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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느낌·감정·인식·의미의 차이
인지심리학·뇌과학·철학·매체론·사진미학·동시대예술론의 통합적 이해
[1] 논의의 출발점
감각·느낌·감정·인식·의미는 일상에서 비슷한 말처럼 사용되지만 서로 다른 작용이다. 사진을 보고 “느낌이 좋다”, “강한 감각을 준다”, “감정이 깊다”, “의미가 있다”고 말할 때도 이 개념들이 자주 혼동된다.
가장 간단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감각(sensation)은 빛·색·소리·압력 같은 자극을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② 지각(perception)은 감각정보를 사람·사물·공간·사건으로 조직하는 과정이다.
③ 느낌(feeling)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④ 감정(emotion)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중요하다고 평가하면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반응이다.
⑤ 인식(cognition·recognition·understanding)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과정이다.
⑥ 의미(meaning)는 사진의 대상·형식·맥락과 관객의 경험이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해석이다.
여기서 ‘지각’은 사용자가 제시한 다섯 개념에는 없지만 감각과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동시대 미학에서는 ‘정동 affect’도 함께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구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실제 뇌와 감상 경험에서는 각 작용이 차례대로 한 번씩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2] 감각: 몸이 자극과 만나는 기초 과정
1. 인지심리학과 뇌과학에서의 감각
감각은 외부세계와 신체 내부의 물리·화학적 변화를 감각기관과 신경계가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시각에서는 빛의 파장과 강도가 망막의 수용기에 영향을 주고, 그 정보가 신경신호로 변환된다. 청각에서는 공기의 진동이, 촉각에서는 압력과 온도가 감각정보가 된다. 신체 내부의 심장박동·호흡·근육긴장 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라고 한다.
사진을 볼 때 감각과 관계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밝기와 어둠
② 색의 강도와 대비
③ 선과 윤곽
④ 거칠거나 부드러운 표면
⑤ 화면의 크기와 거리
⑥ 반복되는 형태의 리듬
⑦ 흔들림·왜곡·잔상
⑧ 전시공간의 빛·소리·온도
그러나 감각을 완전히 순수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료로 보아서는 안 된다. 주의·기대·피로·기억·신체상태가 어떤 자극을 강하게 받아들이는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미국심리학회 APA, 「Sensatio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Bodily Awareness」).
2. 철학에서의 감각
전통적인 경험론은 감각을 지식이 시작되는 기초 자료로 보았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는 감각이 곧바로 객관적 현실을 제공한다고 보지 않는다. 감각자료만으로 대상과 세계의 구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은 세계와의 접촉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지각과 인식의 조직이 필요하다.
3.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은 다른 개념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에서 말한 ‘감각 sensation’은 생리학적 자극 수용보다 넓은 미학적 개념이다.
들뢰즈에게 예술의 감각은 작품이 이야기를 재현하거나 뜻을 전달하기 전에 색·형태·리듬·변형의 힘으로 몸에 직접 작용하는 사건이다. 그것은 단순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개인적 기분도 아니다. 작품의 형식이 관객의 몸에 전달하는 힘과 강도에 가깝다.
따라서 다음을 구분해야 한다.
① 심리학적 감각: 감각기관과 신경계가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
② 들뢰즈적 감각: 예술의 형식적 힘과 강도가 몸에 직접 작용하는 사건
들뢰즈는 예술이 보이는 형태를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힘을 감각할 수 있게 한다고 본다(질 들뢰즈,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1981; 관련 연구).
[3] 지각: 감각정보를 하나의 세계로 조직하는 과정
1. 감각과 지각의 차이
감각이 빛·색·선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지각은 그것을 사람·사물·공간·사건으로 조직하여 보는 과정이다.
감각은 색과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지각은 그것이 얼굴·의자·창문·그림자로 보이는 것이다.
지각은 외부세계를 그대로 복사하는 과정이 아니다.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인물을 먼저 보고, 다른 사람은 빈 공간이나 작은 사물을 먼저 본다.
2. 구성주의적 지각이론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의 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지각을 불완전한 감각자료에 과거 경험과 추론을 더하여 가장 가능성 높은 대상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를 ‘무의식적 추론 unconscious inference’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관점에 따르면 사진을 본다는 것은 카메라가 기록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원근법, 크기, 겹침, 명암, 과거 경험을 사용하여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적인 공간과 사건으로 이해한다.
3. 게슈탈트심리학
게슈탈트심리학(Gestalt psychology)은 인간이 시각요소를 낱개의 점과 선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전체적인 형태로 조직한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조직 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가까운 것은 같은 집단으로 보는 근접성
② 비슷한 것은 함께 묶는 유사성
③ 끊어진 선도 이어진 것으로 보는 연속성
④ 불완전한 형태를 완성하여 보는 폐쇄성
⑤ 대상과 배경을 나누는 전경·배경 관계
사진의 구도와 배열은 이러한 지각적 조직을 이용한다. 사람은 화면의 모든 대상을 똑같이 보지 않고, 시각적 관계를 통해 중요한 대상과 배경을 구분한다(Wagemans 외, 「A Century of Gestalt Psychology in Visual Perception」).
4. 깁슨의 생태학적 지각이론
제임스 깁슨(James J. Gibson)은 지각을 머릿속에서 세계의 복사본을 만드는 과정으로만 보지 않았다. 인간은 환경 속에서 행동하며 자신에게 가능한 행위를 직접 지각한다고 보았다.
이를 ‘행동유도성 affordance’이라고 한다. 의자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앉을 수 있는 대상으로, 계단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지각된다. 같은 환경도 신체조건·경험·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행동 가능성을 제공한다(생태심리학의 역사와 철학).
사진 속 좁은 문, 높은 벽, 빈 의자, 막힌 길도 단순한 형태를 넘어 접근·통과·휴식·회피와 같은 신체적 가능성으로 지각될 수 있다.
5. 예측처리 이론
예측처리(predictive processing) 관점에서는 뇌가 감각정보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세계가 어떠할 것이라는 예측을 계속 만들며 실제 입력과 비교한다고 본다.
사진을 볼 때도 관객은 기억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예측한다. 사진이 이 예측과 일치하면 쉽게 이해되고, 어긋나면 놀람·낯섦·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예측처리는 영향력 있는 설명틀이지 지각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단일한 정답은 아니다. 뇌가 실제로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예측을 수행하는지는 계속 논쟁되고 있다(Kveraga 외, 「Top-down Predictions in the Cognitive Brain」, 예측처리와 미학 연구).
6. 메를로퐁티의 몸을 통한 지각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지각을 외부세계가 정신에 기계적으로 찍히는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살아 있는 몸으로 세계 안에 참여하면서 대상을 지각한다.
따라서 작품 감상은 눈만의 활동이 아니다. 관객의 자세, 이동, 작품과의 거리, 화면의 크기, 전시공간의 밝기와 방향이 모두 지각에 영향을 준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aurice Merleau-Ponty」).
작은 사진을 손에 들고 보는 경험, 대형 사진 앞에 서는 경험, 사진 사이를 걸어가는 경험은 서로 같지 않다.
[4] 주의: 무엇을 볼 것인지 선택하는 작용
1. 우리는 화면 전체를 똑같이 보지 않는다
시각계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오지만 모든 정보가 같은 깊이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주의(attention)는 일부 정보를 선택하고 다른 정보를 약화한다.
주의에는 두 방향이 함께 작용한다.
① 상향식 주의: 강한 색, 밝은 빛, 큰 얼굴, 급격한 대비처럼 이미지 자체가 시선을 끄는 작용
② 하향식 주의: 제목, 지식, 기억, 목적, 기대가 무엇을 볼 것인지 이끄는 작용
시각피질의 처리도 단순한 상향식 전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표와 기대가 초기 시각처리에 다시 영향을 준다(Gilbert·Li, 「Top-down Influences on Visual Processing」, McMains·Kastner, 상향식·하향식 주의의 상호작용).
2. 사진의 제목과 설명도 지각에 영향을 준다
사진을 보기 전에 제목이나 작가노트를 읽으면 특정한 대상과 의미를 먼저 찾게 된다. 따라서 텍스트는 사진을 본 뒤의 해석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먼저 보는지에도 관여한다.
롤랑 바르트는 글이 이미지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특정 의미를 선택하도록 관객을 이끄는 기능을 ‘정박 anchorage’이라고 설명하였다(롤랑 바르트, 「이미지의 수사학 Rhetoric of the Image」, 1964).
존 버거(John Berger)도 이미지에 붙은 문장이 이미지의 의미를 바꾸며, 이미지가 그 문장을 설명하는 삽화처럼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존 버거, 《보는 방법 Ways of Seeing》, 1972).
[5] 기억과 경험: 현재의 사진에 과거가 개입하는 방식
1. 기억은 사진을 알아보게 한다
관객은 기억을 이용하여 사진 속 사물·장소·표정·행동을 알아본다. 과거에 본 이미지와 배운 문화적 관습이 없다면 국기, 제복, 종교적 상징, 가족사진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2. 기억은 중립적으로 저장된 자료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를 완전하게 보존한 복사본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다시 구성되는 과정이다. 사진을 볼 때 떠오르는 기억도 사진의 세부, 현재의 감정, 제목과 설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이 기억을 그대로 보존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진은 기억을 돕기도 하지만 무엇을 기억할지 선택하고, 기억의 내용을 바꾸기도 한다.
3. 익숙함은 지각을 빠르게 하지만 무감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반복되는 대상은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되지만, 너무 익숙해지면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다. 이는 감각을 실제로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주의와 지각이 습관화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사진은 평소 지나치던 대상을 고립·확대·반복·재배치함으로써 습관적인 지각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미지가 지나치게 반복되면 관객이 무감각해질 가능성도 있다.
[6] 느낌: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몸과 마음의 상태
1. 느낌의 기본 개념
느낌(feeling)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편안함·답답함·차가움·무거움·낯섦·불편함이 여기에 해당한다. 느낌은 분명히 경험되지만 그 원인이 아직 정확한 감정이나 의미로 정리되지 않을 수 있다.
2. 한국어 ‘느낌’의 두 가지 의미
‘느낌’은 일상어에서 범위가 넓다.
① 감각적 느낌: 차갑다, 따갑다, 무겁다처럼 몸에서 직접 체험되는 상태
② 정서적 느낌: 편안하다, 낯설다, 불편하다처럼 몸과 마음에서 체험되는 상태
사진 감상에서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할 때는 대체로 두 번째 의미이다.
3. 다마지오의 느낌과 감정 구분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감정과 느낌을 구분한다.
① 감정은 몸과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행동 반응을 포함한다.
② 느낌은 그 변화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의식적 상태이다.
다마지오에게 느낌은 단순히 머릿속의 생각이 아니라 신체상태를 뇌가 경험하는 과정과 깊이 연결된다(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낌의 발견 The Feeling of What Happens》, 1999; USC 연구자 자료).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영향력 있는 이론이다. 모든 감정이론이 감정과 느낌을 동일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7] 감정: 대상에 대한 평가와 신체반응의 복합체
1. 감정의 일반적 구성
감정(emotion)은 어떤 사람·사물·사건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평가될 때 나타나는 복합적인 반응이다.
감정에는 대체로 다음 요소가 포함된다.
① 상황에 대한 평가
② 신체의 생리적 변화
③ 행동하려는 경향
④ 얼굴·목소리·자세의 표현
⑤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느낌
그러나 이 요소들이 반드시 같은 순서와 강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 제임스-랑게 이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칼 랑게(Carl Lange)는 감정을 신체 변화에 대한 지각과 밀접하게 연결하였다. 사건을 본 뒤 몸이 반응하고, 그 신체 변화를 느끼는 것이 감정 경험을 이룬다는 관점이다.
이 이론은 감정에서 몸의 중요성을 부각했지만 서로 다른 감정이 유사한 신체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3. 캐넌-바드 이론
월터 캐넌(Walter Cannon)과 필립 바드(Philip Bard)는 감정 경험과 신체반응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감정이 “몸이 먼저, 느낌이 나중”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4. 샥터-싱어의 이요인 이론
스탠리 샥터(Stanley Schachter)와 제롬 싱어(Jerome Singer)는 감정을 신체적 각성과 상황에 대한 인지적 해석의 결합으로 설명하였다.
비슷한 심장박동도 상황을 위험으로 해석하면 두려움이 되고, 기대되는 만남으로 해석하면 설렘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샥터와 싱어의 실험과 그 해석에는 많은 논쟁이 있으며, 감정 전체를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하는 확정된 이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감정이론의 역사적 검토).
5. 인지적 평가이론
마그다 아널드(Magda Arnold), 리처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 등의 평가이론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감정을 결정한다고 본다.
사진 속 같은 인물도 관객이 피해자·가해자·낯선 사람·가족으로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이 생길 수 있다.
6. 기본감정 이론
폴 에크먼(Paul Ekman) 등의 기본감정 이론은 두려움·분노·기쁨·슬픔 등 일부 감정과 얼굴표정에 문화권을 넘어서는 공통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감정의 범주와 표정 해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문화와 언어가 감정을 어느 정도 구성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논쟁이 있다.
7. 구성주의적 감정이론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등의 심리적 구성주의는 감정을 몸의 각성, 상황, 기억, 개념, 언어가 결합하여 구성되는 범주로 본다. 이 관점에서는 감정이 미리 완성된 생물학적 상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작품이 관객에게 직접 주입한 결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관객의 신체상태·기억·언어·문화가 감정 구성에 함께 참여한다.
8. 감정이론에 관한 결론
현재 감정을 완전히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은 없다. 신체·뇌·평가·개념·문화·행동을 각각 강조하는 이론들이 경쟁하고 보완한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motion」).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
① 감정은 언제나 신체반응 뒤에 생긴다.
② 느낌은 반드시 감정의 마지막 단계이다.
③ 얼굴표정만 보면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있다.
④ 같은 사진은 모든 관객에게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
[8] 정동: 이름 붙이기 전의 힘과 변화
정동(affect)은 이론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매우 복잡한 용어이다.
심리학에서는 감정과 느낌을 넓게 묶는 상위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철학과 문화이론에서는 아직 분명한 감정 이름이나 의미로 정리되기 전, 몸의 강도와 변화 가능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정동을 단순히 감정의 다른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진 감상에서 정동은 사진의 색·크기·반복·리듬·신체 자세가 관객에게 먼저 긴장이나 끌림을 일으키지만, 그것이 아직 슬픔·두려움·기쁨으로 분명하게 이름 붙지 않은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동과 감정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 논쟁이 있다. 따라서 ‘정동은 무의식이고 감정은 의식’이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확정해서는 안 된다.
[9] 느낌·감정·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1. 느낌은 의미가 아니다
사진을 보고 답답하거나 따뜻하게 느끼는 것은 실제 감상 경험이다. 그러나 그 느낌만으로 작품의 의미가 확정되지는 않는다.
느낌을 의미 해석으로 발전시키려면 다음을 살펴야 한다.
① 사진의 어떤 부분에서 느낌이 생겼는가.
② 색·빛·구도·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③ 인물과 공간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는가.
④ 제목과 작가노트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⑤ 자신의 개인적 기억에서 비롯되었는가.
⑥ 사진의 배열이 그 느낌을 강화했는가.
2. 감정은 작품의 주제가 아니다
슬픔·분노·두려움은 관객에게 일어나는 감정이다. 상실·폭력·소외·통제는 작품에서 해석될 수 있는 주제나 의미이다.
사진이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의미가 반드시 슬픔인 것은 아니다. 폭력을 다룬 사진이 모든 관객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3. 작가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도 다르다
작가가 슬픔 속에서 만든 사진이라도 관객은 평온함이나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감정은 제작의 출발점이지만 관객의 반응을 결정하지 않는다.
[10] 인식: 알아봄·이해·판단·성찰의 과정
1. ‘인식’이라는 말의 여러 의미
한국어의 ‘인식’은 매우 넓게 사용된다.
① 지각(perception): 감각정보가 하나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
② 재인(recognition): 본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
③ 인지(cognition): 기억·개념·추론·판단을 포함하는 정신 과정
④ 이해(understanding): 대상과 사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
⑤ 자각(awareness):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따라서 “사진을 인식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 어느 뜻인지 밝혀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인식을 지각한 대상에 기억·개념·지식을 연결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으로 사용한다.
2. 사진에서의 인식
사진 감상에서 인식은 다음을 포함한다.
① 무엇이 촬영되었는지 알아본다.
②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파악한다.
③ 기록·연출·합성 여부를 판단한다.
④ 촬영자의 위치와 선택을 발견한다.
⑤ 반복되는 형식과 배열을 비교한다.
⑥ 자신의 느낌과 감정의 원인을 검토한다.
⑦ 사진의 사회·역사적 조건을 이해한다.
⑧ 자신이 어떤 가치와 편견으로 사진을 보고 있는지 성찰한다.
3. 인식은 감정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과 감정, 인식과 느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감정은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할지에 영향을 주며, 인식은 막연한 느낌을 구체적인 감정과 의미로 조직한다.
사진을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 뇌과학과 신경미학이 설명하는 미적 경험
1. 미적 경험은 하나의 뇌 영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은 아름다움, 예술 감상, 미적 판단과 관련된 뇌와 신체의 작용을 연구한다.
시각예술 감상에는 시각처리, 주의, 기억, 정서, 보상, 자기 관련 사고와 관련된 여러 신경망이 함께 관여한다. 특정한 하나의 ‘예술중추’가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적인 시각예술을 감상할 때 시각·보상·기본모드 네트워크 등이 관련된다는 연구가 있지만, 뇌 활성만으로 작품의 역사·윤리·정치적 의미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Belfi 외, 미적 경험과 신경망 연구).
2. 처리유창성 이론
처리유창성(processing fluency) 이론은 쉽게 지각하고 처리할 수 있는 대상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대칭, 반복, 선명한 형태, 익숙함 등이 처리의 용이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 언제나 더 뛰어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동시대예술에서는 난해함·불확실성·갈등이 오히려 오래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처리유창성은 선호의 일부 조건을 설명하지만 예술적 가치를 결정하는 법칙은 아니다.
3. 예측과 놀람
예측처리 관점에서 관객은 작품을 보며 형식과 의미를 예상한다. 기대가 적절히 충족되면 질서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기대가 어긋나면 놀람과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예측오류가 크다고 언제나 좋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익숙하면 지루할 수 있고, 지나치게 불확실하면 이해를 포기할 수 있다. 미적 경험은 익숙함과 새로움, 질서와 복잡성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4. 체화된 모의와 공감
데이비드 프리드버그(David Freedberg)와 비토리오 갈레세(Vittorio Gallese)는 관객이 작품 속 몸짓·동작·상처·표면을 볼 때 자신의 감각운동 체계를 통해 그 상태를 부분적으로 모의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는 작품을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거울신경이나 체화된 모의만으로 공감과 예술감상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공감에는 상황지식·도덕 판단·문화적 맥락도 필요하다(예술에서 체화된 모의에 관한 비판적 검토).
5. 뇌과학의 한계
뇌과학은 작품을 볼 때 어떤 정보처리와 신체반응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을 뇌 활성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① 작품이 예술인가.
② 작품이 역사적으로 중요한가.
③ 작품의 정치적 주장이 타당한가.
④ 타인을 재현하는 방식이 윤리적인가.
⑤ 관객이 만들어야 할 최종 의미는 무엇인가.
뇌과학은 미적 경험의 생물학적 조건을 설명하지만 예술의 가치와 의미 전체를 대신하지 않는다.
[12] 의미: 사진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 관계에서 생기는 작용
1. 의미는 작가의 의도와 같지 않다
작가가 어떤 뜻을 넣었다고 말해도 그 뜻이 사진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역사적·사회적 의미가 작품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는 중요한 해석 자료이지만 의미 전체를 독 결정하지 않는다. 관객의 해석 역시 작품과 아무 관계 없이 무제한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2. 소쉬르의 기호학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설명하고,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와의 차이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사진에서도 한 이미지의 의미는 혼자 고립되어 결정되지 않는다. 앞뒤 사진, 제목, 장르, 전시공간과의 차이와 관계 속에서 달라진다.
3. 퍼스의 기호학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의미작용을 기호·대상·해석항의 삼항관계로 설명하였다.
① 기호는 무언가를 대신하여 나타난다.
② 대상은 그 기호가 가리키는 것이다.
③ 해석항은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이해와 효과이다.
퍼스에게 의미작용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해석은 다시 새로운 기호가 되어 다음 해석을 불러온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eirce’s Theory of Signs」).
4. 바르트의 외연·함축과 정박
롤랑 바르트는 이미지에서 직접 보이는 외연적 내용과 문화적 코드에 의해 만들어지는 함축적 의미를 구분하였다.
사진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는 것은 외연적 기술에 가깝다. 그것을 권력·국가·전쟁·희생과 연결하는 것은 역사와 문화가 개입한 함축적 해석이다.
제목과 캡션은 이미지의 여러 의미 가운데 특정한 방향을 선택하도록 한다. 따라서 글은 사진의 의미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제한한다.
5. 에코의 열린 작품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완전히 닫히지 않고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열린 작품은 아무 해석이나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해석은 작품의 형식·구조·맥락에 의해 제한된다(움베르토 에코, 《열린 작품 The Open Work》, 1962).
6. 해석학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해석학에서는 이해가 해석자의 역사적 위치와 전통을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관객은 완전히 빈 마음으로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지식의 지평에서 작품을 만난다.
작품 감상은 기존 생각을 그대로 투사하는 일도 아니고 작품의 원래 의미를 그대로 복원하는 일도 아니다. 작품과 관객의 서로 다른 지평이 만나 이해가 변화하는 과정이다.
7. 홀의 부호화와 해독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미디어 메시지가 제작자의 의도대로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제작자는 특정한 사회적 코드로 메시지를 부호화하지만, 관객은 자신의 계층·문화·경험에 따라 지배적·협상적·대항적으로 해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제작자가 넣고 관객이 그대로 꺼내는 물건이 아니다. 의미는 생산과 수용 사이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13] 매체론: 무엇을 보여 주는가뿐 아니라 무엇으로 보여 주는가
1. 맥루언의 ‘매체가 메시지다’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매체의 내용만큼 매체의 구조가 인간의 감각·행동·사회관계를 변화시킨다고 보았다.
같은 사진이라도 대형 전시장 프린트, 사진집, 신문, 휴대전화 화면, SNS 피드에서 보는 경험은 다르다. 크기·속도·순서·반복·소유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 1964; MIT 수록 자료).
“매체가 메시지다”는 내용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매체의 형식과 환경도 의미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2. 벤야민의 기술복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사진과 영화 같은 기술복제가 작품의 유일성·현존성·전통적 권위를 변화시킨다고 분석하였다. 복제는 작품을 원래 장소에서 분리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동시킨다.
사진은 복제될 때 동일한 의미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와 용도에서 다시 읽힌다(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5∼1936; MIT 수록 원문).
3. 플루서의 장치와 프로그램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사진가가 완전히 자유롭게 세계를 표현하는 주체라고 보지 않았다. 카메라는 미리 설계된 기능과 가능성을 가진 장치이며, 사진가는 그 프로그램 안에서 선택한다.
오늘날에는 카메라뿐 아니라 자동초점, 얼굴인식, 보정 프로그램, 스마트폰 알고리즘, SNS 추천체계도 어떤 사진이 만들어지고 보이는지에 관여한다.
따라서 사진의 의미를 작가의 생각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장치·소프트웨어·플랫폼이 시각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도 살펴야 한다(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1983).
[14] 사진미학: 사진은 기록이면서 선택된 해석이다
1. 사진의 지표성
사진은 전통적으로 실제 대상에서 반사되거나 방출된 빛이 필름이나 센서에 작용한 흔적으로 이해되었다. 퍼스의 기호학에서는 이러한 물리적 연결을 지표(index)와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표성은 진실성과 동일하지 않다. 사진이 실제 대상의 빛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그 사진의 설명과 해석이 모두 참이라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촬영 위치·순간·프레임·연출·선택·캡션에 따라 동일한 현실도 다르게 제시된다. 디지털 사진도 실제 빛의 입력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합성·삭제·생성 과정이 결합하면 하나의 실제 순간과 맺는 관계가 달라진다(사진의 지표성과 사실성에 관한 검토).
2. 바르트의 ‘그것이 존재했음’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고유한 성격을 과거에 카메라 앞에 대상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연결하였다. 사진은 현재 보이지만 그 대상은 이미 과거에 속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모든 디지털·합성·생성 이미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나의 실제 촬영에서 출발한 사진과 여러 출처를 합성한 이미지, 생성형 이미지는 현실과 서로 다른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3. 스투디움과 푼크툼
바르트의 스투디움(studium)은 관객이 문화적 지식과 관심을 통해 사진을 읽는 일반적인 영역이다. 푼크툼(punctum)은 사진의 우연한 세부가 특정한 관객을 개인적으로 찌르는 경험이다.
푼크툼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① 모든 관객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동
②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강한 메시지
③ 작품의 객관적인 주제
④ 단순히 시선을 끄는 중심 대상
푼크툼은 특정한 관객에게 우연히 발생하는 사적인 반응이다(Frieze의 스투디움·푼크툼 해설).
4. 손택의 사진과 소유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사진 찍기가 세계를 이미지로 수집하고 소유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진은 경험을 보존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촬영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고, 고통과 사건을 소비하게 할 위험도 있다.
사진이 감각을 일깨우는 매체가 될 수 있지만 이미지의 반복 소비가 오히려 감정을 둔화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함께 봐야 한다(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 1977;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5. 버거의 사진과 부재
존 버거는 사진이 보이는 것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하였다. 사진은 한 순간을 고립하기 때문에 프레임 밖의 상황과 촬영 전후의 시간이 부재한다.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한 장 안에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이 어떤 역사·이야기·생활관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지가 중요하다(존 버거, 《사진의 이해 Understanding a Photograph》).
6. 세큘라와 사진의 담론
앨런 세큘라(Allan Sekula)는 사진의 의미가 사진 자체의 외형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캡션·문서·제도·아카이브·사용 목적 같은 담론적 조건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같은 얼굴사진도 가족앨범, 경찰기록, 여권, 미술관, 광고에서 서로 다른 의미와 권력을 가진다. 따라서 사진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나 화면의 아름다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앨런 세큘라, 「사진적 의미의 발명에 관하여 On the Invention of Photographic Meaning」, 1975).
[15] 동시대예술론: 의미는 작품의 물체 안에만 있지 않다
1. 예술사적 맥락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겉모습이 같은 대상이라도 어떤 예술이론과 역사적 맥락에 놓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작품의 의미는 보이는 형식만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에 관하여 만들어졌고 예술사 안에서 어디에 놓이는지와도 연결된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esthetic Experience」).
이는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형식만으로 작품의 모든 의미와 예술적 지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2. 개념미술
개념미술에서는 완성된 물체보다 작가가 세운 생각·규칙·과정이 중요할 수 있다. 사진은 독립적인 미적 대상이 아니라 행위·장소·시간을 기록하는 문서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사진작품을 한 장의 아름다움과 감정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진이 전체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야 한다(Tate, 「Conceptual Art」).
3. 설치와 장소
사진의 크기·높이·간격·동선·빛·음향은 감각과 의미를 바꾼다. 장소특정적 작업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의미의 상당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동시대예술에서 작품은 고립된 물체가 아니라 공간·관객·제도·시간을 포함하는 사건으로 구성될 수 있다.
4. 아카이브와 배열
아카이브는 자료를 단순히 모아 둔 중립적 저장고가 아니다. 무엇을 수집하고 분류하며 제외하는가에 따라 과거가 다르게 구성된다.
사진 연작에서도 의미는 개별 사진뿐 아니라 사진과 사진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사진도 앞뒤 순서와 제목이 달라지면 다른 의미를 가진다.
5. 해방된 관객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관객을 작가의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존재로 보지 않았다. 관객은 보고 비교하고 기억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해석이 똑같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관객의 해석은 작품의 형식과 맥락에 접속하면서 이루어진다(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The Emancipated Spectator》, 2008).
[16] 사진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전체 구조
사진의 의미를 작가와 관객 사이의 단순한 전달로 보면 부족하다. 최소한 다음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① 현실의 대상과 사건
② 촬영자의 위치·관심·의도
③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
④ 자동화된 장치와 소프트웨어
⑤ 프레임과 촬영 순간
⑥ 보정·합성·선택·삭제
⑦ 사진 사이의 배열
⑧ 제목·캡션·작가노트
⑨ 사진집·전시장·신문·SNS 같은 매체
⑩ 미술관·언론·아카이브 같은 제도
⑪ 사회·문화·정치적 코드
⑫ 관객의 신체·기억·감정·지식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어느 한곳에만 있지 않다.
의미는 작가가 넣어 놓은 내용만도 아니고,
사진 안에서 저절로 나오는 내용만도 아니며,
관객이 마음대로 붙이는 내용만도 아니다.
의미는 이 모든 요소의 관계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수정된다.
[17] 기존 설명에서 바로잡아야 할 논리적 오류
1. 감각에서 의미까지 일직선으로 진행된다는 오류
이해를 위해 감각→지각→느낌·감정→인식→의미라고 정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과정은 순환적이다. 기대와 기억이 감각과 지각에 영향을 주고, 감정이 주의를 바꾸며, 새로 얻은 의미가 다시 사진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
2. 감각은 순수하고 인식만 문화적이라는 오류
감각기관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생리적 과정은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무엇을 알아차리는가는 주의·학습·기대의 영향을 받는다. 감각과 지각을 완전히 분리된 상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3. 느낌은 감정의 결과라는 단정
다마지오의 이론에서는 감정 반응과 그에 대한 느낌을 구분하지만 모든 감정이론이 같은 순서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느낌·신체반응·평가·감정은 서로 순환적으로 영향을 준다.
4. 감정과 이성은 반대라는 오류
감정은 판단을 방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위험한지를 판단하는 데 관여한다. 인식과 감정은 서로 분리된 두 체계가 아니다.
5. 의미는 감상의 마지막 단계라는 오류
의미는 마지막에 한 번 완성되는 결과가 아니다. 제목과 지식은 처음부터 지각에 영향을 주고, 해석은 다시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만든다.
6. 뇌반응이 예술적 가치를 증명한다는 오류
뇌의 보상회로나 감정반응이 활성화되었다고 해서 작품이 반드시 훌륭한 예술인 것은 아니다. 자극적인 광고와 오락 이미지도 강한 신경반응을 만들 수 있다.
7. 작가의 의도가 작품의 의미라는 오류
작가의 의도는 중요한 근거이지만 의미 전체는 아니다. 실제 작품의 형식, 사회적 맥락과 관객의 해석이 함께 작용한다.
8. 관객의 느낌이 곧 작품의 의미라는 오류
느낌은 감상의 출발점이지만 최종 의미는 아니다. 그 느낌이 사진의 어느 요소와 맥락에서 생겼는지 설명해야 해석이 된다.
9.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오류
사진은 실제 대상과 연결될 수 있지만 프레임·순간·편집·캡션을 통해 선택된 현실을 보여 준다. 기록성과 객관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10. 사진의 의미는 화면 안에만 있다는 오류
사진의 의미에는 배열·제목·전시장·출판물·사회적 제도·유통 플랫폼이 관여한다. 화면 분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작업도 많다.
[18] 통합된 사진 감상 방법
1. 감각의 단계
사진의 뜻을 먼저 찾지 말고 색·빛·선·질감·크기·명암을 살펴본다. 눈과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아차린다.
2. 지각의 단계
무엇이 먼저 보이고 무엇이 배경으로 밀려나는지 살펴본다. 인물·사물·공간이 어떻게 묶이고 분리되는지 본다.
3. 주의의 단계
왜 특정 부분을 먼저 보았는지 점검한다. 강한 대비 때문인지, 얼굴 때문인지, 제목과 사전지식 때문인지 구분한다.
4. 느낌의 단계
편안함·답답함·낯섦·불편함처럼 아직 이름이 분명하지 않은 주관적 상태를 알아차린다. 느낌을 곧바로 작품의 의미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5. 감정의 단계
그 느낌이 슬픔·불안·분노·기쁨·혐오·연민 같은 감정으로 발전하는지 살펴본다. 자신이 사진 속 상황을 어떻게 평가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생겼는지 묻는다.
6. 인식의 단계
촬영자의 거리·시점·프레임·빛·색·초점·연출 여부를 분석한다. 무엇이 포함되고 제외되었는지 살펴본다.
7. 사진적 특성의 단계
사진이 기록한 순간과 사라진 시간, 프레임 안과 밖,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생각한다. 사진이 실제 촬영인지, 연출·합성·생성 이미지인지도 확인한다.
8. 맥락의 단계
제목·캡션·작가노트·연작의 배열·전시공간·사진집·유통매체를 살펴본다. 촬영된 대상의 사회·역사적 배경도 확인한다.
9. 의미의 단계
처음의 느낌, 사진의 형식, 작가의 선택, 사회적 맥락을 연결하여 가능한 의미를 구성한다. 하나의 정답으로 서둘러 닫지 않는다.
10. 성찰의 단계
사진이 무엇을 보여 주는지만 묻지 말고 자신이 왜 그렇게 보았는지도 묻는다. 자신의 기억·취향·문화적 가치·편견이 해석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돌아본다.
11. 다시 보기의 단계
해석한 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요소가 새롭게 보이는지, 최초의 느낌과 판단이 달라졌는지 확인한다.
[19] 사진은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릴 수 있는가
현대인이 생물학적 감각능력 자체를 잃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제는 감각의 상실이라기보다 반복·속도·주의 분산·이미지 과잉으로 인해 주변을 자세히 보지 않게 되는 지각의 습관화에 가깝다.
사진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익숙한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
① 지나치던 대상을 프레임 안에 고립한다.
② 짧은 순간을 멈춰 오래 보게 한다.
③ 작은 사물을 확대한다.
④ 비슷한 장면을 반복 배열하여 차이를 보게 한다.
⑤ 익숙한 대상을 낯선 거리와 시점에서 보여 준다.
⑥ 일상에서 분리된 색·표면·흔적에 집중하게 한다.
⑦ 사라진 사람과 시간의 부재를 현재에 다시 불러온다.
그러나 사진은 언제나 감각을 회복시키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반복되는 고통의 사진, 감정적 충격만을 노리는 사진은 오히려 주의와 감정을 둔화할 수 있다. 손택이 지적했듯 사진은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하는 동시에 세계를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바꿀 위험을 가진다.
따라서 사진이 감각을 일깨우려면 단순히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관객이 멈추고, 오래 보고, 비교하고, 자신의 보는 습관을 다시 생각하게 해야 한다.
[20] 최종 핵심 명제
1. 감각은 자극과 접촉하는 과정이다.
2. 지각은 감각정보를 하나의 대상과 세계로 조직하는 과정이다.
3. 느낌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자신에게 어떻게 체험되는가이다.
4. 감정은 대상을 중요하다고 평가하며 나타나는 신체적·인지적·행동적 반응이다.
5. 인식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기억·개념·지식을 통해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6. 의미는 사진의 형식·대상·매체·맥락과 관객의 경험이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해석 과정이다.
7. 이 과정은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기억과 기대는 지각에 영향을 주고, 감정은 주의를 바꾸며, 새로운 의미는 다시 사진을 보는 방식과 느낌을 바꾼다.
8. 느낌은 의미가 아니지만 의미로 들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9. 감정은 작품의 주제와 동일하지 않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반응이다.
10. 뇌과학은 감상의 생물학적 조건을 설명하지만 작품의 역사적·사회적·윤리적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11. 사진의 의미는 작가가 혼자 정하지 않으며, 관객이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도 아니다.
12. 사진 감상은 다음의 순환이다.
감각하고
→ 지각하고
→ 느끼고
→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 인식하고
→ 맥락과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고
→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 새롭게 보는 과정이다.
주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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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느낌의 발견 The Feeling of What Happens》, 1999.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지각의 현상학 Phenomenology of Perception》, 1945.
제임스 깁슨(James J. Gibson), 《시지각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1979.
질 들뢰즈(Gilles Deleuze),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1981.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기호학 관련 저술.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일반언어학 강의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1916.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이미지의 수사학 Rhetoric of the Image」, 1964.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밝은 방 Camera Lucida》, 1980.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열린 작품 The Open Work》, 1962.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진리와 방법 Truth and Method》, 1960.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5∼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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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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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Susan Sontag),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존 버거(John Berger), 《보는 방법 Ways of Seeing》, 1972.
존 버거(John Berger), 《사진의 이해 Understanding a Photograph》.
앨런 세큘라(Allan Sekula), 「사진적 의미의 발명에 관하여 On the Invention of Photographic Meaning」, 1975.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해방된 관객 The Emancipated Spectator》, 2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