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혈액형은 무엇인가? 상상은 모든 예술의 혈액이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버려진 역기力器
이달균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등산로 한 기슭
넝쿨을 걷어내자 어린 꿈처럼 웅크린
버려진 역기와 아령, 긴 침묵을 만났다
햇볕과 바람에 잎새들 짙어질 때
천천히 녹슬어 간 묵중한 시간의 켜
손으로 온기를 전하면 쇳덩이로 깨어날까
삶의 무게보다 무거운 기구들을
들며 지며 이곳까지 옮겨온 그는 벌써
무너진 무덤의 주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하산길은 즐겁다
역기란 몸의 부피를 키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상의 근육을 키우기도 하니까
*********************************
때가 되면 스스로 힘을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힘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 “때”를 알아차리는 시력과 청력과 촉을 갖추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과욕과 오산이라는 ‘역기’보다 무거운 집착을 먹여 살리는 자양분 때문이다. 그나마 역기는 중량이 있지만 과욕과 오산은 하필이면 “무중력”이다. 도저히 걷잡을 수 없고 내려놓으려고 하면 공중에 둥둥 떠버리고 마는 아지랑이와도 같다. 힘을 빼는 일은 떠나는 일이다. 묵중한 그들은 힘을 잃은 채 산기슭에 버려졌다.
시인은 ‘침묵’하며 ‘웅크리고’ 있던 ‘역기와 아령’의 행방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들을 가리고 있던 ‘넝쿨’을 예사로이 보지 않고 들춰내고야 마는 수색본능을 지니면서 동시에 글의 ‘근육’ 또한 심신에 붙어있는 시인이란 예감이 든다.
‘천천히 녹슬어 간 묵중한 시간의 켜’에서 고생대부터 이제 막 소멸하는 2023년 여름까지의 세상 모든 시간을 생각한다. 어떤 시간은 되레 빠르게 녹슬었다고 느껴졌을 것이고, 어떤 시간은 가볍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한 시간의 ‘켜’가 보여주는 “격”에도 불구하고 다시 ‘깨어난’ 개체와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는 모두 ‘무덤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들며 지며’ 누군가를 위해 ‘무거운 기구’를 ‘옮겨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며 그 “노고”를 염두에 두는 경우도 흔치 않다. 더군다나 살아가는 동안 그 주인이 될 이들 중에 누군가가 발굴된 ‘역기와 아령’에 대해 뒤늦은 ‘온기’라도 전할 예禮 내지는 경의敬意를 표하는 일은 지구의 “중력”보다 더 체감하는 인간사의 ‘무게’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온몸으로 견디게 해 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자세다.
당신의 혈액형은 무엇인가? 상상은 모든 예술의 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