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단의 거목,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러운 도민상 수상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 담긴 독창적 한글 ‘선화체(仙花体)’ 개발
금제 김종태 서예가/(사)해동서예학회 이사장
(사)해동서예학회 김종태 이사장이 2016년 대한민국인물대상(학술계수상)에 이어 2017년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러운 도민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10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제4회 경기도를 빛낸 자랑스러운 도민상' 시상식에서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후보자 33명을 대상으로 2차례에 걸친 선정위원회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 최종 3인을 선정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깨우침의 시간도 가졌고 그리고 앞으로 한국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김 이사장은 독창적인 한글서체인 ‘선화체’를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한국서예신문 발행 및 (사)해동서예학회 활동을 기반으로 한국서예 발전 및 국제예술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김종태 이사장은 서예작가활동과 더불어 한국서예신문 발행인‧회장 및 한국서예명가(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선화체’… 한글과 한문이 융합된 창조적 서체
김종태 이사장은 대한민국 서예계의 거목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열정을 불태우며 40여년 서예의 정도(正道)를 걸어왔다. 그간 서예작가로서 한글서예, 한문서예, 한국화, 서양화를 섭렵했을 뿐 아니라 시‧시조‧에세이집을 출간하는 등 시․서․화 삼절의 예술인으로서 국내외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간 김 이사장은 각종 단체의 중추역할을 수행하며 서단의 활성화 및 후학양성에 기여했다. 한문서체 ‘금제체’와 한글서체 ‘선화체’를 개발한 것도 독보적이다. 특히 한문과 한글의 필법을 융합한 ‘선화체’는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하는 신선처럼 자유롭고 활짝 핀 꽃처럼 화려한 글씨로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을 담았다. 90년대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홍콩, 대만 등 세계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한 ‘한자서법교육 국제회의’에서 한국 대표로 참석한 그의 ‘선화체’ 휘호 장면은 실시간 영상으로 비춰지며 각국 대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선화체’의 리드미컬한 필획과 신비로운 선의 골격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서예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명처럼 묵향의 길을 걷다
김 이사장은 경북 경산 출생으로 유교적 가풍에서 성장했다.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이 붓을 든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방(紙榜)과 축문(祝文)을 쓰는데 익숙했다고 회고한다. 졸업 후 7년간 공직에 몸담았다가 1973년 (주)부산조선공업에 입사해 영업상무로 11년간 재직했다. 평소 근면함과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인정받았으나 과로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김 이사장은 “25일간 병원 침대에 누워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일에만 빠져있던 내가 어린 시절 붓을 들었던 추억을 되새기며 서예를 통해 삶의 존재가치를 만들고, 좋은 작품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겨야 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김 이사장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매일같이 서예학원을 다니면서 임서에 매진했다. 필력을 쌓은 후, 1984년 서예학원을 차리고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제자들에게 ‘서법’을 가르치며 늘 기본을 강조했다. 어떤 건축물이라 해도 밑바탕이 굳건히 돼 있지 않다면 그 건축물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제자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제자들이 각종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며 학원과 그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1990년에는 학원총연합회 서예분과위원장을 맡게 됐다. 당시 김 이사장은 적자에 허덕이며 해체 위기에 처한 서예분과에 흑자를 달성한 구원투수였다. 이후 꾸준한 작품 발표와 한국 서예 발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한 김 이사장은 1995년 서예인들의 친목을 위해 ‘한국서예인산악회’를 창설했다. 또 같은 해 ‘해동문학’으로 등단, 시인활동을 겸비하며 시집 <물소리 새소리>, <물구나무 서는 산>, 수필집 <많은 것을 갖기 보다는> 등을 출간했다. 더불어 전국 320곳의 산을 다니면서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월간 산>에 글을 연재하는 등 왕성한 문필활동도 펼쳤다. 새로운 산에 오를 때마다 산 이름으로 삼행시 두 편씩, 총 630여 편의 시조를 지어 산시조집 “산무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해동서예학회를 주축으로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열겠다”
(사)해동서예학회는 김 이사장의 창조적 예술철학이 오롯이 배어있는 단체로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조직을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시행한 ‘대한민국 해동서예문인화대전’은 매년 천여 명의 예비 작가들이 응모하는 공신력 있는 ‘서화대전’으로 발전했고, 수많은 초대작가들을 배출했다. 또한 군장병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Art전’을 기획, 서예작품 전시회 및 위문공연을 실시하는 등 의미있는 시간도 가졌다. 더불어 이 학회는 국제적인 명성도 견실히 쌓아왔다. 지난 1998년 미국의 메릴랜드대학과 2000년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주관한 ‘한자서법교육 국제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한국서예의 발전과 변천 과정을 소개하고 논문 발표와 작품 전시, 서예시범을 통해 한국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 바 있다.
그간 국제전시에 활발히 참여해온 김 이사장은 미국 애틀란타올림픽 문화예술단으로 참가해 개인전을 여는 등 미국에서 7차례 서예전시를 열었다. 더불어 한미동맹 50주년 및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 서예대표로 참석해 작품 130점을 기증하고, 워싱턴과 뉴욕에서 서예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일본 오사카미술초대전에도 출품했다. 김 이사장은 “애틀랜타 방문 당시, 대표작 ‘참좋은당신’이 교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교민회장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던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순방 때 문화사절단으로 참여해 한국 서예의 미적 가치를 널리 전파하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일본과 필리핀 등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작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기 위해 개최한 ‘애국가 4절까지 쓰기’ 공모전 입상자들과 울릉도, 독도를 방문해 애국 행사를 치른 것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현재 김 이사장은 한국서예신문 발행 및 한국서예명가(주) 사업 활동뿐 아니라 분당 서현1동 문화센터에서 서예 강의를 하며 후학양성을 도모하고 있다. 더불어 그의 문하생으로 모인 동호회 ‘소현재’ 제자들과 매년 이웃돕기 작품전을 개최해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다.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김치담그기 및 쌀 기부 행사에도 동참하는 등 온기 넘치는 나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