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빵나무 아래-윤후명
아침을 빵으로 때운다. 이렇게 말하니, ‘때운다’는 표현이 거슬린다. 내 아침식사도, 빵도 어설프게 대접한 느낌이다. ‘때운다’는 어디 조금 흠이 가거나 구멍이 나서 메꾼다는 뜻이었다. 예전에는 양재기든 질그릇이든 고무신이든 때워주러 다니는 등짐장수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냥 버릴 것들을 때워 썼던 것이다. 그러니까 ‘때운다’는 낡은 물건에나 갖다 써야 알맞을 성싶다. 생각이 여기쯤 오면, 내 낡은 몸에는 ‘때운다’가 맞겠다고도 여겨진다.
빵이 내 낡은 몸을 때울 때, 나는 빵나무를 생각한다. 언젠가 내 소설에도 쓴 바 있는데, 하와이에 가서 처음 그 나무를 보고 또 열매도 먹어보았다. 감나무 열매를 감, 밤나무 열매를 밤이라고 부르듯이 빵나무 열매도 그냥 빵이라고 부르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모과만 한 그 ‘빵’은 삶은 감자 맛이었다. 뽕나무과에 속한다는 상록 교목인 빵나무는 태평양의 열대 지역에서는 식량자원으로 곳곳에 재배하는 모양이었다. 빵나무 아래 살며 아침마다 ‘빵’을 뚝 따서 때울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겨울이다.
지금도 지구 어디엔가는 빵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베리아 한류가 밀려오는 이 거리엔 옷 벗은 나무들이 바람에 윙윙 울고 있다. 가로수는 왜 겨울에 헐벗는 활엽수가 주종인지, 불만이다. 여름에는 햇볕을 가려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는 햇볕을 더 받아 따뜻하게 하려는 뜻을 모르지는 않건만, 안 그래도 앙상한 계절이 을씨년스럽다. 참고로 이웃나라 일본의 가로수 통계를 보니 은행나무, 벚나무, 느티나무의 순서로 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미국 층층나무, 중국 단풍나무, 녹나무, 버즘나무, 마가목, 애기동백, 모미지바우(단풍 종류)였다. 은행나무와 버즘나무가 많은 우리와는 좀 달라도 역시 활엽수가 주종이다.
빵나무를 생각하는 내 앞에 ‘21C 제빵학원’의 간판이 나타난다. 서울 종로의 내 사무실 겸 강의실이 있는 건물의 같은 층과 아래층에 걸쳐 있는 ‘제빵학원’이다. ‘21C’는 도무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도, 화장실에 가다가 너댓 명의 남녀 학원생이 층계나 복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보면 마음이 갓 구운 빵처럼 따뜻해진다. 복도의 진열장 안에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모양의 빵들처럼 다정스럽기도 하다. 세상에는 별별 ‘날라리’ 젊은 축들이 많다지만, 빵구이를 배우는 저네들이 있는 한 내 앞의 생은 따뜻할 거라는 믿음이 솟는다. 저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하릴없이 너부죽이 죽치고 무언가를, 아마도 죽음일 듯한 그 무언가를 대책 없이 기다리고 있을 인생은 살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뒤따른다. 생의 목적이란 뭐 딴데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그 자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순간 나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갓 구운 빵 같은 소설을 쓰라고 강조하고 싶다. 물론 ‘빵만으론 살 수 없다’는 서양말이 우리에게 와서는 ‘밥만으론 살 수 없다’로 번역되어야 마땅하다면, 그렇다면, 우리 소설 지망생들에게 ‘갓 지은 밥’을 내놓으라고 해야 되겠다. 그러나 나는 ‘21C 제빵학원’ 앞에 있는 것이다.
지금 온갖 가치관의 혼란 때문에 어지럽기 짝이 없는 이 땅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치 구호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런 것들에 신물이 나 있는 내게는 어이없고 부질없는 일로만 비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지금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으리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빵 굽기를 배우는 젊은이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지금 빵 한 판을 구우리라.’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나는 그네들의 얼굴을 훔쳐본다.
눈 내리는 날, 침엽수들의 초록잎이 눈을 이고 있는 겨울 숲길을 걷고 싶다. 초록잎 위에 쌓인 눈이 말랑말랑한 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혹은, 십여 년 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북쪽 눈 덮인 숲가에서 맹물로만 먹던 딱딱한 흘레브 빵으로 보일지라도 상관없다. 그런 환상 속에서라면, 나는 먹지 않고도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누구에겐가 희망처럼 가만히 속삭여도 좋을 것이다.
화비루의 얼어붙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빵을 뜯는다. 성에 낀 유리창 저쪽으로 빵나무들 위에 눈이 내려 쌓인다. 환상이 현실이 되는 문학 속으로 유리창을 뚫고 걸어들어가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글을 써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 윤후명 소설가/ copyright monthly es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