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시는 내게 있어 사랑이다
맹하린 (시인)
아칫아칫 둘러 앉아 딱지 치며 노는 색종이들 위로
조명의 빛살 앙증맞게 끼어들고
만국기 팔랑팔랑 박수치는 순간
행사는 시작 된다
한인 유치원 재롱잔치
침잠의 느긋한 자세와 산뜻하고 환한 기대에 손 내밀듯
커튼 젖히며 이웃가게 유빈이가
첫 번째 출연의 유빈이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세 나라 말도 벅찬데 재롱까지 잔치를 삼는구나. 엄마는 정말 와 있을까?)
눈 비비는 새싹의 응석으로 까무룩이 감기려는 유빈이의 시선
찰나 되어 천정을 쏜다
씰룩 샐룩 비어져 나오려는 불만과 외로움의 멍울들
연기처럼 떠오르는가 하면 흩어지고 유빈이의 걸음 아슬아슬 휘청인다
겉으로야 버젓이 거들먹대는 것처럼 보여 포복절도하는 관중의 열광
폭죽 되어 당장 허공으로 치솟을 기세
나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지고 있다
불현듯 ‘글래디에이터’의 4번째 트랙에서 울려 퍼지던 한스 짐머의 사운드
트랙
출렁이는 환청으로 하염없이 밀려오고 있다.
그때였다, 유빈이의 무대가 아드 리비툼* 그 자체가 된 건
세상을 당기듯 사람들의 시선 모조리 잡아 끈 건
유목민 자처했을 때부터 그랬을까
나는 번번이 유빈이의 걸음처럼 걸으며
모르는 사이 휘청이거나
설렘과 토닥임의 체온 지닌 채
흡사 거들먹대는 수준이었을 터
세상이라는 둥근 테두리 안에 저절로 휘말리던 하루하루
마구 뒤섞이고 부딪치며 날로 북적이는 날들의 회전
간절토록 손길 닿게 되던 수많은 관념들
가까운 오늘과 가까운 내일은 언제나 가까워져
나는 오늘도 유목민 답습하며
광활하면서도 섬세한 세상 쏠리듯 걷게 된다
유빈이의 등장처럼
유빈이의 걸음으로
*아드 리비툼 : 애드리브
- 졸시,「 유빈이의 걸음으로」전문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본적에 관한 질의응답을 기쁨처럼 주고받았다.
나의 본적은 물론 소설이었다. 소설 중에서도 단편소설.
그러던 내가 시에게 전입신고를 한 건 말을 좀 더 줄이고 싶은 의도 같은
게 있었고, 시심이 나의 팔짱을 끼며 살갑게 말을 걸더니 우리 사귀자고 폭
탄선언을 안기고 부터였다. 그렇게 만난 사이라서 나는 시에게 말을 터놓
게도 되는 모양이다. 내게 산문은 종교다. 시는 내게 있어 사랑이다.
땅만 넓었지 시골구석처럼 정나미가 만발하였어도 서로 밀집을 선호한
나머지 아르헨티나 한인사회는 꽤나 비좁다. 인구 2만의 교민사회 전체가
동일한 뒤주이고 한 솥이고 도란도란 같은 식탁일 수밖에 없다. 800여 의
류도매상을 축으로 고리처럼 연결된 숙명적 관계를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문학을 가까이 하기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은 하다고 자부하는 반면 척박한
환경일 확률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 결코 부정하지 않겠다.
가게가 한인타운에 위치해 있다 보니 다양한 계층의 고객은 차치하고라
도, 약속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조차 모르는 것만 같은, 약속 같은 건
귀족들이나 하는 걸로만 착각하고 그냥이 더 정겹다고 단정하는 동족들 불
쑥불쑥 나인지 내 영역인지에 찾아 들어 내 감성이라는 감성은 잦은 몸살
을 앓게 된다. 어쩌겠는가, 그들이 외롭다는데. 안부와 그리움에 목말라 있
는데. 의논이라는 꼬투리 거짓처럼 잽싸게 꺾어 들고 수시로 찾아오는데.
나는 과연 속물인가. 고객들은 전혀 귀찮지가 않다. 많을수록 감사한 마
음까지 솟구친다. 하지만 나의 불청객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어떤 일요일
은 열여덟 명이 다녀 간 적이 있고, 가까운 곳에 산다는 기치 머리에 꽃처
럼 꽂은 채 나타나는 어느 여인의 행보는 하루에 한 번은 습관이고 세 번에
서 다섯 번까지는 자아도취이자 카타르시스에 버금간다. 마치 어떤 중대한
답안이 나를 방문하기만 하면 결정적이고 명쾌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기
라도 한 것처럼.
내 분노의 뇌관은 항시 빗물에 젖어 있는 데다, 워낙 견고하게 잠겨 있어
점화를 시도하기에는 지난한 일인지라 가끔은 잊지 않고 조심과 자제를 요
청하는 부탁만을 건네고 건넸었다. 그런데 내게 알맞은 입지조건보다 본인
들의 취향만이 현실적인 입장으로 굳혀져 있다. 허밍이지만 노래까지 잊고
지낼 수는 없어 나는 누가 들을세라 틈틈이 흥얼거린다.
(외롭고 싶어라. 혼자이고 싶어라. 그런데 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꼭
할 말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만 같은데)
가장 질릴 수밖에 없는 일은, 저녁모임이 한인타운에서 있는 날이면 나
를 만나려는 계획에 일찍부터 서두르게 된다면서 파격적이게도 두 시간 또
는 다섯 시간까지도 앞당겨 달려오는 참 무궁무진 샘솟는 무지몰각. 그럴
때의 나는 흡사 대한민국 같다.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속속 환향하는 이민자
들 모두 받아줘야 하는 우리나라. 혹은 한 아름도 더 되는 커다란 나무의
몸통.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알음알음한 여인들이 커다랗게 살아
숨쉬는 아름드리나무의 몸에 어깨를 의지하거나 손으로 두들기거나 두 팔
로 껴안으며 나무의 초록 무성한 기를 얻겠다고 벌이는 굿거리장단도 못
되는 낯선 행태를 자주 보게 된다. 나는 바로 그러한 나무는 아닐는지.
가끔은 신문에 낼 광고문을 써 달라, 주일학교 자모회에서 발표할 인사
말을 작성해 주기 바란다, 그런 간청까지 앞장세워 찾아온다. 이런 일 모두
내가 인맥, 학맥, 지맥만 따지는 모국의 사회적 연고관계에 관하여 떫고 껄
끄러운 편견을 지녀왔던 데서 생긴 대가라고나 자족한다면 맞춤할 일이기
는 하다. 차라리 한국과 같은 연고관계가 그나마 낫지 않을까, 아쉽도록 긍
정하며 연거푸 되짚어 보던 수많은 고뇌의 밤들.
그럭저럭 문학에게 다가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서도 나는 글
을 붙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글 속으로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리하여 글에
게 나를 바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는 선한 편이지만 바보는 아니다. 얼굴 잔뜩 허물어
웃어대며 그들이 섭섭해 하지 않도록 회유시켜 선선히 돌아가게 만들 때도
더러는 있는 것. 아무리 그렇단 들 그들은 내 마음을 훔치지는 못했으리.
한 조각도 꺼내거나 떼어 가지는 못했으리.
어쩌면 그들은 이방인을 대신해서 우울함에 물들고 이방인을 표방하며
무지하게 굴고 이방인을 대신하느라 방황에 넋 빠져 있는 지도 모른다. 이
러저러한 나의 참을성으로 인하여 내 문학 쪽에서 되레 절망을 껴안은 적
여러 번 있었을 것도 같다.
결국 나는 사람이라는 나무, 사람이라는 강, 사람이라는 자연에 대해서
시로써 표출하려는 경향을 섞박지 담그며 자꾸만 맛보듯 간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안 보이는 뜻이 내게로 내려앉았는지도 모르겠고. 각각 내
용이 다른 그 여러 나무들의 생동감 넘치는 활기. 산재해 있는 무언의 흔
적. 세월을 반죽하는 선량한 미소. 결과적으로 나는 시심과의 조우를 새벽
녘이나 되어야 표류하듯 맞기에 이른다.
그때 비로소 내 이성이라는 이성은 아픈 감성이 못내 가엾어 절절 챙기
게도 된다. 이윽고 마음 시리다 못해 벅차오르는 여명의 빛다발. 일과처럼
써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오래 묵은 고질병만 아니라면 기꺼이 그들과
어깨동무까지도 해내며 놀아 줄 수도 있을 텐데. 어쨌거나 잘 참았다고, 그
게 바로 자연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고통 없이 어찌 시를 좋아할 수 있겠는
가고 스스로의 머리 여러 번 쓰다듬어 주는 일까지도 생겨나는 것을. 나는
아직 긴 머리다. 염색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흰머리는 어쩌다 뽑는다.
나는 머리카락을 문학과 수신할 수 있는 필연적 존재의 안테나라고까지 확
신하기를 즐긴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 번도 죽음에 유혹되거나 원한을 가까이 하지도 않아
왔다. 결코 자만이 아니다. 그건 어떤 면으로는 한 번도 문학 이외의 그 무
엇에 눈부시도록 뇌쇄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나에게 나를 맞추며 나 스스로에게조차 자유로웠다고 자긍한다.
오래도록 그래 왔지만 이제 와서 특별히 닿으려는 카테고리는, 내 시심의
삐걱대는 문 기꺼이 밀며 사랑이나 절망이 적당히 스며든 시어 즐겨 풀어
나가기를 바라는 것. 현실의 무게를 결코 버거워 하지는 않겠다는 것.
내 시는 언제나 시냇물과 같이 작고 여일한 흐름으로 흘러 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압축을 간절히 소원하면서 압축에 근접하지도 못하고 시를
써낸 셈이다. 이후에는 일단 압축을 받아들이겠다. 압축하고 남는 게 아니
라 압축하기도 전에 표면보다 내면을 건지다가 전체가 집약되듯 아낌없이
버릴 것 버리는 일 모색하겠다.
시와 친하게 지내는 길은 내가 지인들에게 들볶이듯 달달 볶는 일이 아
니라는 사실도 각오처럼 마음 어딘가에 걸어 둘 작정이다. 어설픈 결정이
나마 우선 접수해 놓고 앞의 시, 그렇게 썼고, 이 詩, 이렇게 썼다.
― 오빠는 모가지 꼭 내게 주었어. 그래야 노래를 잘 한다면서.
닭고기 먹을 때면 일렁이는 그리움 아끼듯 꺼내며
목청 노글노글 가라앉히던 고모
비방 전수하듯 유언 전달하듯 그리도 읊어 대었다
닭고기 먹게 되는 날
고모를 기억하며
아버지 추억하며
닭의 모가지 꿀꺽 통증처럼 목안으로 넘긴다
때로는 목 중간 쯤 걸리려다 마는 정체성
간혹 싸해지는 혈맥상통
가족과의 그럴 듯한 시절 온통 생략한 채
아버지 멈칫멈칫 다른 세상 향해 떠났다 해도
유언 높이 받들 듯 비방 익히 듯
굳이 닭의 모가지 챙기고 삼킨다
영원토록 챙기며 삼키고 싶어져
갈수록 굳혀지는 싹싹한 각오
추모의 알뜰함으로 고모와 아버지 섬기게 되기를
갈망하는 일이 나의 포부이자 방식
비록 닭고기 앞에 두고라도 누구를 기억한다는 건
너볏한 공경의 한 자락
숙일 때의 다소곳함 수많은 날들에 실리어
애틋하고 소박했어도
쳐들 때마다 쌀쌀함의 극치를 이뤘던 건 아닌지
목인지 모가지 인지 여러 번
쓰다듬어 보고 당겨도 보는데
노래는 노래여도 다투며 진화된 이미지 몇 다발
고모에게서 내게로 전이되다가 문득 돌연변이 화한
모종의 상념 내게로 다가와 환히 밝다
차마 내딛지 못한 유예의 리듬 체온으로 토닥이면
가벼이 나르던 세월 곡선으로 뒤척인다.
유언 높이 받들 듯
비방 전수 받듯
외로움 부침시키며
목정강이 새삼 숙여지게 된다
언어의 형체 외롭도록 조율하며
고개 자꾸만 숙여지고 있다
- 졸시,「 유언높이받들듯」전문
맹하린 시인
*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1996년《자유문학》으로 등단.
2006년『펜 문학』해외동포창작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 시집으로『내가 나에게 길 내어주다』가 있음.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 재 아르헨티나 문인협회장.
전 남미 크리스찬 칼럼니스트.
* maenghaly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