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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예감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다음날 등산을 하기 위해 배낭을 꾸린 뒤 부푼 기대에 가득 차 올려다보는 창밖의 달무리,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 들어갔건만 똥이 마려운 것인지 굳은 표정으로 앉아서 내게는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는 면접관, 밤을 새워가며 일주일 만에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과제를 모두 끝마친뒤 제일 먼저 도착해 잠시 책상에 엎드린다는 게 한 시간이나 자고 나서 깨어나 바라보게 되는 텅 빈 강의실, 둥근 달무리나 똥 마려운 얼굴, 혹은 어느덧 지나가버린 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여직원과 함게 거래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가는 둥 마는 중 차를 몰다가 이렇게 가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유소 옆에 딸린 작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거기에서는 커피를 팔더군요. 그래서 둘이 차양을 설치해놓은 가게 앞에 앉아 한강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이 시간은 내 생애 가장 한가로운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여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이 도로가 왜 막히는지 알아? 예, 라디오에서 노점상들이 시위를 벌인다고 했잖아요, 아니야, 지겨움 때문이야, 내가 말했습니다. 신문에서 그 자살한 노점상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 마흔세 살, 내 나이와 같더군,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나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그리고 말이 끊어졌어요. 한동안 둘이 가만히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커피를 마셨죠. 그때,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때 술집에서 곧잘 만나는 녀석이 있었는데, 술만 취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시를 읊었거든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우리와 학번도 같도, 과도 같더군요. 세상에…… 그런 시절들도 있었죠.”
“그 여직원에게 무슨 흑심을 품은 건 아니세요?”
내 또래의 여자가 키득키득 웃는 듯한 목소리를 그에게 물었다.
“내가 무슨 연필도 아니고, 게다가 마흔 지나고 나서부터는 헤어지는 게 일이니까. 그 여직원하고도 헤어졌어요.”
“그럼 사귀셨다는 말씀인가요?”
이번에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할머니.
“뭐, 꼭 사귀어야만 헤어지나요? 만날 헤어지잖아요.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헤어지고, 마누라도 저녁에 만났다가 아침이면 헤어지는데……”
“되게 안타까운 얘기네요.”
나도 모르게 내가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목소리가 좀 컸기 때문인지 다들 나를 쳐다봤다.
“청년은 이 모임에 오늘 처음 나온 분이죠? 혹시 시는 가져왔나요? 지금까지 보셨으니까 우리가 이 모임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이제 아시겠죠? 시를 하나 읽고 왜 그 시를 고르게 됐는지 설명해 주시면 되는 거예요. 한번 해보시겠어요?”
약간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였다. 그해 봄, 대학을 졸업한 나는 한 달정도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다가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침 열시에서 오후 네시까지 시내 쇼핑몰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해질 무렵이면 배철수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호수 주위를 달렸으며, 생각날 때마다 매번은 아니고 세 번에 한 번꼴로 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자메시지들을 보내곤 했다. 그녀 역시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마다는 아니고 세 번에 한 번꼴로 내게 응답했는데, 그럴 때면 ‘나나’라는 이름이 내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떠올랐다. ‘선배관심끌려고꾀병부리는거야 6/15 10:48 am 나나’. 이런 식으로. 그건 중학교에서 평교사로 은퇴했다던 할아버지가 지은 그 이름을 학창 시절 내내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녀의 요청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에밀 졸라가 쓴 소설을 떠올려야만 했고, 급기야 도서관 서가에서 그 책을 찾아 훑어보기까지 했지만, 여주인공 나나의 성생활이 문란하다는 사실만 알게 됐을 뿐 더 젊은 언어로 새롭게 번역될 필요성이 느껴지던 그 자연주의 소설을 통독하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내 스물다섯 살의 두번째 계절은 19세기 자연주의 소설의 책갈피가 넘어가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마가 찾아왔고,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달리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장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마도 나나가 아니라 그녀에게, 그것도 문자메시지가 아니라 전화를 건 까닭은 어쩌면 장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차라리 쏟아져 내리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흡족할 것을. 내리는 둥 마는 둥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대해서. 균질하게 하늘을 가득 메운 무미건조한 회색에 대해서. 뜨겁고 뜨겁고 뜨겁기만 한 여름 햇살을 향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장마가 계속 이어지는 탓에 달리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맞아, 좋았어. 우리 참 좋았어. 그렇긴 하지만 우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그 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또 슬프게 만들었다. 우선 ‘맞아’라는 말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렇긴 하지만’이라는 접속사 때문에, 맞아. 그렇긴 하지만. 맞아, 그렇긴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간 나는, 예컨대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주방 테이블 위에 식방을 일렬로 쭉 늘어놓으면서, 혹은 도서관 앞 휴식공간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나의 앞날처럼 불안하고 흐릿하기만 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되뇌었다.
‘맞자, 어쩌면 이 장마는 영원히 계속될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나는 한번 달려보겠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장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노란색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를 입고 가랑비가 흩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신도시 단독주택 지구는 마침내 장마의 마지막 며칠을 보내고 있었고, 키가 고만고만한 다세대주택과 빌라 들 사이, 스물네 시간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좁은 골목길로는 빗물들이 하수구를 찾아서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한때 닥나무밭이 있던 자리였다는 안내판이 세워진 작은 공원의 벚나무와 느티나무 들로는 벌써 며칠째 새들이 날아오지 않았고, 한쪽 구석에 외롭게 떨어져 서 있던 그네와 미끄럼틀은 한 계절의 분량만큼 녹슬어갔다. 그날은 아침 뉴스에서 노란색 비옷을 입은 캐스터가 손끝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기압골을 기키며 내일부터 무더위가 시작되리라고 예보하던 금요일이었고, 그리고 저녁이었고, 나는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옷 속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꼭 그만큼, 그네와 미끄럼틀로 녹이 스는 꼭 그만큼, 기압골이 이제 한반도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꼭 그만큼, 내 스물다섯의 나이도 흘러가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고민이란 그 고민마저도 꼭 그만큼이라는 것.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꼭 그만큼이라는 것.
한 삼십 분 정도 달렸을까. 호수 반대편까지 달려갔을 때는 온 몸이 다 젖었고 운동화로는 물이 스며든 상태였지만, 그때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 서쪽 하늘은 환해지고 있었다. 서쪽 하늘은 검은빛이었고. 어떻게는 푸른빛이었고, 또 달리는 하얀빛이었는데, 그게 하도 인상적이어서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가만히 서서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봤다. 하늘 전체를 뒤덮은 구름은 빠른 속도로 밝아지고 있었고, 지평선에서 한 뼘 정도 위쪽으로는 날이 개리라는 걸 암시하는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구름이, 그 다음에는 바람이, 그리고 저녁이, 또 계절이, 그렇게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으므로 오히려 나는 숨이 편안해질 때까지, 바람이 젖은 내 몸을 차갑게 만들 때까지,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후드득 떨어져내릴 때까지, 그리하여 그 구름들 틈새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엿보이게 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그날이 바로 장마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서쪽 하늘을, 그 뭉게구름을, 그리고 울퉁불퉁한 둥치와 물방울이 맺힌 나뭇잎을 지닌, 하지만 홀로 서 있는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를 바라보다가.
그렇다면 다시 톱니바퀴 이야기다. 메타세쿼이아는 언제나 여러 그루가 함게 서 있다. 대개는 일렬로 줄이어서, 그렇지 않다면 숲을 이뤄서. <<메타세쿼이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책을 보고서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1943년 여름,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사차 선을자(神農架)로 향하던 중국의 나무학자 왕잔(王戰)은 말라리아에 걸려서 완셴(萬縣)농업학교에 들렀다가 그 학교에 근무하던 양륭씽(楊龍興)에게서 거기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모다오시(魔刀溪)에 가면 엄청나게 큰 ‘신의 나무(神樹)’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에 양륭씽의 안내를 받아 사흘 동안 험준한 산과 깊은 계곡을 넘어 7월 20일 마침내 모다오시에 이른 왕잔은 높이가 35미터에 달하는 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그 나무가 1941년 일본 교토대학의 미키 박사가 화석으로 발견한 메타세쿼이아라는 사실은 1946년에야 밝혀졌다. 메타세쿼이아는 백악기에 공룡과 함게 살았던 나무였으나 빙하기를 거치면서 절멸했다가 1943년에 그렇게 기적적으로 다시 발견됐다. 그뒤에 이 나무를 화분에 담겨 중국의 선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대량번식에 성공해서 각지에 보급됐는데, 워낙 성장속도가 빠르고 형태가 아름다운 나무라 주로 가로수로 심었다. 그렇게 최근 들어서 국내에, 그것도 주로 가로수로 보급된 나무이기 때문에 한 그루의 메타세쿼이아를 보는 일은 그처럼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가 본 그 나무가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나오는 메타세쿼이아라고 생각하게 된 건가요? 호수 옆에 한 그루만 달랑 있는 나무라서?”
모임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 준비한 시를 읽어보라고 말했던 그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바로 이 톱니바퀴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로 일주일 전에 게시한 시를 읽었다는 이유로 함시사의 취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는데, 그런 나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그 할머니였다. “그 시를 다시 읽은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군요. 나중에 저랑 이야기를 좀 하죠”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때 나는 내 예감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맞다.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춤고 있었다. 혹시 그 시를 매개로 누군가를, 아마도 내 땅의 말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무명씨라도 만나지 않을까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 무명씨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커다란 눈 옆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처음 보는 순간 미스 마플이라고 부르면 딱이라는 느낌이 드는 할머니로 밝혀졌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회의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앉았다.
“그게 저도 궁금하더라구요. 메타세쿼이아라는 나무가, 그래서 도서관에서<<메타세쿼이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책을 빌렸어요. 그런데 밤에 책을 읽으려고 보니까, 책등에 투명테이프로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놓았더라구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희선이에요, 김희선. 그 배우만큼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니까……, 희선 선생님께서……”
“그냥 희선씨라고 부르세요. 어쨌든.”
“암튼 붙여놓으신 시에 적힌 이름이더라구요. 아니, 이게 웬 우연인가 해서 살펴봤더니 도서관을 처음 만들 때 장서가 많이 부족했던지 시민들에게 책을 기증받았더군요. 그래서 표지 안쪽에 ‘이 책은 000님의 기증도서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스탬프를 찍어놓은 거죠. 그분은, 그러니까 이동네에 사신 거죠?”
희선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약간 감동하면서 책을 읽었어요. 시인이 읽었던 책이라고 하니까 감개무량하더군요. 어쩌면 그 시를 쓸 때 도움을 받은 책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다가 한쪽 여백에 이렇게 적어놓은 걸 봤지요.”
나는 가방에서 그 책을 꺼냈다. 수서할 때 겉표지를 제거했기 때문에 베이지색 하드커버만 보였는데, 그 책의 속성상 때가 많이 묻을 수밖에 없었는데도 색깔은 온전했다. 나는 시인이 뭔가 적어놓은 페이지를 찾아서 책갈피를 휘리릭 넘겼다. 그 글귀는 거기, 왕잔이 많든 모다오시의 나무 표본이 중국 현대사의 격랑을 거치며 사라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118이라는 숫자와 함게 낡은 캐비닛에서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을 적은 ‘9, 마침내 미스터리가 풀리다’부분에 있었다. 시인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 밤 열시의 산책, 호수 건너편 도시의 불빛. 거기에 묻다.’
미스 마플, 아니 희선씨는 연필로 휘갈려놓은 그 문장을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희선씨의 눈빛이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어쩌면 축축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가 물었다.
“이분이 아드님이신가요?”
희선씨는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음……, 이분 돌아가신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더라구요. 한 칠 팔 년 됐나요? 암이었죠?”
“그래요, 암이었어요. 어린 나무처럼 싱싱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젊었어요. 너무.”
희선씨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나는 괜한 짓을 했는가고 생각했다.
한참 만에 희선씨가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작은 글씨를 보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온다우”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희선씨는 그 시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톱니바퀴는 계속 돌아가는 것이다. 희선씨는 구 시가지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함시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까닭도 바로 그런 이력때문이었다. 시를 좋아하고 즐겨 습작을 해온 덕분에 희선씨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에서 등단 시인이 세 명이나 나왔는데, 그 시인도 그중 하나였다. 그 시인은 등단한 뒤에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했기 때문에 가끔씩 희선씨는 그 명민한 제자를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이 된 제자는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희선씨’라고 불렸다. 희선씨, 희선씨, 그런데도 밉지 않은 게 그의 또다른 재주랄 수 있었다.
그는 모두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한 권은 살아 있을 때, 그리고 한 권은 죽고 난 뒤에, 하지만 <세계의 끝 여자 친구>는 두 시집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병상에 찾아갔더니 이 시를 보여주더군요. 읽고 나서 ‘난 이 시가 참 좋단다’라고 말했더니, 그건 희선씨한테 주려고 쓴 시가 아니니까 김치국 마시지 마세요’. 그렇게 대답하더군요. 난 연애이야기라면 언제나 귀가 솔깃한 사람이라서 자꾸 캐물었죠. ‘이 시에 나오는 여자친구가 누구니?’그랬더니,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더군요. ‘아휴, 당연히 착하겠지. 얘기해봐. 어떻게 만났는데?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지?’내가 물었죠.’맞아요, 그렇게요. 세상의 끝가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요.’그렇게 말하곤 키득키득 웃더군요. 세상에,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네, 그렇게 웃고 나서는 ‘다른 사람의 아내인데, 그날 밤에 같이 도망가자고 말하지 않은 게 정말 잘한 일이죠.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까’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람, 그렇게 죽었어요. 나중에 시인의 장례식장에서도 혹시 여기에 왔을까, 왔다면 누구일까. 혼자 궁금해서 슬퍼하는 젊은 여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봤어요. 시인이 사랑했던 사람이 누굴까?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정말 웃긴 일이네요. 차마 같이 도망가자는 말은 못 하고, 둘이서 가장 멀리까지 가본 게 그 메타세쿼이야까지라던데. 그럼 고작 저기 호수 건너편까지 가본 게 다잖아. 그래놓고서는 어떻게 세계의 끝이라고 말할까……”
“왜 이 시를 선택했나요?”
“아휴, 지난번에 다 얘기했는데, 여기서 또 해야 하나?”
“그러게요. 제가 신입회원인 관계로……”
희선씨가 기분 좋게 자글자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즘 들어서, 살아오는 동안 안 하고 넘어간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그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한 일들을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왜, 하지도 않은 일이 잊히지 않는다니까 우스워요? 그러게, 그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그 여자친구를 찾아가서 시인이 당신을 무척 사랑했노라고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이 시를 도서관 게시판에 붙여놓을 생각을 한 거지. 그러면 이 시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까 청년이 들어올 때도 그랬고, 이 시 때문에 모임에 온 것이라고 말했을 때도 그랬는데, 참 놀랍고 기쁘기도 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실망감도 들었어요”
“사실 저도 좀 실망했습니다.”
나는 얼른 덧붙였다.
“저 자신에 대해서 말이죠.”
“시인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사랑했던 사람이 청년이 아니었던 건 분명한 것이겠죠?”
“저는 시인들한테는 질투 말고는 다른 감정을 사용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그때는 중학생이어서 아직 사랑을 하기에는 좀……”
희선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속도가 좀 더딘 편이었군요. 요새 애들은 안 그런데, 하지만 결국 마찬가지예요. 청년도 이 시를 알아본 셈이니까, 누군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됐지만,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당신만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영영 말해줄 수 없게 됐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도 알게 되겠죠. 시인이 한때 이런 시를 썼다는 거, 그 메타세쿼이아가 두 사람이 갈 수 있었던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거.”
잠시 말을 끊었다가 희선씨가 말했다.
“난 다음주부터 병원에 들어가요. 나이가 들면 몸에 고장이 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그래서 병원에 가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들려줬으면 한 것이지요. 그나마 청년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다가 희선씨가 먼저 일어났다. 딴 생각을 하다가 헐레벌떡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선씨는 내가 희의시리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때 나는 그녀를, 우리가 함게 보낸 나날들을, 영원히 나를 후회하게 만들고 나를 괴롭힐 게 분명한 그 일들을, 우리가 함께 꿈꿨으나 결국 가지지 못했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게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모든 일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함께 꿈꿨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맞다. 그런 건 이제 흔적도 없이, 자국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혹시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 시인은 거기에다가 뭘 물어봤을까요? 책에 ‘거기에 묻다’라고 써놓았잖아요”
희선씨는 낙제생을 바라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건 뭘 물어본 게 아니지 않겠어요? 뭘 묻었다는 뜻이지.”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할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일생에 단 한 번은 35미터에 달하는 신의 나무를 마주한 나무학자 왕잔의 처지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룡과 함께 살았다는, 화석으로만 남은, 하지만 우리 눈앞에서 기적처럼 살아 숨쉬는 그 나무.
그날 밤, 희선씨와 내가 보게 된 것은 불로 밀봉한 두꺼운 비닐 속에 들어 있는 편지였다. 그 편지는 호수 옆, 굵은 메타세쿼이아 밑에 시인이 뭔가를 묻어놓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그길로 호수 건너편까지 가서 땅을 파본 것이었는데, 그간 몇 번의 장마가 지나갔던 탓이었는지 뜻밖에도 얼마 땅을 파지도 않았는데 그 편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비닐 안에는 “이 편지를 발견하신 분께 부탁드립니다. 이건 소중한 편지이니 우체통에 넣어주세요. 보시다시피, 우표값은 걱정 마세요”라고 적어놓은 쪽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약간 허탈해진 마음에 희선씨와 나는 언젠가 시인이 겉봉의 주소란에 적힌 사람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을 게 분명한 그 나무 아래에 앉아 건너편 도시의 불빛들이 비치는 호수를 바라봤다. 밤의 호수는 길게 이어지는 그 불빛들의 이랑을 따라 검은 표면을 부드럽게 뒤척이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이 편지를 발견한 게 아닐까 모르겠네. 편지를 보낸 지가 수억만 년도 더 전의 일 같아서 그런데, 요즘 우표 값이 얼마인가요?”
한동안 말이 없던 희선씨가 내게 물었다. 그 문제라면, 그나마 제대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내가 대답하기 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백오십원이었는데 지금은 저도……”
내 말에 희선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 도대체 이 편지가 언제 발견될 줄 알았던 거야?”
편지의 겉봉에 도합 이천원어치의 우표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희선씨는 입을 다물었다. 건너편 호수 옆 대로로 신호를 받은 자동차들이 몰려가는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밀려왔다가 멀어졌다.
그리하여 마지막 톱니바퀴는 겉봉에 적인 그 이름이었다. 이러구니없게도 겉봉에 적힌 주소지는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호수에서 걸어서 삼십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누군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군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뭋혀 있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그게 추억의 나무였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몇 번씩 메타세쿼이아 아래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달라던 시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도 했다. 대신에 나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인 금요일 오후 다섯시에 만나서 우리는 그 편지를 수신인에게 직접 배달하기로 했다. 금요일이 될 때까지 내 하루 일과는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계속했고, 이따금 그 메타세쿼이아 쪽을 바라보면서 호수 주위를 달렸으며, 생각날 때마다 매번은 아니고 세 번에 한 번꼴로 ‘나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유일한 변화가 있다면, 결국 내가 에밀 졸라의 소설을 대출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이름이 들어가서인지, 나나는 바로 답문자를 보내왔다. ‘에밀졸라?나나졸라!나나’. 이런 식으로, 그렇게 여전히 내 스물다섯의 두번째 계절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따금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들어오곡, 그중에 몇몇 문자메시지 덕분에 웃는 것처럼, 이런 식으로.
그주의 금요일은 뜨겁고 뜨겁고 뜨겁기만 한 햇살이 거리를 하얗게 표백시키고 있었다. 커피전문점으로 나를 찾아온 희선씨와 함게 그 햇살이 조금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무례한 질문처럼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희선씨에게 무슨 일로 병원에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희선씨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새파란 청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가슴 한쪽을 잘라내야 하거든.”
“아, 죄송합니다.”
“청년이 나한테 죄송할 일이 뭐가 있어? 내가 창피한 거지.”
내가 몹시 당황하자, 희선씨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게 웃어줘서 고마웠다. 조금 있다가 여전히 입가에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하지만 주름이 많은 두 눈만은 씁쓸한 표정으로, 희선씨가 말했다.
“사실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왼쪽 가슴만 잘나내면 되는 일인지, 아니면 더 많은 것들을 잘라내야만 되는 일인지, 의사도 모르고, 가족도 몰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럴 때는 무척 외로워, 나 자신한테도 외롭다니까. 앞으로 한 십 년쯤, 아니, 십 년은 너무 과한 욕심이고, 당장 내년 이맘때에는 어떨까? 햇살은 여전히 이렇게 뜨거울까? 내년에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길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들 저렇게들 앉아 있을까? 내년 여름에는 또 어떤 노래가 유행할까”? 다음에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까? 이 사람은……”
희선씨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편지를 가리켰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편지를 메타세쿼이아 밑에다 묻어놓았을까? 학생 때부터도 속이 하도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더니만…… 요즘 많이 생각나네요. 이 사람이.”
나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때 진심에서 우러나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숙맥 같은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라니…… 한심하기만 했다.
“내 생각에는, 내년에 나는 아마도 활쏘기를 배우고 있을 것 같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희선씨가 다시 깔깔대며 말했다.
“그러면 되겠네요.”
얼떨결에 바보처럼 내가 말했다. 말하고 보니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해가 건물들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가게에서 나왔다. 거기에서 겉봉에 적힌 주소지까지는 가로수들이 푸른 이파리를 팔랑거리는 길이었다.
“청년이 처음 도서관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시인과 닮아서. 눈썹이며, 눈매며…… 그래서 보자마자 희선씨라고 부르라고 한 거예요.”
한참 길을 걸어가는데, 희선씨가 말했다.
“그 말 듣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주책이었나보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말했다.
“김희선이라고 하시는 순간, 제 여자친구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정말? 여자친구가 그렇게 예쁘단 말인가요?”
“아니요, 그 배우만큼 예쁘다고 할 수 없지만, 이름은 같아요. 하지만 제 눈에는 그 배우만큼 예쁘게 보였죠.”
“그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얘기해봐. 어떻게 만났는데?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죠? 그 표정을 보니.”
나는 생각해봤다. 맞아요. 그랬어요. 십 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봤다.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는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시인과 여자친구는 다시 그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거리에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게 됐다. 다시 수만 년이 흐르고, 빙하기를 지나면서 여러 나무들이 멸절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는 살아남을지도 모르고, 그 나무는 한 연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나무일지모 로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희선씨에게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그렇게요.”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나희덕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동해바다-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저녁 그림자
최하림
여섯일곱 살 때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열여섯 살 때도 열일곱 살 때도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반고비 넘은 어느 날에도 갈매기들은 유리창 밖의 어린 모과나무 새에서
반투명체로 꽃들을 쪼으다가 마주보다가 날개를 푸득이다가
이윽고 먼 수평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늙어서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곳에는 저녁 그림자가 인간의 슬픔처럼
조용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 1
-신대철
잎 지는 초저녁무덤들이 많은 산 속을 지나왔습니다
어느 사이 나는 고개 숙여 걷고 있습니다
흘러 들어온 하늘 일부는 맑아져 사람이 없는
산속으로 빨려듭니다
사람이 없는 산속으로 물은 흐르고 흘러
고요의 바닥에서 나와 합류합니다
몸이 훈훈해집니다
아는 사람 하나 우연히 만나고 싶습니다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그대......
추신 :
오랜만에 순수 문학작품을 읽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도서관서 빌렸는데 돌려주기가 싫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 컴퓨터를 한참 두르렸는데 오타가 맘에 걸립니다. 또 이렇게 올리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순수 소설을 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아랫부분의 시들은 소설속에 나왔던 시인님들의 시를 하나씩 뽑아서 올렸습니다.
제목이 나와 있으면 그대로 아니면 제 맘대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