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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아버지 위대한 발명가인 조선 초기의 인물 장영실은 어떻게 그 섬세하고 오묘하게 신비한 여러과학기구(혼처의, 자격루, 측우기, 수표 등)들을 만들었을까?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수모를 받았으나, 그것을 참아내고 주변에서부터 하나하나씩 이치를 따져 그 원리를 알아내 더욱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구들을 만들어 내곤 하였다. 세월은 흘러 세종대왕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노비의 신분을 벗고 궁에서 일하게 되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그 누구도 모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장영실에게 한가지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갖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다'라는 말이다.
장영실의 목표는 '나의 노력으로 남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라는데 나도 한번이 목표를 실천에 옮겨 볼 계획이다. 왕의 걱정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도 불렸던 장영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수 있는 장치인 '옥루', 가뭄과 홍수를 미리 알고 이겨 낼수있는 '측우기', 개천이나 강물의 양을 잴수있는 기구인 '수표'등의 뛰어난 과학기구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장영실은 안타깝게도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어느날,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분부에 따라 몇주일동안 고생하며 만든 가마를 세종데왕이 탔다. 이 가마는 장영실이 만든 가마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이게 웬일인가! 가마꾼중 한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가마가 땅에 부딪쳐 부서지고 그속에 타고 있던 세종대왕은 영문도 모르는채 넘어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의금부(그 당시 법을 지휘하는 결정권을 가진 문관들의 모임)에서는 당장 사형을 내렸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세종대왕의 어명에 옥살이를 하게된 장영실.
우리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참 안타깝다. 만약 의금부가 그동안의 공적으로 장영실을 용서해 주었다면 역사에 남을 큰 발명을 몇가지 더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려울 때도 꺾이지 않고 항상 어떤상황에서나 이치와 까닭을 찾아 알려고 했던 장영실. 그분은 우리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신 과학의 아버지. 훌륭한 발명가 장영실에게 지금 깊이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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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은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다'라는 말을 새긴 재용이도 이러한 자세로 일관되게 공부하고 생활해 나간다면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우니 잘 간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