서도 초나라 문화의 자취가 있다고 합니다.
...楚人早期是以熊为图腾崇拜的部落。楚人姓芈,少系业务氏熊,在鬻熊之后,历代有三十多位国君以熊为姓,其最早居地又多以熊命名,如“有熊”、“熊山”、“穴熊”等。
초나라 사람들은 일찌기 곰을 토템으로 삼아 숭배하는 부락이었습니다. 초나라 사람은 ...육웅의 후예로서 역대 30여명의 왕이 웅(곰)이란 성을 사용하였고 그 최초 거주지는 유웅, 웅산, 혈웅 등과 같이 곰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였습니다...
라고 하며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왕검(고조선은 BC 2333년 개국했습니다.)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열국(列國) 가운데 하나인 초나라(BC 771~221)의 후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关于“三危”、“太白”,韩国学者多认为“太白”指朝鲜平安道境内的妙香山,“三危”指中国敦煌附近的三危山。中国学者对古三危地方的说法不一致...
삼위와 태백에 관하여는 한국의 학자들이 많이 태백은 북한 평안도 경내에 있는 묘향산이고 삼위는 중국 돈황 부근의 삼위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옛 삼위 지방에 대한 설명은 불일치 하는데...
라고 하면서도 억지로 지명맞추기를 또 자행합니다.
삼위태백에 대해서는
...삼위(三危)란 세 사람이 차례로 무릎을 꿇고서 제사를 지냈다는 뜻이다. 제사의 초헌,아헌,종헌을 말한 것이다...그리고 태백(太白)이란 바로 콩을 제수로 삼아 천신께 고했다는 말이다.[출처 : 박문기 저 / 한자는 우리글이다.]
에서 보듯이 지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公元前57年古新罗建国,新罗是由辰韩部落联盟中斯卢部落所建,所以也称斯罗、斯卢。初期新罗地盘狭小,四世纪后,开始征服周围部落,成为半岛东南部的强国,公元676年新罗率先统一了大同江以南的朝鲜半岛,并以熟练使用汉字的优势,创造并记录下来了开国神话。新罗在统一后的两个多世纪内,出现繁荣景象,独具特色的新罗文化在统治者的倡导下广为传播最终成为韩国主流文化之一。
서기전 57년에 옛 신라가 건국되었는데, 신라는 진한의 부락연맹 중에서 사로부락이 세운 것이며, 그런 까닭에 사라, 사로라고도 불렸습니다. 초기 신라의 땅은 협소하였으며 4세기 후에 주위의 부락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반도 동남부의 강국이 되었으며 서기 676년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조선반도를 앞장서서 통일하였고 아울러 한자를 익숙하게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개국신화를 창조하여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통일 후의 2세기에 걸쳐 번영한 모습을 나타냈는데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 신라 문화는 통치자의 창도하에 널리 전파되어 마침내 한국의 주류 문화의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라고 해서 [중국 초나라 후예인] 신라가 건국되고 이런 신라가 서기 676년에 대동강이남에서 통일(?)하였다고 추켜세우며 엄연한 우리 고조선을 초나라시절 옛이야기를 기억하는 신라인들이 조작한 개국신화로 치부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韩终修炼的地方是楚国境内的长沙。可推想韩终在长沙时与罗氏、卢氏交往密切,在秦灭楚后,韩终带着罗氏、卢氏等楚国亡民有准备地逃离了秦国,渡海到了朝鲜半岛,在那里重建家园。
한종이 장사에 있을 때 라씨, 로씨와 긴밀히 교류하다가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한 뒤 한종이 라씨, 로씨 등 초나라 망명자들을 데리고 준비를 갖추어 진나라를 떠나 바다를 건너 조선반도에 이르러 어느 곳에서 다시 나라를 세웠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제는 아예 역사적 사실이 아닌 양교수 자신이 추측한 내용을 기록합니다. 아! 이러면 좋겠다는 것이죠. 소설을 쓴 것입니다.
[소설가?]양교수는 심지어 정설이 아닌 어느 족보까지 인용합니다. 가관입니다.
...韩国罗氏、卢氏的宗谱也有类似的记载。韩国罗氏被分为罗州罗氏和锦城罗氏。韩国1982年版《罗州罗氏大同谱》卷一《姓原考》说,“周代成王因大罗氏有功封罗国,为楚附庸,后被楚屈氏所灭,是为豫章罗氏”。韩国罗氏宗谱非常明确地记载着罗氏是“楚附庸罗国”、“祝融(楚人先祖)氏后裔”,由此可见,罗州罗氏和锦城罗氏同出一宗,都是楚国之地的罗国人。
한국의 라씨, 로씨 족보에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라씨는 나주 라씨와 금성 라씨로 나뉘어졌습니다. 한국의 1982년판 [나주 라씨 대동보] 권1의 [성원고(姓原考)]에는 "주나라 성왕 시대에 대라씨가 공이 있어 라국에 봉하였는데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다가 뒤에 초나라 굴씨에게 멸망당하니 이것이 예장 라씨이다."라고 합니다. 한국의 라씨 족보는 매우 명확하게 "초나라에 부용한 라국", "축융(초나라 사람들의 선조)씨의 후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볼 때, 나주 라씨와 금성 라씨는 한 조상에서 나왔고 모두 초나라 땅의 라국인입니다...
이제 하다하다 중국의 대북공정에 이용당하는 저 1982년판 [나주 라씨 대동보] 권1의 [성원고(姓原考)]는 자진 삭제해야할 것입니다.
...笔者认为,韩国卢氏应是从楚国来的卢戎之后裔。综上所述,笔者认为,中韩两国的文化联系不仅仅表现在一些地名上的相似或相同,更重要的是早在2000多年秦朝末年,在方士韩终的率领下,楚国的罗、卢两氏的3000多居民就迁徙到了朝鲜半岛的东南部,并建立了辰韩、弁韩以及后来的新罗国。韩终应是檀君神话中桓雄的原型。
필자는 한국의 로씨는 당연히 초나라에서 온 로융의 후예라고 봅니다. 위에 서술한 바를 종합하면, 필자가 알기로는 중한 양국의 문화의 상관성은 단지 몇몇 지명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에만 근거하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일찌기 2000여년 전 진나라 말기에 방사 한종의 인솔하에 초나라의 羅, 盧 양씨의 3000여 거주민이 조선반도의 동남부에 이주하여 진한, 변한 및 이후의 신라국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한종은 당연히 단군신화 속의 환웅의 원형입니다...
라고 양교수는 글을 마칩니다만, 본인이 스스로 '필자가 알기로는 중한 양국의 문화의 상관성은 단지 몇몇 지명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에만 근거하지 않으며'라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단지 몇몇 지명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에 근거하였다는 한계를 언급하고 있으며, 또 한종이라는 제나라[중국 춘추전국시대(BC 771경~221)]사람을 우리 국조인 단군을 낳으신 환웅이라는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단언하지만 이 글은 우리 금성나씨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또 양교수 개인의 바라는 바의 꿈같은 추측기사일 뿐입니다.
소위 '슬랙이'라는 비하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금성나씨는 이런 글에 현혹됨이 없어야 합니다.
첫댓글 지나인의 주장이 억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택할 부분이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초나라는 열국시대에 변방의 오랑캐로 취급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용국인 라국이 치우천황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국인들은 치우천황(배달국의 18대 환웅중 제14대 자오지 환웅천황<기원전 2707년>을 일명 치우천황이라 함)의 후예임을 지나인인 양교수가 인정한 것이니 이 것은 동북공정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우리가 취할바 입니다.
신라를 나씨가 세웠다는 것은 아직 설이 아니라 가설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현혹되면 안되지만 탐구라면 좋지 않겠습니까?
.밝 누 리. 나 용 주
[밝은 우리의 온 삶터]
저도 인터넷에서 비슷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만, 학자로서 주장은 할 수있겠지만, 너무 옆으로 갔다는 느낌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신라의 근원을 밝히는 일보다 지강공과 총례공이 우리에게 누구인지 두분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 우선 아닐까요? 제가 어느 책자( 굳이 책 이름까지 밝히지 않겠습니다.)에서 본 글인데, 동양의 氏와 姓이 모두 중국의 有巢(유소)씨에서 발원했다. 즉 '유소씨가 동양인의 시조다'라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소의 후손인 鄭나라 鄭씨들이 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등으로 퍼져 나갔고, 신라도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니 언어는 달라도 혈통은 다 같다라는 것이지요. 재미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