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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 고무신 신고 학교 달려가던 옛길의 추억
산사람과 함께 걸은 강원도 평창군 금당산
강원도 평창군 금당계곡을 발밑에 내려다보고 있는 금당산은 오랫동안 원시의 기억을 보전해 온 아름다운 산이다. 40여 년 전만 해도 이 산에 묻혀 살던 원주민이 제법 많았지만 지금은 빽빽이 자란 숲에 마을 흔적조차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런 금당산을 고향으로 둔 산사람은 수풀에 가려진 옛길을 본능적으로 찾아 걷고, 지금은 아무도 몰라주는 나무의 옛 이름을 부르며 어두운 숲에서 방향을 찾는다. 생태 여행이란 가끔 이렇게 누군가의 추억 한 자락을 쫓는 일이어도 좋다.
사람이 살기에 딱 좋다는 해피 700 고지의 산마을, 강원도 평창군에는 여름에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 물 많고 깨끗한 금당계곡이 있다. 계곡을 따라 흙먼지 폴폴 날리는 찻길을 달리다 보면 물 너머로 아찔하게 깎아지른 절벽이 보인다. 그 까마득한 수직선을 타고 올라 찬란한 태양이 아름드리나무들을 살찌우고 있는 정상부가 바로 금당산(1173m)이다.
금당산에 외지인의 발길이 찾아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평창 사람들, 그도 고작해야 계곡 주변에 퍼져 사는 재산2리 주민들이나 봄이면 나물 뜯고 겨울에 땔감이나 얻으러 드나들던 산이었다. 금당계곡에 그림 같은 펜션들이 늘어서고 반듯한 길과 다리가 놓이고 캠핑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드는 동안에도 금당산은 오래도록 원시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최근 1년 새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금당산을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대체로 계곡 초입에 있는 폐교(들메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다리 건너에 있는 금당롯지펜션 모퉁이를 돌아 금당동 쪽 등산로를 오르거나, 더 걸어 들어가서 리버테라스펜션 뒤로 난 백암동 길을 택한다. 중력을 거슬러 오르듯 가파른 산길,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컴컴한 숲 터널, 간간히 나타나 숨통을 터주는 계곡과 바위지대… 아마도 그런 원시성이 지금 금당산으로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인 듯하다.
금당산 토박이의 길, 그가 불러주는 식물 이름
그러나 산은 그저 산이기만 할까? 처녀 같은 원시성을 지닌 이 산에도 한때 사람들이 모여 살던 흔적이 있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군데군데서 눈에 띄는 무너진 돌담들, 덩그러니 버려진 폐가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을까? 평창에 가면 꼭 들르면 단골집인 금당롯지펜션에 물어 할아버지 대부터 금당산에 묻혀 살았다는 원주민, 고재만 선생을 만났다. 재산2리 이장이기도 한 그는 동네에서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라 불리는 약초꾼이며, 평생 이곳에서 논밭을 일구고 사는 농사꾼이다. 금당산에서 나고 자라 유년의 기억을 모두 이 산에 빚지고 있는 그와 함께 오랜 추억의 산길을 걸었다. 이웃인 금당롯지펜션 부부와 리버테라스펜션 사장도 길동무로 따라 나섰다.
집을 나서 오갈피나무 군락을 지나 물봉선이 재잘재잘 피어 있는 산길을 걸어가는 그의 발길은 바람처럼 가볍다. 계곡을 좌로 우로 가르며 걷는 길이어서인지 물봉선이 유독 많다. “어려서는 이 꽃 두 개를 따서 장난감 지게를 만들어 놀았는데… 꽃 끝이 꼭 지게 다리처럼 생겼잖아? 지금이 한창 예쁠 때지.” 그가 안내하는 길은 지나치면 금세 수풀에 덮여 사라질 만큼 좁고 으슥하다. 굵게 뻗은 나무들은 이파리 하나 보이지 않고 허리춤을 스치는 풀들에게서 까칠하고, 찐득하고, 요상하게 생긴 씨앗들이 자꾸 달라붙어 따라온다. 그래도 앞서가는 그의 걸음은 사뿐하기만 하다.
“어려서 이 길로 걸어 다니셨어요? 아이들이 걷기에는 너무 험했을 것 같아요.”
“이 길을 매일 뛰어다녔지. 저 아래 계곡 건너 들메초등학교로 공부하러 다니고, 산을 넘어 대화까지 장도 보러 다녔는데. 그때는 산 정상에 장이 섰어. 정상에 주막집도 있었고. … 아, 여기 붕태이나무가 있네. 이거 알아요? 이 열매를 달여 먹으면 감기에 참 좋아. 열매 속에 날파리 같은 벌레들이 많은데 그대로 끓여야 약이 돼. 이걸 한 자루 따서 장에 가면 그때 킬로에 6백 원씩 줬어.”
갑자기 그의 입에서 마술 같은 식물 이름이 튀어나온다. 들은 그대로 옮기면 ‘붕태이나무’라는 것은 바로 붉나무다. 그가 열매라 한 것은 또한 벌레집. 오배자진딧물이 붉나무 잎에 알을 낳아 생긴 벌레혹으로, 한방에서는 오배자라고 부르며 약으로 썼으니 장에 가서 팔 만도 했겠다. 그래서 지금도 붉나무를 오배자나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추억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봄에는 이 나뭇가지도 까먹고 살았어. 물이 올라 보들보들할 때 먹으면 맛있지. 그땐 먹을 게 별로 없었으니까….” 캐물으면 끝도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듯하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붕태이’가 맴돈다. “뭐라고? 붕탱이? 붕태이? 거, 이름 참 예쁘네. 강원도 말이 참 예뻐. 붕태이….” 뒤따르는 일행도 ‘붕태이, 붕태이’를 입에서 놓지 못한다.
40여 년 전 이야기는 판타지 되고…
잠깐 쉬어가는 계곡. 제법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에 걸린다. 물가에 무더기로 핀 흰 꽃에서 퍼져 온 모양이다. “이건 강활 아녀?” 나뭇잎 잔에 술 한 잔 받아 마시던 리버테라스펜션 사장이 알은 체를 한다. “아녀. 강활은 더 위에 가면 있어. 이건 물구릉뎅이.”이건 또 뭔가, 물구릉뎅이? 나중에 풀꽃도감을 찾아보니 아마도 산형과의 궁궁이를 말한 듯싶다. 궁궁이와 물구릉뎅이, 어딘지 입에 달라붙는 느낌이 비슷하다. “아까 밑에서 본 것은 뭐라 그러셨죠? 이거랑 비슷하게 생겼던 거요.” “그건 물딴지. 줄기 속이 비어서 예전에 퉁소를 만들었어. 잎을 씹으면 쌉쌀한 향이 나지.” 찾아보니 그것은 구릿대를 말하는 듯싶다.
앉아서 쉬는 동안 공부하는 것이 어째 강원도 말이다. 조리는 ‘종오리’. 산죽으로 종오리를 만들어 쌀을 걸렀다 했다. 생강나무는 ‘동박나무’. 검은 열매에서 기름을 짜 여인네들 머리에 발랐다고 했다. 화살나무는 ‘흰잎나물’. 단풍이 예쁘다며 들어 올린 가지를 보고 알았다. 가지에 희끗한 날개를 보고 여기서는 흰잎나물이라고 했을까? 또 관중은 ‘호랑고비’, 산겨릅나무는 ‘산쩌름나무’, 미루나무는 ‘발레나무’라고 불렀다. 그가 술술 풀어내는 이름들이 강원도 전역에서 통용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언어는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함께 살아온 것이어서 그것이 통용되는 범주가 클 수도 아주 작을 수도 있다. 허나, 그가 부른 식물 이름들이 오래도록 금당산에 묻혀 살았던 산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이곳 고유의 이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금당산에는 언제까지 사셨어요?”
“1976년인가, 박정희 정권 때 산에 살던 사람들을 다 내려 보냈지. 전에는 이 계곡 주변에만 여덟 가구가 살고, 조 위에 여섯 가구가 살고, 산 구석구석에 참 많이들 살았어.”
“울진․삼척 공비사건 이후에 전국 산에서 화전민들을 다 쫓아냈었지. 주민등록증도 그때 생겼잖아요. 당시 강원도에만 화전민이 3만 가구에 달했다니까 여기도 꽤 살았을 거야, 아마.”
“아랫마을에서 싸움 붙으면 산에서 청년들이 이백, 삼백씩 달려 내려왔다면서요.”
금당산 생활은 그곳에 살았던 이에게도, 전해들은 이들에게도 이미 전설이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울울창창한 나무들과 수풀더미에 하늘도 땅도 다 가로막힌 적막산중일 뿐인데, 바로 앞이 논이고 그 옆이 집이고 그 뒤가 또 집이었다는 불과 40여 년 전의 옛이야기는 차라리 판타지 같다. 그 속에 억새와 삼을 엮어 초가지붕을 이고 구덩이를 깊게 파서 겨울 양식을 저장하고 살던 산사람들이 있었다. 지팡이 만들던 나무를 한 가마씩 지고 산을 넘다가 미처 못 올라 주저앉으면 점심 먹은 청년 하나가 황급히 짐을 내려놓고 땟거리를 가지러 산을 달려 내려가곤 했다. 그리고 그 길 어느 계곡에선가 소년 고재만은 아직 새것인 검은 다이아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울상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전날 어머니가 강냉이 한 자루를 지고 그 험한 산길을 넘어 장에서 사다주신 것이라 했다.
멧돼지가 먹는 가을 음식, 우리도 한 입
뚜렷한 길 하나 없는 흙 벼랑. 치렁치렁 늘어진 다래덩굴이며 잘려나간 나무줄기들을 넘어 건너고 기어서 건너고, 능선을 옆으로 걷고 위로 걷고 하다가 눈앞에 가득 펼쳐진 속새 밭을 만났다. “우와, 속새가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 봐요.” “그 위로 걸어 봐요. 소리가 아주 재밌어.” ‘바스락, 바스락’이 아니다. 바지락, 바지락? 미끈 깔깔한 속새가 꺾여 등산화 밑에서 밀리고 서로 부딪는 소리에 강원도 산 특유의 촉촉한 공기 같은 것이 서려 있다. 마른 낙엽 밟는 소리와는 그 청감이 확연히 다르다.
정겨운 속새 밭 사이로 간혹 작은 짐승이나 지나다녔을 법한 길이 나 있다. 그 길이 꺾인 어느 지점에서 고재만 선생이 부른다. “여기 봐라. 오소리 화장실이 있네.” 성격이 깔끔해 집 주변에 따로 굴을 파서 공동화장실로 쓴다는 오소리의 똥자리다. “근처에 오소리들이 있나 보다. 그 놈들 토실토실한 엉덩이 보면 참 예쁜데…. 예전에는 날다람쥐도 많았는데 요즘은 잘 안 보이지?” “옛날에는 이 계곡에 가재도 많았어. 물은 깨끗한데 요즘은 통 안 보이데.” 많이 변했다고들 입을 모으지만 아직도 금당산에는 야생동물의 흔적이 많다. 병풍바위 근처에서 본 멧돼지 목욕탕, 그리고 막 볼일을 보고 떠난 듯한 속새 밭의 멧돼지 똥자리. 그 똥자리에 다가설 때 요상하게도 은은한 꽃향기 같은 것이 진동했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너무 좋다.” 하는데 “무슨 냄새는. 멧돼지 똥 냄새지. 여기 똥 많이 싸 놨네.” 하던 고 선생의 말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맘때의 멧돼지들은 잘 익은 식물 열매며 산죽이며 취나물 뿌리 같이 몸에 좋은 것들만 파먹어서 똥냄새도 향긋하더라는 것이다.
“이거 잘 익었다. 한번 잡숴 봐요.” 고 선생이 멧돼지도 좋아한다는 다래 열매를 바닥에서 몇 개 골라 건넨다. 입안에 넣자 단물이 가득 퍼진다. “다래는 배꼽을 따고 먹으면 많이 먹어도 배가 안 아파. … 가래는 먹어봤어요? 이것도 한 번 깨 묵자.” 노랗게 익어 땅에 구르던 가래 열매를 돌멩이로 꽝꽝 깨니 반으로 갈라지면서 호두처럼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나뭇가지로 속을 긁어 조금씩 맛을 봤다. 호두와는 다르게, 고소하면서도 뭔가 향긋한 뒷맛이 있다. “이 열매를 화롯불에 구우면 아가리를 딱 벌려. 기름 자작한 속살을 파먹으면 참 맛있지. 가래 기름이 몸에 그래 좋대요.”
몇 가지 맛을 보고나자 걸으면서 눈은 자연히 바닥을 향했다. 점심때를 훌쩍 넘겨 출출하기도 했을 것이다. 산 정상에 거의 도착해서 경사진 숲 그늘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작은 산배 열매들을 보았다. 흔히 똘배라고도 부르는 야생 배나무 열매다. 보이는 것만 주워도 금방 배낭 하나를 다 채울 만했다. “이거 좀 주워 가자. 내가 술 담글게. 세 달 뒤에 꼭 다시 와요. 같이 배술 한 잔 합시다.” 리버테라스펜션 사장이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산배를 줍는다.
“이제 어디로 내려가요?” “집으로 가려면 요래 쏟아져야지.” 박재만 선생의 강원도 말에는 묘한 감칠맛이 있다. 쏟아진다니, 어쩜 이렇게 딱 맞는 말이 있을까. 아찔해만 보이는 내리막이 이내 즐거운 하산길이 되어 버린다. 정상부에 물푸레나무가 자라는 금당산은 흙이 곱고 촉촉해 엉덩방아를 찧어도 아프지 않다. 하산 길에 만난 오미자 밭은 열매가 한창 붉게 영글고 있었다. 금당롯지 아주머니는 혹시 비가 올까 준비해 갔던 비옷에 오미자 열매를 한 아름 따서 담는다. 맛있는 차 맛 좀 보자며 일행도 열매 따기를 거들었다. 한때 남도 산방에서 차 공부를 했다는 그녀는 차 담그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금당사 쪽 등산로에서 햇빛에 몸을 말리고 있던 쇠살모사를 만나고, 마을의 옥수수 밭과, 돌담 옆에 꽈리와 황기 열매가 익어가는 집들을 지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원시적인 산자락을 심마니처럼 타 넘고 놀다가 마을 고샅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 길, 금당롯지 사장의 한 마디에 모두가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바로 평창 올레네.”
* 이상은 월간 <자연과생태> 2009년 10월호에 수록한 내용입니다.
출처: my eco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