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재산과 공동묘지
보은산 서편 고성사에서 강진고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귀밑재가 있다. 귀밑재는 보은산이 누운 소의 형상인데 소의 귀밑에 해당하는 것이라 붙은 이름이다. 송정마을에서 서성리로 건너올 때 넘는 옛길이다. 고성사에서 강진고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는 2.5km, 왕복 5km의 산책로로 좋다. 두어 시간 산행으로 적합한 코스다. 전체적으로 편암 바위들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으며 소나무와 사스레피, 참나무류들이 많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밤나무들이 특히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성사 앞 삼나무 숲을 지나 둘레길 갈림길까지 가면 수종갱신을 위해 편백나무를 심어놓은 구간을 만난다. 이미 편백과 삼나무 숲이 있는데 자연숲을 과다하게 인공림으로 바꿀 절박한 이유가 있을까?
능선엔 좋은 햇볕에 취해 구절초가 춤을 추고 있었다. 고라니똥, 너구리똥, 오소리똥을 만났다. 말똥가리일지 멀리서 숲 위를 선회하는 맹금류 한 마리가 보였다. 숲에는 도토리와 산밤들이 여기저기 많이 떨어져 있었다. 산짐승들이 살찌우기 좋은 계절이다. 멧돼지들이 퇴치되어 보은산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인간과의 전쟁에서 결국 퇴치대상 낙인이 찍혀 밀려나고 있다. 지금쯤 어느 숲에서 도토리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을 것이다.
관목인 사스레피나무들이 많다. 사스레피는 정갈하다. 소나무 및에 사스레피나무들이 어둑한 그늘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산밤나무들. 예전 나무심기를 할 때 산밤을 많이 심었다. 구황작물의 일환으로 행해졌다. 걷다보니 3~4알 밤을 밝아 놓은 것이 길 위에 떨어져 있었다. 누구일까? 처음엔 사람이 그랬나 싶었는데, 돌 위에 가만히 올려진 것까지 보니 문득 다람쥐가 밝아놓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람쥐가 눈에 띄기도 했다. 서너알이나, 왜 그럴까? 내가 나타나 그랬을까? 아니면 밤을 먹으려다가 보늬가 너무 떫어 멈췄을까? 다람쥐도 보는 눈이 있어서 밤상태는 괜찮았다.
강진고는 예전 공동묘지 자리에 있다. 그래서 학교가 지어진 뒤에도 큰비가 내리면 한동안 인골이 흘러내려오곤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산비탈에 묘지들이 남아 있었다. 묘 위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 사스레피, 밤나무들이 보였다. 특히 공동묘지 부근에 밤나무가 많았고, 밤알도 굵었다. 일부러 밤나무를 공동묘지에 심은 것 같았다. 그런 밤나무골이 의외로 많다. 산자락 오래된 공동묘지는 살기도 개간하기도 어중간하다. 그래서 여기 저기 밤나무를 심었을까? 유독 공동묘지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 열매들이 굵다. 죽은 자들이 나무가 되고 그 열매가 산자에게 이어져 순환한다니 자연과 함께하는 문화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숲에서 죽은 자들은 그렇게 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꽃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