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5회 참선과 명상, 같은 점과 다른 점 – 5
그런데 禪이라고 하는 글자가 희한하게도 참선이라고 하는,
디아나라고 하는 역어로 그대로 쓰기에는 뭔가 좀 뉘앙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세계가 하늘세계와 뭔가 관계를 맺는 어떤 현상.
보이지 않는 세계와 깊은 사유를 통해서 들어간다는 어떤 뉘앙스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디아나라고 하는 것을 禪 ←이 글자로 가져온데는
모종의 표현하고 싶은 그런 뜻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禪那라고하는 것이 나중에
禪이라고 하는 한 글자로 됐지만,
禪 ←이것이 제사라고 하는 뜻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래서
禪定이라든지 이런 단어와 계속 붙어서 쓰게 된겁니다.
이러한 형태의 禪이라고 하는 것이,
“思惟修다. 생각이다. 思惟다. 靜慮다.”라고 하는,
“생각”이라고 하는 단어,→ 思惟라든지, 생각 慮라고 하는 ←이런 단어
들과 맞물려지면서 이것에 대한 표현이 조금씩, 조금씩 禪宗에 오면
생각이지만 생각이 끊어진 생각.ㆍ생각이 깊어진 생각. ←이런 것들로
표현이 되기 시작한 겁니다.
탄허스님은 “저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깊어져서 생각이
끊어진 생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도표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얘기를 한 겁니다.
우리가 용산에 국립중앙 박물관에 가면,
국보 78호 보면 손가락을 볼에 댄 미륵보살상이 있습니다.
항간에서는 어떤 학자분들은,
“금동미륵보살반가좌상이라고 해야된다. 손을 볼에 대고 있다고 해서
사유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맞지 않다. 부처님 불상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것은 단순한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반가좌상이라고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탄허스님의 말씀처럼 “思惟修”라고 하는 개념으로 禪을
얘기하고 있고, “생각이 끊어진 생각”이라고 얘기한다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思惟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禪定에 들어있는 모습으로서 미륵보살을 이렇게 표현했다.” 라고
해도 그다지 무리가 없을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思惟修나 靜慮같은 그 생각이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라, “생각이 끊어진 생각”이라고 하는 것!
그 다음에 이것이 어느 정도 끊어져야 되느냐?
“마음의 생멸ㆍ생각의 생멸ㆍ기멸이 없어지는 세계.” 지난 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성품 性자의 性자리는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 소식이다.
그 자리가 바로 근본 성품자리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이 상속한다.”
여러분.
“유산을 상속한다. 재물을, 재산을 상속한다.”는 말이 원래는,
“상속하다.”는 불교 용어가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상속입니다.
생각이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것.
‘생각이 끊어져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바로 선정상태이고,
그것이 깊어지면 해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첫댓글 _()()()_
생각이 깊어져서 생각이 끊어진 생각이다.”...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禪, 思惟修, 靜慮..
생각이 끊어져서 완전히 없어진 상태.
깊어지면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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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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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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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文光스님 – 呑虛思想 - 韓國學을 말하다. 5廻-5.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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