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객석의 불빛. 가까운 것은 밝고 먼 불빛은 어둡다. <출처: stu mayhew at flickr.com>
Oh Be A Fine Girl, Kiss Me. 학창시절 지구과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문구다.
별의 분광형인 O, B, A, F, G, K, M을 쉽게 암기할 수 있게 해주는 잘 알려진 비법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처음 만들어져 쓰였다는 이 분류법은 종종 불만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냥 A, B, C, D 하면 될 것을 의미도 없는 알파벳에 순서도 제멋대로이니 그럴 만도 하다.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보면 빨주노초파남보의 아름다운 무지개 색을 볼 수 있다.
이는 빛의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져 나타나는 현상인데, 파장이 긴 빨간색은 적게 굴절하고, 파장이 짧은 보라색은
많이 굴절한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햇빛 속에 여러 파장대의 빛이 골고루 섞여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햇빛에는 빨간색보다 더 긴 파장을 갖는 적외선도 있고, 보라색보다 더 짧은 파장을 갖는
자외선도 있다. 이렇게 프리즘을 써서 빛을 파장대역 별로 분리해 보는 것을 분광이라 한다.
또 분광을 통해 파장대 별로 얼마나 많은 양의 빛이 들어오는가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스펙트럼이라 한다.
프리즘에 의한 빛의 분산 <출처: Suidroot at wikimedia.org>
태양 빛의 스펙트럼은 섭씨 5500도로 달궈진 흑체에서 나오는 복사 스펙트럼과 비슷하다.
뜨겁게 달구어진 흑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을 발생시키는데, 어떤 색깔의 빛이 가장 많이 나오는가는 흑체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태양 빛의 스펙트럼을 흑체 복사와 비교해 보면 태양 표면의 온도를 유추할 수 있다.
태양빛의 스펙트럼. 노란색은 대기의 영향이 없을 때 들어오는 햇빛의 스펙트럼. 빨간색은 대기에 의해 흡수되고 지상에 도달하는 빛의 스펙트럼. 검정실선은 절대온도 5778도의 흑체복사에 의한 빛의 스펙트럼이다. 이로부터 태양의 온도를 알 수 있다. <출처: Nick84 at wikimedia.org>
별들도 마찬가지다.
망원경을 통해 별 한 개만 분리해 관측하면 별의 색깔과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그로부터 별의 온도를 알 수 있게 된다.
신기하게도 별은 색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파란색 별이 빨간색 별보다 더 뜨거운 별이다.
별의 온도에 따른 색깔 <출처: The AstroInfo Project>
분광학을 통한 항성의 분류는 이탈리아의 안젤로 세키(Angelo Secchi, 1818-1878) 신부가 제안한 4분법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클래스 I에는 시리우스와 같이 백색이나 청색을 가진 밝은 별들이, 클래스 II에는 태양과
같이 황색을 띈 별들이 속해 있었다.
또 베텔기우스와 같이 붉은 별들은 클래스 III에 포함되었고, 탄소 스펙트럼을 가진 별들은 클래스 IV로 분류되었다.
이 분류법은 19세기 말에 들어 하버드 대학의 피커링(Edward Pickering, 1846-1919) 팀에 의해 새롭게 정비되었는데,
클래스 I은 A, B, C, D로 세분화되었고, 클래스 II는 E, F, G, H, I, K, L로 나뉘었고, 클래스 III은 M으로, 그리고 클래스 IV는
N으로 지정되었다.
그 뒤에 오는 알파벳인 O, P, Q는 각기 다른 특별한 형태의 별들을 위해 쓰였다.
훗날 피커링을 도와 일을 했던 캐넌(Annie Jump Cannon, 1863-1941)은 별들의 온도에 따라 가장 뜨거운 스펙트럼을
보이는 O형을 제일 앞에 놓고, 그 다음 B를 A형 앞에 놓고, 몇몇 형태들을 통폐합하여, 오늘 날의 O, B, A, F, G, K, M를
탄생시켰다.
그러니 알고 보면 알파벳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다 나름 역사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Oh Be A Fine Girl, Kiss Me”라는 암기법이 있어, 역사는 몰라도 순서를 암기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참고로 훗날 더 붙은 항성의 유형 중 R, N, S가 그 뒤를 따르는데, 그에 맞추어 암기법도 “Oh Be A Fine Girl, Kiss Me.
Right Now, Sweetie!”가 되었다고 한다. 좀 억지 같지만 그럴싸하다.
분광형에 따른 별의 색깔과 표면 온도
별의 온도까지 측정하게 되면서 천문학자들이 측정할 수 있는 별의 정보는 꽤 다양해졌다.
천문학자들은 별들의 겉보기 등급, 별까지의 거리, 온도, 별빛의 스펙트럼 등을 정리하여 카탈로그를 만들어 발표하곤
하였다. 수많은 원소들의 다양한 화학적 성질들을 잘 분류하여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었듯이, 항성들의
카탈로그를 보면서 별들의 물리적 성질 사이에도 어떤 규칙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나온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웠다.
플레이아데스 성단 <출처: Robert Gendler/NASA>
1911년 헤르츠스프룽(Ejnar Hertzsprung, 1873-1967)은 이 규칙성을 발견하는 첫 단초를 찾게 되었다.
그는 플레이아데스와 히아데스 성단 속의 별들을 관측했는데, 이럴 경우 성단 내의 별들이 모두 같은 거리에 있다는
가정을 쓸 수 있어, 별들의 밝기를 직접 비교 할 수 있었다.
그는 별의 밝기와 색깔을 각기 x축과 y축에 놓고, 성단 내 별들의 위치를 찍어 보았고,
그로부터 별들이 어떤 특정 위치에 뭉쳐서 분포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바로 주계열성의 발견이었던 것이다.
헤르츠스프룽이 최초로 발표한 별의 밝기와 색깔 간의 관계
한편 러셀(Henry Norris Russell, 1877-1957)은 하버드의 피커링으로부터 연주시차를 통해 거리가 알려진 300여 개
별들의 분광형 자료를 얻게 된다.
러셀은 별까지의 거리를 감안하여 별들의 절대 밝기를 계산해 낼 수 있었고 그로부터 별의 절대광도와 분광형을 기준으로
최초의 러셀 도표를 만들게 된다. 1914년에 [네이처]에 발표된 이 러셀 도표에는 주계열성이 대각선의 형태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훗날 러셀 도표는 헤르츠스프룽의 업적을 함께 고려해 헤르츠스프룽-러셀도, 간단히 H-R도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네이처]에 발표된 러셀의 도표 (가로축은 항성의 분광형, 세로축은 절대 밝기를 나타낸다.)
H-R도는 거리가 알려진 별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사용하면 H-R도를 별들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막힌 도구로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주시차로는 거리를 측정하기 힘든 어떤 먼 별의 겉보기 밝기와 색깔 정보를 알아냈다고 하자.
만약 이 별이 주계열에 속한 보통의 별이라면, 이 별은 H-R도 위에서 대각선 위에 있어야 한다.
즉 별의 색깔 정보만 가지고도 그 별의 절대등급은 알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H-R도 <출처: ESO>
멀리 떨어진 별은 거리의 제곱으로 어두워지기 때문에 별의 겉보기 밝기는 별의 절대 밝기와 거리와의 함수로 주어진다.
이 함수를 등급으로 표현하면, M = m - 5(log10d - 1)이 되는데, 여기서 M은 별의 절대등급, m은 겉보기등급,
d는 파섹 단위로 잰 별까지의 거리다.
따라서 이 공식을 역으로 사용하면, 별의 절대 등급과 겉보기등급으로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 낼 수 있게 된다.
H-R도는 그래서 답안지(Lookup table)와 같은 역할을 한다.
H-R도에 근거해 추정이 가능한 별의 거리는 30만 광년 정도까지다.
원리적으로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별이라도 H-R도를 사용해서 거리를 알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주계열에 속하는 별이 30만 광년보다 더 넘게 떨어진 경우에는 별들이 너무 어두워 관측에 한계가 따른다.
30만 광년은 대략 280경km에 해당하는 거리로 연주시차로 측정가능한 거리보다 수백 배 더 먼 거리다.
우리 은하의 크기가 대략 10만 광년 정도이므로, 우리 은하 내에 있는 별들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거리
측정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연주시차가 우리 주변의 별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H-R도는 우리를 은하계 끝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우주거리사다리인 셈이다.
하지만 우주는 드넓은 곳이다.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은하계는 그야말로 한 점에 불과하다.
가까운 또 다른 한 점인 옆 동네 안드로메다은하는 25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으므로, H-R도를 가지고 거리를
측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는 어떻게 측정했을까? 새로운 우주거리사다리 한 단계를 더 펴야 할 시간이 되었다.
< 한걸음 더 >
1) 그리스 시대부터 쓰던 6등급 분류에서 가장 밝은 1등급 별과 가장 어두운 6등급 별은 100배의 밝기 차이가 난다.
절대등급은 별이 10파섹에 있을 때의 밝기이므로, 만약 10파섹에 있는 절대등급 1등급의 별이 100파섹에 놓여있게 되면,
거리가 10배 멀어지고 밝기는 100배 어두워지므로 6등급 별로 보이게 된다. 절대등급을 M이라하고, 겉보기등급을
m이라 하면 이는 M = m - 5(log10d - 1)으로 표현 될 수 있다.
따라서 별까지의 거리를 연주시차로 측정해 내면 별들의 절대등급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2) 20세기 천문학의 발전에 여성의 기여가 매우 컸다. 여성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쉬운 시절은
아니었지만, 천문 사진 분석에는 꼼꼼함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동력이 싼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분광에 따른 별의 분류를 완성한 애니 점프 캐넌(Annie Jump Cannon, 1863-1941) 뿐 아니라 변광성의 특이한 성질을
찾아낸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도 연구를 보조하다 천문학에 길이 남는 업적을 남긴
여성들이다. 은하계의 회전속도를 통해 암흑물질의 존재의 필요성을 밝힌 베라 루빈(Vera Rubin, 1928-)도
여성 천문학자로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자주 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