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병사'도 '자원'으로 관리된다. 여기서 '병사'는 '계급 구분 없이 모든 군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사 문서를 보면 인원을 '파견' 또는 '충원'한다고 하지 않고 '보충'이라고 하고 인명이 손실되면 '사상'이 아니라 '손실'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나라만의 그런 것이 아니다. 2 차 대전 때 영국군에서는 전투 중 전사를 ‘전출’이라는 말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이 경우는 유머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다.’는 종교적 의미였다고 한다.
한국군에게 전혀 다른 세계이었던 월남전에서 영현 중대라는 것이 있었다. 즉 전사자를 처리하는 임무, 전사자의 유해가 고국으로 안치되기까지 봉안 업무를 맡고 있는 부대이다.
미군의 유해보관소는 냉동 냉장 시설이 지금 종합병원 시설보다 더 훌륭하였다.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서 국적이 어디인가에 따라 생시에나 사후에나 다르게 대접받았음을 보여준다. 미군들은 전사자의 시신을 깨끗이 원상복구와 이발까지 시켜 알미늄관에 방부 처리하여 성조기를 덮어 본국 알링톤 국군묘지로 보냈다. 한국군의 시체는 단순히 화장되거나 묻힘에 반해, 월남인의 시체는 땅에 묻히지도 않고 들판에 던져졌음을 알 수 있다. 즉 미국인, 한국인, 월남인은 종종 일등, 이등, 삼등 시민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한국군은 영현중대에서 화장해서 유골함에 넣어 십자성부대 불광사에 얼마간 안치하였다가 사이공(현 호치민시) 탄소누트공항에서 본국으로 향하는 휴가자 비행기에 실어서 오산비행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영현을 고국으로 봉송하는 일은 전공이 뛰어난 장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예우이며 보상이었다.
영현중대는 주월 한국군의 군수부대인 십자성부대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십자성 부대에서 근무하던 전우들에 의하면 맨살이 드러낸 황토 바닥에 음침한 건물이 서 있고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가끔 검은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고 한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일지라도, 우기 철이 되어 살갗이 아프도록 내리꽂는 빗줄기 속에서도 주검을 한 줌의 재로 만들기 위해 분주히 헬기들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아래는 해병대 사령관 출신 전도봉 장군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영현중대에서 화장을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본국으로 주검 자체를 봉송하는 일도 있었다. 이때는 미군들처럼 영현 위에 태극기가 덮여지고 정중하게 장병들이 도열하여 거수경례로 그들을 환송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포공항에서이었다. 국립묘지에서 환영 나온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 곧장 비행기의 화물 하역장으로 갔다.
호송할 헌병들과 영현을 봉송할 차량들이 줄을 서있었다. 경건하고 정중하게 영현들이 옮겨졌다. 그런데 태극기를 덮은 영현들은 내가 처음 퀴논비행장에서 인계받은 것 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이상하다. 자꾸만 태극기를 덮은 영혼들이 줄을 이어 옮겨졌다. 나는 묵묵히 지켜봤다. 그리고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안치소로 향했다. 차량들이 헌병의 호송을 받으며 불을 번쩍이며 줄지어 이동해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동작동에 도착한 차량대열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들어갔다. 태극기를 덮은 것이 모두 영현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안내 장교에게 저 쪽 차량에 실은 영현들은 왜 이곳에 함께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몹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른 짐이라고만 짧게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나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또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전우들의 고귀한 죽음을 이용해서 부정한 돈벌이를 하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