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44)
고잉 고잉 곤
새가 나를 오린다
햇빛이 그림자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구멍이 들어온다
내가 나간다
새가 나를 오린다
시간이 나를 오리듯
오려낸 자리로
벌어진 입이 들어온다
내가 그 입 밖으로 나갔다가
기형아로 돌아온다
다시 나간다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내가 없는 곳으로 한 걸음
새가 나를 오리지 않는다
벽 뒤에서 내가 무한히 대기한다
- 김혜순(1955- ), 『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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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편을 못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편을 모르는 이들은 불편을 안 겪은 이들이고, 불편을 못 느끼는 그들을 위한 획득하지 않은 시스템이 이미 주어져 있는 이들이고, 그들이 가는 길은 이미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어서 애써 구멍을 오릴 일이 없는 이들이고, 개구멍이든 소구멍이든 오려진 구멍을 찾을 일이 없는 이들입니다. 불편을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편으로 늘 따끔거리는 피부를 두른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불편을 해소할 시스템이 주어지지 않은 이들이고, “햇빛이 그림자를 오리듯” “나를 오리”는 이들이고, “오려낸 자리로” 겨우 “들어온” “구멍”으로 겨우 “나가”는 이들입니다. 불편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편을 못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편을 모르고 못 느끼면서도 불편한 이들의 이 “구멍”을 참지 못하여 “오려낸 자리로/벌어진 입”을 들이미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칼로 누군가의 영혼을” “찌르고 난 후에/상처를 입지 않는”(프란츠 카프카(1883-1924),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편영수 옮김, 민음사, 2024) 이들이라서 이들의 입은 거침이 없습니다. ‘많이 좋아졌다’거나 ‘많이 줬다’는 말을 마구잡이로 뱉어내는 이 거친 입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입 밖으로 나갔다가” 불편을 피부로 두르고 있는 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상처를 입고 “기형아로 돌아옵”니다. 이 노래는 돌림노래입니다.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서, 주어진 것이었으나 빼앗겨 숨겨진 것이라서, 겨우 찾아내어 제 자리에 돌려놓은 것임에도 또 빼앗아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들어 올려, 끌고 나가, 팽개칩니다. 삭제합니다. 폐기합니다. 다시 배제합니다. 겨우 오린 “구멍”을 가립니다. “고잉 고잉 곤” 사라집니다. 사라졌던 것이, 되찾은 것이, 다시 사라지고 또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불편한 이들의 불편은 다시 살아납니다. 살아나고 살아나고 늘어납니다. 그리하여 다시 “대기”합니다. “벽 뒤에서”. 또 “무한히”. 또 “무한히”. 또 “무한히”. 이 시가 수록된 시집 『날개 환상통』은 2019년에 출간한 시집으로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입니다. 이 시집으로 시인은 올 3월에 미국의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한국계 미국인인 최돈미 시인이 이 시집을 영문 번역한 시집 『팬텀 페인 윙즈Phantom Pain Wings』로 수상한 것이지요. 두 시인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번역시집이 후보작으로 선정된 적이 없어서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했습니다. 이 시집은 시인이 명명한 죽음 3부작 중 한 권으로, 죽음 3부작은 이 시집과 2016년에 출간한 『죽음의 자서전』, 2022년에 출간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를 말합니다. 『죽음의 자서전』은 시인의 임사체험을 서시로 하여 49편의 시 전부가 연작 형태로 죽음을 사유한 시들이고, 『날개 환상통』은 시인의 아버지의 죽음에서 파생된 연작 형태의 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시인이 엄마의 죽음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생성된 시가 거의 전 시집을 채우고 있습니다. 저항은 외부의 힘이든 내부의 힘이든 어떤 억압하는 힘에 대해서 굽히지 않고 버티어내는 것입니다. 저항의 형태와 저항의 언어는 무한함에도 시인의 저항의 언어는 저항을 특정한 외부 조건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특정한 이들로부터 자주 폄훼되었습니다. 제게 있어 시인은 등단 이후 꾸준히 “벽 뒤에서” “무한히” 설움을 몸하며 “대기”하면서도 저항의 언어를 발설하는 저항 시인입니다. “시는 강력한 정치이고 저항입니다. 그것을 읽어내는 데는 읽는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제가 파리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그들은 저를 ‘저항’ 섹션에 넣었습니다. 그들은 제 시가 제 욕망을 억압하는 권력 체계에 저항하는 방식의 상상력과 경험을 동반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방식 속에 저항의 방식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제 시를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사회의 바다’로 나오라 하지요. 클로드 무샤르가 쓴 책 『다른 생의 피부』를 보면 그는 저의 오래된 시들에 관한 크리틱에서 저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여섯 단어, 제 시의 위험 요소들을 색출합니다. ‘저항, 변신, 증식, 삼킴, 고통과 웃음.’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그렇게 읽지 않지요.”(『김혜순의 말: 글쓰기의 경이』, 황인찬 인터뷰, 마음산책, 2023, 223쪽) 새삼 시인의 말을 되새깁니다. (20240501)
첫댓글 김혜순 시인의 시 소개 고맙습니다. 시인이 '죽음'을 주제로 한 3부작의 시를 썼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