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녕 하 - ( 시인 ,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제36호 · 2024년 가을호 -권두언
수렵자유지역
사색 할 시간이 없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문명은 사색思索의 결과물이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바쁜 동물은 사색할 시간이 없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의 나라 밖 상황은 사실상 제3차 대전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강대국 간의 신냉전新冷戰 기류가 군사력 충돌로 번지기 시작했고, 국제적 함의를 깨뜨리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에서 국지전이 벌어졌거나 전면전을 앞둔 긴장상태가 일상화 되고 있다.
국내 상황은 좌우 간 이념충돌, 신구세대 간 표리감 분출, 개혁을 빙자한 전통해체, 진영논리에 의한 과격시위, 입법 자해행위 등 사회 기초질서 흔들기에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공동체를 유지해 나갈 규범은 ‘사서삼경’에나 남아있는 과거가 됐다. 그렇다고 전통이 꼭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정통성의 권위를 형성하던 전통과 관습이 현재진행형으로 ‘박물관에서 박제剝製되어가는 중’이다.
이같이 기존 질서가 파괴되어가는 대한민국에서 오늘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절박감은 수렵자유지역狩獵自由地域에로 내몰린 나약한 동물의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됐다.
수렵자유지역狩獵自由地域에서는 무상복지, 인권, 친환경, 자유민주평화 등의 용어用語는 먹이사슬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다.
전통, 정통은 생존의 걸림돌일 뿐이다. 따라서 그 거추장스러운 과거의 보호막을 빨리 벗어던지자! 라는 일부 정치세력의 구호는 “양의 탈을 같이 쓰자” 또는 “공동정범이 되어 부와 권력을 누리자”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마치 24시간 편의점에서 아무 때나 불편 없이, 끊임없이, 욕망을 해갈解渴하기 쉽게 만들고자 하는 고급 술책 중 하나이다. 산별 노조는 십 수 년 간 해방구(소비에트) 역할을 착실히 수행 중이고, 국회 특히 비례대표는 토치카 역할을 자임하며, 지자체는 위장진지로 그 소임이 변질돼 있다. 더욱이 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정치권의 ‘동서갈등’이란 용어는 오히려, 영호남을 대립 구도로 확인하고 새삼 상기시키며 표몰이를 위한 ‘전략적 용어’로 대접받고 있다. 더욱이 공교육 과정에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증오’를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내부교란을 목적으로 삼는 용어’가 되었다. 이는 마치 적진을 초토화하기 직전, 적국 병사들을 위무라도 하는 것처럼, 아군 병사들에게 부르게 한 초楚나라 노래와 그 역할과 목적이 동일하다. 아울러 이 전술은 저비용에 무혈無血 수단이라는 특장特長까지 갖추고 있다.
방관자는 종범이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러케뿐모혓소.(다른事
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이러한 현실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은 초저녁 다운타운의 아스팔트에 뿌려지는 야간업소의 선전지 처지로 추락해 가고, 품격은 금연 권장, 치매예방 프로그램 수준으로 도식화됐다. 이 과정에도 순기능이 일부분 있겠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수렵자유구역이 돼버린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팡질팡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국민들에게, 특정 이념을 완장으로 찬 문화예술인이 테라피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더니 결국은 “문화예술인들이 앞서 이끌어야 한다”며, 본색을 드러내며, ‘문화예술 목적론’까지 등장했다. 이 말은 ‘문화예술인들은 정치와 권력의
앞잡이가 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념을 앞세운 문화예술인들 즉 이념에 몰입된 사이코 패스, 정신병자적 스펙을 오히려 경력(?)으로 삼아 ‘세상과 미래를 재단하고 관리하겠다’는 ‘우생학적 이념에 선택받은 지도자’로 자처하는 그 생각과 판단이 매우 두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생각과 판단을 결정지어 실천할 행정단위와 단체를 다수결로 장악하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사회, 그리하여 달콤한 수입원을 차지하기 위한 자원자自願者가 문전성시를 이루며 ‘재능기부’ 하겠다고 ‘언어유희’에 골똘한 사회, 몰지각에 몰염치가 만연한, ‘부모와 자식이 공범共犯이 되어버린 사회’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인 것이다.
때를 만난 물고기처럼, 바람 불 때 떠오를 쓰레기 풍선처럼, 정치에 종속돼 무상과 복지의 신기루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홍보까지 하는 일부 문화예술인들, 그들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사회단체를 만들어 이끌며, 목적수행을 위한 기괴한 창작(?)에 골몰해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문화예술의 정상부에서 ‘역사전통문화예술’을 지켜내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은 ‘히말라야를 무산소 등정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가능해졌다. 현실 세상, 즉 저지대에서는 불순한 배기가스로 대기가 오염되어 바로 순기능 저하상태가 되고 만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임에도 목표도 분명하고 의욕도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절대 다수이지만 그들은 늘 산소결핍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 상황을 번연히 다 알면서도, ‘가두리양식장’처럼 가두어놓고, 줄 세우고, 자발적으로 들러리 서기까지 하는 문화예술계의 미래상未來像이 많이 두렵다. 방관자는 문명파괴의 종범從犯이다.
자유가 없다
“(길은뚫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자유민주평화라는 용어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무장해제 당한 대한민국. 이 말이 ‘착한 생각’일 것으로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끝까지 믿고 싶다. 그러나 정신적, 사상적 방목상태를 조장한 자칭 민주투사라는 지도자들과 그 대칭 지점에서 민족전통보수란 명분을 내세운 저명하고 무책임한 선각자들.
하긴, 그런 인물들의 족보도 유래가 꽤 깊다. 조선은 차치하고, 구한말, 대한제국에 이르러 을사오적은 어떠했고, 일진회는 또 어떠했는가. 총 한 방 안 쏘고 나라를 늑탈당하면서도 재물과 가문은 결단코 챙긴 양반, 친일파, 역적 놈들이 판을 치던 나라, 6.25 남침은 또 어떠한가. 지랄 염병을 떨다 못해 동족 가슴에 총질을 해대고서도 민족 지도자? 넓게 보면, 네 일가친척들을 철사 줄로 꽁꽁 묶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도 민족의 영웅? 삶은 돼지대가리가 웃다가 오줌사태 나겠다.
그래 봤자 니들도 별 수 없지. 수렵자유지역에선 너네 자손들도 공평하게(?), 똑같이(?), 비무장 상태(!)로,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아봤자 들판에 내던져진 미성숙한 짐승 새끼의 생존확률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인생살이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이, 오직 생존을 위한 투쟁 장소가 돼버리면, ‘자유민주평화’는 개[犬] 발바닥에 편자, 돼지[豚] 발목에 진주목걸이 격[格]이 되고, 공염불이 된다.
수렵자유지역에서 동물은 오직 살기위해 행동한다. 자연自然에서, 약한 동물은 있어도 착한 동물은 애초에 없다. 모든 동물은 반복적으로 닥쳐오는 주변의 위협에 대처하느라, 발악하거나 공격성향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숨을 곳 하나 없는 평면적 공간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만 하는 ‘세렝게티’로 변해버린 대한민국. 잔대가리 술수가 우열을 다투는 2024년 서울은 현재, 문명사회의 쓰레기 즉 ‘입법정치경제노동법률이즘’이 정반합正反合으로 몬스터를 생산해내는 카오스 사회가 됐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침체 운운云云은 수렵자유구역이 돼버린 것도 모르는, 얼빠진 샌님들의 푸념에 불과하다.
이상李箱의 이름으로, 28년간 이 세상을 살다 간 김해경金海卿(1910.9.23~1937.4.17)이,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1934년 7월 24일, 객혈喀血하듯 내뱉은 말. 〈오감도烏瞰圖〉를 새삼 회상한다.
아울러 그 시대, 암흑기의 한 복판에서, 목숨을 내던진 13인의 ‘의열단義烈團’이 아나키스트로 분류된 것처럼, 2024년 문명 암흑기暗黑期를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 세상을 조롱하며, 자연의 산물 세렝게티는 동물들에게 ‘수렵자유지역’이 결코 아닌 ‘살생허용지역’임을 밝히면서.
〈《한강문학》(3호,2015,여름호,권두언)再校閱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