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 1장 1-4 젊은 날의 다윗
1 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
2 제 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4 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지난시간까지 우리가 사무엘 상서를 정리하고 이어서 사무엘 하서를 말씀 드리는데 본래는 이 두 책이 사무엘상서 사무엘하서가 연결 되어서 한 책으로 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 분량이 크죠.
사무엘 상, 하서 한데 연결 돼있다면 굉장히 분량이 많기 때문에 처음으로 이 사무엘서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는 BC 3세기경에 헬라어로 이 구약성경을 번역할 때 70인 역이라는 그 번역이 처음 이뤄진 번역인데 그때 나누었습니다.
그 나누어가지고 사무엘 1서 사무엘상서 이렇게 하지 않고 왕국기 1서 바실레이온 알파.
이렇게 이제 왕국기 1서 왕국기 2서 또 열왕기상서 열왕기하서도 원래 한데 붙은 책인데 그걸 또 나누어 가지고 왕국기 3서 왕국기 4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 히브리 성경에 한테 붙어있는 거대로 하지 않고 외국어로 번역할 때 사무엘 상, 하서 나눈 것을 왕국기 1서, 2서 하지 않고 사무엘상서 사무엘하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 사무엘상서에 31장에 있었던 그 일의 연장선상에서 사무엘하서로 넘어가도록 돼있다는 거죠.
근데 그때가 굉장히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때이지만 특히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그런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태가 아주 급변하고 또 급진적으로 진행되는 아주 급박한 이 상황이 아주 복잡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그런 상황 하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해야만 원만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이렇게 봅니다.
우리가 보통 지금까지 기독교가 성경을 볼때 건전하게 본다는 분들이 어떻게 보신 분들이 어떻게 건전하게 본다고 했냐하면 성경 66권 전체를 단지 그저 구원받는 문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서 구원받는 문제 그거 한 가지만 가지고 씨름 하는 사람들을 건전한 기독교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런 사람들을 이른바 복음주의라 그럽니다.
여러분 이 복음주의란 말은 우리 한국이나 미국에서 매우 건전한 기독교라고 인식이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볼때 성경은 오직 구원받는 데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성경을 그런 복음주의라는데 매이지 않고 성경 이 자체를 그대로 읽어 보면 구원받는 문제 하나만 가지고 말한 책이 아닙니다.
이걸 인식을 잘 못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살펴본 대로는 성경도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분야가 거의 총체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뭐 역시 구원받는 문제는 우리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죠.
근데 그거 한 가지만 있는 책이 아니라는 거예요.
가령 예를 들어서 여기는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
정치 문제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경제.
경제 문제도 성격적 경제가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외교.
안보. 문화. 종교. 교육. 환경. 위생, 역사. 미래.
내세에 까지 하면 최소한도 열 두가지 이상의 이 소중한 자료가 있다는 거예요.
이 성경 안에.
이런 것을 그 원만하게 봐서 성경적인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지도하지 못하고 맨날 천날 그저 구원 받는 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복 받는 거.
아니면 또 은사 받고 능력 받는 거.
거기서 한계라 그게.
그래서 그렇게만 하면 건전한 목사로 생각을 하고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정치, 사회, 외교, 안보, 문화, 종교, 교육, 환경, 위생, 역사, 미래, 내세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이야기하면요 왜 구원만 이야기 해야지 엉뚱한 소리 하는가?
하고 이제 뜨악하게 그렇게 수용을 잘 못해요.
제가 우리교회에서는 그런대로 신뢰를 받는 그런 입장인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딴데 가서 이야기하면 못알아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저런 말을 하는가?
왜 음식을 가지고 시비를 하나?
이렇게 아주 못알아 들어요.
그래가 제가 다녀온 후로도 말이 많아 또.
그래서 오라는 곳은 많지만 갈 곳이 별로 없어요.
가서 오라 하는데 가서 말을 하고 나면 못알아 듣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가 구원이라는 것 안에 구원이라는 한 주제 안에 너무 편협하게 좁아져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 이제 성경을 요절 구원받는 요절 그런 거 보지 말고 있는 전체를 볼 때 상당히 정치적이고 상당히 경제적이고 상당히 외교 안보 문화 종교 교육 환경 위생 역사 미래 내세까지 나오는 책이라는 말 이예요. 이게.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가져와도 성경은 우리가 답을 줄 정도의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단지 구원 받는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예요. 이게.
여기 지금 이제 사무엘상서 하서를 가면서 상당히 지금 정치적인 얘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 세계는 왕정시대 였어요. 왕장시대.
혹은 아니 신정시대.
신정시대에서 지금 왕정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신정시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세상을 다스린다 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 인식이 인지가 낮으니까 그 깨닫는 것이나 생각하는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린다 하는걸 도무지 수용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신정시대가 약 400년 정도 지나갔는데 모세부터 사무엘까지가 신정시댄데 한 400년 정도 지나갔는데 뒤죽박죽이 돼버렸어요.
여러분 그 사건이 뭐냐 하면 사사기를 보면 그렇잖아요?
종교 암흑시대가 된거야.
인간 하나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시원찮아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 사실을 국민들이 백성들이 인식을 못하니까 하나님도 조그마한 나라 이스라엘 나라 그 하나를 건사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안 통하니까.
그 통하려면 그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잘 전해 가지고 하나님 뜻이 잘 소통 돼야 되는데 이게 안 되니까 그 사사시대에 360년 약 400년이 종교 암흑시대로 전락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왕정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여러분 왕정시대 제일 초대 왕이 사울 왕이란 말 이예요.
그 사울 왕 형편없는 정치를 하다가 더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거든요?
근데 그 사울 왕이 갈수록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나중에 정치적 야망과 욕망과 욕구가 지나치다 보니까 사람이 변질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 겸손하게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총아래 있었어요.
근데 이 사람이 자기 아들이 자기 대를 이어서 왕노릇 해야 된다.
하는 욕망이 이 마음속에 들어오니까 사람이 순수성을 잃어 버려요.
사람이 왜 타락 하냐면 딱 욕심 때문에 그러거든요?
욕심과 야망과 욕구가 이 통제가 안 되면 그게 절제가 안 되면요 반드시 타락 합니다.
젊은 날에 꽤 정의롭던 사람이라도 그 욕심과 욕망과 욕구가 지나쳐 가지고 이것이 절제가 안 되면요 반드시 타락하고 반드시 부페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울이거든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해 가지고 예언을 할 정도로 하던 그런 사람인데 그 욕망과 욕구와 야망과 이런 것들이 지나쳐가지고 이 절제가 안 되니까.
양심을 가지고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니까 타락한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이제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 말기수아 이 세 사람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리고 사태가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정권이 바뀌어야 될 입장이거든요.
사울 왕가가 이렇게 갑자기 몰락했기 때문에 그 다음 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될 어떤 그런 전환기인데 그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매우 불안정할 때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걸 이제 우리가 본다는 겁니다. 지금.
다윗이라는 사람이 그럴 때 어떻게 처신 하는가.
이런 거 보면 이제 우리가 정치적으로 안목이 길러지고 분별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또 우리도 어떤 식으로 처신해야 되는가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어요.
일단 잠간만 돌아보면 그때 블레셋 그 나라가 결심하고 이제 작심하고 사울 왕의 군사를 치기로 마음을 먹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때 그 이스라엘의 왕 사울 왕과 블레셋은 그 두 나라가 지금 전쟁의 초긴장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단 말 이예요.
근데 그때 다윗도 처음에는 그 블레셋 편에 서가지고 가드왕 아기스에게 편에 서가지고 전쟁터에 중간에 나가다가 돌아 왔잖아요.
그 전쟁에 나간 줄 알고 아말렉이라는 사람들이 딱 벼르고 있다가 다윗도 시글락에 머무르던 다윗도 블레셋 군대에 합류해 가지고 사울 왕과 전쟁터에 나간 걸로 착각하고 그 아말렉이 쳐들어 왔었거든요. 시글락을.
다윗은 중간에서 이제 그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이 절대 우리와 같이 못간다 해가지고 다윗이 거기서 이제 소외 돼가지고 돌아 왔잖아요.
오니까 그 아말렉이 고새 틈을 타가지고 와서 아주 야비하게 기습해 가지고 다윗이 통치하던 그 시글락 사람들 다 잡아가 버리고 다윗의 아내 다윗의 자식들까지 몽땅 다 잡아 가버린 거라.
그때 다윗이 까딱하면 맞아 죽을 뻔 했죠.
자기 졸개들이 다윗을 보고 당신이 처신을 잘못해 가지고 우리 처자식 다 죽었다 해가지고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어떻든 그 위기를 모면하고 그때 다윗이 그 아말렉을 추적해 가지고 빼앗겼던 모든 제물들 가족 가솔들 다 되찾아 이제 돌아 왔습니다.
돌아와서 이제 시글락에 다시 돌아와 가지고 이틀을 유하고 제 삼일째 되던 날에 한 사람이 헐레벌떡 찾아 온 거예요.
그래서 너 누구냐 했더니 아말렉 사람이라는 거야.
아말렉 사람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제가 그 사울의 진에서 도망쳐 왔다는 거야.
사울의 진에서?
그러니까 이 아말렉 사람인데 사울의 진에서 도망을 쳐왔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뭔가 좀 수상하잖아요.
그래서 일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군사들 다 많이 죽었고 도망가기도 했고 사울 왕도 죽었고 그 아들 요나단도 다 죽었습니다.
그런 보고를 한 거죠.
그래서 5절에 보면요.
5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너 아말렉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보니
우연이라고 번역 됐는데 제가 늘 하는 얘기죠.
우연 이라는 말 저는 잘 안 믿는다고.
그래 이게 그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요 이 카라라는 그런 말인데 우연히라고 번역 할 것이 아니라 뜻밖에 라는 뜻입니다.
이 카라라는 게. 어떻든
길보아산에 올라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어때요.
참말 같아요 거짓말 같아요.
이거 거짓말이거든요?
이리 된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사무엘 상서를 안 읽었으면요 모르지만 우리가 사무엘 상서를 끝을 읽었잖아요.
그렇게 죽은 거 아니잖아.
그런데 이 자식이 사울을 사울 왕을 죽이고 그 면류관하고 팔의 고리를 가져왔다 하면 다윗이 무슨 화랑 무공 훈장 같은 거 줄줄 알고 이렇게 이제 거짓말을 한 거야.
영, 보니까 그 사람이 다윗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실은 다윗은 몰랐어요.
사울 왕이 어떻게 죽은지 모르는 거야. 지금.
모르고 있는데 얘가 와서 자기가 죽였다고 하니까 사울 왕을.
그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겠어.
그래서 옷을 찢으며 함께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14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소년 중 하나 이 소년이 누군가 하는 이름은 안 나와 있는데 짐작하기로는 브나야 라는 사람 같아요.
나중에 까지 가서 보면 브나야는 프로입니다. 프로.
이런 거 해 치우는데 프로야.
나중에 다윗이 자기 머리를 지키는 자 중에 다시 말해 경호 실장처럼 두는 사람이고 아주 충직한 그런 사람입니다.
브나야에게 이르메 죽었습니다.
상 받을 줄 알고 거짓말을 해가지고 자기가 사울 왕을 죽이도 안 해 놓고 말이야 거짓말 해가지고 죽은 거야.
16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자 그 이런 일은 뭐 이거는 간신배도 아니고 이거는 그거 뭐 거짓말 해가지고 상을 받으려고 한 거라.
근데 그거 단 칼에 그냥 죽었습니다.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지금 19절부터 27절까지 나오는 이 다윗의 노래는 아주 슬픈 노래인데 재목은 활 노래입니다.
무슨 활을 노래하느냐고 하면 사울이 이 그렇지만 요나단과 사울 둘 다 참 활을 아주 잘 쏘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잘 쏘던 활이 결국은 버린바 되었다.
그 자기 주 무기였던 활이 사울의손에서 요나단 손에서 떨어지게 됐고 결국 죽게 됐다 하는 그 슬픈 노래를 그 다윗이 작곡하고 작사 해가지고 그 사울 왕의 죽음을 유다지파에게 그 애도하도록 조가를 지어서 가르쳤다는 거예요.
정치적으로 하면 지금 대치국면이거든요.
그 사울 왕가하고 다윗 집안 하고는 지금 정치적으로는 원수처럼 돼 있잖아요.
그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수많은 사람을 풀어서 십 몇 년간 집요하게 추적하던 정적에 해당하는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죽었는데 다윗이 이를 두고 슬퍼하면서 자기지파 유다지파에게 그 사울왕의 죽음과 요나단의 죽음을 같이 슬퍼하자 하면서 조가를 지었다는 거예요.
그래 그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야살의 책에 있는 그 노래를 인용해 가지고 19절 이하.
19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자 이런 애절한 그런 슬픈 노래를 지어서 자기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마치 적대적인 그런 사울왕가의 몰락을 슬퍼하도록 다윗이 노래를 지어서 가르쳤다는 거죠.
이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 다윗이 뭐 정치적으로 아주 성숙하거나 이런 사람이 아니고 아직 젊은 나이에 그래.
이때 다윗의 나이가 한 30살 쯤 됐겠나.
그 정도거든요?
한 30살 안 밖 그런 정도의 벌써 정치적으로 이 정도 안목을 갖고 있었어.
여러분 정치라는 건 모양이거든. 모양.
그런 모양이 있어야 되는데 이런 수준 이란 것은 제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정도의 넓은 가슴을 본 적이 없다는 거야.
그 후에 이제 다윗이 여호와께 묻습니다.
여러분 기도 한다 하는 의미라는 것은 대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도는 뭐든지 빌고, 빌고, 빌고 그 빌 기자 길 도자를 쓰거든요?
빌고, 빌고, 또 빌고.
또 빌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 뭐 다고, 다고 이게 기도로 알고 있는데 그 히브리 인들의 성경적인 기도의 기본 개념은 여쭈어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여쭈어 보는 거예요.
그게 기본이야.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시킬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설득 당할 분도 아니 예요.
우리가 무슨 옳은 의가 있어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겠어요.
졸라 대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설득하려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쭈어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는 거예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항상 내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 하는 시간을 들여서 내 욕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이 내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수가 항상 많으니까.
여러분 예수님이나 바울이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세 번씩이나 기도 한적이 있었다는 거야.
그 세 번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 세 번 기도 했는데 응답이 안 됐습니다.
또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는 자기 몸에서 사단의 가시 어떤 질병이 떠나가게 위해서 세 번
기도 했더니 역시 응답이 안 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기도의 대부분 내용 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해서 여쭈어 보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욕심이 자꾸 이렇게 들고 일어나기 때문에 이걸 억제하고 이걸 내려놓는 게 기도라는 거예요.
그게 참 어려워요.
그거만 이 욕심 하나만 좀 내려 놔 버리면요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범사에.
이게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이 욕심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거야, 그래서
2장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여러분 이 영어에 보면요 요구한다 하는 말하고 묻는다 하는 말이 같아요.
ask라고 돼있어요. 그렇죠?
그 묻는다 하는 말하고 요구 한다는 말이 같은데 그 뜻을 구하는 거거든. 사실.
그 구하라 주실 것이요 하는 것도 ask 라 되어 있어. ask.
묻다, 요구하다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훨씬 묻는 다는 말이 훨씬 더 기도에 가까운 말이야.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나를 설득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내가 문제가 뭐냐면 내 욕심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걸 내려놓는 게 바로 기도라.
이거를 꼭 내려 놔야 됩니까?
하는 거죠.
그 대답은 뭐 늘 한결 같죠.
내려 놔야 된다.
간단하잖아요.
그 욕심을 내려 놔 버리면요 그렇게 씨름 할 게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욕심이 잉태 해가지고 죄를 낳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비우고 그 욕심을 내려 놓는 거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
이제 사울 왕이 죽었고 요나단도 죽었고 말기수아 아비나답까지 다 죽었는데 지금까지 그 유대나라하고 블레셋 접경지역이였던 시글락 이라 하는 곳에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유다 한 성읍으로는 유다지파까지는 자기가 소속된 유다지파 까지는 돌아 갈 수 있겠는지를 여쭈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올라가라 그랬어요.
다윗이 어디로 가리이까?
했더니 어디는 어디야 헤브론으로 가야지.
그 헤브론은 유다지파의 수도입니다.
우리 경상남도의 수도는 창원이죠.
그런 거처럼 유다지파의 수도가 헤브론이예요.
헤브론은 해발 약 한 900정도 높은 고지입니다.
저도 성지를 여러 차례 갔어도 헤브론을 잘 못갔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이제 헤브론을 다녀 왔어요.
거기가 막벨라 굴이 있었던 곳이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 헤브론을 고향처럼 제 2의 고향처럼 여겼던 그곳인데 그 아랍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걸핏하면 잘 못가고 그만 성지순례 갔다가도 그만 취고 되고 늘 그랬는데 이번에 그런대로 분위가 괜찮은 분위기여서 헤브론을 다녀왔습니다.
헤브론으로 가라. 그래서.
2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 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막 반 어거지로 강제로 와가지고 그냥 너무 성급하게 유다지파 사람들이 그냥.
그러니까 그 당시에 사실은 온 나라 사람들이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사울 왕이 죽었는데 요나단이라도 살아 있으면 요나단이 뭐 그 뒤를 이어서 왕이 된다든지 아니면 아비나답이나 말기수아라도 살아 있으면 사울 왕가가 지속 되겠는데 그 뭐 어떻든 사울 왕의 아들 중에 이스보셋이라고 하는 그 허약한 사람 하나만 있고 나머지 다 죽었으니까 이제는 뭐 그 다윗이 당당하게 치고 들어가서 정권을 잡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죠 국민들도.
근데 그 의식이 유다지파는 좀 더 강한 거라.
유다지파에서는 당연한 걸로 뭐 와서 막 억지로 다윗에게 기름 부어서 왕을 삼아 버렸습니다. 그때,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지난번에 우리가 그 사무엘 살서 끝에 봤잖아요?
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새도록 달려가서 그 사울 목의 목이 없는 시체가 블레셋 벳산 성벽에 달려 있었는데 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달려가서 목도 없이 달려 있는 그 시체를 수습 해다가 하여튼 이번에 그 벳산도 가봤고 길르앗 야베스도 봤는데 그 거리가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지금처럼 뭐 길이 잘 닦아 있는 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거기까지 가서 그 왕과 왕자들의 그러니까 4구의 시체죠.
사울왕의 시체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네 명의 시체를 수습 해다가 그걸 길르앗 야베스까지 가져와서 화장을 해가지고 그리고 이제 장사 지내고 7일을 금식을 하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 그 소식을 이제 다윗에게 누가 전해 온 거라.
그러면 그게 왜 그게 중요하냐면 사람들이 사울 왕의 실정을 사울 왕이 정치를 잘못 했다는 뭐 대게 다 국민들이 인식을 하는 때거든요?
그래서 온 국민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다윗이 이제 정권을 휘어잡으려고 하지 않겠나 하는 시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다윗이 유다지파의 한 지파의 왕으로 이렇게 기름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요단강 동편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그러니까 길르앗 야베스하면 요단강 동편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 그 두지파 반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요단강 동편 한 블럭이 여전히 사울 왕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시신을 수습해 장사 지내 줬답니다.
이런 얘기를 한 거죠.
그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다윗이 만약 보통 사람 같으면 뭬야?
길르앗 야베스 어디 두고 보자.
너희는 국물도 없다.
이런 식으로 그냥 할 거야.
그리 않겠어요?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하느냐. 5절.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냥 내가 왕이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다족속이 그냥 열심히 지나쳐 가지고 강제로 내게 기름을 부어서 내게 왕을 삼은 거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런 겸허한 자세로 그 요단강 동편 사람들에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 다윗의 행보나 그 자세가 어떠한 자세인지 아시겠죠.
정치적으로 야망을 부린다든지 그런 모습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사태가 아주 그 복잡하고 급변하고 급박하게 돌아갈 때라도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하나님의 뜻을 쫒아서만 행보하는 그런 자세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지 않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걸 배워야 된다는 거죠.
사울이 죽었다고 해서 덜컹 자기가 뭐 이제는 나 외에 누가 왕이 될 수 있으리요.
하고 가서 누구처럼 옆구리에 권총 들이대고 그리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런 게 우리가 다윗에게 배울 만한 참 좋은 덕목이죠.
하나님의 뜻이면 그렇게 조급하게 서둘지 않아도 왕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인간의 수단 방법을 부려서 됐어도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절대 조급하지 않는 하나님의뜻을 쫒아서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내딛는 그런 다윗의 성향과 성품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자 그때 8절은 이제,
8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요 7절과 8절 사이는요 안보입니다.
나중에 이제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다윗이 유다 한 지파의 대표로만 한 5년을 지나 간 거예요. 5년을.
그러면 이제 그때 나머지 이 아브넬이나 사울 왕가나 이스라엘 전체는 뭐라고 생각 하냐면요?
아니 다윗이 자기가 뭐 정치를 안 하려면 말고 하려면 지금이라도 나타나서 무슨 왕을 하든지 해야지 왜 저리 미온적으로 미적으로 미적거리고 있나 저거.
이렇게 기다리기를 5년씩이나 기다려 줬어요.
5년씩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 유다지파 도지사 수준에서 그냥 만족하고 더 이상 정치적 과욕을 부리지 않고 너무 오래 끄니까 아브넬이 볼 때 답답하다는 거야.
아브넬은 사울 왕의 사촌이거든요.
사촌이면서 그 군대장관 이였는데 그 사람이 할 수 5년을 기다려 보고는 기다리다 못해서 왕자 하나 남아 있잖아.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길르앗 하는 거 요단강 동편 사람들.
그리고 베냐민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 하면 이스라엘 그러니까 유다지파 한 지파 외에는 나머지 전체를 아우르는 그런 왕으로 등극을 시킨 겁니다.
5년이나 기다리다가 이제 다윗이 가만히 있으니까.
10절에,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세며 두해 동안 위에 있으니라
그러면 이제 그 두해 하고 여태까지 기다린 5년하고 하면 7년이죠. 7년.
다윗이 유다 한 지파의 왕으로 있은지가 7년 6개월이라고 돼있거든.
나중에 보면.
그러면 여기 2년 있었으니까 지금 앞으로 6개월 쯤 더 간다하면 그 뒤에 보세요. 11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
그렇죠.
일곱 해 여섯 달이고 지금 그 사울의 아들 이스버셋 왕이 된 거는 두해동안 밖에 없었단 말이야.
그리하면 그들이 얼마나 기다렸냐?
5년 이상 기다렸다는 겁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그냥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려 주기를 기다렸는데 다윗이 욕심을 안 부리고 가만히 있으니까 결국 할 수 없이 기다리다 못해 가지고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 했다는 얘기거든요?
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서 기브온에 이르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서 기브온 못가에서 저희를 만나 앉으니 이는 못 이편이요 저는 못 저편이라
그래서 이제 이 양편 군대 사울 왕의 아들 그 이스보셋 휘하에 아브넬 군대와 다윗 휘하에 요압이 거느리는 군대가 기브온 못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이제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랬더니,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군대 장관이죠?
아브넬이 연세가 많은데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요압이 가로되 일어나게 하자
이게 점잖케 번역해서 그렇지 한판 붙자는 겁니다. 지금요.
하매
15 저희가 일어나 그 수효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 둘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 둘이라
그래서 처음 에는요.
이쪽에서 장수 열 둘 너희 쪽에서도 장수 열 둘.
열 둘 씩만 내어 가지고 싸워서 승부를 가려 끝장내자.
괜히 아이들 싸우게 해자기조 전 병사가 다치게 할 게 뭐냐?
이렇게 해가지고 간단하게 승부를 가려서 결말을 짓자.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16 각기 적수의 머리를 잡고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헬갓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그 날에 싸움이 맹렬했습니다.
그 헬갓핫수림이라는 말은요 날카로운 예리한 칼날의 싸움터라.
그런 뜻이라.
그야말로 첨약에 그냥 그 칼만 예리한 게 아니라 그 칼을 갈았다는 거죠.
그 6-7년간.
그래 서로 오랫동안 절취 부심하고 이를 갈고 칼을 갈고 막 그래 가지고 아주 너무 오랫동안 긴장했기 때문에 한번 맞닥드리니까 그냥 일제히 막 쓰러지는 그런 일이 벌어져.
근데 개임이 안 돼.
다윗의 군대는요 적어도 17년 종도나 들사람처럼 야당 생활을 오래 하면서 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 새로운 세대개가 우리에게 열린다 하는 희망에 막 들떠 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 독이 올라 있고 그리고 17년간 칼을 갈았어.
근데 이 사울왕의 군대는요 점점 이우는 달처럼 힘이 빠져있어.
덩치는 큰데 힘은 빠지고 사기는 떨어지는 거라.
그러니까 뭐 딱 부닥치는데 대체로 12명이 거의 다 대체로 12명 장군이 제가 보기에 여기 그런 말은 없는데 아브넬 군대 쪽에 사울 왕가 쪽에 12명 다 쓰러졌을 겁니다.
개임이 안 되니까요.
다윗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야전에서 그저 많이 겪은 사람들이라.
r,래서 독이 올라 있었기 때문에 일순간에 아브넬 군대 장관 12명이 그냥 쓰러 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헬갓핫수림이라 그랬어.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일격에 패하는 거예요.
18 그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
그 아사헬이 요압의 동생인데 얼마나 발이 빠른지요 들 노루처럼 빠르다는 거야.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20 아브넬이 뒤를 돌아 보며 가로되 아사헬아 너냐 대답하되 내로라
21 아브넬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쳐서 소년 하나를 잡아 그 군복을 빼앗으라 하되 아사헬이 치우치기를 원치 않고 그 뒤를 쫓으매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너 너무 따라오면 곤란해 이놈아.
내가 너를 금방 해치울 수 있지만 너를 해치우려면 내가 너희 형 요압하고 협상을 해야 되는데 그 협상이 어려워서 그러니까 제발 따라오지 말고 졸병하나 붙잡아 가지고 군복하나 빼앗아가 돌아가라.
하되 그 아사헬이 이럴 때 또 이 월척을 하나 이렇게 해치워야 나중에 농공행상을 할 때 한자리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큰 대물 하나 낚으려고 집요하게 따라오는 겁니다. 23절.
23 저가 치우치기를 싫어하매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 배를 찌르니 창이 그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의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그 발만 빨랐지 뭐 개임도 안 되는 거라.
그 앞에 도망가던 아브넬 장군이 백전노장인데 창을 가지고 가던 이 창을 거꾸로 해가지고 뒤로 쑥 내 미니까 따라오던 애가 브래이크가 안 잡혀 그냥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빠른 사람들 조심 하라고.
우리처럼 조금 느린 사람은 그런 일을 안 하는데 늘 발이 빠른 사람들이 이제 실수 하는 거야.
24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요압과 아비새가 자기 동생 아사헬이 죽은 거를 알고는 다시 아브넬을 쫒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편 암마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25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떼를 이루고 작은 산 꼭대기에 섰더라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가로되 칼이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나 무리에게 그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하겠느냐
하고 아브넬이 한소리 합니다.
그 계속 따라와서 끝장을 보자는 얘기냐?
하고 이제 아브넬이 쫒겨 가다가 피곤하니까 그냥 오늘 모든 일을 끝장을 내면 싶으냐? 완전히.
이렇게 나오니까요 암만 요압이 젊고 힘이 있다 할지라도 음찔 합니다.
지금 왜냐하면 아브넬은 백전노장이고 이 왕을 세우고 조직을 해가지고 나중에 1:1로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자.
그런 폼을 잡는 거지 이건 끝까지 싸우자는 얘기가 아닌 거예요 아브넬 입장은.
싸우자는 얘기가 아니라 협상을 하자 할때 뭐 그래도 카드에 적어 낼 게 있고 해야 되니까 이런 폼을 갖춘 거뿐인데 이 요압이란 사람은요 그냥 마구잡이라.
죽여 버리고 끝장을 내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수준에 있어서 요압이 아브넬을 못 당하는 거야. 사실은.
인격이나 품위나 모든 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요압과 아비새 같은 경우는 자기 동생이 죽었다 하는 거 때문에 개인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기어이 그저 저쪽 실세가 되는 그런 아브넬을 제거하겠다고 나서는 거죠.
사실은 여러분 이 정치라는 거는 죽이면 정치가 아닙니다.
그런 벌써요.
죽인 다는 건 진거야.
죽이려 하는 거는 정치가 아니라고.
항상 상대방을 살려서 일을 해야지 죽이려고 하는 이런 수준이 요압이라는 사람이라.
27 요압이 가로되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흔단의 말을 내지 아니 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8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그래서 이제 요압도 만약에 아브넬이 물러 서주고 양보 해주고 하니까 지금까지 그랬지 전면전 백병전이 붙어 가지고 하면 요압이라고 해서 아브넬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고 사실은.
거기서 이제 그쯤에서 끝나기는 끝났는데요,
29 아브넬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30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19명하고 아사헬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20명 죽은 거야.
다윗 쪽에는.
반면에 베냐민 지파 아브넬이 속한 자는 360명이 죽었어.
그럼 개임이 안 되잖아요.
일순간에 충돌 했는데 한 쪽에는 20명밖에 안 죽고 저 쪽은 벌써 360명이 죽은 거야.
그러니까 다윗의 군대는 독이 오를 데로 올랐고 야전에서 이미 다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고 아브넬 밑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사기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쟁이 안 되는 겁니다.
32 무리가 아사헬을 베들레헴에 있는 그 아비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헤브론에 이를 때에 날이 밝았더라
그래서 어떻든 이때 이제 한번 크게 충돌 했는데 아브넬도 생각이 있겠죠.
아 이게 이제는 뭐 시대를 봐서도 안 되는 거고 실제 어느 정돈가 혹시나 하고 한번 붙어 봤는데 역시나 또 안 되는 거고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대세는 다윗에게로 넘어 가는 거다.
하는 걸 아브넬이 압니다.
아브넬이 뭐 백전노장이 그 정도 사리를 분별 하는 사람이죠.
물론 여전히 요압이라는 사람은 경고망동하고 사적 감정을 가지고 이렇게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아브넬 이라는 사람은 대인이고 그릇이 사태를 다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한번 그래도 안 싸워 보고 뭐 이렇게 맥없이 그 어린 다윗에게 지금 아브넬 같은 경우는 60-7-살 쯤 되는 것이고 다윗은 30 몇 살 되는데 그렇게 맥없이 싸워 보도 않고 들어갈 수 없다는 거죠.
그런 말이 여기 없지만 분위기 파악을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한번 싸워 봤는데 역시 안 된다는 하는 것도 백성들이 인정을 해야 돼.
그래야 다시 들어 갈 때 별 말이 없는 거죠.
이런 내용은요 우리가 오늘 읽어도 지금 3000년 전 이야기 됐는데 전혀 거리감 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상황이나 지금 우리가 이런 일 당해도 비슷하게 간다는 거죠.
그 만큼 성경이 진솔하게 기록 됐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번역을 점잖게 이렇게 해서 그렇지 이걸 좀 리얼하게 읽어내면 그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그 아브넬은 아브넬대로 대세를 숫자만 가지고 놀음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 뭐 저쪽은 한 지파지만 이쪽은 11지팝니다.
숫자는 다윗은 한 지파고 그 아브넬은 지금 11지파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로 기울어 졌다는 것을 지금 간파를 하는 거야.
그 정도 안목이 있다는 거야. 아브넬이.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브넬이 그리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숫자 가지고 싸우게 되면 이길 런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거죠.
그렇게 하는 거는 정치를 위해서 사람이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정치를 위해서 사람이 죽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런 대일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아브넬 같은 인품이.
그래서 안 싸우고 어떻게 해결 하려는 사람인데 요압같은 인물은 무조건 전쟁은 이기고 볼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라.
이 지도자로서는 다윗이 옳지만 그 밑에 군대장관으로서는 요압은 옳지가 않습니다.
두고두고 이제 요압은 인품이 따르지 못하는 거라.
그런 것도 이제 성경을 읽어 가면서 인물들을 그 인물들의 성향과 성품까지 한번 쭉 읽어 보세요.
그러면 성경이 한결 살아있는 말씀으로 죽은 역사가 아니라 전부 살아있는 또 오늘날도 앞으로도 언제라도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그런 말씀으로 기록돼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갑자기 사울 왕가가 몰락하고 다윗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경거망동하지 아니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행보를 하나님 뜻을 쫒아 행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한 걸음 한 걸음씩 하나님 뜻을 물어 행하는 다윗을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