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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이단의 괴수
바울(Paul, c. 1-c. 62/64)은 이단의 괴수(행 24:5)였다. 유대교의 관점에서 보면 틀림없는 이단자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본래 유대교 바리새학파 엘리트 신학도였다.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회심을 했다. 그 뒤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기독교 교리를 확립했다.
바울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율법주의와 지성주의 신령파를 견제하면서 기독교 정통 교리를 체계화했다.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자 바울은 예수가 유대인이 기다리던 바로 그 구원자(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과 그 분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예수구원의 복음진리 전파에 헌신했다. 그는 죽은 예수를 상품화한 종교철학자가 아니었다. 대속의 희생을 담당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바울 메시지의 핵심은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였다. 유대인들은 신명기(신 21:23) 기록에 따라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이며,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바울은 이 개념을 뒤집어엎었다. 인류의 구원자는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었다. 그렇다. 신명기, 이 법전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는 저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었다. 그러나 바로 그 분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다.
바울은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라는 안티테제를 내세웠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했다. 나무에 달려 처형당한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바로 그 분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화목제물, 그리스도라고 역설했다(갈 3:1). 바울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의 핵심과 대립점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유럽, 북미, 대양주의 주류 기독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체계화한 복음을 ‘왕따’시켜왔다. 그들은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를 지향한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신종 기독교는 바울의 가르침에 충실한 정통신앙인을 ‘근본주의자’라고 폄하한다. 바울의 정통신학을 사실상 ‘이단’ 사상으로 여기며 기독교가 아니라 ‘바울교’라고 비난한다. 바울이 예수를 유대민족이 대망하던 메시아라고 억지 주장하여 예수가 창출한 생명(bios)문화공동체운동을 곁길로 오도했다고 본다. 기독교의 핵심은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가 아니라 ‘원수사랑과 윤리의 모범인 예수’이며, 예수신앙은 자기의 욕망을 소멸시키고 타인을 위한 삶에서 자기를 재구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본다.
바울은 이단판별이라는 혼란스러운 사안을 두고 고심하고 씨름하는 오늘날의 신학자들을 향하여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를 각인시킨다. 교회를 향하여 ‘앙꼬 없는 찐빵’ 같은 기독교가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역사적 기독교가 고백한 정통신앙을 따라 예수 복음전파에 전심전력하는 전도자들을 향하여 용기를 가지고 더욱 분발하라고 한다. 교회를 향하여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향하는 신종 기독교의 독성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1. 자랑스러운 유대인
바울은 자기의 태생적 유산을 명예롭게 생각했다. 자신이 히브리인,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자손, 베냐민 지파 족속, 바리새파 유대교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졌다(고후 11:21-22).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히브리인이었다. 양질의 감람유로 유명한 갈릴리 북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율법을 지키며 자랐고 율법에 비추어 올바른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예수신앙운동 박해에 열성적이었던 것도 동족 유대인에게 자랑할 만한 업적이었다(빌 3:4-5).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바울은 부모와 함께 터키 동남쪽 다소에 끌려갔다. 흩어진 유대인 이민자 곧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바울이 자라고 청소년기를 보낸 제2의 고향 다소에는 흑염소들이 뛰놀고 마(麻)와 옥수수와 포도가 자라고 있었다.1
바울은 회심 전에 막노동에 대해 유한계급의 속물적 인식을 과시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막노동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자신이 스스로 모든 사람들의 노예가 되었고(고전 9:19), 남을 높이려고 자기를 낮추었다(고후 11:7)고 말했다. 바울은 평안한 가정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그가 받은 교육은 절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누릴 수 없는 특혜였다. 고액의 교육비는 부모가 부담한 것 같다.
바울은 높은 수준의 비평적 사고 훈련을 받고 철학 지식을 쌓았다. 신약성경 바울서신들은 바울의 학문적 통찰력, 논리력, 비평력, 종합력, 창의력, 수사력, 문학적 소양, 언어능력, 역사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진지한 성찰, 설득력 있는 표현 방법을 담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바울이 받은 양질의 교육의 열매이다.
바울은 구약성경 그리스어 번역본에 익숙했다.2 비범한 능력으로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바울의 서신들은 구약성경 본문을 90회 가량 인용한다. 특히 고린도전서 15장이 언급하는 예수의 부활은 보통 유대인의 일상의 대화에서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가 성경에 통달하고 회당예배와 가정교육을 거쳐 부활을 믿는 돈독한 바리새파 신앙을 가졌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민족적 우월감과 자존감의 근거로 삼았다.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금기 음식을 먹지 않았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리스철학과 스토아주의3의 영향 아래에 있는 ‘다소대학교’의 대부분의 학생들과 달리, 유대주의를 선호했다. 유대교 율법 613개 조항을 존중하고 철저히 지켰다.
바울은 정통파 유대인이 되려고 주후 15년 경 예루살렘으로 갔다. 갓 청년기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먼 길을 걸어서, 유월절 순례객의 일원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한 달 보름이 넘는 동안 길리기아 평야의 진흙투성이 길과 시리아 관문을 통과하고 또 산지를 거쳐 가이사라를 지나 예루살렘에 당도했다. 유월절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거주민들보다 3배나 많았다. 숙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베다니나 벳바게 근처 마을에서 묵거나 감람산 언덕에 장막을 쳤을 것이다.
바울은 바리새파 대학자 가말리엘 1세의 가르침을 따랐다(행 22:3). “무지한 자는 결코 거룩해질 수 없다”는 바리새파 명제를 받아들이고, 성문화된 율법만이 아니라 전통적 해석, 구전(口傳)되는 율법도 배웠다. 조상의 전통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다(갈 1:14). 동년배들 사이에서 유대교 신봉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인문학적 배경, 성경지식, 전투적인 어조, 도전정신, 경쟁심리 덕분에 성큼 바리새파 엘리트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바리새파 핵심당원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들, 동기생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단체생활을 했다. 율법을 지키고, 엄격한 의식(儀式)을 따랐다. 결혼은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에게 의무사항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바리새파 엘리트가 될 수 없었다. 바울의 결혼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4 바울은 홀로 지냈다(고전 7:8).
바울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예수와 만나거나 마주쳤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서신들은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만났어도,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수 있다. 주후 30년 4월 7일 금요일,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 일몰 때 죄수들의 십자가 처형이 집행되었다. 버둥대는 동물들을 짊어지고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 도살된 가축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로마 군인들은 죄인들을 호송했다. 바리새파 최고 엘리트가 사형당하는 죄수들을 보려고 구경꾼 대열에 덩달아 끼어들 리 없다. 바울은 엘리트 체면을 구기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만남은 추종자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담대하게 예수가 약속된 구원자 곧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화해의 유일한 중보자라고 선포했다. 사도들의 복음 메시지는 단순했다.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하고 가르쳤다(행 5:42). 많은 개종자들이 생겼다.
바울은 예수가 처형당한 뒤에 예수신앙운동 무리들을 대면했다. 그는 비로소 예수에 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때까지 바울을 포함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관망했다. 예수의 메시아 운동이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가말리엘 1세는 만약 이들의 행동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면 그들을 반대하는 행동이 자칫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행 5:38-39).
바울은 예수신앙운동에 관용적이지 않았다. 그는 율법이 장악하고 지배하는 세상에 살았다. 율법과 계명에 대한 순종이 구원을 보장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게 한다고 믿었다(빌 3:6). 예수신앙운동에 따르면 구원에는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행위는 허사가 되고 만다. 바울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자처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경악했다. 자기를 구원의 시금석(마 10:32-33)이라고 하는 말에 놀랐다.
바울은 율법과 그리스도 신앙의 공존, 유대교와 기독교의 상생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나 율법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불가피했다. 그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왕이 등장하여 자기 민족을 이방인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왕은 죄인들을 멸하고 이방인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메시아가 이미 세상에 왔다는 주장은 율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었다. 바리새파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단사상이었다.
바울은 호기심 많은 바리새파 엘리트 신학도였다.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단자 예수에 관하여 역사가 요세푸스가 알고 있는 지식 정도는 갖고 있었던 것 같다.5 바울은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핍박할 구실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계시만 주어지면 즉각 율법을 완벽하게 포기하고 기독교 신학자가 될 수 있는 정신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바울은 행동하는 유대교 엘리트였다. 예수신앙운동을 박해했다. 완전히 박멸하려고 했다(갈 1:13).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예수신앙을 추종하는 남녀를 끌어내어 감옥에 보냈다(행 8:3). 눈에 띄는 대로 붙잡아 예루살렘에 끌고 갈 수 있는 권한도 받아냈다(행 9:1-2).
2. 회심체험
초기 예수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이었다. 부활은 예수의 구원사역을 보증하고, 그의 가르침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징표였다. 기독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었다. 그러나 바울과 바리새파 유대인들에게 구원자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는 속임수였으며 짜증스런 헛소문이었다.
의욕적인 학구파 바울은 예수신앙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다. 육중한 헐몬 산과 레바논 지역 협곡으로 흐르는 오아시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면 예수신앙운동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 착오를 반성하면서 그 운동을 중단시키고 추종자들을 박해하여 유대교로 귀정(歸正)시키려고 달려가고 있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뜻밖에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예수는 베드로,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명의 제자들, 열한 명의 제자들, 500명이 넘는 교우들에게 나타났으며, 바울에게도 나타났다(고전 15:5-8). 바울은 자신이 수치스럽게 여긴 신흥 이단 무리의 교주를 만났다. 사기꾼이라고 경멸하고 무시한 이단자, 부활한 예수를 직접 목도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가 어떻게 예수를 알아보았을까? 소문으로 듣고 알고 있는 예수 이미지들이 종합되었을까? 예수는 바울에게 말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에다 발길질을 하다가는 너만 다칠 뿐이다”(행 26:14). 바울이 “당신은 누구인가?” 하고 묻자, 예수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이다. 내가 나타난 것은 너를 내 일꾼으로 삼아 네가 오늘 나를 본 사실과 또 장차 너에게 보여줄 일들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게 하려는 것이다”(행 26:16)고 말했다. 예수는 바울의 심혼을 사로잡았다. 불가항력적인 힘이 바울의 인식방법과 가치체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하나님의 은총과 특별 계시로 바울이 알게 된 진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분은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구원사역을 담당한 구원자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그리스도다. ②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율법시대는 끝났다. ③ 누구든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면 하나님과 화해하고 죄를 용서받는다. ④ 율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⑤ 이방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민족공동체를 넘어서는 전 인류의 구원자다.
바울을 굴복시킨 것은 지식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의 180도 변화가 하나님의 택정과 은혜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준비시키고 회심시키고 이방인 전도자 사명을 부여했다. 주권자 하나님이 만세전에 예정하고 택하고 부르셨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은총으로 택했다. 당신의 아들의 복음을 이방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자신에게 나타내주셨다고 했다(갈 1:15-16). 바울은 그리스도의 특별 계시가 자신에게 주어지고 또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음을 확신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드셨다”(빌 3:12)고 했다.
바울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에 아라비아로 알려진 나바테아 영토에서 전도활동을 했다. 바울의 사역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많은 고초를 당하고 위축되어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
다마스쿠스는 그리스 문화권이며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상업 요충지였다. 이방인 상인들이 고정적인 상업기지를 갖고 있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3년 동안 복음전도에 힘썼다(행 18:5). 많은 이방인들이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 로마 등지에서 전한 복음의 요지는 간단하다. “메시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하는 바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행 17:3)였다.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행 18:5)라는 이 요지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과 똑같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다(행 5:42).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진리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누구에게서 전해 들었을까? 타인에게 배웠을까?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었다. “형제들이여,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갈 1:12).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진리의 계시성과 독립성을 강조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안디옥에 있는 예수신앙공동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부활한 주님을 만난 뒤 떠오른 생각들을 다시 정돈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정리했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을 때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안디옥의 기독인들에게서 얻은 단편적인 정보들이 바울의 정신적 여과기를 통과하면서 완벽하게 걸러지고 정확하게 종합되었다.
하나님은 바울의 비평적 사고능력과 통찰력을 사용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계시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전할 때 “인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고전 2:13)고 말했다.
3. 바울과 베드로
전도자에게는 재정 후원이나 자립이 중요하다. 바울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술과 장사하는 법을 배웠다. 삶의 불확실성에 붙잡혀 웅크려 있지 않았다. 자립과 생존에 필요한 해결책을 찾았다. 수요가 많은 천막을 만들었다(행 18:3). 천막이 낡으면 몇 해 마다 교체해야 하므로 천막 수요는 계속 있었다. 천막을 수리하기도 했다. 천막 제조와 수리 작업을 하면서 고객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다. 바울이 이상할 정도로 큰 글자로 서신을 쓴 까닭은 자비량 선교에 필요한 노동 작업을 하면서 생긴 근육질 어깨와 굳은 살 배긴 강한 손 때문으로 보인다.
바울은 계시를 받은 복음진리의 확실성을 확인할 의도로 어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갈 1:17). 회심 여러 해 뒤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보름 동안 만났다(갈 1:18).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이방인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보름 동안 바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갈릴리 바다 고기잡이 이야기, 장모 소식,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큰 자인가 하고 다투었던 화제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에게 절실하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과연 예수는 어떤 분이었는가? 지상에 있는 동안 가르친 것들은 무엇인가? 바울 자신이 계시를 받아 전하는 그리스도의 진리(고후 11:10)는 확실한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바울은 예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알게 되었을까?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구원 진리를 직접적인 특별계시를 통해 알았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이 ‘다소대학교’에서 배운 수사학, 철학, 인문학, ‘예루살렘대학교 대학원’에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배운 율법, 구약성경을 완벽하게 꿰뚫어 이해하는 능력 등을 유기적으로 이용하여 서신을 쓰도록 영감을 주고 인도했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라 기독교 진리 체계를 정리하는 데 사용되게 했다. 바울은 베드로를 만났을 때 자신이 말하는 것과 베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확히 일치하는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6 바울은 자기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심오한 진리를 자신이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베드로는 바울이 궁금해 하는 것들 일부를 해소시켜 주었다. 바울 설교의 주요 부분인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과 도덕적 가르침을 알려주었다. 예수께서 전도 사역에 완전히 헌신했고, 인내(살후 3:5)와 충성(갈 2:16, 22)으로 무장했으며, 정치적 힘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약속 실현에 항상 적극적이었던 점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고후 1:19).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계시 내용과 베드로가 알려준 것들이 일치하는 사실에 고무되어 이방인 전도 사명에 열정을 불태우면서 예루살렘을 떠났다.
바울은 베드로가 보여주지 않는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다. 바울은 진리를 생생하게 설명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다. 나무에 달려 처형당한 승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갈 3:1).
둘째, 기독교와 유대교의 근본 차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 때 까지도 메시아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바울은 부활한 예수를 만난 뒤에 곧장 복음의 핵심을 꿰뚫어 이해했다. 구원자 그리스도의 죽음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설파했다. “나를 사랑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갈 2:20)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건지려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갈 1:4). 하나님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희생을 치렀다. 대속제물, 화목제물이 되었다(갈 2:20)고 했다.
셋째, 예수 십자가 도리를 설명하면서 도입하는 하나님의 작정, 예정이다. 하나님의 이타주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작정과 예정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 했습니다”(살전 5:9).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고 택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했습니다”(엡 1:11).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로 미리 정한 것입니다”(엡 1:4-5)라고 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관통하는 주지(主旨)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로 연결되고 종결됨을 확인했다. 그는 유식한 지혜나 심오한 지식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빌 2:8, 고전 2:1-2)를 전했다.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했습니다”(골 1:19-20).
바울은 핵심을 간명하고 명쾌하게 파악하고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대속적 희생을 치른 예수를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 믿으면 하나님과 화해되고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며, 그때 성화의 삶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 중재자이다. “하나님은 한 분 뿐이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 뿐인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쳤습니다”(딤전 2:4-6).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고 우리를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준다(빌 3:9).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갈 3:11)고 했다.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 곧 하나님과 사람이 화해하는 방법이 율법을 지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율법을 맹목적으로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갈 2:16).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고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갈 3:8). 구원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부동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거룩한 열매를 맺는 투쟁의 삶이 따른다고 했다(갈 5장, 6장).
바울이 전한 예수 복음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이 이해한 것과 불일치했으면, 제자들은 즉각 바울을 ‘적그리스도,’ ‘다른 복음,’ ‘거짓 교사’로 정죄했을 것이다. 만약 바울이 제자들이 알고 있는 복음과 다른 내용을 말했다면, 당장 이단자로 단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과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보름 동안 대화를 하는 동안, 바울이 계시를 받아 알게 된 예수 복음과 예수의 제자들이 듣고 목격하고 이해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차이가 없었다. 불일치, 부조화 되는 내용이 없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처럼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인정했다(갈 2:7-8). 이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이의가 없음을 뜻한다.
사도들은 바울에게 복음의 내용, 사도직무, 의무 등 아무런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저 유력한 이들이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습니다”(갈 2:6)고 말했다. “기둥과 같이 존중히 여김을 받는 야고보, 베드로, 요한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주어 친교의 악수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했습니다”(갈 2:9). 예루살렘공의회는 개종한 유대인 기독인들의 할례를 논의하면서 이방인의 할례를 반대한 바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예수의 제자들은 바울이 이단자라고 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교와 바울교를 구분하면서 바울이 종교시장에서 예수를 상품화하려고 십자가의 도리와 구원론을 교리화, 신학화 했다고 주장한다.7 바울을 기독교의 창시자로 본다. 신종 기독교를 자연적 생명(bios)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바울의 교리에 충실한 역사적 기독교는 영원한 생명(zoe)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신학 사이, 또는 현대 에큐메니칼 신학과 역사적 기독교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충돌이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의 제자들과 바울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8
4. 복음전도
바울 메시지의 주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바울의 이 설교는 유대인 공동체의 극심한 분노를 격발시켰다.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었기 때문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신 21:23)이며, 따라서 저주 받은 자가 구원자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디옥 지역의 유대인들은 예수신앙운동인들, 기독인들을 ‘크리스천’ 곧 예수쟁이들이라고 비하했다(행 11:26).9
바울은 원근각지로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로마제국의 동맥 역할을 하는 도로들을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전도를 하러 다녔다. 예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걸어서 하루 평균 32킬로미터(20마일)를 이동했다. 이 거리는 주행 환경, 질병, 상해, 악천후, 노상강도, 이리떼의 습격, 안전조치를 제공할 대상(隊商)을 기다리는 시간을 고려한 수치이다. 당시의 도로사정, 육상여행, 해상여행, 숙박시설은 열악했다. 여행 길목에서 하룻밤을 지내기가 쉽지 않았다.
바울은 건강하고 강인한 체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혼자 시골길을 여행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래서 실라와 동행했다. 디모데는 바울과 의기투합한 동역자다. 바울의 선교 팀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울은 피할 수 없는 질병인 육체의 가시(고후 12:7)에 시달리면서도 제1차 선교여행, 제2차 선교여행을 강행했다. 유창한 그리스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의 인격에서 묻어나오는 감화력이 문화적 차이를 가진 자들과의 대화에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밤, 바울은 신비로운 영상을 보았다. 마케도니아의 한 남자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행 16:9-10) 하고 외쳤다. 아시아의 끝인 지금의 터키 서쪽 지역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면 유럽이다. 빌립보는 아시아에 가까운 유럽 도시이다. 바울은 유럽인들에게 예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파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복음전도를 하는 거룩한 갈망을 가졌다.10
바울의 복음전도 활동은 험난했다. 감옥에 갇히고 여러 차례 매를 맞았다. 죽을 지경에 이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 몽둥이로 세 번 맞았다. 돌에 맞아 죽음 직전에까지 갔던 적도 있다. 그가 탄 배가 파손당하여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하루 밤낮을 꼬박 바다에서 표류했다. 거센 강물의 조류, 강도, 동족, 이방인, 바다가 주는 위험을 달게 받았다. 가짜 교우를 만나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다.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위 때문에 떨었고, 헐벗었다(고후 11:24-27). 법정에 고발도 당했다. 감옥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어느 도시에서는 불온분자로 낙인찍혀 추방당했다(행 16:22-24). 바울의 로마시민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 메시지 안에는 소외된 계층 사람들의 형편을 극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작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이야기’는 가난한 노동계층 사람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주었다. 시 당국자들은 예수신앙운동이 확산되면 사회구조가 위협을 당하고 기존 질서가 뒤엎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대중의 눈에는 나무에 달린 죄수, 처형당한 자를 ‘신,’ ‘구원자’로 보는 게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웠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배계층 사람들과 기존 종교인들은 예수신앙운동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을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숱한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손길을 느꼈다. 성령이 역사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고전 2:4)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머지않아 영광 중에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거듭되는 고생, 불안, 두려움 가운데서도 순순히 복음전도 사명수행에 투신했다. 흩어진 유대인들, 그리스어권 이방인들, 라틴어권 이방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유한 여성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자주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열었다.11 루디아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었다. 자기의 집을 복음전도의 기지로 사용하도록 내어주었다(행 16:14-15). 복음전도에 헌신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바울은 여성들의 사역을 격려해 주었다. 기독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음을 확연히 감지했다.
바울의 메시지는 노예들과 노예 가족들과 해방된 자유인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얻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구원자 예수’는 역설적 진리다. 죄인을 처형해야 할 구원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하는 이 진리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희망이 없고 삶을 부정하기 쉬운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피지배층은 바울이 “나의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고후 12:9)고 한 말에 공감했다. 바울은 지혜 있는 자, 문벌이 좋은 자, 능한 자(고전 1:26)였다. 그러한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겠다”(고전 2:2-3)고 하고,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고 하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그의 말을 듣고 그들은 큰 힘을 얻었다(빌 3:8).
5. 이단의 괴수
바울은 예수신앙공동체에서 이단자로 정죄당할 뻔 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때문이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대안이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졌고 새 것이 나타났습니다”(고후 5:17). 바울은 이방인 개종자가 유대인처럼 할례 받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음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롬 10:9-10). 이방인이 예수를 믿어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 율법이 규정하는 식사 규례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함은 바울 사역의 기반을 흔드는 주장이었다. 바울은 유대인 율법주의에 항거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구원의 충분조건이라고 했다.
예수와 제자들은 모두 율법을 준수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새 지도자 야고보는 개종한 유대인 기독인에게 할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견해 차이가 가져온 갈등 때문에 교회는 이방인 그룹과 유대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이 상황에서 예루살렘은 교회의 대표성이 없는 바울을 거짓교사라고 선언할 수도 있었으며 율법 폐기론 주창자로 여겨 이단자로 단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루살렘공의회 곧 사도들의 회의(c. 48)는 예수신앙으로 개종한 유대인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데 동의했다(행 15:5-12).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시킨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충분조건이라는 데 동의했다. 유대인 개종자 기독인들에게 할례와 음식 관련 율법준수 의무가 없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예루살렘공의회는 개종한 유대인 기독인들에게 할례와 음식 관련 율법준수가 필요한가를 논의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서 사도들 간에 얼굴이 붉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안디옥을 방문한 베드로가 그 교회의 대표자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기독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때 야고보가 보낸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자,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베드로가 갑자기 자리를 떠났다. 전통적인 유대인 관행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했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위에 면박을 주었다(갈 2:11). 바울은 베드로를 꾸짖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단자로 몰리지 않았다.
바울은 십여 년 동안 섬긴 안디옥교회를 떠나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독자적인 선교의 길에 들어섰다. 율법주의에 대한 바울의 투쟁은 문화적인 견해 차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활이 달린 중대한 사안이었다. 바울은 평화공존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를 거부했다.
바울과 율법주의자들의 갈등은 정통과 이단의 신학충돌이었다. 원시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신앙전통이 있었다. 당시 교회의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신약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신앙고백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구원 사건으로 강조하는 정형화된 믿음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 바로 그가 그리스도 곧 구원자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주 예수의 은총으로 된다”(고전 15:4; 행 15:11)는 진리였다.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규범과 시금석은 예수중심의 구원사적 관점과 사도적 신앙고백이었다.12
바울은 모든 율법을 거부했는가? 바울이 거절한 것은 유대인 율법 613개 조항들이었다. 이것들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유대인의 율법이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롬 7:10).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율법, 계명이 삶의 지침이지만, “그리스도의 법”(갈 6:2)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의 괴수’로 낙인찍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기존 세력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유대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 분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자, 유대인들이 작당하여 바울을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갔다(행 18:12). 치안판사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이 사건의 내부 갈등 요인이었음을 파악하고서 고소를 기각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성전으로 들어가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를 목격하고 군중을 선동하여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12일 만에 고소당했다. 고소자들은 외쳤다. “동포들이여, 이 자는 누구에게나 우리 동포와 율법과 이 성전을 반대하라고 가르치는 자입니다”(행 21: 28). 그러자 도성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고 예루살렘 성 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보고를 받은 로마군 파견대장이 바울을 체포하고 쇠사슬로 묶어 병영으로 끌고 갔다. 군중은 난폭하게 굴었고, 바울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바울은 유창한 그리스어로 자신의 출신지와 신분을 밝혔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유창한 히브리어―아람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정통파 유대인이며, 다소 출신의 로마시민이다. ‘예루살렘대학교 대학원’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다. 엄격한 율법 공부를 했다. 나는 기독인들을 괴롭힌 박해자였다. 기독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어 죽게 했다. 예수도당 멤버들을 끌어다가 벌주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하늘에서 찬란한 빛 가운데 나타난 예수를 만났다.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또 다시 나타난 그리스도는 나를 이방인의 전도자로 보냈다(행 22장). 이 말을 들은 유대인 폭도들은 소란스레 떠들었지만, 파견대장은 바울이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확인하고서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바울은 유대인 의회 앞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며, 이 재판을 받는 것은 바리새파 유대인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의회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파와 믿지 않는 사두개파로 갈렸다. 분쟁으로 장내가 소란하자 율법학자 가말리엘이 바울을 두둔했다. “영적 존재가 나타나 바울로 하여금 저 말을 하게 했다면 어쩔 셈인가?” 그는 예수신앙운동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다면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대장은 폭도들을 따돌리려고 바울을 병영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을 찾아와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행 23:11)고 했다.
이튿날 아침, 유대인 약 40명이 바울을 암살할 음모를 꾸몄다. 바울을 죽이지 않고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제사장 아나니야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려고 어느 법관을 데려와 고발하게 했다. “이 사람은 몹쓸 전염병 같은 놈입니다.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입니다. 나사렛 도당의 괴수입니다”(행 24:5). 유대인들은 ‘바울, 이단의 괴수’라는 법관의 논지와 논거를 지지하며 모두 사실이라고 외쳤다.
이단의 괴수 바울은 총독 벨릭스에게 자신의 무죄를 해명했다. 자신은 성전이나 도로에서 유대인과 논쟁을 벌인 일이 없다. 군중을 선동한 적도 없다. 고소를 당할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고소는 근거가 없다고 소리쳤다. 자신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행 24:14)고 했다.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는 선한 양심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울은 로마제국의 황제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을 받으려고 상소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었다. 로마에서 몇 사람의 유대인들을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짚어가면서 예수를 설명했다(행 28: 25-27). 셋집에서 만 2년 동안 기거하면서 내빈들과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자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나라의 관문이라고 했다.13
6. 바울과 아볼로
바울은 독불장군 유형의 사도였다. ‘십자가 형벌로 죽임을 당한 구원자’라는 역설을 앞세우는, 괴기한 종교 발명가로 인식되었다. 바울은 예수신앙공동체 안에서도 고립을 자초했다. 율법, 할례, 식사 규례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불장군이라는 비난에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구원과 복음전도의 관점에서 보았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파송한 이방인의 사도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동등한 신분임을 천명했다. 당당히 자기의 권위를 세우고 자신을 보호했다. 그는 하나님이 이기적인 거짓말쟁이에게 권능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아볼로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개종자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예수복음을 듣고 믿었다. 구변이 탁월하고 구약성경에 정통한 자였다. 그는 성경을 근거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명했다. 유대인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논박했다(행 18:24-28).
아볼로의 지적 능력이 바울을 능가했을 수 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와 함께 수학했으며 철학과 율법을 상호 관련짓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필로의 성경해석 방법과 철학적 틀을 사용했고 철학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동원하고 종합하여 당대 지성인들의 지적 갈망을 만족시켰다. 뛰어난 웅변 재능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을 주선하고 신앙생활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필로의 해석방법과 철학적 체계를 활용하여 바울이 제시한 복음 요소들을 의미 있게 종합하는 지적인 성취를 보였다.
아볼로는 바울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지적 탁월성을 지녔다. 그러나 아볼로에 대한 정보를 접한 바울의 심기는 불편했다. 바울은 ‘나무에 달려 죽은 구원자’라는 역설적 진리를 소개하는 일에 전력한 탓인지 모르나, 아볼로가 지닌 철학적, 지적 탁월성의 도움이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지적 사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손상시키거나 대체할까 봐 두려워했다. 아볼로 때문에 고린도인들이 자기에게 보여준 사랑과 존경심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자기가 전도하여 회심한 자들과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들을 장악하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14
바울은 신학적 사변성과 철학적 방법으로 인기를 끄는 아볼로와 소수의 지식 계층 사람들을 경계했다. 자신이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면서, 각자가 수고한 만큼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고전 3:6, 8).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했다(고전 1:17-2:16, 2:1 이하).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의 원인이 아볼로의 지혜의 말에 있음을 감지했다. 이 점은 이의 제기가 불가능할 만큼 분명하다. 바울은 ‘신령한 자들’로 일컬어지는 사변적인 신학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전 2:6-16). 바울의 태도는 영지주의를 거부하는 초기 기독교의 전례가 된 것 같다.
나무 위에 달린 구원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에게는 사색적인 철학이나 사변적인 신학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울은 철학과 신학을 동경하는 지식인 기독인들에게 초라한 전도자로 비쳐졌을 수 있다. 지적인 열망을 가진 기독인들이 아볼로 주변에 모여들었다. 바울은 질문을 던지고 청중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조롱하듯 날카로운 어조로 아볼로를 따르는 신령한 자들의 독선적인 자기만족 태도를 공격했다. 영적이고 지혜 있다고 하는 것들은 세상의 영이며, 썩어질 이 세대의 지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고전 2:6).
바울은 아볼로를 언급하면서 잔인할 정도로 비아냥거리는 듯한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신령한 자들이 동료다운 자질을 갖추지 않았다고 넌지시 말했다. 모욕적인 어조로 신령한 자들의 주장을 세속적인 성취로 단정했다.15 경쟁자를 대하는 바울의 태도에는 이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고차원적이고 조직적인 구조로 쓰여 졌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율법과 제사법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예수를 새 언약의 중보자, 화목제물로 해석한다. “구변이 탁월하고 성경에 정통한 사람”(행 18:24)이 쓴 글이다. 히브리서는 아볼로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16
맺음말: 패러독스
설교자는 자기의 설교를 들어주는 청중과 전도를 받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개종자가 많을 수록 용기와 자신감이 솟는다. 예수신앙운동의 선두주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설교를 한 오순절 날 하루 동안 약 3천 명이 예수를 믿었다. 유대교 배경을 가진 개종자들은 당일에 세례를 받았다. 베드로의 영적 권위는 높아졌고 도전할 사람이 없었다. 베드로의 설교문(행 2장)은 초기 예수신앙운동이 남긴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초기 기독교가 남긴 또 다른 저명한 자료는 스데반의 설교문(행 7장)이다. 스데반은 율법학자들과 백성과 원로들에게 사로잡혀 의회에 끌려가 그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쳤다. “형제 여러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라는 말로 시작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켰다. “당신들은 바로 그분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행 7:52)라고 지적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 청중이 달려들어 그를 죽였다. 베드로는 설교로 하루에 3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지만, 스데반은 탁월한 설교를 하고서도 죽임을 당했다.
오늘날 절대다수의 기독인들은 베드로보다 스데반에게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있던 한 유대인 청년 때문이다. 이 젊은이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일에 찬동했다. 살해자들의 옷과 소지품을 지켜주고 있었다. 나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이곳저곳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붙잡아 매질했다. 본명은 사울이고, 구브로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행 13:9). 그가 다름 아닌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들을 저술한 신학자이며 전도자인 예수의 사도 바울이다.
바울이 정립한 예수복음 교리는 약 2천년 동안 정통신학의 지위를 차지해 왔다. 초대교회의 정통과 이단 판별의 기준이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와 영감을 받고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라 자신이 배우고 통달한 성경 지식을 종합했다. 통합적인 눈으로 ‘나무 위에 달려 죽은 구원자 예수’라는 역설적 진리를 정립했다. 그는 예수 십자가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전파에 일생을 바쳤다.
바울시대의 전도자들은 신학적 사고능력과 교회를 세우는 측면에서 미숙했다. 기껏 두세 주간 바울과 함께 있었다. 이미 유대민족을 거쳐 진행되어 온 구원 역사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바울이 전도자들에게 준 지침은 단순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화해의 중보자 이야기를 전하라.
둘째,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예수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 또 전하라고 일러주라.
셋째, 개종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예수께서 보여준 자기희생을 본받게 하라. 믿는 자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넷째, 교회 회집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커다란 집을 가진 개종자를 만나도록 각별히 노력하라.
바울이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로 당부했음직한 한 마디 말이 있다.
“혹시라도 내가 다마스쿠스 길에서 그리스도의 특별계시를 받아 정식화한 역사적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폄하하거나, 정통신앙인을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하거나, 정통신학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매우 크다.”
최덕성 지음, <위대한이단자들: 종교개혁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1장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첫댓글 후원이 전혀 안되다보니 카페운영을 그만둬야 됩니다,,,
재난지원금으로 방세도 공과금도 못내요...
현금화가 안되니 먹을것만 사야됩니다
인터넷비도 휴대폰요금도 내야 카페를 관리 합니다
후원이 없다보니 의욕마저 사라지고
카페운영의 한계를 느낍니다 도와주셔서
카페윤영에 용기를 주세요...............
공과금과 방월세도 못내고 있습니다..
후원참여가 없습니다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공과금 통신료라도 내야만 계속 카페를 운영합니다
월세를 내야 한달을 삽니다 여러모로
힘든시기지만 후원을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카페에 후원참여가 없습니다.....
한달에 두세분 후원으로 카페를 계속할수가 없어요
방 월세와 공과금을 내야합니다 공과금을
못내고 있습니다 후원으로 도와주세요....
카페지기는 지병.때문에 매달 치료비가 많이듭니다
매월 공과금과 LH.주거임대 임대료 관리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먹을것 반찬거리도 사야 살아가는데 지병과 장애 나이도
들다보니 수입이 없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