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승주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884m. 조계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뻗은 능선이 동서로 나란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본래는 동쪽의 산군을 조계산이라 하고 서쪽의 산군을 송광산이라고 했으나, 조계종의 중흥 도량산이 되면서 조계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송광산이라고도 한다.
수림이 다양하고 울창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 지대로 지정되어 있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면적은 27.38㎢이다. 봄철의 벚꽃·동백·목련·철쭉, 여름의 울창한 숲, 가을 단풍, 겨울 설화(雪花) 등이 계곡과 어우러져 사계절 모두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또한 송광사·선암사 등의 유명한 사찰과 많은 문화재가 있어 송광사·선암사 일원이 명승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의 서쪽에 있는 송광사는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다. 경내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제43호)·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송광사경패(松廣寺經牌:보물 제175호)·송광사하사당(보물 제263호)·송광사약사전(보물 제302호)·송광사영산전(보물 제303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다.
주위에는 광원암·감로암·천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천자암 위쪽에는 곱향나무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있다. 산의 동쪽에 있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으며, 경내에 선암사3층석탑(보물 제395호)이 있다. 선암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와 강선루가 있다.
그밖에 비룡폭포가 유명하며 특산물로 산채와 고로쇠약수가 알려져 있다. 송광사-마당재-굴목재[屈木峙]-선암사를 잇는 등반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 입구에는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집단시설지구가 형성되고 있다.
조계산 일대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광주·순천에서 송광사 및 선암사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호남고속도로 및 순창-고흥을 잇는 국도와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광주·순천·여수 등의 대도시와 인접해 있고, 한려수도와의 연계로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 기대된다.
100대명산 선정이유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 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불교 사적지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 국보 제43호), 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 등 많은 국보를 보유한 송광사와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가 유명
♣ 심신을 푸근히 감싸 안는 순천의 壯山 조계산 ○ 선암사 주차장-선암사-장군봉(887m)-큰굴목재(선암사굴목재)-아랫보리밥집(점심식사)-대피소-송광굴목삼거리-천자암(쌍향수)-운구재-송광사-송광사 주차장(11.9km, 약5시간)
[접치 ~ 송광사] ○ 접치 - 3.5km 장군봉 - 2.1km 보리밥집 - 1.0km 송광 굴목이재 - 2.5km 송광사 - 1.0km 매표소 총 10.1km
선암사
신라말기인 서기 87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이 바로 선암사仙巖寺이다. 원래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 였다. 이후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해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정유재란 때에 큰 피해를 입어 모든 전각이 불타고 철불·보탑·부도·문수전·조계문·청측만이 남았다. 영조 35년(1759) 봄에 선암사는 다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정조 13년 (1789)에 정조가 후사가 없자 눌암 스님은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스님은 대각암에서 각각 100일 기도를 해 1790년에 순조가 태어나자 순조는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 편액과 은향로·쌍용문가사·금병풍·가마등을 선암사에 하사했다고 한다. 순조23년(1823) 3월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이듬해부터 해붕·눌암訥庵·익종益宗 등이 제 6중창 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복칭複稱하기에 이른다. 선암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선암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과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 속한 보물급 문화재만 해도 승선교·삼층석탑·대각암 부도·대웅전 등 총 9개나 이른다. 사찰풍경사진으로 자주 접하는 커다란 무지개 모양의 보물 400호 승선교와 선암사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 양옆에는 참나무·삼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들어서 있어 사시사철 트레킹의 운치를 더해준다. 봄의 대명사의 아름다움 극치를 나타내는 게 바로 선암사의 홍매화 선암매仙巖梅이다. 선암사는 고혹적인 선암매가 사색의 운치를 더해주고 이러한 봄철 못지않게 가을의 단풍숲길 역시 운치 있는 사색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선암사 경내를 조금만 벗어나 일주문으로 오르다 보면 낮은 키의 차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차밭이 있고 이어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아름드리 삼나무 숲이 나오는데 이는 인근에 조성된 야생화 단지와 함께 선암사의 명상산책로다
송광사
불교에서는 '부처님佛·가르침僧·승가승'를 불교를 받치는 세 요소라 해 세 가지 보배 '삼보'라 하고 각각의 요소를 대표하는 사찰을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삼보사찰은 경남 양산의 통도사·경남 합천의 해인사·전남 순천의 송광사를 일컫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는 불보사찰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판이 모셔져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신라말기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된 송광사는 창건 당시에는 송광사 길상사라고 불렀다. 창건 초기만 해도 송광사는 규모 면에서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던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입적한 후 50여 년 동안 거의 폐허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사찰이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불일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지눌스님은 9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여 명종 27년(1197년) 중창불사로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고 송광사를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만드는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후 1969년에 송광사는 조계총림이 된다. 송광사는 조계총림을 발족하면서 초대방장에 구산 큰 스님을 추대해 한국 불교의 동량(핵심인재)을 키우는 새로운 정혜결사와 수선도량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를 계기로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수행·정신의 도량이자 승보 종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희귀 불교문화재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목조삼존불감(국보 제 42호)·고려고종제서(국보 제43호) 등의 국보 3점 · 보물 10점 등 총 6천여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우리나라 대표 불교박물관으로 1997년에 문을 연 '성보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송광사의 3대 명물로는 불가에서 법당에 부처님에 공양을 올릴 때 사용하던 용기인 '능견난사' ·송광사 부속암자인 천자암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제88호로 지정돼 있는 곱향나무 두 그루 '쌍향수' 그리고 사찰에서 국재를 모실 대 사찰로 몰려든 대중에게 나눠주려고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인 '비사리 구시' 등이 있다.
향나무 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으로서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Limme이다. 나무 높이는 12.5M 둘레는 3.98M 나무품위가 조용하고 장중하며 선경에 이른 느낌을 주며 수령은 약 700년 임. 전설로 조계산에 천자암을 짓고 수도하던 보조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자랐다고 전해지며 엿가락처럼 비비 꼬인 것이 특색임. - 지정코드 : 천연기념물 제88호
- 지정일자 : 1962-12-3
▲ 조계산 선암사 일원
조계산은 소백산맥 줄기의 끝 부분에 해당하며, 해발 889m의 높지 않은 산이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며, 산 전체가 넓은잎나무로 덮여 있어 철따라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솟구친 절벽은 비룡폭포, 감초암폭포와 같은 명산의 경관도 지니고 있다.
선암사쪽은 나이가 수십년이 넘는 나무들로 차 있는데 도토리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이 울창하게 있어 사계절 훌륭한 경관을 연출해 낸다. 그 중턱에는 대각국사 의천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와 선·교종의 중심사찰인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통도사), 법보(해인사), 승보(송광사)> 중 하나인 송광사는 혜린대사가 770년경 처음 세운 뒤 건물이 80여 동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었는데, 한국전쟁 후 지금은 50여 동만이 남아 있다.
송광사 일대는 연산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어, 송광사 내8경과 외8경이 전해질 정도이다. 아름다운 조계산의 경관과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 일원은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루며 수많은 문화재가 간직된 곳이다.
조계산은 소백산맥의 말미에 해당하며 해발88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서 산세도 험준하지 않으며, 산전체가 활엽수로 덮혀 있어 사시사철 산림의 변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산이다. 이에 더하여 솟구친 절벽은 비룡폭포, 감초암폭포와 같은 명산으로서의 경관도 지니고 있다.
선암사쪽은 수령 수십년을 넘는 나무들이 들어차 있는데 도토리, 동백, 전, 단풍, 밤,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울창하여 사계절 훌륭한 경관을 연출해 내며, 그 중턱에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와 선·교의 종찰 태고총림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울창한 숲속에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가 간직되어 있는 경승지로서 보존관리가 잘 되어 있다.
송광사(松廣寺)는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佛寶) (통도사).법보(法寶)(해인사).승보(僧寶)(송광사)〕중의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서 유명하거니와 선암사(仙岩寺)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창건설(創建說)로서 그 전통을 자랑한다.
▲ 조계산 송광사 일원
▲ 조계산 송광사 일원 |
중건이 누대에 거듭됨에 따라 전당은 60여동에 이르러 국내거찰중에는 가장 큰 큐모를 지녔다가 6.25동란에 대웅전을 비롯한 20여동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중건을 거듭하여 지금은 점차 복원되어 가고 있다.
선암사(仙岩寺)도 삼십일본산의 하나로서 송광사와 함께 이 지역 불찰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毘盧庵)이란 암자를 세운 것이 시초라는 창건설화가 있으나, 지금 그때의 문물(文物)을 상고(詳考)할 만한 자료는 없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신라(新羅) 경덕왕원년(景德王元年)(742)에 도선사(道詵師)가 중건하여 조계산 선암사라 하였으며, 그후 고려 선종(宣宗)9년(1092)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또 중건하였던 것이나 임진왜란때 전소되고 거듭 중건과 소실을 되풀이 하다가 순조(純祖)24년(1824)에 매학(梅鶴), 눌암(訥庵), 익종(益宗)등 삼대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각은 모두 24동으로서 그 규모와 역사성에서 송광사에는 미치지 못하나 보물, 천연기념물 등이 있다. 계류(溪流) 어귀에는 오랜 목장생(木長생)이 서있고, 조선 후기 석조물의 대표격 존재인 승선교(昇仙橋)와 항선루(降仙樓)가 안배되어 있어, 산중 유취를 돋구어 준다.
이 계류의 풍광은 오히려 송광사 쪽보다 뛰어나며, 수림도 보다 울창하고 큰 것들이 많아 산수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내의 식수안배는 높은 안목으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짐작케 한다. 사찰내의 보물로 지정된 석탑은 신라대의 가품(佳品)이며 일부전각의 격식과 요사의 규모등은 독특한 구성과 아취를 보여준다.
이 두 거찰을 동·서에 포옹한 조계산은 일찍이 해동(海東) 선종(禪宗)의 연원을 이룩한 명산이라 할 수 있다.
자료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센터
▲ 송광사에서 불암사 초입에 걸쳐 펼쳐지는 '무소유 길'.
싱그러운 대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마음속의 티끌을 가라앉혀 준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다음 달 11일은 무소유의 죽비소리를 세상에 일러주신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도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이웃에 폐가 되지 않게 평소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 달라"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당부했다. 스님의 유지에 따라 스님은 17년간 기거했던 불일암의 법당 앞 오동나무 아래에 한줌 흙으로 돌아가셨다. '산&산'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지혜를 좇아 불일암이 자리한 순천 조계산을 올랐다.
조계산(曹溪山·887.1m)은 맑은 계곡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남도의 명산이지만, 조계종과 태고종의 양대 거찰을 품고 있어 더 유명하다. 서쪽 중허리의 송광사와 동쪽 기슭의 선암사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조계산 산행은 두 거찰을 잇는 명찰 순례 방식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산&산' 57회에 소개했던 루트(선암사~선암사굴목재~보리밥집~작은굴목재~조계산 장군봉~송광굴목재~홍골~송광사, 5시간 소요)도 조계산을 동서로 횡단했다.
송광사를 기·종점으로 삼아 원점회귀 방식으로 코스를 짠다면 송광사~운구재~천자암~송광굴목삼거리~보리밥집~장박골~작은굴목재~장군봉~장박골~피아골~수석정삼거리~송광사(5시간 30분 소요) 식의 산행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 기존 코스에서 불일암은 말 그대로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송광사로 되돌아온 뒤 다시 북서쪽에 있는 불일암까지 30분가량을 오른 뒤 다시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산행에 지친 산꾼들로서는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불일암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에 '산&산'은 송광사를 출발해 정상인 장군봉에 오른 뒤 불일암을 거쳐 송광사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한다. 산꾼들의 발길이 드물어 길이 희미하고, 무성한 산죽림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온갖 번뇌와 망상도 푸른빛으로 순화시켜 주는 불일암 초입의 대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몸과 마음이 찰나에 맑아진다.
구체적인 등로는 매표소~송광사~수석정삼거리~운구재~천자암~송광굴목재~배도사대피소~보리밥집~작은굴목재~장군봉 정상~장박골 정상~장박골삼거리~삼각점~감로암 갈림길~불일암~송광사~매표소 순이다. 총 거리 15.8㎞로 순수 산행에 5시간쯤 걸린다. 휴식과 사찰 탐방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 30분쯤 잡아야 한다. 산행시간에 여유가 없다면 천자암을 거치지 말고 수석정삼거리에서 곧바로 송광굴목재로 가면 1시간 정도 단축할 수 있다.
들머리는 송광사 매표소다. 매표소를 통과해 송광사 일주문, 우화각을 지나 수석정삼거리로 간다. 20분 소요. 본격적인 산행은 여기서부터다. 이곳에서 왼편 계곡 밑으로 난 다리를 지나면 곧장 선암사(6.5㎞)로 가는 길이다. 천자암 방면으로 등로를 잡고 직진한다.
고려 때 보조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심은 자리에서 났다고 하는 천자암의 쌍향수.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동장을 오른편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걷는다. 30분쯤 오르면 비알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이 운구재다. 왼쪽으로 꺾어 천자암 방면으로 간다. 봉우리를 휘돌아 완만한 흙길이 다시 이어진다. 30~40분 정도 오솔길을 걸으면 천자암 종각이 보인다.
경내로 들어서면 엿가락처럼 기묘하게 뒤틀린 채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거대한 향나무 두 그루와 마주하는데 그 유명한 쌍향수(雙香樹)다. 수령 800년을 자랑하는 쌍향수는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 다녀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심은 곳에서 자랐다.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왕생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쌀 일곱 가마 분량의 밥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비사리구시, 부처님 공양 올릴 때 쓰던 능견난사와 함께 송광사의 3대 보물로 꼽힌다.
천자암을 나서 임도를 따라 50m쯤 가면 갈림길이다. 송광굴목재 방면으로 오른다. 헬기장을 지나 8분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은 755봉(천자암봉)과 운구재를 지나 송광굴목재에 이르는 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한다. 15분 뒤 송광굴목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은 조계산의 양쪽 기슭에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를 넘나들 수 있는 요지다. 조계산 이쪽과 저쪽의 양대 고찰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수행하던 스님들도 이 길을 지나 교유했을까?
종파와 방법론은 달라도 깨우침을 얻어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뜻만은 같았을 것이다.
배도사대피소를 지나 20분쯤 발길을 이으면 10여 개의 평상이 놓인 곳이 조계산의 명물인 보리밥집이다. 가마솥으로 지은 보리 섞은 밥에다가 나물과 시래기 된장국을 곁들여 차려낸 밥상(6천 원)은 소박하지만, 요기를 하고 가기에는 그만이다. 명절 외에는 연중무휴다.
보리밥집을 나서면 장군봉 이정표를 따라 진행하다 굴목교삼거리에서 작은굴목재 방면의 왼쪽 샛길로 올라간다. 벌통바위를 지나 장박교 3개를 연이어 지나면 삼거리 갈림길에 닿는다. 20분 소요.
오른쪽 돌계단을 타고 오르면 곧바로 작은굴목재다. 이곳에서부터 호남정맥의 산줄기 위다. 왼편 장군봉 방면으로 된비알을 타고 오른다. 가파른 능선길을 20분쯤 오르면 오른쪽에 우뚝 솟은 바위가 배바위다. 로프를 잡고 주의해서 올라야 한다. 배바위에서는 발아래로 선암사가 보이고, 굽이치는 상사호 너머 광양 백운산, 지리산 반야봉, 노고단이 희끗희끗 보인다. 시계가 좋을 때는 남도의 연봉들 물결 너머로 순천만까지 시야에 잡힌다.
배바위에서 다시 10분만 오르면 장군봉 정상이다. 장박골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장박골 정상, 헬기장을 지나 곧장 장박골삼거리까지 간다. 45분 소요. 100m쯤 더 가면 갈림길과 마주하는데 하산길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포인트다. 대부분의 산꾼은 이곳에서 연산봉 방면으로 곧장 내려가 송광굴목재를 거쳐 하산한다. 하지만 불일암을 거쳐 송광사로 가려면 848봉 방면으로 그대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희미하고, 어른 키 높이만큼 웃자란 산죽까지 시야를 가리므로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분 간격으로 리본을 촘촘히 달아뒀으니 참고하는 게 좋겠다.
10여 분 뒤 삼각점(786m)에 이르면 오른쪽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다시 10여 분 뒤 무성한 나무 사이로 주암호가 보이는 막다른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 사면으로 내려선다. 산죽터널을 헤치고 능선을 30분쯤 내려가면 감로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오솔길에 닿는다. 그대로 오른쪽으로 2분쯤 더 가면 불일암에 들어서는 사립문이 보인다.
불일암은 고즈넉한 암자다. 더 이상 간결할 수 없을 만큼 단출한 하사당과 대밭에 둘러싸인 정갈한 해우소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묵언 층계를 오르면 스님이 불일암 기거 시절 늘 앉았던 '빠삐용 의자'가 있다.
1970년대 초등학교 걸상 같은 이 의자에 삼베적삼에 깡마른 체구로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불일암을 나서면 마음속 시름을 덜어주는 푸른 대나무 숲과 삼나무 숲이 차례로 이어지는데 '무소유 길'로 이름이 붙었다. 산책로가 끝나고 해탈교가 보이면 종착점인 송광사 경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