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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五回 晉襄公墨縗敗秦 先元帥免冑殉翟
제45회: 진양공이 검은 상복을 입고 진나라를 패퇴시키고, 선진 원수가 적나라와 싸우다가 갑주를 벗고 순사하다.
話說,中軍元帥先軫,已備知秦國襲鄭之謀,遂來見襄公曰:「秦違蹇叔百里奚之諫,千里襲人。此卜偃所謂『有鼠西來,越我垣牆』者也。急擊之,不可失!」欒枝進曰:「秦有大惠於先君,未報其德,而伐其師,如先君何?」先軫曰:「此正所以繼先君之志也,先君之喪,同盟方弔恤之不暇,秦不加哀憫,而兵越吾境,以伐我同姓之國,秦之無禮甚先!先君亦必含恨於九泉,又何德之足報?且兩國有約,彼此同兵,圍鄭之役,背我而去,秦之交情,亦可知矣。彼不顧信,我豈顧德?」欒枝又曰:「秦未犯吾境,擊之毋乃太過?」
한편, 중군원수 선진은 이미 진(秦)나라가 정나라를 습격하려는 계책을 알고 곧 진양공을 뵙고 말하기를, “진목공(秦穆公)이 건숙과 백리해의 간함을 듣지 않고 천리를 행군하여 정나라를 기습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곽언이 점을 쳐서 얻은 ‘서쪽에서 쥐가 와서 우리 집 담장을 넘으려고 한다.’라는 점사와 같습니다. 우리가 급히 요격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난지가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진(秦)나라는 우리 선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으나 우리는 아직 그 은덕을 갚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군사를 공격한다면 지하에 계신 선군께서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선진이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방백의 위엄을 밝히는 선군의 뜻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선군이 돌아가시자 동맹국들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조문 사절을 보내왔지만, 진(秦)나라는 조의를 표하지도 않고 군사를 동원하여 우리의 국경을 넘어 우리와 동성인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진(秦)나라의 무례함이 심합니다. 선군께서도 반드시 구천에서 원한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답할 무슨 은덕이 있겠습니까? 또 두 나라가 약속하여 피차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포위했을 적에 진(秦)나라가 우리를 배신하고 가 버렸으니, 진(秦)나라와 사귀는 정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신의를 돌아보지 않는데, 우리가 어찌 은덕을 돌아보겠습니까?” 하니, 난지가 또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우리의 경계를 범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先軫曰:「秦之樹吾先君於晉,非好晉也,以自輔也。君之伯諸侯,秦雖面從,心實忌之。今乘喪用兵,明欺我之不能庇鄭也,我兵不出,真不能矣!襲鄭不已,勢將襲晉,諺云:『一日縱敵,數世貽殃。』若不擊秦,何以自立?」趙衰曰:「秦雖可擊,但吾主苫塊之中,遽興兵革,恐非居喪之禮。」先軫曰:「禮,人子居喪,寢處苫塊,以盡孝也。翦強敵以安社稷,孝孰大焉?諸卿若云不可,臣請獨往!」胥臣等皆贊成其謀。先軫遂請襄公墨縗治兵。襄公曰:「元帥料秦兵何時當返?從何路行?」
선진이 말하기를, “진목공이 우리 선군을 진(晉)나라 군주에 오르게 한 것은 진(晉)나라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선군께서 제후의 방백이 되자 진(秦)나라가 비록 겉으로는 복종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가 상을 당하여 능히 정나라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틈타 진(秦)나라가 명백히 속이고 군사행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으면 정말로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진(秦)나라 군사는 정나라를 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세로 보아 장차 진(晉)나라를 습격할 것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한때 적을 내버려 뒀다가 몇 대를 두고 재앙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진(秦)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 패업을 세우겠습니까?”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진(秦)나라는 비록 공격할 수 있으나 다만 주군께서 상중이시니 갑자기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상례(喪禮)에 어긋날까 걱정입니다.” 했다. 선진이 말하기를, “예(禮)에 자식이 상을 당하면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이를 베개로 삼아 거처하여 효도를 다한다고 하지만, 강한 적을 꺾어 사직을 안전하게 하는 것과 비교하여 어느 것이 큽니까? 여러 경들께서 만약 안 된다고 하신다면 제가 혼자라도 가기를 청합니다.” 하니, 서신 등 모두가 그 계책에 찬성했다. 선진이 즉시 진양공에게 상복을 입은 채로 군사를 열병하도록 청했다. 진양공이 말하기를, “원수께서는 진(秦)나라 군사가 언제 회군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길을 택하리라고 봅니까?” 했다.
先軫屈指算之曰:「臣料秦兵,必不能克鄭。遠行無繼,勢不可久,總計往返之期,四月有餘,初夏必過澠池。澠池乃秦晉之界,其西有崤山兩座,自東崤至於西崤,相去三十五里,此乃秦歸必由之路。其地樹木叢雜,山石崚嶒,有數處車不可行,必當解驂下走。若伏兵於此處,出其不意,可使秦之兵將,盡為俘虜。」襄公曰:「但憑元帥調度。」先軫乃使其子先且居,同屠擊引兵五千,伏於崤山之左;使胥臣之子胥嬰,同狐鞫居引兵五千,伏於崤山之右;候秦兵到日,左右夾攻。
선진이 손가락으로 꼽아 계산해 보고 말하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진(秦)나라 군사가 결코 정나라를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먼 길을 가서 뒤를 대지 못하므로 그 기세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왕복 기간을 모두 따져 보니 4개월 남짓이 걸려서, 초여름에 반드시 민지(澠池)를 통과할 것입니다. 민지는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의 국경이며 그 서쪽에 효산(崤山) 두 개가 있는데 동쪽 효산에서 서쪽 효산까지는 35리 떨어져 있습니다. 진(秦)나라 군사가 돌아가려면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곳은 수목이 울창하고 산과 바위가 높고 험하며 몇 군데는 수레가 다니지 못할 정도여서 반드시 전차에서 곁말을 풀고 가야 합니다. 만약 이곳에 복병을 숨겨 놓고 갑자기 들이친다면 진(秦)나라의 장수와 군졸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니, 진양공이 말하기를, “다만 원수의 처리에 맡길 뿐이오.” 했다. 선진이 이에 그 아들 선차거(先且居)를 시켜 도격(屠擊)과 함께 5천 군사를 이끌고 효산 왼쪽에 매복하게 하고. 서신의 아들 서영(胥嬰)을 시켜 호국거(狐鞫居)와 함께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효산 오른쪽에 매복하게 하여 진(秦)나라 군사가 도착하는 날을 기다려 좌우에서 협공하도록 하였다.
使狐偃之子狐射姑同韓子輿,引兵五千,伏於西崤山,預先砍伐樹木,塞其歸路。使梁繇靡之子梁弘同萊駒,引兵五千,伏於東崤山,只等秦兵盡過,以兵追之。先軫同趙衰、欒枝、胥臣、陽處父、先蔑一班宿將,跟隨晉襄公,離崤山二十里下寨,各分隊伍,准備四下接應。正是:「整頓窩弓射猛虎,安排香餌釣鰲魚。」再說,秦兵於春二月中,滅了滑國,擄其輜重,滿載而歸。只為襲鄭無功,指望以此贖罪。時夏四月初旬,行及澠池,白乙丙言於孟明曰:「此去從澠池而西,正是崤山險峻之路,吾父諄諄叮囑謹慎,主帥不可輕忽。」
호언의 아들 호사고(狐射古)와 한자여(韓子輿)를 시켜 군사 5천을 이끌고 서효산에 매복하여 미리 나무를 베어 귀로를 막으라고 하고, 양요미(梁繇靡)의 아들 양홍(梁弘)과 래구(萊駒)를 시켜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동효산에 매복하고 있다가 진(秦)나라 군사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추격하라고 했다. 선진은 조쇠, 난지, 서신, 양처보, 선멸 등의 장수들과 함께 진양공을 모시고, 효산에서 2십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우고, 각각 대오를 나누어 사방에서 호응하도록 준비하였다. 이야말로 ‘덫을 놓고 사나운 호랑이를 쏘려 하고, 향기로운 미끼를 달아 자라와 고기를 낚는다.’는 형국이었다. 한편, 진(秦)나라 군사는 봄 2월에 활(滑)나라를 멸망시키고 보급품을 노획하여 수레에 가득 싣고 귀국길에 올랐다. 다만 정나라 습격을 포기하여 공을 세우지 못한 것을 이것으로 속죄할 수 있기만을 기대할 뿐이었다. 여름 4월 초순에 진(秦)나라 군사들은 민지에 도착했다. 백을병이 맹명시에게 말하기를, “민지에서 서쪽으로 가면 바로 효산의 험준한 길이 나타나는데 나의 부친께서 이곳을 지날 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신 곳이니 주장께서는 가볍고 소홀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했다.
孟明曰:「吾驅馳千里,尚然不懼,況過了崤山,便是秦境,家鄉密邇,緩急可恃,又何慮哉?」西乞術曰:「主帥雖然虎威,然慎之無失。恐晉有埋伏,卒然而起,何以禦之?」孟明曰:「將軍畏晉如此,吾當先行,如有伏兵,吾自當之!」乃遣驍將褒蠻子,打著元帥百里旗號,前往開路。孟明做第二隊,西乞第三隊,白乙第四隊,相離不過一二里之程。卻說,褒蠻子慣使著八十斤重的一枘方天畫戟,掄動如飛,自謂天下無敵。驅車過了澠池,望西路進發。行至東崤山,忽然山凹裏鼓聲大震,飛出一隊車馬,車上立著一員大將,當先攔路,問:「汝是秦將孟明否?吾等候多時矣。」
맹명시가 말하기를, “내가 천리 길을 달리는 중에도 아직 두려움이 없었는데, 하물며 효산만 지나면 바로 우리나라의 경계이고 고향이 아주 가까워서 늦건 빠르건 믿을 만한데 또 무엇을 염려하겠소?” 했다. 서걸술이 말하기를, “주장께서 비록 호랑이 같은 위엄이 있다고 하나 조심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진(晉)나라 군사가 매복했을까 두려우니, 갑자기 들고일어나면 무엇으로 막겠소?” 했다. 맹명시가 말하기를, “장군이 이렇게 진(晉)나라 군사를 무서워하니 내가 마땅히 앞장서서 만약에 복병이 있으면 내가 스스로 감당하겠소.” 했다. 이에 맹장 포만자를 불러 원수 백리(百里)라고 쓰인 깃발을 주어 앞서서 길을 열도록 했다. 맹명시는 2대를 이끌고, 서걸술은 3대를, 백을병은 4대를 맡아 서로 1~2리의 거리로 떨어져 따랐다. 한편, 포만자는 평소에 들고 다니는 80근이나 나가는 방천화극(언월도나 창 모양으로 된 무기)을 들고 나는 듯이 휘두르며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했다. 수레를 몰아 민지를 지나서 서쪽 길을 바라보고 출발하여 동효산에 이르니, 갑자기 산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나는 듯이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전차 위에 선 대장이 길을 막아서며 묻기를, “네가 진(秦)나라 장수 맹명시냐? 우리가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했다.
褒蠻子曰:「來將可通姓名。」那將答曰:「吾乃晉國大將萊駒是也!」蠻子曰:「教汝國欒枝魏犨來到,還鬥上幾合戲耍,汝乃無名小卒,何敢攔吾歸路?快快閃開,讓我過去。若遲慢時,怕你捱不得我一戟!」萊駒大怒,挺長戈劈胸刺去,蠻子輕輕撥開,就勢一戟刺來,萊駒急閃,那戟來勢太重,就刺在那車衡之上。蠻子將戟一絞,把衡木折做兩段。萊駒見其神勇,不覺贊嘆一聲道:「好孟明,名不虛傳!」蠻子呵呵大笑曰:「我乃孟明元帥部下牙將褒蠻子便是!我元帥豈肯與汝鼠輩交鋒耶?汝速速躲避,我元帥隨後兵到,汝無噍類矣!」
포만자가 말하기를,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하니, 그 장수가 대답하기를, “나는 진(晉)나라 대장 래구(萊駒)다.” 했다. 포만자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일러주겠는데 너희 나라에서 난지나 위주가 오면 몇 합을 장난삼아 싸워 보겠다만 너 같은 이름 없는 졸개가 어찌 감히 내 앞길을 막을 수 있단 말이냐? 빨리 길을 열어 우리를 지나가게 해라. 만약 지체하면 내 창을 막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했다. 래구가 대로하여 긴 창을 손에 들고 포만자의 가슴을 찔렀다. 포만자는 가볍게 피하면서 그 세를 이용하여 화극으로 찌르니, 래구가 급히 피했으나 그 화극의 기세가 너무 무거워서 래구가 타고 있던 전차의 횡목(橫木)에 박혔다. 포만자가 극을 한번 비틀자 횡목이 부러지며 두 동강이 났다. 래구가 포만자의 빼어난 용력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찬탄하기를, “과연 맹명시의 용력은 헛소문이 아니구나!” 했다. 포만자가 껄껄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맹명시 원수의 부하 장수인 아장 포만자이다! 우리 원수님께서 어찌 너 같은 쥐새끼들과 칼끝을 맞대겠느냐? 너는 빨리 몸을 피해라. 우리 원수께서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오면 너희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했다.
萊駒嚇得魂不附體,想道:「牙將且如此英雄,不知孟明還是如何?」遂高聲叫曰:「我放汝過去,不可傷害吾軍!」遂將車馬約在一邊,讓褒蠻子前隊過去。蠻子即差軍士傳報主帥孟明,言:「有些小晉軍埋伏,已被吾殺退,可速上前合兵一處,過了崤山,便沒事了。」孟明得報大喜,遂催趲西乞白乙兩軍,一同進發。且說,萊駒引兵來見梁弘,盛述褒蠻子之勇。梁弘笑曰:「雖有鯨蛟,已入鐵網,安能施其變化哉?吾等按兵勿動,俟其盡過,從後驅之,可獲全勝。」
래구가 깜짝 놀라 넋이 나가 생각하기를, “아장이 이 같은 영웅이니, 하물며 맹명시가 어떠할지 모르겠다.” 하고 즉시 소리를 높여 외치기를, “내가 너희들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겠으니 우리 군사들은 해치지 말라!” 하고, 마침내 전차와 군졸들을 길 한쪽으로 비켜서도록 하여 포만자의 선두부대를 지나가도록 했다. 포만자가 즉시 군사를 주장 맹명시에게 보내 보고하기를, “약간의 진(晉)나라 군사가 매복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이미 무찔러 쫓아버렸습니다. 빨리 오셔서 군사를 합쳐 효산을 통과한다면 별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했다. 맹명시가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곧 서걸술과 백을병의 군사들을 재촉해서 함께 나아갔다. 한편, 래구가 군사를 이끌고 양홍을 만나 포만자의 용맹을 매우 칭찬하니, 양홍이 웃으며 말하기를, “비록 고래나 교룡이 있다 한들 그는 이미 철망 속에 들어왔는데 어찌 능히 그 변화하는 신통력을 펴겠는가? 우리는 병사들을 통제하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그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를 쫓으면 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오.” 했다.
再說,孟明等三帥,進了東崤,約行數里,地名上天梯、墮馬崖、絕命巖、落魂澗、鬼愁窟、斷雲峪,一路都是有名的險處,車馬不能通行。前哨褒蠻子,已自去得遠了。孟明曰:「蠻子已去,料無埋伏矣。」吩咐軍將,解了轡索,卸了甲冑,或牽馬而行,或扶車而過,一步兩跌,備極艱難,七斷八續,全無行伍。有人問道:「秦兵當日出行,也從崤山過去的,不見許多艱阻。今番回轉,如何說得恁般?」這有個緣故。當初秦兵出行之日,乘著一股銳氣,且沒有晉兵攔阻,輕車快馬,緩步徐行,任意經過,不覺其苦。
한편, 맹명시 등의 세 장수가 이끄는 진(秦)나라 군사는 동효산의 길로 들어서서 대략 몇 리를 가니, 지명이 상천제(上天梯), 타마애(墮馬崖), 절명암(絶命巖), 낙혼간(落魂澗), 귀수굴(鬼愁窟), 단운욕(斷雲峪) 등 길이 모두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전차와 말이 통행할 수가 없었다. 전초부대의 포만자는 이미 멀리 앞서서 갔다. 맹명시가 말하기를, “포만자가 이미 갔으니 매복은 없는 것 같다.” 하고, 장수와 군졸에게 분부하여 고삐와 밧줄을 풀고 갑옷과 투구를 벗게 하니, 혹 말을 끌면서 가고 혹 수레를 밀면서 한걸음에 두 번씩 자빠지면서 지극히 어려운 행군이라 군데군데 끊기고 이어져 전혀 대오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우리가 출정할 때도 이 효산을 지났는데 이렇게 험한 길을 만나지 않았다. 지금 돌아가는 길이 어찌 이러한가?” 했다. 그것은 까닭이 있었다. 당초에 진(秦)나라 군사가 출동할 때는 승리하리라는 왕성한 기운을 탔고, 또한 진(晉)나라 군사가 앞을 가로막지 않아서 가벼운 전차와 빠른 말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마음대로 지나가서 그 고통을 깨닫지 못했다.
今日往來千里,人馬俱疲困了,又擄掠得滑國許多子女金帛,行裝重滯,況且遇過晉兵一次,雖然硬過,還怕前面有伏,心下慌忙,倍加艱阻,自然之理也。孟明等過了上天梯第一層險隘,正行之間,隱隱聞鼓角之聲,後隊有人報道:「晉兵從後追至矣!」孟明曰:「我既難行,他亦不易,但愁前阻,何怕後追?吩咐各軍,速速前進便了!」教白乙前行:「我當親自斷後,以禦追兵。」又驀過了墮馬崖。將近絕命巖了,眾人發起喊來,報道:「前面有亂木塞路,人馬俱不能通,如何是好?」
그러나 오늘은 천리 길을 왕래하여 인마가 모두 지쳤고, 또한 활나라에서 노획한 허다한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에다가 금과 비단, 행장을 끌고 거듭 지체되었다. 더욱이 진(晉)나라 군사를 한번 만나서 비록 겨우 지나왔지만, 앞길에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마음속으로 어쩔 줄 몰라 어려움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자연적인 이치였다. 맹명시 등이 상천제 제1층의 험한 데를 지나서, 가고 있는 사이에 은은히 북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후대에서 전령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진(晉)나라 군사가 우리의 뒤에서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했다. 맹명시가 말하기를, “우리도 이미 힘들게 가는데 그들도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을 막을까 걱정하지만 어찌 뒤의 추격을 두려워하겠는가? 각군에 명하여 빨리 전진하라고 전해라!” 하고, 백을병을 앞서 가라고 지시하며 말하기를, “내가 친히 뒤를 끊어 추격병을 막겠소!” 했다. 또 타마애를 타고 넘어 절명암에 가까이 가니 군사들이 시끄럽게 몰려오면서 보고하기를, “앞에 어지럽게 나무로 길을 막아, 사람이건 말이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했다.
孟明想:「這亂木從何而來?莫非前面果有埋伏?」乃親自上前來看,但見巖旁有一碑,鐫上五字道:「文王避雨處。」碑旁豎立紅旗一面,旗竿約長三丈有餘,旗上有一「晉」字。旗下都是縱橫亂木。孟明曰:「此是疑兵之計也。事已至此,便有埋伏,只索上前。」遂傳令教軍士先將旗竿放倒,然後搬開柴木,以便跋涉。誰知這面晉字紅旗,乃是伏軍的記號。他伏於巖谷僻處,望見旗倒,便知秦兵已到,一齊發作。秦軍方纔搬運柴木,只聞前面鼓聲如雷,遠遠望見旌旗閃爍,正不知多少軍馬。白乙丙且教安排器械,為沖突之計。
맹명시가 생각하기를, “저 나무들을 누가 가져다 놓았겠는가? 전면에 과연 매복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즉시 직접 앞으로 나가 살펴보았다. 다만 바위 옆에 비석이 한 개 서 있는데, 그 비석에 ‘문왕피우처(文王避雨處 ; 문왕이 비를 피한 곳)’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 옆에 약 세 길 남짓 긴 깃대에 붉은 기가 한 개 세워져 있었는데, 깃발에 진(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깃발 밑에는 모두 가로 세로로 어지러이 쌓인 나무들이었다. 맹명시가 말하기를, “이것은 군사를 의심하게 하는 계책이다! 행군은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설사 매복이 있다 한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고,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깃발을 뽑아버린 후에 나무들을 치우게 하고는 행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진(晉)이라고 쓴 붉은 깃발은 바로 매복하고 있던 진(晉)나라 군사의 기호였다. 바위 골짜기 구석에 매복해 있던 진(晉)나라 군사들이 깃발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고 바로 진(秦)나라 군사가 이미 도착한 것을 알고, 일제히 매복에서 일어났다. 진(秦)나라 군사가 나무를 치우려고 하던 순간 앞쪽에서 북소리가 마치 벼락 치듯이 나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깃발이 번쩍거리며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정작 진(晉)나라 군사의 수효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백을병이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병장기를 준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只見山巖高處,立著一位將軍,姓狐名射姑,字賈季,大叫道:「汝家先鋒褒蠻子,已被縛在此了。來將早早投降,免遭屠戮!」原來褒蠻子恃勇前進,墮於陷坑之中,被晉軍將撓鉤搭起,綁縛上囚車了。白乙丙大驚,使人報知西乞術與主將孟明,商議並力奪路。孟明看這條路徑,只有尺許之闊,一邊是危峰峻石,一邊臨著萬丈深溪,便是落魂澗了,雖有千軍萬馬,無處展施。心生一計,傳令:「此非交鋒之地。教大軍一齊退轉東崤寬展處,決一死戰,再作區處。」白乙丙奉了將令,將軍馬退回。一路聞金鼓之聲,不絕於耳。
그때 저편 산의 높은 바위 위에 한 장군이 나타났다. 그는 성은 호(狐)이고, 이름은 사고(射姑)이며 자는 가계(賈季)인데,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의 선봉 포만자는 이미 여기에 묶여 있다. 너희들도 빨리 와서 투항하여 죽음을 면해라!” 했다. 원래 포만자는 용기를 믿고 전진하다가 함정에 빠져서 진(晉)나라 군사들이 갈고리로 건져내어 포박하여 수레에 가두었다. 백을병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서걸술과 주장 맹명시에게 보고한 후 상의하여 힘을 모아 탈출하려고 했다. 맹명시가 보니 조그만 길이 하나 나 있는데 단지 넓이가 한자 정도 되어 보였다. 한쪽은 깎아지른 산봉우리 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만 길의 깊은 골짜기였다. 바로 낙혼간(落魂澗)인데, 비록 많은 군사와 말이 있은들 펼쳐볼 수 없는 곳이었다. 맹명시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고는 명령을 전하기를, “이곳은 창끝을 서로 겨눌 수 없는 곳이다. 대군은 일제히 뒤로 돌아서 동효산(東殽山) 넓은 곳으로 가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서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했다. 백을병이 맹명시의 명령을 받들어 군사와 말을 뒤로 돌렸다. 그때 한쪽 길에서 징과 북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纔退至墮馬崖,只見東路旌旗,連接不斷,卻是大將梁弘同副將萊駒,引著五千人馬,從後一步步襲來。秦軍過不得墮馬崖,只得又轉。此時好像螞蟻在熱盤之上,東旋西轉,沒有個定處。孟明教軍士從左右兩旁,爬山越溪,尋個出路。只見左邊山頭上金鼓亂鳴,左有一枝軍占住,叫道:「大將先且居在此,孟明早早投降!」右邊隔溪一聲砲響,山谷俱應,又豎起大將胥嬰的旗號。孟明此時,如萬箭攢心,沒擺佈一頭處。軍士每分頭亂竄,爬山越溪,都被晉兵斬獲。孟明大怒,同西乞白乙二將,仍殺到墮馬崖來。
겨우 진(秦)나라 군사가 타마애로 후퇴하니, 동쪽 길에 깃발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을 보았다. 바로 진(晉)나라 대장 양홍과 부장 래구가 5천 인마를 이끌고 뒤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밟아오는 것이었다. 진(秦)나라 군사는 타마애를 지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이것은 마치 개미떼가 뜨거운 쟁반 위에서 동으로 돌고 서로 돌며 우왕좌왕하는 것과 같았다. 맹명시가 군사들에게 좌우 양쪽에서 산을 기어오르고 계곡을 넘어 탈출로를 찾으라고 했다. 그러나 왼쪽 산꼭대기에서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왼쪽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며 외치기를, “진(晉)나라 대장 선차거(先且居)가 여기 있다. 맹명시는 빨리 항복해라.” 했다. 이어서 오른쪽 계곡 건너편에서 한번 포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더니 또 대장 서영(胥嬰)이 깃발을 세웠다. 이때 맹명시는 마치 수많은 화살을 가슴에 맞아 머리를 둘 데가 없는 심정이었다, 군사들은 제각기 흩어져서 어지럽게 달아나 산을 기어오르고 계곡을 건넜으나, 모두 진(晉)나라 군사에게 죽거나 잡혔다. 맹명시가 대로하여 서걸술과 백을병 두 장군과 함께 타마애로 달려서 돌아왔다.
那柴木上都摻有硫黃燄硝引火之物,被韓子輿放起火來,燒得「燄騰騰煙漲迷天,紅赫赫火星撒地。」後面梁弘軍馬已到,逼得孟明等三帥叫苦不迭。左右前後,都是晉兵布滿,孟明謂白乙丙曰:「汝父真神算也!今日困於絕地,我死必矣!你二人變服,各自逃生。萬一天幸,有一人得回秦國,奏知吾主,興兵報仇,九泉之下,亦得吐氣!」西乞術白乙丙哭曰:「吾等生則同生,死則同死,縱使得脫,何面目獨歸故國?……」言之未已,手下軍兵,看看散盡,委棄車仗器械,連路堆積。孟明等三帥,無計可施,聚於巖下,坐以待縛。
그러나 진(晉)나라 장수 한자여(韓子輿)가 길을 막고 있던 나무 위에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물을 뿌리고 불을 붙여서, ‘화염이 기세등등하여 연기가 하늘에 자욱하고 시뻘건 불덩이가 별처럼 땅에 흩어졌다.’ 뒤에서 양홍의 군마가 이미 도착하여 맹명시 등 세 장수를 압박하니 고통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전후좌우에 모두 진(晉)나라 군사로 가득 차니, 맹명시가 백을병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부친은 진실로 귀신과 같이 아는 분이오! 지금 함정에 빠져 어렵게 되어 나는 이곳에서 죽게 되었소. 그대들 두 사람은 복장을 바꾸어 압고 각자 도망쳐서 살길을 찾으시오. 만일에 천행으로 한 사람이라도 진(秦)나라에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사실을 우리 주군에게 알려서 군사를 일으켜 원수를 갚아 주시오. 구천에 가서라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오.” 했다. 서걸술과 백을병이 통곡하며 말하기를, “우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습니다. 설사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간들 무슨 면목으로 혼자서 고국으로 돌아가겠습니까?”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하의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버린 수레와 무기들이 길에 쌓였다. 맹명시 등 세 장수는 어찌해 볼 계책이 없어 바위 밑에 모여 앉아서 포박을 기다렸다.
晉兵四下圍裹將來,如饅頭一般,把秦家兵將,做個餤子,一個個束手受擒。殺得血污溪流,屍橫山徑,匹馬隻輪,一些不曾走漏。髯翁有詩云:「千里雄心一旦灰,西崤無復隻輪回;休誇晉帥多奇計,蹇叔先曾墮淚來。」先且居諸將會集於東崤之下,將三帥及褒蠻子,上了囚車。俘獲軍士及車馬,並滑國擄掠來許多子女玉帛,盡數解到晉襄公大營,襄公墨縗受俘,軍中歡呼動地。襄公問了三帥姓名,又曰:「褒蠻子何人也?」梁弘曰:「此人雖則牙將,有兼人之勇,萊駒曾失利一陣,若非落於陷坑,亦難制縛。」襄公駭然曰:「既如此驍勇,留之恐有他變!」
진(晉)나라 군사가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자 진(秦)나라 군사는 만두 속같이 되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손이 묶여 포로가 되었다. 군사들이 흘린 피는 계곡물을 붉게 물들였으며 죽은 군사들의 시체는 산길을 뒤덮었다. 말 한 마리 전차 바퀴 한 개도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천 리를 달려온 영웅의 기개도 하루아침에 재가 되고, 서효산에는 다시 전차 바퀴가 구르지 않았네! 진(晉)나라 장수들의 계책이 훌륭하다고 하지 말라! 건숙은 이미 알고 눈물을 흘렸도다!” 했다. 선차거 등 진(晉)나라의 여러 장수가 동효산 아래에 모여, 진(秦)나라 장수 세 명과 포만자를 함거에 실었다. 또한 진(晉)나라 군사는 진(秦)나라 군사를 포로로 잡고 전차를 노획했으며, 아울러 그들이 활나라에서 노략질한 어린애와 여자, 옥과 비단을 모두 진양공의 본영으로 가져왔다. 진양공이 상복을 입은 채로 포로를 접수하자 군중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진양공이 세 장수의 이름을 묻고 이어서 말하기를, “포만자는 누구인가?” 하니, 양홍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비록 아장이지만 용맹이 뛰어나서 래구도 한번 졌습니다. 만약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사로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했다. 진양공이 놀라서 말하기를, “그렇게 용맹하다면 살려 두었다가는 무슨 변이 생길지 두렵구나!” 했다.
喚萊駒上前:「汝前日戰輸與他,今日在寡人面前,可斬其頭以洩恨。」萊駒領命,將褒蠻子縛於庭柱,手握大刀,方欲砍去。那蠻子大呼曰:「汝是我手下敗將,安敢犯吾?」這一聲,就如半空中起個霹靂一般,屋宇俱震動。蠻子就呼聲中,將兩臂一撐,麻索俱斷。萊駒吃一大驚,不覺手顫,墮刀於地。蠻子便來搶這把大刀。有個小校,名曰狼曋,從旁觀見,先搶刀在手,將蠻子一刀劈倒,再復一刀,將頭割下,獻於晉侯之前。襄公大喜曰:「萊駒之勇,不及一小校也!」乃黜退萊駒不用,立狼曋為車右之職。狼曋謝恩而出,自謂受知於君,不往元帥先軫處拜謝。先軫心中,頗有不悅之意。
진양공이 래구를 앞으로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전에 그와 겨루어서 졌다고 하니, 오늘 과인 앞에서 그의 목을 베어 치욕을 씻으시오.” 했다. 래구가 명령을 받들어 포만자를 뜰의 기둥에 묶어 놓고 손으로 큰 칼을 잡고 막 베려고 하는데, 포만자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너는 나와 겨루어 진 장수가 아니냐? 어찌 감히 나를 범하느냐?” 하는 소리가 마치 공중에서 내리치는 벼락소리와 같아서 본영 안을 진동시켰다. 포만자가 고함을 지르면서 양쪽 팔을 한번 버티니 포승줄이 모두 끊어졌다. 래구가 크게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려 칼을 땅에 떨어뜨렸다. 포만자가 그 칼을 빼앗으려 하는데, 옆에서 보던 낭심(狼瞫)이라는 소교(小校)가 먼저 칼을 빼앗아 포만자를 내리치고, 다시 한번 내리쳐서 목을 잘라 진양공에게 바쳤다. 진양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래구의 용기가 한 소교에게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하고 즉시 래구를 쫓아내어 쓰지 않았다. 바로 낭심을 차우의 직에 명했다. 낭심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물러나면서 스스로 진양공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원수인 선진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선진은 마음속으로 자못 불쾌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次日,襄公同諸將奏凱而歸,因殯在曲沃,且回曲沃。欲俟還絳之後,將秦帥孟明等三人獻俘於太廟,然後施刑。先以敗秦之功,告於殯宮,遂治窀穸之事。襄公墨縗視葬,以表戰功。母夫人嬴氏,因會葬亦在曲沃,已知三帥被擒之信,故意問襄公曰:「聞我兵得勝,孟明等俱被囚執,此社稷之福也。但不知已曾誅戮否?」襄公曰:「尚未。」文嬴曰:「秦晉世為婚姻,相與甚歡。孟明等貪功起釁,妄動干戈,使兩國恩變為怨。吾量秦君,必深恨此三人。我國殺之無益,不如縱之還秦,使其君自加誅戮,以釋二國之怨,豈不美哉?」
다음날, 진양공은 장수들을 데리고 개선가를 부르며 귀환하여, 빈소가 곡옥에 있었으므로 곡옥으로 돌아왔다. 진양공은 강도(絳都)로 돌아간 후에 진(秦)나라 장수 맹명시 등 세 사람을 태묘에 바친 후에 형벌을 시행하려고 생각했다. 먼저 진(秦)나라를 패퇴시킨 공을 진문공의 빈소에 고하고, 관을 묻기 위해 무덤을 파게 했다. 진양공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면서 전공을 표로 올렸다. 진양공의 모부인 영씨(嬴氏)가 진문공의 상을 치르기 위해 곡옥에 와 있었는데, 이미 진(秦)나라의 세 장수가 사로잡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진양공에게 묻기를, “우리가 진(秦)나라에 이겨서 맹명시 등을 잡아왔다니, 이것은 사직의 복이다. 이미 그들을 처형했는지 모르겠구나.” 하니, 진양공이 말하기를, “아직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했다. 문영(영씨)이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진(晉)나라는 대대로 혼인하여 좋은 관계를 맺었다. 맹명시 등이 공을 탐하여 전쟁을 도발하고 망령되이 군사를 출동시켜 두 나라의 은혜를 원한으로 변하게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秦)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세 장수를 깊이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죽여 봐야 무익하니 차라리 그들을 돌려보내서 그 군주로 하여금 죽이도록 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원한이 풀어져서,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느냐?” 했다.
襄公曰:「三帥用事於秦,獲而縱之,恐貽晉患。」文嬴曰:「『兵敗者死』,國有常刑。楚兵一敗,得臣伏誅。豈秦國獨無軍法乎?況當時晉惠公被執於秦,秦君且禮而歸之,秦之有禮於我如此。區區敗將,必欲自我行戮,顯見我國無情也。」襄公初時不肯,聞說到放還惠公之事,悚然動心。即時詔有司釋三帥之囚,縱歸秦國。孟明等得脫囚繫,更不入謝,抱頭鼠竄而逃。先軫方在家用飯,聞晉侯已赦三帥,吐哺入見,怒氣沖沖,問襄公:「秦囚何在?」
진양공이 말하기를, “세 장수는 진(秦)나라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인데, 우리가 포로로 잡았다가 놓아준다면 진(晉)나라의 우환거리가 될까 걱정됩니다.” 하니, 문영이 말하기를, “‘싸움에서 지면 죽는다.’는 것은 나라의 일반적인 형벌이다. 초나라 군사가 패하자 성득신은 형벌을 받아 죽었다. 어찌 진(秦)나라에만 유독 군법이 없겠느냐? 하물며 옛날 진혜공(晉惠公)이 진(秦)나라에 사로잡혔으나 진(秦)나라 군주가 예의를 갖추어 돌려보냈으니, 진(秦)나라가 우리에게 예를 갖춤이 이와 같았다. 어찌 변변치 못한 패장 몇 명을 꼭 우리 손으로 죽여서 우리나라가 무정하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겠느냐?” 했다. 진양공이 처음에는 수긍하지 않다가 진혜공을 돌려보낸 일을 듣고 나서야 소름이 돋아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는 즉시 옥리를 불러 세 장수를 석방하여 진(秦)나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맹명시 등은 죄수의 몸에서 풀려나자 다시 들어와 감사의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싸안고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그때 선진이 집에서 밥을 먹다가 진양공이 이미 세 장수를 용서했다는 말을 듣고, 먹던 것을 토하고, 들어가 노기가 등등하게 진양공에게 묻기를, “진(秦)나라의 죄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했다.
襄公曰:「母夫人請放歸即刑,寡人已從之矣。」先軫勃然唾襄公之面曰:「咄!孺子不知事如此!武夫千辛萬苦,方獲此囚,乃壞於婦人之片言耶?放虎歸山,異日悔之晚矣!」襄公方才醒悟,拭面而謝,曰:「寡人之過也!」遂問班部中:「誰人敢追秦囚者?」陽處父願往。先軫曰:「將軍用心,若追得,便是第一功也。」陽處父駕起追風馬,掄起斬將刀,出了曲沃西門,來追孟明。史臣有詩讚襄公能容先軫,所以能嗣伯業。詩曰:「婦人輕喪武夫功,先軫當時怒氣沖,拭面容言無慍意,方知嗣伯屬襄公。」
진양공이 말하기를, “모부인께서 그들을 방면하여 돌려보내 그곳에서 형을 받게 하라고 청해서 과인이 이미 방면하여 돌려보냈소!” 하니, 선진이 발깍 성을 내어 진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아! 어린 사람이 일을 이렇게 모르다니! 무장들이 천신만고 끝에 붙잡은 죄수들을 부인의 한마디 말에 놓아줄 수 있습니까!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냈으니 훗날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입니다!” 했다. 진양공이 비로소 깨닫고 얼굴에 묻은 침을 닦더니 사죄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잘못하였소!” 하고, 즉시 신하의 반열을 향하여 묻기를, “누가 진(秦)나라 죄수를 추격하여 잡아오겠는가?” 했다. 양처보가 가기를 원했다. 선진이 말하기를, “장군이 힘을 다하여 만약 추격하여 잡아 온다면 그것은 제일의 공이 될 것이오!” 했다. 양처보가 전차를 몰아 질풍같이 내달려 참장도(斬將刀)를 휘두르며 곡옥성의 서문을 나와 맹명시를 추격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진양공이 선진을 능히 용납했기 때문에 패업을 이어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시에 이르기를, “부인이 경솔하게 무장들의 공을 무너뜨리니, 당시에 선진은 노기가 충천했네. 얼굴을 닦고 화를 내어 말하지 않았으니, 비로소 진양공이 패업을 이었음을 알 수 있구나.” 했다.
卻說,孟明等三人,得脫大難,路上相議曰:「我等若得渡河,便是再生,不然,猶恐晉君追悔,如之奈何?」比到河下,並無一個船隻,嘆曰:「天絕我矣!」嘆聲未絕,見一漁翁,蕩著小艇,從西而來,口中唱歌曰:「囚猿離檻兮,囚鳥出籠。有人遇我兮,反敗為功。」孟明異其言,呼曰:「漁翁渡我!」漁翁曰:「我渡秦人,不渡晉人!」孟明曰:「吾等正是秦人,可速渡我!」漁翁曰:「子非崤中失事之人耶?」孟明應曰:「然。」漁翁曰:「吾奉公孫將軍將令,特艤舟在此相候,已非一日矣。此舟小,不堪重載,前行半里之程有大舟,將軍可以速往。」
한편, 맹명시 등 세 사람이 죽을 고비에서 풀려나, 길에서 서로 상의하기를, “우리가 만약 황하를 건널 수 있다면 다시 살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오히려 진양공의 후회가 두려우니 어찌하면 좋겠소?” 했다. 그들이 황하 가에 도착하니 한 척의 배도 보이지 않아서 탄식하기를, “하늘이 우리를 버렸구나!” 했다. 탄식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어부가 조그만 배를 저어 서쪽에서 오면서, 입으로 노래 부르기를, “원숭이가 우리에서 벗어남이여, 갇혔던 새가 새장을 나왔구나.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남이여, 패전을 도리어 공으로 만들리라!” 했다. 맹명시가 그 노래 말이 기이해서 어부를 부르기를, “어부는 우리를 건너 주시오!”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나는 진(秦)나라 사람만 건너 주지, 진(晉)나라 사람은 건너 주지 않습니다.” 했다. 맹명시가 말하기를, “우리가 바로 진(秦)나라 사람입니다. 빨리 우리를 건너 주시오!”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혹시 효산의 싸움에서 패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했다. 맹명시가 응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니, 어부가 말하기를, “제가 공손지 장군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이곳에 배를 대고 기다린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이 배는 작아서 모두 태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반 리 정도 가면 큰 배가 있으니 장군들은 빨리 가십시오.” 했다.
說罷,那漁翁反棹而西,飛也似去了。三帥循河而西,未及半里,果有大船數隻泊於河中,離岸有半箭之地,那漁舟已自在彼招呼。孟明和西乞白乙跣足下船,未及撐開,東岸上早有一位將官,乘車而至,乃大將陽處父也。大叫:「秦將且住!」孟明等各各吃驚。須臾之間,陽處父停車河岸,見孟明已在舟中,心生一計,解自家所乘左驂之馬,假托襄公之命,賜與孟明:「寡君恐將軍不給於乘,使處父將此良馬,追贈將軍,聊表相敬之意。伏乞將軍俯納!」陽處父本意要哄孟明上岸相見,收馬拜謝,乘機縛之。
말이 끝나자, 그 어부는 배를 돌리더니 서쪽으로 나는 듯이 가 버렸다. 세 장수가 강을 따라 서쪽으로 반 리를 채 못 가서, 과연 큰 배 몇 척이 황하 가운데에 정박해 있었는데 강가에서 화살의 사정거리 반쯤 되었다. 그 고깃배에서 어부가 세 사람을 불렀다. 맹명시와 서걸술, 백을병이 맨발로 배를 타고, 아직 배를 저어 앞으로 나가기도 전에, 동쪽 언덕에 한 사람의 장수가 전차를 타고 이르렀는데, 바로 대장 양처보였다. 그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진(秦)나라 장수들은 잠깐 멈추시오!” 했다. 맹명시 등은 모두 놀랐다. 잠깐 사이에 양처보가 강안에 전차를 멈추어, 맹명시 등이 배에 탄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자기의 몰고 온 전차의 왼쪽 곁말을 풀어서 거짓으로 양공의 명이라며 맹명시 등에게 전하기를, “우리 주군께서는 장군들에게 수레를 주지 못했음을 걱정하여 나를 시켜 이 좋은 말을 장군에게 늦게나마 주어서 공경하는 뜻을 표하라고 했습니다. 원컨대 장군들께서는 받아 가십시오.” 했다. 양처보는 맹명시를 웃으면서 만나서, 그가 말을 받고 감사하면 기회를 보아 포박할 작정이었다.
那孟明漏網之魚,「脫卻金鉤去,回頭再不來」,心上也防這一著,如何再肯登岸。乃立於船頭之上,遙望陽處父,稽首拜謝曰:「蒙君不殺之恩,為惠已多,豈敢復受良馬之賜?此行寡君若不加戮,三年之後,當親到上國,拜君之賜耳!」陽處父再欲開口,只見舟師水手運槳下篙,船已蕩入中流去了。陽處父惘然如有所失,悶悶而回,以孟明之言,奏聞於襄公。先軫忿然進曰:「彼云『三年之後,拜君之賜』者,蓋將伐晉報仇也。不如乘其新敗喪氣之日,先往伐之,以杜其謀。」襄公以為然,遂商議伐秦之事。
그러나 맹명시 등은 그물에서 벗어난 고기이니, ‘낚시 바늘을 벗어났는데 머리를 돌려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들도 대비책을 생각했을 텐데 어찌 다시 강변으로 오르겠는가? 이에 맹명시가 뱃머리에 서서 양처보를 멀리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절하며 감사하기를, “그대 군주께서 우리를 죽이지 않고 방면한 은혜로도 이미 충분한데 어찌 감히 좋은 말까지 받겠습니까? 이번에 돌아가 우리 군주께서 만약 저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둔다면 3년 후에 내가 친히 상국에 와서 군주를 뵙고 받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양처보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으나, 뱃사공과 수부(水夫)들이 노와 삿대를 저어 배가 이미 물살을 따라, 강 한복판으로 들어가 버렸다. 양처보는 망연히 잃은 듯 근심스런 표정으로 돌아와 맹명시의 말을 진양공에게 아뢰었다. 선진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그가 3년 후에 와서 주군을 뵙고 말을 받아 가겠다는 한 말은 우리 진(晉)나라를 정벌하여 원한을 갚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지금 막 싸움에 져서 사기가 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정벌하여 그들의 계획을 막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양공이 그렇게 생각하여 마침내 진(秦)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상의했다.
話分兩頭。再說,秦穆公聞三帥為晉所獲,又悶又怒,寢食俱廢。過了數日,又聞三帥已釋放還歸,喜形於色。左右皆曰:「孟明等喪師辱國,其罪當誅。昔楚殺得臣以警三軍,君亦當行此法也。」穆公曰:「孤自不聽蹇叔百里奚之言,以累及三帥,罪在於孤,不在他人。」乃素服迎之於郊,哭而唁之,復用三帥主兵,愈加禮待。百里奚嘆曰:「吾父子復得相會,已出望外矣!」遂告老致政。穆公乃以繇余公孫枝為左右庶長,代蹇叔百里奚之位。此話且擱過一邊。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진목공은 맹명시 등 세 장수가 진(晉)나라에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괴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여 침식을 모두 폐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다시 세 장수가 석방되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띠었다. 좌우가 모두 말하기를, “맹명시 등이 군사를 잃고 나라를 욕보였으니,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합니다. 옛날에 초나라는 성득신을 죽여 삼군에게 경계했습니다. 주군께서도 마땅히 그러한 법을 시행하셔야 합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내가 건숙과 백리해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 화가 세 장수에게 미쳤다. 그 죄가 나에게 있지, 그들에게 있지 않다.” 하고, 즉시 소복을 입고 성문 밖에 나가 그들을 맞아 곡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세 장수를 다시 임용하여 군사의 일을 맡기고 더욱 예를 갖추어 대했다. 백리해가 탄식하기를, “우리 부자가 다시 만났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고, 즉시 목공에게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목공이 허락하고 요여(繇余)와 공손지(公孫枝)를 각각 좌우 서장(庶長)으로 삼아 건숙과 백리해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한쪽으로 밀어둔다.
再說,晉襄公正議伐秦,忽邊吏馳報:「今有翟主白部胡,引兵犯界,已過箕城。望乞發兵防禦!」襄公大驚曰:「翟晉無隙,如何相犯?」先軫曰:「先君文公,出亡在翟,翟君以二隗妻我君臣,一住十二年,禮遇甚厚。及先君返國,翟君又遣人拜賀,送二隗還晉。先君之世,從無一介束帛,以及於翟。翟君念先君之好,隱忍不言。今其子白部胡嗣位,自恃其勇,故乘喪來伐耳。」襄公曰:「先君勤勞王事,未暇報及私恩。今翟君伐我之喪,是我仇也,子載為寡人創之。」
한편, 진양공이 진(秦)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상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국경을 지키던 관리가 달려와 보고하기를, “적(翟)나라의 군주 백부호(白部胡)가 군사를 끌고 와서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이미 기성(箕城)을 통과했습니다. 바라옵건대 군사를 동원하여 막아야 합니다.” 하니, 진양공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적(翟)나라와 우리 진(晉)나라는 아무 원수 진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경계를 침범했단 말이오?” 했다. 선진이 대답하기를, “선군이신 진문공께서 옛날에 적(翟)나라로 망명하자 적나라 군주가 그 딸 계외(季隗)와 숙외(叔隗)를 선군과 조쇠에게 각각 주어 처로 삼게 했습니다. 그곳에서 12년을 살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선군께서 환국하여 군주에 오르시자 적(翟)나라 군주가 다시 사람을 보내어 축하하고 다시 두 여인을 우리 진(晉)나라로 보내 주었습니다. 선군께서 살아 계실 때 단 한 필의 비단도 적(翟)나라에 보내지 않았지만, 적(翟)나라 군주는 선군과의 좋은 관계를 생각하고 참으며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아들 백부호가 군주 자리를 이어 스스로 그 용기를 믿고 우리의 국상을 틈타 쳐들어온 것입니다.” 했다. 진양공이 말하기를, “선군께서는 존왕양이(尊王攘夷)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은혜를 돌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적(翟)나라 군주가 우리의 국상을 이용하여 쳐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원수이니 자재(선진)께서는 과인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시오!” 했다.
先軫再拜辭曰:「臣忿秦帥之歸,一時怒激,唾君之面,無禮甚矣!臣聞『兵事尚整,惟禮可以整民。』無禮之人,不堪為帥。願主公罷臣之職,別擇良將!」襄公曰:「卿為國發憤,乃忠心所激,寡人豈不諒之?今禦翟之舉,非卿不可,卿其勿辭!」先軫不得已,領命而出,嘆曰:「我本欲死於秦,誰知卻死於翟也!」聞者亦莫會其意。襄公自回絳都去了。單說,先軫升了中軍帳,點集諸軍,問眾將:「誰肯為前部先鋒者?」一人昂然而出曰:「某願往。」先軫視之,乃新拜右車將軍狼曋也。先軫因他不來謁謝,已有不悅之意,今番自請衝鋒,愈加不喜。
선진이 두 번 절하고 사양하기를, “신은 주공께서 진(秦)나라 세 장수를 석방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화를 참지 못하고 전하의 얼굴에 침을 뱉어 심히 무례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신이 듣기에 ‘병사의 일은 항상 질서가 정연해야 하며, 오직 예가 백성들을 정연하게 다스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저와 같이 무례한 자가 어찌 원수의 직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주공께서는 신의 직책을 파하시고 따로 좋은 장수를 뽑으십시오.” 하니, 진양공이 말하기를, “경이 나라를 위해서 화를 낸 것은 충성심에서 격발된 것이니 과인이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소? 지금 적(翟)나라 군사의 침략을 물리치는 일은 경이 아니면 불가하니 경은 사양하지 마시오.” 했다. 선진이 할 수 없이 명을 받고 물러 나오면서 탄식하기를, “내가 원래 진(秦)나라에서 죽고자 했건만 누가 알았으랴? 적(翟)나라에서 죽게 될 줄이야!”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진양공은 문공의 장례를 끝내고 강도로 돌아갔다. 한편, 선진이 중군의 장막으로 여러 장수를 모이게 하고는 묻기를, “누가 이번 싸움에서 선봉을 맡겠는가?” 하니, 한 사람이 당당하게 나서며 말하기를, “제가 가겠습니다.” 했다. 선진이 보니, 새로 차우 장군에 임명된 낭심이었다. 선진은 그가 자기를 찾아와 인사를 올리지 않아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선봉이 되겠다고 자청하자 더욱 불쾌하게 생각했다.
遂罵曰:「爾新進小卒,偶斬一囚,遂獲重用。今大敵在境,汝全無退讓之意,豈藐我帳下無一良將耶?」狼曋曰:「小將願為國家出力,元帥何故見阻?」先軫曰:「眼前亦不少出力之人,汝有何謀勇,輒敢掩諸將之上?」遂叱去不用。以狐鞫居有崤山夾戰之功,用以代之。狼曋垂首嘆氣,恨恨而出。遇其友人鮮伯於途,問曰:「聞元帥選將禦敵,子安能在此閒行?」狼曋曰:「我自請衝鋒,本為國家出力,誰知反觸了先軫那廝之怒。他道我有何謀勇,不該掩諸將之上,已將我罷職不用矣!」
선진이 마침내 꾸짖기를, “너는 신출내기 졸병인데 우연히 죄수 한 사람의 목을 쳐서 중용되었다. 지금 많은 적군이 우리나라 경계를 침범하였는데 너는 전혀 물러나 양보하지 않고, 어찌 우리 군중에 훌륭한 장수가 한 명도 없다는 듯이 업신여기느냐?” 하니, 낭심이 말하기를, “소장은 단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 보겠다는 뜻인데 원수께서는 어찌하여 저의 뜻을 막으려 하십니까?” 했다. 선진이 말하기를, “바로 이 군막에도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네가 무슨 지략과 용기가 있기에 감히 여러 장군 위에 서려고 하느냐?” 하고, 마침내 꾸짖어 쫓아 버리고 쓰지 않았다. 호국거(狐鞫居)가 효산의 싸움에서 협공할 때 공이 있다 하여 그를 써서 대신하게 했다. 낭심이 머리를 숙여 한숨을 쉬고 원망하며 물러갔다. 우연히 그의 친구인 선백(鮮伯)을 길에서 만났다. 선백이 묻기를, “들으니 선진 원수께서 장수들 뽑아 적군을 물리치고자 한다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한가하게 가는가?” 하니, 낭심이 말하기를, “내가 선봉을 자청하여 나라를 위하여 힘을 써보려 했더니 뜻밖에 선진이라는 놈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어 그의 분노를 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무슨 지략과 용기를 가졌다고 여러 장군을 제쳐놓고 그 위에 서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나를 파직하여 쓰지 않았네!” 했다.
鮮伯大怒曰:「先軫妒賢嫉能,我與你共起家丁,刺殺那廝,以出胸中不平之氣,便死也落得爽快!」狼曋曰:「不可,不可!大丈夫死必有名。死而不義,非勇也。我以勇受知於君,得為戎右。先軫以為無勇而黜之。若死於不義,則我今日之被黜,乃黜一不義之人,反使嫉妒者得藉其口矣。子姑待之。」鮮伯嘆曰:「子之高見,吾不及也!」遂與狼曋邯同歸。不在話下。後人有詩議先軫黜狼曋之非。詩曰:「提戈斬將勇如賁,車右超升屬主恩。效力何辜遭黜逐?從來忠勇有冤吞!」
선백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선진이 그대의 능력을 질시해서일세. 나와 그대가 집안의 가병을 함께 일으켜서 그놈을 찔러 죽이고 가슴 속의 분함을 푼 후에 죽어 버린다면 상쾌하지 않겠는가?” 하니, 낭심이 말하기를, “그것은 안 되네. 대장부가 죽을 때는 반드시 그 명분이 있어야 하네. 만약 불의한 일로 죽으면 내가 오늘 쫓겨난 것도 한 불의한 사람을 쫓아낸 것이 될 것이네. 그러면 도리어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럴 만했다고 할 것이네. 그대는 잠시 기다려 주게나!” 했다. 선백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높은 식견에는 내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네!” 했다. 마침내 선백은 낭심과 함께 감(邯)으로 돌아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선진이 낭심을 쫓아낸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그 시에 이르기를, “과를 잡고 적장을 참수한 용기가 대단하여, 차우장군으로 발탁된 것은 군주의 은혜였다. 힘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무슨 허물이라고 쫓겨났나? 예부터 충신과 용사는 원한을 삼키게 마련이라!” 했다.
再說,先軫用其子先且居為先鋒,欒盾郤缺為左右隊,狐射姑狐鞫居為合後,發車四百乘,出絳都北門,望箕城進發。兩軍相遇,各安營停當。先軫喚集諸將授計曰:「箕城有地名曰大谷,谷中寬衍,正乃車戰之地。其旁多樹木,可以伏兵。欒郤二將,可分兵左右埋伏。待且居與翟交戰,佯敗,引至谷中,伏兵齊起,翟主可擒也!二狐引兵接應,以防翟兵馳救。」諸將如計而行。先軫將大營移後十餘里安紮。次早,兩下結陣,翟主白部胡親自索戰。先且居略戰數合,引車而退。白部胡引著百餘騎,奮勇來追。
한편, 선진은 그 아들인 선차거(先且居)를 선봉으로, 난돈(欒盾)과 극결(郤缺)을 좌우 두 부대로, 호사고(狐射古)와 호국거(狐鞫居)는 같이 후대를 맡게 하고, 전차 400대를 동원하여 강성의 북문을 나가서 기성(箕城)을 향하여 진격했다. 양군이 서로 만나 각각 진영을 세웠다. 선진이 여러 장군을 불러 모아 계책을 말하기를, “기성에는 대곡(大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곳이 매우 넓어 바로 전차전을 벌일만한 땅이오. 그 옆에 수목이 우거져서 복병을 둘 만한 합니다. 난돈과 극결 두 장군은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그곳에 매복해 있다가 선차거가 적(翟)나라 군사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여 계곡 안으로 유인하면 복병을 일제히 일어나게 하시오. 그러면 적(翟)나라 군주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호사고와 호국거는 군사를 이끌고 지원하여 군주를 구하려 달려오는 적(翟)나라 군사를 막으시오.” 했다. 여러 장수가 계책대로 하기로 하고 돌아갔다. 선진은 본영을 십여 리 뒤로 옮겨 세웠다. 다음 날 아침, 양쪽 군사들은 각기 진영을 세우고, 적(翟)나라 군주 백부호(白部胡)가 친히 싸움을 돋우었다. 선차거가 나오더니 백부호와 몇 합을 겨루더니 전차를 이끌고 물러났다. 백부호가 백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 용기백배하여 선차거의 뒤를 추격했다.
被先且居誘入大谷,左右伏兵俱起。白部胡施逞精神,左一沖,右一突,胡騎百餘,看看折盡。晉兵亦多損傷。良久,白部胡殺出重圍,眾莫能禦。將至谷口,遇著一員大將,刺斜裏颼的一箭,正中白部胡面門,翻身落馬,軍士上前擒之。射箭者,乃新拜下軍大夫郤缺也。箭透腦後,白部胡登時身死。郤缺認得是翟主,割下首級獻功。時先軫在中營,聞知白部胡被獲,舉首向天連聲曰:「晉侯有福!晉侯有福!」遂索紙筆,寫表章一道,置於案上。不通諸將得知,竟與營中心腹數人,乘單車馳入翟陣。
선차거의 유인에 말려든 백부호가 대곡 안으로 들어오자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진(晉)나라 군사가 일제히 일어나서 공격했다. 백부호가 정신을 가다듬고 좌충우돌했으나 오랑캐 기병 백여 기가 오래지 않아 모두 살해되었다. 진(晉)나라 군사도 많은 손상을 입었다. 한참 후에 백부호는 겹겹이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나오니 군사들이 막을 수가 없었다. 백부호가 대곡의 입구에 이르러 진(晉)나라 장수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활에 화살을 메겨 쉿 소리와 함께 쏘아 백부호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히니, 백부호의 몸이 뒤집혀 말 위에서 떨어져 군사들이 달려들어 사로잡았다. 활을 쏜 사람은 새로 하군 대부가 된 극결이었다.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여 백부호는 전차에 실렸을 때 몸이 이미 죽었다. 극렬은 죽은 자가 적(翟)나라의 군주임을 알고 그의 목을 잘라 공으로 바쳤다. 그때 선진은 중군의 진영에 있었는데 백부호를 잡아 이미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들어 하늘로 향하여 연이어 부르짖기를, “우리 주군은 복이 있다! 우리 주군은 복이 있다!” 하고, 즉시 목간과 붓을 찾아 군주에게 올리는 표문을 써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장수들에게 알리지 않고 영채에 있던 심복 몇 명을 데리고 홀로 전차를 타고 적(翟)나라 진지로 달려 들어갔다.
卻說,白部胡之弟白暾,尚不知其兄之死,正欲引兵上前接應。忽見有單車馳到,認是誘敵之兵,白暾急提刀出迎。先軫橫戈於肩,瞪目大喝一聲,目眥盡裂,血流及面。白暾大驚,倒退數十步,見其無繼,傳令弓箭手圍而射之。先軫奮起神威,往來馳驟,手殺頭目三人,兵士二十餘人,身上並無點傷。(原來這些弓箭手,懼怕先軫之勇,先自手軟,箭發的沒力了。又且先軫身被重鎧,如何射得入去?)先軫見射不能傷,自嘆曰:「吾不殺敵,無以明吾勇;既知吾勇矣,多殺何為?吾將就死於此!」
한편, 백부호의 동생 백돈(白暾)은 그때까지 그 형의 죽음을 모르고 군사들을 이끌고 그 형을 지원하려고 출동하려는데, 갑자기 전차 한 대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적을 유인하는 군사인 줄로 생각하여 백돈이 황급히 칼을 손에 들고 맞이하였다. 선진이 창을 어깨에 비스듬히 꼬나 잡고 노려보며 큰소리로 백돈을 향하여 외치며 돌진해 왔다. 선진의 눈초리가 찢어지면서 흐르는 피가 얼굴에 흘렀다. 백돈이 크게 놀라 뒤로 수십 보 물러서면서, 뒤따르는 군사들이 없음을 보고 궁수들에게 명하여 선진을 포위하고 활을 쏘게 했다. 선진이 무서운 용력을 발휘하여 적군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장수 세 명과 병사 20여 명을 찔러 죽였으나, 선진의 몸에는 상처하나 입지 않았다. (원래 적나라의 궁수들은 선진의 용맹에 겁을 먹고 모두 손을 떨면서 활을 쏘았기 때문에 화살에 힘이 없었고, 또한 선진은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으니, 어찌 화살이 뚫었겠는가?) 선진이 화살에도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나의 용맹을 알릴 수 없었다. 이미 나의 용맹을 알게 했으니 적군을 많이 죽여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죽을 곳은 바로 이곳이라!” 했다.
乃自解其甲以受箭。箭集如蝟,身死而屍不僵仆。白暾欲斷其首,見其怒目揚鬚,不異生時,心中大懼。有軍士認得的,言:「此乃晉中軍元帥先軫。」白暾乃率眾羅拜,嘆曰:「真神人也!」祝曰:「神許我歸翟供養乎?則仆!」屍僵立如故。乃改祝曰:「神莫非欲還晉國否?我當送回」。祝畢,屍遂仆於車上。
선진은 즉시 스스로 갑옷을 벗어버리고 화살을 맞았다. 화살이 고슴도치같이 꽂혀서 숨이 끊어졌으나 시체는 넘어지지 않았다. 백돈이 선진의 목을 베려고 했으나 그 부릅뜬 눈과 곤두선 수염을 보고 살아 있을 때와 다르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매우 두려워했다. 어떤 군사가 선진을 알아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진(晉)나라 중군 원수 선진입니다.” 하니, 백돈이 즉시 군사들을 거느리고 절을 올리며 한탄하기를, “진실로 장군은 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고, 빌기를, “신인이여, 우리가 적(翟)국으로 모시고 가서 제사를 지내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신다면 누우시기 바랍니다.” 했다. 그러나 선진의 시신은 여전히 서 있었다. 백돈이 다시 빌기를, “신인이여, 진(晉)나라로 돌아가시고자 함이 아니십니까? 제가 마땅히 보내 드리겠습니다.” 했다. 빌기를 끝내자 시체가 마침내 전차 위에 쓰러졌다.
要知如何送回晉國,且看下回分解。
어떻게 진나라로 돌려보냈는지 알고 싶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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