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하라주쿠라도 다케시타와 오모테산도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모테산도에서 연결되는 우라하라주쿠(캣츠 스트리트)와 시부야는 두 지역의 틈을 채워주는 쇼핑가로 볼 수 있다. 우라하라주쿠는 조경이 잘되어 있어 특히 사랑스러운 거리다. 유럽풍 정원 카페가 보이고, 패션 소품을 파는 소규모 숍이 굴곡진 도로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가게의 간판과 앙증맞은 디스플레이에 유독 눈이 간다. 우라하라주쿠는 분명 쇼핑 스트리트지만 조용하게 뒷골목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걷고 싶은 거리’다. 평일 낮인데도, 우라하라주쿠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조용한 우라하라주쿠를 지나고 나면 서울의 홍대와 동대문을 합쳐놓은 듯한 시부야에 닿는다. 시부야는 쇼핑을 목표로 도쿄를 방문한 20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 어느 지역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알다시피 쇼핑에 관한 한 시부야를 따라올 곳이 없다. 동대문의 의류쇼핑센터 같은 시부야109, 파르코Ⅰ·Ⅱ·Ⅲ와, 대형 생활·인테리어소품 숍 도큐핸즈,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바로 앞의 복합 쇼핑몰 큐프론트 등 쇼핑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무엇이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
특히 의류쇼핑몰은 한국의 그곳과 약간 다른 성격을 띠기에 관심을 두고 보게 된다. 외관상으로 동대문의 대형 쇼핑몰과 다를 바 없는 시부야109에서 ‘에고이스트’ 브랜드 숍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백화점에도 입점한 의류 브랜드인 에고이스트의 시발이 바로 시부야109이다. 에고이스트뿐 아니라 도쿄 시내에 지점을 가진 유명 브랜드들 중 이곳에서 시작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시부야109는 우리네 동대문 상가처럼 물건을 떼어다 파는 쇼핑몰이 아니었다. 생각만큼 물건이 저렴하지도 않다. 매장마다 디자이너를 따로 두고 브랜드화를 꾀하고 있으며 많은 수가 성공적으로 도쿄 내에 매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시부야109 건물 안에는 크게 보면, 일본인 특유의 작고 마른 체형을 겨냥한 옷이 대부분인데 각 매장에서 저마다 색깔을 분명히 밝힌 개성 있는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이곳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모델 같은 옷맵시를 자랑하는데, 단순히 판매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꿈을 꾸고 시부야로 몰려든 이들이다. 유명 브랜드의 옷을 카피하기에 바쁜 우리네 동대문 패션가와는 전혀 다르다. |
파르코Ⅰ·Ⅱ·Ⅲ은 시부야109와 다른 스타일의 의류를 취급하는데, 이지캐주얼이나 새미정장 등 20대 후반 이상의 연령대에 적합한 의류와 소품이 갖춰져 있다. 과감하고 튀는 의상이 많은 시부야109에 비해 파르코에는 한국에서 무난하게 입을만한 옷이 많고, 널찍한 매장에 여유롭게 쇼핑할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 반응이 좋다. 유카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류부터 파리 콜렉션에서 막 가져온 듯한 아방가르드한 의상까지 100가지 취향을 다 맞출 만큼 선택의 폭이 높다 |
편집매장과 대형 쇼핑몰, 그 외에 시부야를 가득 메우는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면 어떤 특징이 보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거리의 유행을 좀처럼 읽어낼 수 없었다. 하라주쿠·시부야를 돌아보면 숍 마다 그 특징이 뚜렷해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이 없고, 어느 한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없다. 흔히들 말하는 ‘니뽄스타일’은 시부야 패션 흐름의 한 줄기에 불과했다. 하라주쿠·시부야는 겹겹이 싸인 다중(多重)패션지대다. 일본에서 쇼핑을 할 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사야 한다는 조언이 번뜩 떠올랐다. 다른 가게에도 있겠거니 하고 지나쳤다가 다시 그곳에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들 했다. 한 벌밖에 없는 옷, 나에게만 꼭 어울리는 모자를 사고 싶으면 개성에 미친, 패션에 미친 하라주쿠·시부야로 향한다. |
지역 명이 음악 장르의 이름으로 굳어진 ‘시부야케이(시부야계係의 일본식 표기)’ 음악은 이름 그대로 시부야에서 시작된 일본 음악의 한 흐름을 이른다. 시부야는 도쿄에서 가장 트렌디한 클럽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시부야케이 음악은, 쉽게 말해 이들 클럽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 확대된 음악 장르다. |
1970년대 중산층에서 태어난 세대가 90년대 주류 일본음악에 반기를 들고 전혀 색다른 음악 흐름을 주도했다. 시부야에서 전 세계의 희귀 음반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들이 일렉트로닉과 보사노바, 재즈, 힙합 등이 복합적으로 녹아든 시부야케이 라는 장르를 만들어갔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피치카토 파이브, 코넬리우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등이 있다. 90년대 후반 시부야케이는 가장 진보적인 장르의 음악으로 미국, 유럽까지 퍼져 나갔고, 한국에도 일부 마니아 계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가 믹싱된 시부야케이의 무국적성은 자유로운 음악을 갈구하는 이들을 자극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클래지콰이, 허밍 어반 스테레오 와 같이 시부야케이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가요계에 등장하면서 한국에 뒤늦은 시부야 바람이 불고 있다. |
최근 들어 포스트-시부야케이라는 흐름까지 생겨나면서 시부야케이는 음악 장르를 넘어선 거대한 문화 코드로 읽힌다. 시부야케이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복고에 대한 열광, 키치한 문화 취향 등이 말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차별화된 그들만의 문화 현상으로 굳어졌다. |
시부야의 한적한 뒷골목쯤 되는 ‘우다가와초’는 시부야케이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성지 같은 곳이다. 희귀 레코드 숍, 중고 음반 숍과 음악카페, 엔티크 숍이 몰려있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소비 중심으로 도쿄의 모든 지역이 재편되면서 우다가와초는 시부야 쇼핑가보다 관심이 덜 가는 지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확실히 메인 로드에 비해 화려한 맛도 덜하고 인적도 드물었다. 다만, 강렬한 색감의 그래피티와 덕지덕지 붙은 클럽 전단이 시부야케이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
세련된 리듬감이 돋보이는 시부야케이 음악이 들려오는 우다가와초의 어느 레코드 숍에 과감하게 발을 들여놓는 여행자가 있다. 제대로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진짜’ 시부야는, 뒷골목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