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도박은 없다. 그리고 저축 또한 물론 없다.
오직 몸으로 부딫쳐 깨지고... 처절하게 느끼고 그리고 경험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달리는 이유다.
이번 대회에 굳이 내가 접수를 한 까닭은 몇가지. 나의 몸에 대해... 또한 하프만을 뛰어서 과연 풀을 뛸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내년 동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오직 몸으로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다.
내심 바란건 혹시 중앙마라톤의 그 기억을 아직까지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바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역시 마라톤에 저축은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것은 이제 풀코스를 앞두고 예전만큼 긴장하거나 목표한 기록을 이루지 못하고 퍼지면 어쩌나 하는 그런 조급증 또한 말끔히 없어졌다는 점이다.
퍼지면 퍼지는대로 거기서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설령 퍼져 주저 앉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남은 거리를 완주하는 것이다.
5키로~30키로까지는 그래도 계속 5키로 20분대를 유지할 수 있었고,
-하프 통과기록: 1.27'20" -30키로 통과기록:2.04'12"
남은 거리 10키로라는 팻말을 지나며 시간을 확인하니 남은 시간 47분여. 또 한번의 서브3는 분명하겠지만, 조금 쳐지더라도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한다면 55분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보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퍼지면 아예 뛰지 못하게 될수도 있는 그 '마라톤의 벽'을 나는 잠시 또 잊고 있었나 보다.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가운데 앞으로 남은 거리는 2키로. 남은 시간은 12분이 조금 더 남았다.
지금까지 줄곧 키로당 4분10초 안쪽을 달려 왔는데 앞으로 남은 거리를 단지 키로당 6분에만 달리면 되는 것인데 정말 쉽지가 않다. 그 동안 힘들게 추월해 왔던 많은 주자들이 덧 없이 나를 추월해가고 나는 어쩔수 없이 걷게 된다.
자리에 앉아 나무토막 같아진 두 다리에 스트렛칭을 해 주니 그 나마 조금 편안해진다. 다시 힘을 내어 달려 보지만 얼마 못가 다시 한번 서게 된다. 한번 더 스트렛칭을 해주고 마지막 힘을 짜 내어 골인.
그래도 골인점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클럽식구 일마회원들을 보니 힘겹게 달려 온 보람을 느낀다.
2.58'38" (마지막 5키로:23'38")
이것이 마라톤임을 또 나는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마라톤에 분명 저축은 없지만, 또 한가지 어제 분명히 느낀것은 하프는 분명 하프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고 풀은 풀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풀을 준비하며 하프를 뛰면 분명 기록은 쳐지겠지만 완주는 할것이다. 그러나 하프만을 뛰며 풀을 뛴다는 것은 분명 30키로 이후에 처절한 댓가를 치룰수 밖에 없다는 점을...
ps. 컨디션 난조로 많이 고생하신 타잔형,
사진 담아주신 제인형수님,
막걸리? 뒤집어쓴 나를 위해 뜨거운 컵라면 봉사한 성희씨..
고맙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도 한강답지 않게 정말 모처럼 좋은 날씨였던것 같습니다.
작년 눈 진창에서 힘겹게 달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덧 일년이 지났네요...
힘. |
첫댓글 대단하심!!!
대단한 병희! 또 한번의 축하를.... 글 내용에서 풍기는 처절함과 그 마음이 내게로 이어진다. 다음부터는 네가티브로 뛸것을 부탁하면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지만 후반에 추월하는 재미도 느끼며 뛰라는 말.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정말 쉼없이 달리시는군요.. 저는 중마 이후로 빈둥모드로 지내다가 지난 토요일 족구하고 일요일 20키로쯤 달렸더니 아직도 다리가 후달거립니다...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