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신 구 _ 풀뿌리문화연구소(대표), 전통예술평론가, 민속학자, 예술경영학박사(명), 세종문화회관 공연본부장(전), 한국국제예술원(교수역임),(사)한국전통춤협 상임위원, 한국예인열전(제작자)
관등觀燈 놀이
4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로 모든 불교국가의 가장 큰 명절이다.
이 날을 기리는 불교 특유의 봉축奉祝행사의 하나인 관등하는 습속은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있어 왔다. 근간에는 중국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는 폭죽놀이도 이에 연하는 것이고, 크리스마스 장식(츄리)도 예수 탄신을 축하하는 풍습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아지기도 한다.
관등이란 말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 처로 하지 말 것이며, 법을 등불로 삼고 남을 의지 처로 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관등불사觀燈佛事〉의 유래는 가난하고 마음이 착한 한 여인의 등공양燈供養에서 연유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불설시등공덕경佛說施燈功德經》에서 ‘등을 바치는 것은 연등燃燈이라 하고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관등觀燈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등불을 상징하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빛으로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불국정토佛國淨土의 건설에 뜻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풍속은 신라시대의 〈연등회燃燈會〉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정월대보름 황룡사皇龍寺를 중심으로 한 〈백고좌대회百高座大會〉에서 관등놀이가 크게 열렸다고 한다.
고려에 들어와서는 〈팔관회八關會〉와 더불어 고려의 2대 명절인 ‘연등회’는 고려의 국력이 크게 신장됨에 따라, 제한된 불가佛家 행사에서 벗어나 국가적인 명절로 발전하였다. 불교문화의 융성에 따라 국민적인 행사로의 연등회는 그 규모가 호화로 왔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문종 21년(1067) 1월, 흥왕사興旺寺의 낙성을 계기로 1월 18일에 대대적인 연등회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그때의 모습을 가리켜 ‘등산화수登山火樹 광조여주光照如晝’라고 하였고, 문종 27년(1073)의 2월, 연등 시에는 등불의 수가 무려 3만여 개나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려 말엽 권신權臣 신돈辛旽은 자기 집에다 백만이나 되는 무수한 등불을 달아 놓고 공민왕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대한 연등회는 신라시대에 이어서 고려 초기에는 정월 보름에 열었으나, 고려 현종 8년(1017)부터는 2월 보름에 ‘연등회’를 열어 왔다고 하다.
4월 초파일 ‘연등회’는 고려 중엽이후 시작되어 말엽까지 한해에 두 번, 2월 연등과 4월 연등이 있어 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숭유排佛崇儒의 국책으로 인하여 공의公儀로서의 ‘연등회’는 폐지되었으나, 그 계통은 계속 이어져 민간의 세시풍속으로 다채롭게 전승되어 왔다.
《왕조실록》에 보면 태종 12년(1412)의 정월 보름날 연등 시에 용, 봉鳳, 호랑이, 표범 등의 등燈을 만들어 장식하였다고 하며, 성종 6년(1475) 4월 초파일에는 집집마다 온갖 모양, 즉 새, 물고기, 짐승, 용등龍燈을 매달아 각기의 절묘한 모양을 서로 자랑하였다고 한다.
‘연등회’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에 나타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4월 초파일(8일)
8일은 곧 석가모니 탄신일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날 등불을 킴으로서 등석燈夕이라 한다.
며칠 전부터 민가에서는 각기 등간燈竿을 세우고 위쪽에 꿩의 꼬리를 장식하고 채색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단다. 작은 집에서는 깃대 꼭대기에 대개 소나무 가지를 붙들어 맨다. 그리고 각 집에서는 자녀의 수대로 등을 매달고 그 밝은 것을 길하게 여긴다. 이러기를 9일에 가서야 그친다.
사치를 부리는 사람은 큰 대나무 수십 개를 이어매고 오강五江(서울 근처의 나루터, 즉 한강, 용산, 마포, 현호玄湖(서빙고)의 돛대를 실어다가 등간을 만들어 놓는다.
혹은 일월권日月圈(등대 꼭대기의 장식, 끝에 장목을 단 장대의 상부 중앙에 구멍을 뚫고 다른 나무를 그 구멍에 꿰어 +[십자형]으로 되게 한 다음, 가로지른 나무의 한 끝에는 흰색의 직경 4cm 가량의 공을 반으로 쪼갠 것같이 만든 것을 세워 붙여서 바람이 불면 가로 댄 나무 가지가 빙빙 돌았다)을 꽂아 놓아 바람에 따라 그것이 눈이 부시게 돈다.
혹은 회전등을 매달아 빙빙 도는 것이 마치 연달아 나가는 총알 같다. 혹은 종이로 화약을 싸서 줄에다 메어 위로 솟구치게 하면 활을 떠난 살 같아 화각火脚(아래로 내려오는 불)이 흩어져 내려오는 것이 마치 비가 오는 것 같다.
혹은 종이쪽을 수십 발이나 되게 이어 붙여 펄펄 날리면 마치 용의 모양과 같다.
혹은 광주리를 매달기도 하고 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옷을 입혀 줄에 붙들어 매어 놀기도 한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게에서는 등간을 높이 세우느라 받침대를 다투어 높이 만들고 수십 개의 줄을 펼쳐놓고 끌어 세워 올린다. 그 때 등간의 키가 작으면 사람들이 모두 빈정거리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사》에 ‘우리나라 풍속에 4월 8일 석가의 탄신일이므로 집집마다 연등을 한다. 이날이 되기 수십 일 전부터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간에 매달아 깃발을 만들고 성안의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쌀이나 돈을 구하여 비용으로 쓰니, 이를 〈호기呼旗〉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풍속에 등간에 기를 다는 것은 〈호기〉의 유풍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4월 8일에 행하는 것은 고려 때 ‘최이’가 처음 시작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등의 이름에는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공등, 배등[船燈], 종등鐘燈, 북등, 누각등, 난간등, 화분등, 가마등, 머루등, 병등, 항아리등, 방울등, 알등, 봉등, 학등, 잉어등, 거북등, 자라등, 수복壽福등, 태평太平등, 만세萬歲등, 남산南山등의 등이 있는데, 모두 그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 4월 초파일(8일)
민가를 비롯하여 관청, 시전까지 모두 등간燈竿을 세운다.
이 등간은 대나무를 묶어 이어서 만들어 높이가 여남은 길이가 된다.
그리고 비단을 잘라 깃발을 만들어 등간 끝에다 단다.
또 깃발 아래에다 가로 막대기를 대어 갈고리를 만든다.
그 갈고리에다 줄을 끼워 그 줄의 양끝이 땅에까지 내려오게 한다.
그런 다음 밤이 되면 등에다 불을 붙이는데 많게 달 때는 10여 등, 작게 달 때는 3~4등을 매단다.
민가에서는 모두 식구 수대로 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면 그 등을 단 모양이 층층으로 이어져 있어
마치 구슬을 꿴 것 같다.
먼저 줄의 한끝을 맨 윗 등의 머리 쪽에 붙들어 매고 다음 한끝을 맨 아래 등의 꼬리에다 붙들어 매어 서서히 잡아 올리면 그 등을 매단 줄이 갈고리까지 올라가 멈춘다.
그리하여 높은데 올라가 보면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온 하늘이 가득 찬, 별과 같다.
등燈은 마늘같이 생긴 것, 수박 모양의 것, 꽃잎 같은 것, 새나 짐승 모양의 것, 누대樓臺 모양의 것 등 가지각색이다.
어린 아이들은 등간 밑에가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고 돌려가면서 두드린다.
이 노래를 〈수부水缶〉(물장구)라 한다.
중국의 ‘연등회’는 정월 보름에 행하는데 우리는 4월 8일에 한다.
그 근원은 불교에서 나왔으며, 이 날은 석가모니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 시대의 4월 초파일 놀이는 고려시대의 왕가와 귀
족 중심에서 벗어나 민중놀이로서 다채롭게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불자佛子나 비불자의 구별 없이 거족적인 경축 행사로서 전승되어 오던 초파일 놀이는 조선시대 말기에 격변기와 일제 강점기를 치르는 동안 불교의 교세도 다소 쇠퇴되는 듯 하나 전통문화의 활성화로 다시 복원하는 무형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본다.
민요民謠
《청구영언靑丘永言》 〈속가집俗歌集〉에 수록되어 있는 〈관등가觀燈歌〉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관등가觀燈歌〉 정월 상원일上元日에 답교踏橋하고 노니는데 답교할 줄 모르는고
2월 청명일淸明日에 잔디잔디 속잎 나니 우리 님은 어데 가고
3월 3일날에 왔노라 현신現身하고 가노라 하직下直한다 행화杏花 방초芳草 흩날린다 화유花遊할 줄 모르는고
4월 초파일에 원근고저遠近高低에 어룡등魚龍燈 봉황등鳳凰燈과 종경등鍾磬燈 선등仙燈 북등이며 연꽃 속에 선등仙燈이며 배등 집등 잔디등과 가마등 난간등欄杆燈과 호랑虎狼이 탄 오랑캐라 일월등日月燈 밝아오고 동령東嶺에 월상月上하고 우리 님운 어데가고 | 달과 노는 소년들은 우리 님은 어데 가고
나무마다 춘풍春風들고 만물이 화락和樂 한데 춘기春氣든 줄 모르는고
강남江南서 온 제비 소상강瀟湘江 기러기는 이화梨花 도화桃花 만발하고 우리 님은 어데가고
관등하러 임고대臨高臺 하니 석양夕陽을 빗곁는데 두루미 남성南星이며 수박등 마늘등과 난봉鸞鳳 위에 천녀天女로다 영등 알등 병등 벽장등壁欌燈 사자獅子 탄 체괄體适이며 벌로차 구을등仇乙燈에 칠성등七星燈 벌렸는데 곳곳이 불울 켠다 관등觀燈할줄 모르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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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서 4월까지〉 옮김-〈필자 주〉 | | |
《한국민요집》(임동권)에 수록되어 있는 각 지방의 〈등燈 타령〉을 소개한다.
〈등燈타령〉
알쏭달쏭 호랑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잔대기 밭을 엇다두고 담방처자 소구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왼갖냄새는 엇다두고 곱장곱장 새버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백모래밭을 엇다두고 목질었다 황새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 〈전라도 정읍지방〉 | 만첩산중을 엇다두고 둥글둥글 수박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거서사당은 엇다두고 납작납작 새양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오랑지와를 엇다두고 목 잘랐다 자라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징맹경은 엇다두고 |
밝고밝은 생기등 그리궁상 니보내노 모래사장 수박등은 허송세월 니보내노 채수밭을 어디두고
| 경상감사 너어디두고 둥글둥글 허송세월 너어디두고 그리궁상 조박조박 마늘등은 그리궁상 니보내노 - 〈경남 창녕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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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라 초파일날 무슨등이 걸렸든가 거북등에 자라등에 오만등이 다걸렸네 느레기번들 엇다두고 조각조각 마늘등아 저리높이 걸렸는가 첩첩산중 엇다두고
| 관등안의 인구대는 청등하고 황등하고 모기등에 생계등에 둥글둥글 수박드아 저리높이 걸렸는가 채전밭을 엇다두고 애무섭다 호랑등아 저리높이 걸렸는가 - 〈전남 부안지방〉 |
조각조각 마늘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 채전밭은 엇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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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둥실 수박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 묵정밭은 엇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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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룩찔룩 숭어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 소상강瀟湘江은 엇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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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호랑등은 저리나둥실 걸렸는가
| 첩첩산중을 엇다두고
- 〈전북 정읍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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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등잔 옥등잔 샛별같은 요강대양 자개함롱 반닫이는 화초병풍 좌우로 원앙금침 잣벼개를 송금비단 자지이불 앉았으니 님이올까 벼개넘어간 눈물이흘러 청수나 뜨다 평양대동강이 깊다해도
| 등잔불도 가물가물 발치밑에 밀어놓고 좌우로칭칭 늘어놓고 칭칭 둘러치고 발디끼 돋아놓고 덮올디끼 내리펴고 누웠으니 잠이올까 강수가 되었고야 눈의눈물강에도 배가떠나간다 이내 눈물강에도 배가떴다 - 〈전북 부안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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