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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1-17, 26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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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우의 피를 흘린 가인을 향해(11), 땅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유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내리셨습니다(12). 그런데 이것은 즉각적인 심판을 보류하시고, 고난을 통해 육은 멸하지만, 영은 구원받게 하시려는 징계였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항의이며,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갖는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사람은 징계로 인해 유리 방황하는 중이니 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도전하는 중한 죄이다’라는 표를 주시며 가인에게 이 징계를 받아들이도록 권면하셨습니다(15). 하지만 가인은 이러한 징계를 깨트리고 곧바로 정착해 버립니다(16). 그리고는 아들의 이름을 ‘에녹’(시작)이라 짓고는 그의 이름으로 성을 쌓아줍니다(17).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새로운 족보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이름을 내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가인의 후손에서는 유명한 자손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곧 오늘로 치면 재벌에 해당하는 야발과 연예기획사 대표에 해당하는 유발과 군수업자인 두발가인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결국 가인의 오대손인 라멕은 하나님의 징계를 정면으로 비웃고 조롱하게 됩니다. 한편 셋은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셋의 오대손인 에녹은 하나님과 평생 동행하다가 천국에 직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능력을 확장시키는 일에 집중한 가인의 가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한 셋의 가문보다 복을 더 받은 것 같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실패하는 이유는 예배가 아무래도 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본향에서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회복되는 것이 아무래도 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이 땅에서 자기 이름 내고, 돈과 권력과 쾌락을 누리고 사는 것이 진짜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가인의 족보는 6대손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셋의 6대손 므두셀라가 죽던 해가 노아의 홍수로 모든 인류가 심판을 받은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이 복이라고 하는 것을 복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 복이어야 합니다. 돈, 권력, 쾌락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것이 복이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예배에 승리하게 되고, 징계를 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읽어주는 GT-먼 나라에서 온 오빠 이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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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 14일 목요일 점심 무렵의 일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연인이 사탕 바구니를 들고, 대한극장 매표소 앞에서 한참이나 볼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만의 ‘화이트데이’ 데이트는 결국 를 함께 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들에 뒤이어 영화표를 발권받은 사람은 연로한 부부였다. 그들은 를 보길 원했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영화 상영관인 1관을 향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한극장 지하 1층에 위치한 1관은 조금 큰 DVD방 수준의 스크린을 가진 아담한 상영관이다. 노부부에 뒤이어 표를 발권 받은 나도 영화 시작 5분을 남기고, 1관으로 들어섰다. 상영관 안엔 열다섯 명 남짓 되는 관객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관객의 면면에서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관객 중 상당수가 할아버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대낮부터 이 작은 영화관을 찾은 까닭이 상당히 궁금했다. 대부분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영화를 만든 양영희 감독은 재일 교포 2세다. 그런데 표현을 더 신중히 하자면, 그녀가 재일 조선인 2세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조총련계 간부인 아버지와 살며 그녀가 경험한 아픔은 그녀의 전작 과 에 잘 나타나 있다. 는 앞선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극영화에 해당한다. 1959년 일본과 북한은 북송 협정을 체결한다. 그때까지 일본 정부는 조선인 신변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당시 재일 조선인은 무국적자 신세였다. 그래서 1959년 이후 20여 년간 진행된 재일 조선인 북송 사업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으로서도 어쩌면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그 사업을 계기로, 친오빠를 북한으로 떠나보냈다. 아버지의 정치적 신념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뇌종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할 수 있게 된 오빠와 어렵게, 그것도 잠깐 재회하게 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극적인 ‘재회’의 순간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면밀하게 보면,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주요 인물들은 정도 차를 두고, 북한 체제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갖고 있다. 오빠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에서부터 동행해 온 감시원 때문에 주인공의 가족은 마음 편히 속내를 내놓고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빠는 아직 치료도 받지 못했는데 다시 북송명령을 하달받게 된다. 가족이 받았을 상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한 영화감독의 개인사적 아픔이 담긴 작품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어쩌면 대한극장 1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 역시 같은 이유, 다른 색깔의 비극을 안고 있진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북한을 향한 기도는 멈춰선 안 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자유로운 봄날을 누릴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안숭범_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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