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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글 머리에
작년 5월, 전국동기회 회장에 취임한 해랑 하홍표 님이, 동기회 사업으로 약속한 금강산 산행이 이루어져 부산과 경남, 서울에 사는 동기 서른 일곱 사람(남자 12명)이 참여하여, 2박 3일 간에 걸쳐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돌아보고 무사히 돌아왔다.
2. 남북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4월 21일 새벽 5시. 우리 일행은 서울에서 출장 온 雲亭의 환송을 받으며 서면 로타리를 출발. 새벽을 깨우며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구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를 바꾸어가며 달려 10시 55분에 38선 휴게소 도착하여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확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다.
얼마 전 온 국만들의 가슴에 시커먼 검뎅이를 남긴, 양양과 고성군 산불 현장을 바라보니 검게 타 버린 소나무 숲이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숲과 건물들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던지....
이전에 안보교육장이었던 '고성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지루하게 기다린 다음, 입북 수속을 마치고, 오후 4시 통일전망대 아래에 설치된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국신고를 하다.
4시 35분.금강산 관광 전용버스를 타고 여의도 17배나 된다는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다.
아산 정주영 회장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삼엄한 대치 현장인 이 비무장 지대를 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가 있었겠는가?
남방 한계선에 설치된 '금강통문'을 통과한 후, 남북 분단의 벽인 휴전선을 통과하니 거기서부터는 북녘땅이다. 도로 오른 쪽에 보이는 낙타봉. 여기서부터 금강산에 속한다고 한다.
5시 경에 북방 한계선은 넘는다. 여기서부터 북녘땅이다. 가끔 인민군 초소가 보인다. 그 삼엄한 지역을 겁도 없이 관광버스를 타고 남한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지나가다니.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
북측의 임시 검문소에서 인민군 전사 두사람이 차에 오른다. 무표정한 얼굴에 경례도 없이 올라와서는 인원 점검을 하고 버스 짐칸도 살핀다. 말도 걸지 말고,손을 잡거나, 웃지도 말란다.(현대 도우미). "반갑습니다. 절차상 잠시 확인사항을 점검 하겠습니다." 하면서 경례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기가 다음에 북측 통관 업무를 보게 될 곳인데, 가건물도 아닌 흰색 천막들을 쳐 놓고 있다.(지금은 해금강 호텔 앞 현대 건물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저수지 우측에 난 도로에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내려 올 때에는 12사람의 일꾼들이 들것에 흙을 퍼다가 나르고 있었다. 리어카도 하나 없는지 삽으로 흙을 떠서 들것에 담아 가까운 거리에 옮기는 작업인데 리어카 한대에 두 사람이 하면 될 일을, 마치 개미가 먹이를 나르듯이, 게으른 사람들이 시간 때우기를 하는 것 처럼 보여, 우습기도 하고 딱해 보이기도 하다.
북방 한계선에서 한참 동안 달리는 동안, 바라다 보이는 도로 양쪽의 산은 마치 미국의 캘리포니아 사막 처럼, 나무들이 없는 민둥산이다.
나무도 없는 산과 퇴락해 가는 농촌 마을의 집들이 얼마나 을씨년스러운지 가슴이 쓰릴 정도이다.
우리가 가는 길 양쪽엔 녹색의 펜스가 쳐 있다. 이 길은 현대의 길이고, 북녘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은 저 만치 떨어져 있는데, 며칠을 보아도 버스나 승용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
옷들은 거의 대부분이 검은 색이거나 군인 옷 같은 색이다. 밝은 색채나 화려한 색은 집이나 옷이나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직 구호를 적은 간판이나 현수막만 붉은색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는 더러 보이는데, 길은 아직도 둘로 나누어져 있다. 현대길(남쪽 사람의 길)과 북쪽 사람들의 길이 따로 있고, 교차로 지점 주변엔 반드시 인민군들이 지키고 있다.
오후 5시 15분 경에 고성항에 도착하다. 통나무 집들과 해금강호텔 앞에 현대 직원들이 한줄로 서서 손을 흔들며 맞이한다.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 든다. 80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통관 절차를 밟는다.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인민군들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을 동포애적 심정으로 환영합니다." 천하의 명산 금강산 방문을 환영합니다." 븕은 반흘림체로 쓴 표어가 반갑기보다는 약간 섬찟한 느낌이 든다.
바다 건너 마주 바라보이는 산이 금강산이다. 배를 이용하여 만든 호텔에 숙소 배정을 받은 후, 온정리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온천장으로 가서 온천욕으로 하루 종일 버스와 수속철차에 시달린 피로를 풀다.( 오늘 온천욕은 현대아산의 상무님이 특별 서비스하다.)
3. 아! 금강산!
금강산은 태백산맥 북부에 솟아 있는 천하절경이요, 세계적인 경승지이다. 옛부터 "죽기 전에 금강산은 꼭 가 보아야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고, 얼마나 경치가 좋았으면 밥먹는 것도 잊었겠는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이다.
금강산은 천태만상의 예봉과 계곡, 기암 절벽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산으로 계절에 따라 그 이름이 달리 불리고 있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이고, 겨울엔 개골산으로 불린다. 금강산 말고 이름을 네개나 가진 산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는가.
금강산에는 750종의 식물과 211종의 동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금강산은 크게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신금강으로 나눈다.
이번에 우리가 찾은 곳은 외금강의 온정지구와 만물상지구와 구룡연지구이다. 해금강 지역인 삼일포를 한바퀴 돌아 본 친구들도 있기는 하다.
4. 구룡연 지구.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온정각으로 향한다. 온정리 뒷산의 매바위가 보인다.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이 바위는 온정리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횡포가 심한 지주로부터 시달리던소작인들을 도와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그런 바위로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온정각에서 버스를 타고 '구룡연'으로 이동하다. 길 옆에 있는 퇴락한 12층 건물은 한 때 날리던 ' 김정숙휴양소'이다. 지금은 휴관 중인 것 같다.
온정각에서 구룡연까지는 8.4km. 입구에서부터 미인송이라고도 불리는 적송들이 많다. 그러나 입구에 있는 소나무숲은 병충해의 피해를 입은 듯 싱싱한 느낌보다는 피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소나무 숲 사이엔 산벚꽃과 복사꽃,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그러나 진달래는 꽃도 작고 꽃 송이도 대개 하나씩만 피어 있어 빈약해 보인다.
구룡마을에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야영장이 있다. 진주에서 온 중학생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북측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너무나 심한 생활 수준에서 오는 좌절감에서 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계사 입구를 지나자 계곡물이 맑게 흐르고 있다. 출출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흘러 내리는 물이 숲과 어우러져 보기에 좋다. 고여 있는 웅덩이의 물은 엷은 옥색을 띠고 있어서 더 맑아 보이고 신비한 느낌까지 든다.
주차장에서 상팔담까지에는 여덟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목란다리, 양지다리, 금수다리, 옥류다리, 만경다리, 흔들다리. 상팔담으로 건너가는 흔들다리와 다른 쇠다리를 모두 건너야 목적지인 구룡대에 이른다.
다리 아래에는 옥색을 띤 구슬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 또 맑은 물이 고이는 潭과 沼가 수없이 많아서 산천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다리 위에 서서 맑은 물과 연록색 이파리가 돋아 나오고 있는 는 나무와 기암 괴석을 바라보니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밀고 밀리는 관광객들과 빠듯한 일정 때문에 옛날 시인 묵객처럼 여유를 가질수 없이 올라가야 하는 산행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산자락에 피어 있는 앙징스런 노랑제비꽃이 신기한 눈으로 남측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산 언덕에 활짝 피어 있는 생강나무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등산로 왼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매우 맑고 차다. 김일성 수령께서 일찌기 이 물을 가리켜 '蔘鹿水'라고 이름 짓고, 몸에 좋은 약수라고 하시며 마신 적이 있다고 붉은 글씨로 써 두었다. 물을 실컷 마시고 세병이나 담아서 가져 왔다.
양지다리를 건너니 앙기대 전망대이다. 북측 안내원이 재미있게 소개를 한다.
옛날에 도마뱀과 코끼리, 애기 거북이가 금강산으로 내려와 경치를 보며 놀았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거기에 정신이 팔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바위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우리도 멍하니 정신 팔고 있다가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바위로 변해 버릴지도 모르니 주의를 하란다.
설명하는 여자 안내원 곁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남자는 감시원인 듯 하다. 가는 곳 마다 반드시 여자와 남자가 짝을 지어서 근무를 한다.
종전에 듣던 것보다는 감시원들의 눈초리가 무섭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관광객들도 이제 많이 익숙해져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9시 25분경. 금강문에 도착하다. 마주 바라보이는 바위 능선이 '성벽암'이다. 그 바위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을 '장수소나무'라고 한다. 그 성벽암 맨 오른쪽에 얹혀 있는 바위가 '처벌받는 토끼, 거북이바위'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던 토끼가 금강산 경치에 팔려 빨리 한느로 올라가지 않고 멈칫거리다가 옥황상제에게서 벌을 받아 거북이 형상 위에서 벌을 받고 있다는 전설을 이야기 해 주는 북측 안내원이 이쁘다. 혜암이 열심히 적고 있는 나를 '남쪽에서 가장 훌륭한 교장이고 글을 잘 쓰는 한길 선생님이라고 과대 포장을 하여 소개를 한다.
나중에 상팔담까지 올라 갔다가 여럿이 내려오는데, 그 아가씨가 "한길 선생님 다녀 오십네까? 하고 인사를 한다. 너무 놀라 내가 한길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아까 올라갈 때 들었다고 한다.
'대단한 총기'라고 인삿말을 나누고 내려왔다.( 혜암이 꼭 쓰라고 해서).
10시 45분. 냇가에 무대바위가 있고, 그 위쪽에 길이 60m나 되는 풀장같은 '옥류담', 그 위쪽에 길이 58m나 되는 구슬같은 물이 세차게 흘러 내리는 '옥류폭포'가 흐른다. 이것도 천연 기념물이다.
다시 옥류다리를 지나 한참 올라가면, 봉황새가 하늘을 날으는 형상의 '비봉 폭포'(길이139m). 그 아래 '연주담' 과 더불어 역시 천연 기념물이다.
다시 조금 올라가면 '무봉폭포'가 맑은 물을 소리치며 쏟아 내린다.
일곱번째인 흔들다리와 마지막 다리를 건느면, 곧장 구룡대로 오르는 철계단이다.
10시 30분. 거의 70도에 가까운 철 계단을 여러 개 오르면 '上八潭'이 내려다 보이는 '구룡대'이다. 상팔담은 구룡폭포 위쪽에 있는 여덟개의 담인데 옛날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곳이라나.
그런데 내가 내려다 보니 네개는 보이고 네개는 숨어 있더라고 했더니, 북쪽 안내원이 대뜸 '선생님이 마음이 곱지 않고 좋지 않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처럼 만난 남쪽의 어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게 좋지 않느냐고 해도 "금강산은 원래 그 사람의 행실이나 맘에 따라 그렇게 보인대나."
그 때에 옆에 있던 남자 감시원이 " 6개 반만 보인다'.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다시 아래로 내려와 '구룡폭포'와 '관폭정'을 찾았다. 구룡폭포는 길높이가 74m이고, 그 아래에 아홉마리 용이 비상했다는 '구룡연'이 있다. 폭포 바로 아래 바위에 파여진 작은 소를 보고 물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신계사'에 잠시 들른다. 엣날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큰 절이었지만, '조국 해방 전쟁 때 미제의 폭격으로 소실되어 돌 기둥 몇개만 남은 폐허로 변했는데( 이건 빨간 글씨로 쓰여진 안내문) 몇 년 전 남한 불자들이 성금을 모아 재건 중이다. 지금은 대웅전만 세워져 있고(단청은 아직) 해인사에서 파견한 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다. 북한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유일한 스님이 아닌가 싶다.
소변 한 번 보는 데 남자는 1 달러이고 여자는 2달러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엔 1달러도 아깝지 않다.
내려오는 길에 목련관에서 비빔밥을 먹고, 손두부와 '대봉막걸리'로 친목을 다지다.
오후엔 일부는 온천욕 후에 '평양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보고, 다수는 삼일포로 가서 호수를 한바퀴 둘러 본 후에 교예를 감상하다.
교예는 북한이 자랑하는 고연 예술 중의 하나다. 우리가 말하는 써커스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게 그거다.
사회를 보는 한복 차림의 여자는 평양 방송에서 나오는 어나운서의 말 투 그대로라 맘에 들지 않는다. 세계적인 수준급 배우다. 금 상 수상자다, 공훈 배우다 하면서 자랑이다. 아슬아슬한 연기에 손에 땀이 나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보기에 안스럽기만 하는 것은 옛날 우리 써커스단을 생각해서일까. 교예를 보고 세번 눈물 흘린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해서 저렇게 고난도의 연기를 하게 되었을까. 혹시 실수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뿐이다.
금강산 최후의 만찬은 고성횟집에서. 30달러를 내고 북녘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회와 조개, 멍게, 해초에 소주를 곁들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인 식당이라 오붓한 자리르 만들기 힘들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부둣가 임시 카페에서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를 지켜 보던 인민군들도 갓끈이 푸어졌는지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한창 젊은 나이에 날마다 벌어지는 자유분방한 남쪽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현대공화국에서 관리하는 모든 시설엔 대낮같이 환한데 북쪽 사람들이 사는 마을엔 간간이 희미한 전등불만 비치고 있다. 협동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잠이 들고, 우리를 지켜보던 인민군 전사들도 숙소로 돌아간 호텔 주위는 적막감이 감돌고 바다엔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다.
아쉬운 북녘의 마지막 밤을 여흥으로 달래고 들어오는 룸메이트인 서울 회장 이 동태님과 정담을 나누다가 잠이 들다.
5. 만물상 지구
아침 먼동이 트자 밖에는 초소로 가는 인민군들이 조를 지어 걸어간다. 조금 더 밝아지니 현대측 고사 요원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6시경에 호텔 맞은 편 산 위에서 아침해가 얼굴을 내민다. 해가 동해바다에서 뜨는 줄 알았는데 동산 위에서 뜬다.
2박 3일의 마지막 코스는 만물상 지구 관광이다. 북쪽 온정리 사람들은 집단 농장으로, 학생들은 학교로 가느라 분주하다. 고성 읍내로 가는 중고등학생들은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다.
마을 주변엔 아이들이 꽤 많이 보인다. 출생 신고가 끊어진 우리 농촌과는 달리 그것 하나는 희망적이다.
온정각 정원에 설치된 청동 조각품이 인상적이다. 1999년에 설치된 금강산 관광 1주년 기념 작품이다.
금강산에서 서울은 157km, 평양은 280, 한라산은 589, 백두산은 370, 부산까지는 401, 독도까지는 346km. 지금의 독도 문제를 그 때에 미리 알기나 한 것 같은 그 작품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만물상으로 가는 오른쪽에 있는 북쪽 주민들을 위한 온천장 건물이 매우 초라하다. 그러나 우리 때문에 혹시 그들이 온천욕을 하지 못할까 걱정한 마음은 이제 풀리게 되었다.
80년에서 300년이나 되는 수령을 가진 미인송은 어제 본 것들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인다. 역시 오래된 참나무들도 더러 보인다. 옥색을 띤 계곡물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106구비나 된다는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가면서 양양 노인과 산삼과 얽힌 '만냥골'에 대한 전설을 듣다.
9시 52분 등산로를 따라 만물상지구로 들어가다. 등산로 여기저기를 현대에서 보수를 하고 있다. 그래도 위험한 몇 곳은 아직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녹이 슨 오래된 철난간은 북쪽에서 만든 것이거나 해방 전부터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이 '삼선대'. 북쪽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을 하는 데도 듣는 사람들이 적다. 그저 바쁘게 서둘기만 하는 관광객들은 남의 말을 차분히 듣거나 관찰하거나 메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쳐져야 할 관광문화가 아닌가 싶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삼선대. 그 앞에 '귀면암'이 서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녀와 귀신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귀면암은 어디를 봐도 귀신 얼굴인지 알 수가 없다.
삼선대에서 바라보면 만물상 지구의 7할 정도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멀리 가까이 보이는 기기묘묘한 바위와 절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역시 천연기념물이고 김일성 김정숙 여사께서 다녀가셨다는 붉은 안내문이 새겨져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에 제주도 비바리를 닮은 바위가 보인다. 바위 틈애서 자라는 잣나무들이 더욱 경치를 아름답게 한다.
군데군데 아직도 녹지 않고 길게 누어 있는 잔설 더미들이 많이 보인다. 만년설은 아니지만 여름이 되어야 녹을 것 같다. 큰 눈덩이 밑으로 맑은 물이 흘러 내린다. 금강산과 개성지구에 남쪽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드나들면 얼어붙은 북쪽에도 서서히 자유의 물결이 일지 않을까.
어여쁜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도끼로 바위를 찍었다는 折斧岩에 대한 북쪽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는 그 바위에 있는 두더지, 멧돼지, 애기곰, 도마뱀, 다람쥐, 독사의 형상을 본다.
9시 45분. 천선대와 망양대로 가는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천선대는 30분 거리이고 망양대는 1시간 거리이다. 제호와 여자 동기 몇 사람은 천선대로 가고, 나머지는 모두 망양대로 올라갔다.
가파른 등산로와 철계단을 타고 '안심대'에 오르니 멀리 동해바다가 시야에 들어 온다. 오른쪽으로 제1망양대와 제2 망양대에 올라갔다가 주봉인 '제3망양대'에 오른다. 해발 936 m. 아슬아슬한 전망대에서 경치를 완상하기보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앞에는 멀리 비로봉이 보이고 그 앞으로 험한 산 줄기들이 기세좋게 뻗어 있다. 골짜기마다 아직도 녹지 않고 버티는 눈덩이들이 마치 석회암처럼 희무꾸레하게 누어들 있다.
양 옆으로는 기암 절벽이 늘어서 있다. 바로 앞에 물개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서 있다. 다른 바위들은 딱히 무슨 형상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동해바다가 바라보이는 쪽으로도 아름다운 바위들이 줄을 서 있다.
망망대해 푸른 바다 저쪽에 섬이 보인다. 금강산 동쪽 바다에 무슨 섬이 있는지 다시 알아 보아야 하겠다.
망양대 바로 아래 등산로 옆에 보라색 난초가 피어 있다. 손에 잡히는 거리에 있는 난도 그대로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등산로 주변 곳곳에 노랑제비꽃이 무리 지어 피고 있다. 높은 봉우리 아래에 자생 개나리 노란꽃이 눈길을 끈다.
삼거리로 내려와 천성대로 가려고 하니 안내원들이 제지한다. 시간이 촉박해서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니 11시 10분. 11시 40분 경 금강산 호텔에 도착하니 마당 옆에 "21세기 세계적인 영웅 김일성 장군 만세!". 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간판이 서 있다. 여기는 북측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다. 만두국 백반으로 점심 식사를 하다,
잘 아는 일이지만 북쪽 사람들의 가슴마다 김일성 뺏지가 붙어 있고, 가는 곳 마다 김일성을 찬미하는 구호가 나부끼고 금강산 바위마다 그와 김정일을 찬양하는 붉은 글을 새겨 놓고 있다.
죽어서도 북쪽 국만들을 다스리는 김일성 수령은 참으로 21세기 세계적인 영웅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온정각에서 쇼핑을 하고 출국 수속을 받기 위해 고성항 호텔 앞으로 이동하다.
'우리식 대로 살아나가자' '강성대국' '주체사상' '김일성 장군 만세'와 같은 구호가 남쪽 사람들 앞에 공허하기만 느껴진다.
북쪽 군인들이나 농민들이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살아가는 것이 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얼마나 다급했으면 김정일이 금강산을 현대에 열어 주었을까. 김정일의 배짱이 큰 것인 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러 남한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 위해 어려운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분들도 있다.
중고등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한총련 대학생들이나 편향된 시각으로 노동 운동을 하는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교사들을 이 곳에 보내 북쪽의 현실을 보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오후 2시. 출국 수속을 끝내고 현대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남으로 내려오는 버스에 올랐다.
아름다운 금강산,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마음엔 금강산보다도 북녘 사람들의 너무나 참담한 생활상이 더 진하게 남아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지금도 각종 건설 장비들과 남쪽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땅을 고르고 산을 파 헤치고 있다. 호텔을 더 짓고 골프장과 각종 휴양 시설들을 짓고 있는 중이다.
현대아산 주식회사가 DPR KOREA 주식회사보다 훨씬 경영 능력이 탁원한 것 같다. '우리식대로'만 고집하지 말고 남북 교류를 활발하게 하면 금방 우리처럼 잘 살수 있을 텐데 무슨 땅고집(옹고집)을 그렇게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북방 한계선을 넘어 통일 전망대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경. 서울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3시 30분에 우리가 타고 왔던 뉴부산 관광버스를 타고 부산을 향해 출발하다.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우리 마을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활발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마치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국내로 들아 오면서 느끼는 그런 기분이다.
무채색의 나라에서 유채색의 나라로, 겨울나라에서 봄나라로, 무겁게 갈아앉은 나라에서 생기 있고 활발한 나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싱싱한 소나무 숲과 확 트인 푸른 바다와 깨끗하고 다양하게 지어 놓은 각종 건물들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더욱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금강산 길을 열어주신 고 아산 정주영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기들의 여행을 주선해 주신 회장님 고맙고요. 영원한 우리 친구들, 12사범 만세! 현대 아산 만세! 우리나라 만세!
좋은 날씨와 안전한 교통편과 여행 기간 동안 건강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005. 4. 24. 한길.
첫댓글 선생님의 왕성한 활력에 넘치는 홛동과 거침없는 글 감사 드립니다. 계속 좋은글 부탁 드립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전 게을러서두 선생님의 먼 발치를 따라 잡기도 힘드니까요.
선생님 조금은 맘이 조이셨죠? ㅎ.... 무사이 잘 다녀 오셔서 글 까지 써주시고 감사합니다.담에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 다음 계획이 궁금해져요~
눈앞에 훤히 그려지듯 선생님의 글솜씨에 금강산을 둘러보고온 듯한 느낌입니다. 가장 가까운곳에 있으면서 아주 먼 나라인것 만 같은 곳...... 선생님의 글월따라 마음 아프고, 안타깝고, 행복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