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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질풍노도의 청춘들은 알리라. 칠성로 교통대 앞에서 소라다방, 사인자 서적, 중앙성당, 만수당 약방, 남문로터리까지 이어지는 큰 길(한 질), 한짓골 말이다. 다방에 죽치고 앉아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었고, 최신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다. 주점이 즐비한 이 곳은 지갑이 얇은 대학생들로 넘쳤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는 으레 한짓골에서 열렸다. 걸쭉한 막걸리와 소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혔고 불안한 미래를 논했다. 그래서 이 길은 싼 술로 빈속을 채우는 청춘들에게 위안의 공간이었고, 그 술냄새가 자욱한 거리는 청춘의 해방구 같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한짓골은 스산한 거리로 변했다. 청춘들은 제주시청 앞 대학로에 둥지를 새로 틀었고, 한짓골 인근에 있었던 구 제주대학교 병원도 아라동으로 옮겼다.
몇 년 전부터 바람소리 휑휑한 한짓골 일대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자는 여론이 일었다. 한짓골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원도심 재생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다. 제주시가 한짓골 근방 삼도2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문화예술의 거리 사업이 추진되면서 싼 임대료 덕에 한짓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단체들이 활동공간을 옮겼다. 한짓골 소라다방엔 영상단체인 ‘3프레임’, 인천문화당 근처에는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활동터전을 잡았다. 삼도2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도서출판 각, 오이 소극장, 중앙로 버스정류장 일대에는 아트스페이스 C가 들어왔다. 제주대학교 병원자리에는 제주대 창업보육센터가 들어섰다.
쇠락한 원도심에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문화예술의 바람을 몰아 삼도2동 문화의 거리에서 비주류 문화예술인들이 문화난장을 펼친다.
제주민예총, 10월 1~19일‘2013제주프린지페스티벌’
(사)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박경훈)이 10월 1일부터 19일까지 여는 2013 제주프린지페스티벌이다. 지난해 산지천 일대에서 두 달간 열린 행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화의 거리’로 놀이판을 옮겼다.
문화 난장은 10월 1일 오후 5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제주대창업보육센터를 주무대로 ‘이앗골’(구 제주대학교 병원 동ㆍ서로 뻗은 골목으로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보좌한 제주판관이 업무를 보는 제주목의 이아(二衙)가 있었던 데서 유래) 등지에서 마련된다.
축제기간에는 영화, 공연, 전시 및 체험, 문학콘서트, 야외 거리공연, 아트마켓, 원도심 올레답사 등을 마련, 문화의 변방 예술인들이 도심 골목에 문화예술의 향기를 불어넣는다.
‘프린지 씨어터’는 예술극장 오이에서 10월 4, 11, 18일(오후 7시) 개장된다. 도심의 예술공간에서 연극, 실내악, 마임, 인디밴드, 소리굿 등을 즐길 수 있다.
‘프린지 씨네마’는 원도심 일대에서 활동하는 영상작가들이 마련한 주변부 삶을 다룬 소규모 영화제로, 3프레임과 각 북카페 등에서 10월 3, 10, 17일(오후 7시) 열린다.
‘프린지 문학콘서트’는 지역 작가들의 책과 작가를 만나는 북콘서트로, 각 북카페 등에서 열린다. 행사는 10월 2, 9, 16일(오후 7시).
도내 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린지 전시와 체험행사인 ‘프린지 아트위크’, 아마추어들의 야외 거리공연인 ‘프린지 아트로드’가 문화의 거리에서 전 행사기간 펼쳐진다.
수제공방과 예술공방들이 내놓은 생활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프린지 아트마켓’이 이 문화의 거리에서 행사기간 매주 주말 열린다. 제주성의 옛 길과 골목을 걷는 ‘프린지 원도심 답사’도 10월 6, 13일 준비돼 있다. 문의 (☎ 758-0331~2)
● 김오순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