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2월 9일 욥기 8장 찬송가 333장(새찬송가 275장)
0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0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0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04.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0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0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0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08. 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0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
11.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12.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14.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15.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16.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17.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18. 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19.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21.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빌닷의 1차 변론”
두 번째 변론자로 나선 사람은 수아 사람 빌닷입니다. 엘리바스가 욥이 하나님의 징계 자체를 원망한다면서 욥을 공격하였다면, 빌닷은 욥이 하나님의 공의를 비난한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인간의 재난은 그 자신의 범죄의 결과라는 인과응보적 관점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빌닷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옛 시대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 가르침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런 전통주의자의 설교도 욥에게는 아무런 감동이나 위로를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진리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도, 성경도 알지 못하면서 자기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마 22:29 참고).
인과응보론에 입각한 하나님의 공의(1-7절)
【1-2절】빌닷은 욥의 말이 ‘광풍’과 같다고 비난합니다. 빌닷이 보기에는 욥이 탄식하는 말들은 경솔하고 거칠어 파괴적인 바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3-7절】빌닷의 변론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흑백논리식의 도덕주의입니다. 빌닷은 이러한 흑백논리식의 도덕주의가 바로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범죄 때문이며, 욥의 고난 역시 범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공의를 굽게 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빌닷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고 협소함을 드러내어 주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증거(8-10절)
【8-10절】엘리바스가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에 근거하여 자기 주장을 편 것에 비해(4:12-16) 빌닷은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8절)라고 말하며 전승(傳乘)을 인용합니다. 즉 옛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 사상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그것들이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완전한 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빌닷은 인생의 문제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색이 없이 전통적인 신학지식만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이나 경직된 교조주의적 신학자들을 연상시킵니다.
자연적인 증거(11-19절)
【11-19절】빌닷은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는 어김없이 나타나고 유추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물이 빠지면 마른 땅이 되고 마는 진펄에서 자라는 왕골이나 갈대를 비유로 들면서, 그것들은 다른 풀보다 더 빠르고 크게 자라지만 물이 빠지면 곧바로 말라죽어 다른 풀들보다 일찍이 시드는 것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도 이와 같이 한 때 번성하는 듯해도 결국은 소망 없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욥이 한때 동방에서 가장 큰 자였다가 지금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욥의 번성이 악인의 번영에 다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묘사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지만(예. 시 37:1-2, 10), 빌닷의 논리는 흑백논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계적인 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으로써, 하나님은 자의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이러한 인과응보의 원리에 매이지 않으실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인과응보론자들에 따르면 의인은 무조건 복을 받고 악인은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대로라면 현재 외형적인 복을 받은 자는 다 의인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다 악인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독선적인 결론(20-22절)
【20-22절】욥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모독한다고 책망하는 빌닷은 자신의 논리가 오류에 빠져있다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빌닷을 포함한 욥의 친구들의 말은 그 자체만으로 볼 때 충분히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빌닷은 하나님의 의(義)를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는 행위에 의해서 똑같은 결과를 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빌닷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8절)
2. 하나님은 이미 욥을 순전하다고 하셨는데(2:3), 빌닷은 욥에게 어떻게 되라고 말합니까?(20절)
◈오늘의 기도◈
“나의 신학적 지식이 모든 것인 줄로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는 이 말씀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애용되는’ 구절입니다. 특히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탁월하게 선택되는 축복의 명구(名句)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 중에서 빌닷이 욥의 회개를 촉구하는 가운데 나온 말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전후문맥이야 어찌 되었던 그 구절이 내 마음에 맞으니까, 아니 그 말씀이 나에게 필요하니까 그 한 구절만 떼어내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변하며 그 말씀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런 태도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너무나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빌닷은 지금 욥이 큰 재난과 고난 중에 있지만, 그것은 다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인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나면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하게 되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빌닷이 말하고자 한 의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빌닷의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원래 이 구절은 하는 사업이 잘 되어서 나중에 크게 번영하고 성공하리라는 축복의 말씀이 아니라, 회개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누구든지 참으로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모든 죄악과 잘못을 버리고 회개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창대함의 영역도 사실은 사업이나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형통함이 더 큰 본질적 복임을 욥기 전체가 강조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도덕주의,경직된교조주의로서,정죄만을일삼지않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