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천자문 守자 만나다
이영백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게 하나 더 서당에서의 옛 추억이 있다. 막상 어린나이로 서당 다닐 때는 정녕 가기 싫어했지만 종심하고 일곱인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추억이 돼 줄줄 왜 진작 몰랐던 것인가? 향당 물봉서당에서 “하늘 천”하여, 나도 따라 “하늘 천!”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가장 먼저 배운 한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는 네 글자에 세상의 철학이 모두 들어있다. 배울 때는 잘 몰랐다. 그 시절 어려서 철학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늘이 왜 검지? 땅은 누런데. 맞네. 과학적으로 파란색 파장이 길기 때문에 파랗다고 배웠다. 그러나 하늘이 왜 검은지를 몰랐다. 나중에 미술공부 하고나서 모든 색을 합하면 검은 색이 되어 그래서 하늘은 검다.
“천자문”은 후양(後梁)의 사람 주흥사(周興嗣)가 지었는데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는 일화가 있다. 그는 왕의 노여움에 죽음의 벌을 받게 되었으나 재주가 아까워 과제를 받았다. 하룻밤 동안에 천 자로 사언절구의 문장을 지으면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다. 천지현황으로 시작되는 글을 지어 996자에 이르렀으나 그만 막혀버려 고심하였다. 홀연히 귀신이 나타나 어조사만으로 “언재호야(焉哉乎也)”라는 결구를 일러 주었다. 그것으로 죽음을 면했다. 하루 날 새고 보니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끝까지 배우지 못하고 초등학교로 갔다. 아버지 뜻대로 서당에서 한문만 배웠어도 되겠지만, 나라의 법을 무시하지 못하였다. 천자문 배운 마지막 글자는 “지킬 수(守)”자이다. 천자문 1/4인 250자까지이다. “수진지만(守眞志滿)”은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하다’고 하였다. 천자문 딱 여기까지 배웠다.
은퇴하고 천자문을 워드 작업하였다. 일천 자 글자를 찾아 치고, 낱글자에 토 달며, 넉 자 어구풀이로 깊은 뜻을 알았다. 컴퓨터에 나오지 않는 한 글자는 “일월영측(日月盈昃)”에서 측자가 한석봉 천자문의 글자와 다르다. 측자가 “오(吳)”자의 “입 구(⼝)”가 아니고 “날 일(⽇)”이 들어간다.
천자문에서 깊은 뜻이 고대 중국역사 등 철학이 깊이 들어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니 확실히 난 수은등이다. 그것도 1/4인 “지킬 수(守)”자까지만 배우고 그만 두었으니 더더욱 알지 못한 일이 자명하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