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서 70대 친구를 만난 기쁨
을지로입구 2호선 7번 출구 앞,
롯데백화점 턴도어 앞 12시. 아내와 친구를 기다린다. 중학생 때 친구다. 시골중학 남녀공학의 여학생반 친구로 순봉은 졸업 후 간간히 만나는 친구이고 다른 한 친구 덕남은 오늘 새롭게 만난다. 중2학년 끝에 보고 이제 만나니 얼굴 기억조차 가물하고 또 어찌 변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15분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데 순봉은 도착시간이 좀 지체된다 하고 덕남은 제시간에 올 것 같은데 어느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마침 중년이 지난듯한 여인네가 문 앞에서 서성이기에 쭈빗쭈빗 다가가 “혹시 친구 순봉을 기다리세요?”하고 물으니 “아니에요, 저는 아니에요”한다. 서울본말씨다. 마치 십 대 때 낯선 소녀에게 말 걸었다가 퇴짜 맞았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한다.ㅎ
“아, 네 아니군요. 실례했습니다”하고 물러났다.
아내가 “아닌가 봐? 퇴짜 맞았네? ㅎㅎㅎ” 놀린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또 이 비슷한 여인이 턴도어를 밀고 들어와 두리번 거린다.
아내가 “저 사람 같은데? 가서 노크해 보지?”하는데 쉽게 다가서지가 않는다. 아내는 이러는 내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말 걸어보소. 가봐.”하며 실실 웃는다. 이러고도 한 쉼이 지나도록 지켜보는데 이치 역시 중앙현관으로 갔다가 왔다가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누구를 기다린다. 아내 앞에서 “흠!” 헛기침 한 번 하고 다가가 “혹시 친구 순봉을 기다리…” 말도 체 끝나기도 전에 “아! 맞아요. 같이 만나기로 한…..? “
이렇게 만났는데 하도 오래된 사이라 생뚱맞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색해하다 내가 “내 집사람이에요.”하고 아내를 끼워 서로 수인사를 주고받는데 명동 쪽에서 순봉이 바쁘게 다가왔다.
이렇게 만나 식당가에 올라가 음식을 시켜 놓고 비로소 통성명을 했다. 얼굴이 기억 날듯 말듯하다며 서로 낯선 얼굴에서 옛 흔적을 찾으며 점심을 먹고 인사동 경인갤러리를 거쳐 안국동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하는 그룹 데이트를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그룹톡으로 잘 왔고 반가웠다는 간단한 인사에 덕남의 답톡이 왔다.
-“56년 만에 고향친구 만나서 오랜만에 문화생활 잘하고 즐거운 하루였네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몇십 년 만난 친구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해주는 안방마님 넘좋았어요.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 지키며 즐겁게 살다가 웃으며 다음에 또 만나요.
청라까지 먼 길 가고 있을 소중한 내 친구도 집에 잘 도착하길~”
그래 지나간 세월이 56년이다.
열다섯, 열여섯 나이 때 수줍어 말 붙이기도 어려워하던 소년소녀가 70이 넘어 다시 저 사춘기의 어색함으로 만나다니….. 생각할수록 기적 같다.
처음 만나던 저 세상보다 네다섯 배나 더 살아왔다. 서로의 차차세대인 손자 손녀가 저 때의 우리들 보다 더 나이 든 이제 만나 잊었던 저 때의 수줍음으로 정겨운 우정을 다시 새기니 기적인 것이다.
정말 고맙다. 서로가 고맙다.
어뉘 부부가 되고 또 어뉘의 부모가 되어 세상의 한 자리를 일구고 살아오며 저 푸른 싹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온 친구 사이가 고맙고 고맙다. 비록 우리는 이제 비어 가지만 그래서 껍데기만 남겠지만 서로의 살아온 속을 내어놓고 손잡을 수 있으니 참 괜찮은 인생이지.
남은 삶 더 비워내고 살겠지만 비운만큼 저 푸르렀던 청소년의 기억을 채우고 꿈꾸며 살리라.
잊었던 10대의 기억을 되찾아준 친구,
정말 고맙고 고마워. 사랑해!
첫댓글 손봉
익숙한 이름이어서 놀랐습니다.
참 고운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