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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미 시인론]
천년한옥에서의 갑자인생 갈무리
유진 ( 시인. 수필가)
시는 다양한 일상사를 천착한 문장으로 재현하는 작업이다. 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보면서도 오감을 통한 감성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듯이,시도 사유와 감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구사하고 있는 시의 형식도 각양각색,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오세미 시인의 첫 시집 『저만치 강은 또 깊어있었네』 에는 66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대부분이 가족과 주변에 대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인본주의 시들로, 수사적 형식이나 시류에서도 자유롭다. 모난데 없고, 칭얼대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세심하다.
시의 정의에 대해 예로부터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적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다만 시의 기법과 비유, 상징 등에 언어를 조절하는 것이 ‘시’ 라고 한다면, 한정된 표현 공간에서 한정된 언어로 함축시키고 간결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시의 근본이며, 일종의 언어표현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세미 시인의 시편들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이나, 굳이 시의 정의나 시의 형식을 평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세미 시인은 시의 소재 대부분을 보편적인 일상의 생활체험에서 가져온다. 의미에 비중을 두지 않고, 직면하는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를 형상화시켰다. 자신의 일상에 밀착되어 있어 사변적이긴 하지만, 꾸밈없는 마음상태와 자유로운 수사방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캣맘을 자처하고 수년째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그의 성품에서 나타나듯이 매사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성품을 바탕으로 한 일상을 진실하게 보여줌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삶의 방식이 긍정과 순응, 애정과 평화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힘겨운 삶의 육십년 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으면서도 어차피 감출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립스틱을 바르다 말고
버스에서 만났던 말을 떠 올린다
손잡이를 잡고 선 여고생에게
초면의 할머니가
‘입술에 복이 들었네’
좋은 말로 복 많이 지으라던
그 말이 지금껏 잘 살게 했을까
길고양이, 유기견 보살피고
사랑의 열매, 유니세프 후원하기
폐지 줍는 노인들 점심 챙기기
푸짐한 말로 이웃 정 나누기
적은 살림으로도 낙낙하다
중년 얼굴 잔주름은 보이지 않고
복 든 입술만 그득한 거울이 활짝 웃는다
‘우야든지, 복 많이 지어라’
ㅡ 「복 짓는 입술」전문
여고시절 버스 안에서 만난 초면의 할머니에게서 입술에 복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리를 양보하거나 눈인사를 건네고 들었던 말이 아니라하더라도 잠시 기분이 좋을 뿐, 일반적으로는 그냥 흘려듣거나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립스틱을 바르다 그 말을 떠올린다.
적은 살림이지만 주변이나 이웃에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복 든 입술만 그득한 거울‘을 부각시켜 더 많은 복을 짓자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이는 긍정과 순응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이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성격에 재바르고 부지런한 생활습관은 언제부터 길들었을까. 새벽이면 어김없이 마당을 쓸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가정경제를 돕기 위해 꽃집을 운영하고, 고단한 이웃의 편한 잠을 위해 길고양이들을 챙기고 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해 균등한 애정을 지녔다고 해서 무턱대고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고생스런 캣맘을 자처한 이유는, 먹이를 뒤지느라 뜯어놓는 쓰레기봉투가 골목을 어지럽히고, 피 터지는 영역싸움으로 밤잠 설친 사람들의 짜증을 경계하는 새까만 눈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의 사고가 인본주의에 맞닿아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가게 앞에 심으면 좋겠다고 가져다준 모종
두해 만에 주황꽃무리 테라스를 장악했다
지나는 사람마다 눈길 보태고
우와! 우와! 입 보태던 십여 년
어느새 지붕을 덮어버린 몰염치가 전봇대를 삼키고
창을 가린다고 옆집과 티격태격
생목으로 떨어져 눕는 꽃잎을 쓸다 쓸다가
결국엔 밑동을 잘라버렸다
경계로 놓아둔 기왓장을 들어내자
시루 속 콩 나물 자라듯 새순이 빼곡하다
어쩌나 이 노릇을
줄기차게 올라오는 이 목숨들을
ㅡ「능소화의 수난」 전문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그가 옆집에 피해를 준다고 십년이 넘게 화려한 꽃을 보여주던 능소화 밑동을 자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밑동이 잘려버리면 뿌리는 다시 살기위해 온힘을 다해 새순을 밀어 올린다. 대나무나 등나무만큼 번식력이 강한 능소화다. 뿌리에서 올라온 새순들이 시루 속 콩나물 같지 않았을까.
‘어쩌나 줄기차게 올라오는 이 목숨들을...’
관상용으로 심었다가 어지럽힌다고 잘 자라던 나무를 잘라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이 어찌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복병처럼 가을이 쳐들어 왔다
눌려있던 신경들이 발가락 사이로 꿈틀댄다
오사장, 자기야, 언니야, 기분대로 호칭하는 k가
귀부인 이미지 손상이라며 자처한 캣맘을 조롱하는 말
쓱 지나가는 면도날 같았지
저 만치 억새 근심을 늘어놓고
징 하던 열대야 폭염 빠져나간 도시에도
북적대던 모래사장에도 여백이 생겼다
방학 중인 서재를 뒤적인다
성큼 걸어 나온 동심이 무럭무럭 자랐다
사랑도 주고 물도 잘 주는 우렁각시
해들지 않는 곳에서
영글지 못한 말들 부스럭거린다
바랜 종이에 손가락이 베인다
붉은 피, 쓰 라 린 다
ㅡ 「베이다」 전문
던져라, 던져지는 대로
하나가 되거나 다섯 여섯이 나오거나
숫자에는 관심 없다
가끔은 내동댕이치거나
데굴데굴 굴리는 이도 있다
직설적인 말투와 거침없는 행동에
피를 토할 오해도 생기지만
묵묵히 꿋꿋이 견딘다
던지는 이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결과에는 수긍하고 산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인생이라지만
의심이 도사린 곳은 먹구름 경보
몰아치는 비바람에 뒤죽박죽 구르기도 하지만
언제 건 한 곳에 다시 서고 만다
선 자리가 언제나 나의 중심이 된다
ㅡ 「주사위」 전문
어떤 삶이든 나름의 애로점을 안고 살아간다. 태어났으니 살고, 이왕이면 잘 살아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거나 삶의 수용상태에서 갈등이 없고 굴곡이 없는 인생사는 없다. 잠시 불행과 행복이 교차되어 나타날 따름일 뿐, 그저 물 흐르듯, 구름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공통된 소망이고, 보편적 삶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세미 시인은 이미 그러한 보편적 인생을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긍정적이고 수용적 태도를 일부분 태생적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부모님에게서부터 바탕 되었다. 맏딸로서의 책임감,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법,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현실적응력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시집을 읽어보면 더 확연해진다.
「아버지」 「비질」 「주사위」 「거북손등」 「첫사랑」 등에서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장군이와 면죄부」와 연작시 「캣맘」, 「공짜는 없다」 등은 이웃사랑의 마음을 볼 수 있고,
「여름 꽃밭에서」 「부적」 「노을」 등은 친구관계를,
「미세먼지」 「신종바이러스」 「갓길주행」 「명함은 유통 중」 등에서 사회문제를, 「꽃 아닌 꽃잎」 「헬로우! 독설씨」 「싱글맘」 「도돌이표」 등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흰 동백꽃」 「엄마의 집 정리」 와 「예스맨」 「황혼의 깃발」 「리마인드 웨딩」 「아픈 손가락」 「장미와 가시」 「띠부띠부실」 「가을볕 아래」 등은 그의 가족사를 빠트리지 않고 보여준다.
시의 소재 대부분을 보편적 일상의 체험에서 가져왔고, 전반적으로 시적의미에 비중을 두지 않고 일상에 밀착되어 있어서 그의 생활이나 가족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꾸밈없이 솔직하다는 것에 귀결점을 두는 것에 대해 의의가 없을 것으로 본다.
시집 『저만치 강은 또 깊어있었네』 의 자서부분인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감출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육십년의 생애를 시집 한권에 묶어 정리하면서 참~ 이런 날이 있다고 감회를 말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봄직한 나이라고 말한다
쏟아지는 더위가 나를 울리고
만만치 않은 사랑이 나를 울리고
떠오르지 않는 시어들이 나를 울리고
살아 봄직한, 아직은 여름
ㅡ「행복한 여름」전문
흔히들 인생을 시기적으로 나누어 유·소년기를 봄, 청·장년기를 여름, 증년이후를 가을에 비유한다. 시인은 육십갑자를 맞이했지만 아직은 여름, 살아봄 직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감성이 살아있고, 사랑해야할 가족들과 이웃이 있고,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통속적인 유희로 휘청거렸던 한때의 여름이 아니라, 차분히 맞이해야할 인생의 가을을 위해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차분히 젖고 있는 모두가 편안해 보인다
가만히 내민 양손 가득 빗물이 고인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죄다
가늠할 수 없는 욕망이거나 부질없는 욕심
마지막은 허무뿐이라고 부추기는
세상과는 교신을 끊기로 한다
통속적인 유희로 휘청거렸던 다갈색 얼룩을 지우며
가랑비에 젖은 내가
차분차분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다
ㅡ「가랑비에 젖어」부분
예순 나이에 더위살림이란 오래 쓴 가재도구처럼 마음에 너저분하게 남아있는 얼룩들이다.
폭풍우를 몰고 다니는 무더위 속에는 삶의 본능, 치열과 방황, 열정과 갈등 그리고 상처와 고단함이 들어있다. 어차피 죽게 될 한번 뿐인 인생이라는 이유로 먹고 마시고 흥청거렸던 지난날들에 대해 ‘사랑이든 미움이든 죄다 부질없는 욕심’이었다라고,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과는 교신을 끊기로 한다.
‘가랑비에 젖은 내가 / 차분차분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라며, 갑자의 자신을 회자정리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무엇이었나
작은 풀잎으로 하늘거리는
아득한 깊이로 흐느끼는
우리는
긴 모래벌판 따라
강의 동맥으로 흐르는 은어 떼
자운영 자주꽃 마음껏 펼쳐 앉은 강둑
무리지은 것은 아름다움 뿐
잦은 잔기침에 묻어오는
연분홍 설렘 풍등처럼 날려 보내던
나룻배 두 척 한가로워
네가 나에게로 내가 너에게로
아슴아슴 흘러드는 것이었나
가느다란 손 떨림 어깨위에 남은
이별은 순결하고
안부 길어지는데
너와 나의 시간은 언제나 맨발
마른 가슴으로 다가서는 강
한 자락 물결이 기억의 물고를 트고
강은 저만치 또 깊어지고 있었네
ㅡ「강은 깊어 있었네」 전문
갑자의 회자정리 안에는 마음 속 깊이 묻혀 있었던 강 하나가 있었다. 가랑비에 차분히 젖어 자신을 들여다보니, 현실에 전념하느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그리움 한 자락이 물꼬를 튼다. 하늘거리는 작은 풀잎이 아득한 깊이로 흐느끼는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미 먼 옛날의 순정이었을 뿐, 강은 저만치 또 깊어지고......
유동승 시인이 단체 카톡방에
초록 빼곡한 나뭇잎 그림을 올려두고
개구리를 찾으란다
눈 시리도록 이리저리 훑어보고
째려보고 게슴츠레 살펴보아도 못찾겠다
수백 장 나뭇잎을 하나하나 뒤집어도
왕 눈, 뒷다리는커녕 그림자도 없다
울음소리 요란한 초여름 논이라면 귀로도 찾을 텐데
문제를 낸 시인은 알고 있을 답
한치 앞 모를 사람 속처럼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네
아직 찾고들 있나 나처럼 못 찾겠다고 포기했나
복잡한 머리에게 휴식을 건네며
잠잠한 화면을 닫는다
ㅡ 「개구리 찾기」전문
한치 앞 모를 사람 속처럼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되도록이면 단순하게, 몰라도 그만인 일들은 포기해버리는 것도 긍정적 삶의 방식중 하나 일 것이다.
‘예순 갑자를 돌아 나온 아버지처럼 /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문태준 시인의 한호흡이라는 시구절이다.
육십갑자! 짧다고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길다고 보면 지겹도록 긴 시간이 아니던가. 치열과 방황, 열정과 갈등 그리고 상처와 고단함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오세미 시인은 이제 안식의 삶을 준비한다.
다섯 손자들 물놀이자리
삼겹살 구어 먹을 바베큐자리
길양이들 집과 넓은 창고
소망 하던 작은 나의 서재
볕 쨍한 장독대
갖가지 꽃나무 과실나무
좋아하는 수국도 자리를 찾았다
마지막까지 머물 내 집 내 자리
편안한 오후 낮잠이 늘어진다
ㅡ「백년 한옥에 누워」 부분
오천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결혼 후에는 청림동, 구정동, 죽도동, 오천읍, 상도동, 지곡동, 효자동, 이동으로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살았다. 이제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연과 더불어 편히 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기계면 성계리 한옥을 구입하여 집수리를 마쳤다. 작은 서재와 정원도 꾸며졌다.
17년 전 포항문예아카데미를 통해 시에 입문한 뒤로 경주대학, 선린대학교 평생교육원을 거쳐왔다. 늘 시간에 쫓겨 열심을 낼 수는 없었지만 결코 시를 놓아버리지는 않았기에 늦은 등단을 했다. 이제는 시 창작에 열심을 낼 수 있게 되었다니 그중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바,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시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되도록이면 단순하게,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현실에 순응하는 보편적 삶에 대해 뒤돌아보게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국이 소담스런 꽃을 피운 정원을 내다보며 서재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흐뭇하다. 언제나 넉넉하고 소탈한 오세미 시인의 첫 시집 『저만치 강은 또 깊어있었네』 에 대한 시집평설은 시인론으로 대신하며, 멀지 않아 성계리 서재에서 나올 두 번째 시집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