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선생님과의 만남
오랫동안 실습지를 찾지 못해 불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인의 아들이 최근 집 근처 초등학교 내에 위치한 프리스쿨(Preschool)을 졸업 하는데, 그곳의 담임 선생님이 참 따뜻하고 훌륭한 분이라 실습을 하게 된다면 배울 점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추천이었다.
초등학교 부지 안에 자리한 그 프리스쿨은 40피트 크기의 대형 수송용 컨테이너 두 개를 연결해 만든 독특한 건물이었다. 투박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 공간은 온갖 교구와 다채롭고 따뜻한 색감으로 가득 차 있어 첫눈에 포근함이 느껴졌다. 이곳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고 시에서 운영 하는 시설이었다.
여전히 언어는 서툴렀고 마음 한구석엔 쑥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용기를 내어 수업이 끝난 오후 프리스쿨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나의 은인이 되어준 예순 살의 콜린(Colleen) 선생님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당황했는지 대화의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사정을 가만히 들으신 선생님께서 선뜻 "실습을 돕겠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의 그 벅찬 감격만큼은 지금도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콜린 선생님은 진정한 유아교육자로서의 귀감이 되어주신 분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마더구스(Mother Goose) 노래 교실' 봉사 활동을 연결해 주셨다. 지역 커뮤니티의 젊은 어머니들과 아기들을 모아놓고 300년 전통의 수많은 동요를 함께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콜린 선생님, 그녀의 옛 동료,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매주 금요일마다 커뮤니티 홀에 모여 엄마, 아이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신나게 노래하던 순간들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그 시절은 내 마음에 기쁨이 샘솟던 날들이었고, 봉사 활동을 거치며 낯설기만 했던 영어 실력과 현장 감각도 부쩍 늘어났다. 봉사를 통해 내가 성장한 것이다
나는 6개월 동안 프리스쿨의 보조 교사(Helper)로 매일 아침 기쁘게 출근했다. 콜린 선생님이 서클 타임을 이끌면, 나는 매일 하나의 활동(Activity)을 기획하여 함께 아이들을 지도했고, 이 기록들을 보고서로 제출하며 첫 번째와 두 번째 프랙티컴 과정을 차곡차곡 통과해 나갔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세 번째 프랙티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는 담당 교수님이 직접 현장에 참관하여 나의 서클 타임과 수업 진행을 평가하는 중요한 순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린 선생님이 먼저 제안을 건네셨다. "이제 마지막 프랙티컴을 완성하기 위한 세 가지 연계 과제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시다시피 요즘 아이들이 로봇이나 우주 놀이에 관심이 많으니, '로봇'을 주제로 활동을 구성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용기를 얻은 나는 교수님이 방문하실 참관 날짜에 맞춰 "로봇과 함께 달 탐험", "고장 난 로봇을 고치는 수리 공장",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티파티(Tea Party)'까지 총 세 가지 연계 수업을 정성껏 기획했다.
수업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재활용 상자와 스티로폼을 모아 근사한 로봇과 로켓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로켓을 타고 우주로 떠나 달나라에 착륙했을 때는 중력이 적다는 설정을 살려 모두 함께 신나게 높이 뛰며 놀았다. 또 모래 주머니를 달로 올려 보내는 로켓 발사 놀이도 하고 지구로 돌아온 뒤에는 단단한 스티로폼에 스크류 드라이브를 돌려 나사못을 직접 박아보며 고장 난 로켓과 로봇을 수리하는 공장 놀이를 이어갔다. 아이들은 고글을 쓰고 손재주를 발휘하며 신나게 나사를 박았고, 작업이 끝난 후에는 다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누며 따뜻한 티파티 시간을 가졌다.
특히 하얀 플레이도우(Play dough)를 제공했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쿠키와 케이크를 만들어 선생님들을 티파티에 초대해 준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초대를 받아들인 손님이 파티에 참석하기 전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규칙도 스스로 잘 지켜주었다.
이 소소하지만 신나는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친구 및 어른들과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는 법,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사회성을 키우는 법,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태도, 그리고 함께 차를 나누며 교감하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익혀나갔다.
아이들의 열정적인 참여 속에서 교수님의 참관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수업 내용과 결과를 정리한 과제물까지 차곡차곡 제출했다. 수많은 수업을 직접 이끌어본 이 경험은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커다란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세 번의 프랙티컴을 모두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합격 통보나 연락을 주지 않았다. 겨우 찾은 희망 끝에서 다시 방황과 불안이 길어지자, 콜린 선생님은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셨다. "모든 데이케어 교사가 갖춰야 할 응급처치 자격증(First Aid) 교육을 먼저 이수하고 준비를 완벽히 마친 뒤, 학과 교장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일일이 말하기 어려우면 편지로 마음을 전달해 보세요."학교에서는 그분이 가장 대장이니까요.
선생님의 조언대로 응급처치 자격까지 갖춘 후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왜 면담을 요청 하게 되었는지 편지로 전하고 이어서 실습과 과제를 모두 마쳤는데 왜 이수 처리가 되지 않는지 정중하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담당 교수 두 사람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셨다.새로 오신 선생님이 수업을 더 많이 맡으려고 자꾸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로 부임한 교수와 기존 교수 사이의 은근한 세력 다툼으로 인해 행정 처리가 진행되지 못한 채 서로 눈치만 보며 미루고 있었던 상황이었는지 혹은 약간의 차별 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날 나는 모든 과정을 통과한 학생이 되었다.
정확한 내막은 다 알 수 없었지만, 지혜로운 콜린 선생님의 곁에서 포기하지 않고 준비한 덕분에 나는 마침내 모든 우여곡절을 끝내고 당당히 ECE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막막했던 내 유아교육 길에 등불이 되어준 콜린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삶에 찾아온 아름답고 감사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