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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과 眞理에 대하여 …. (원기 86. 2. 28)
그동안에 별일 없었습니까. 모두들 신광들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 봄이 돌아와서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활선법으로써 20단계를 설명을 해서 원고 작업에 들어 갔습니다. 이제는 禪과 眞理라 이렇게 해 가지고 性理라는 말이나 진리라는 말이나 같은 말이지마는 주로 원불교전에 바탕해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원상의 진리다. 일원상의 진리를 말씀드릴려면 마음 먹으면 그냥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생활하는 그런 마음으로 또 학교에서 배우는 그마음으로 그렇게 하면 진리설이 안됩니다. 진리가 마음에 닿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가 이 진리를 설할려면 또 진리를 들을려면 반드시 선을 해야 하거든요, 선을 햇거 선경에 바탕한 그거라야 진리를 설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설하는데 선을 해야 한다하니까 그럼 앉아서 항상 이렇게 좌선만 해야한다말이냐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활선이니까 활선속에는 좌선도 들어있고, 염불선도 들어있고, 심성선도 들어 있고, 기도선도 들어 있고, 참회선도 들어 있고, 불공선도 들어 있고, 청법선도 들어 있고, 다 들어 있는 것이거든,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다 선이란 말씀이죠.
그러니까 처지 처지 따라서 좌선 할 때는 좌선을 하고 또 처지 따라서 염불하게 되면 염불을 하고 처지 따라서 불공하면 불공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전부 종합해서 활선이라 그래. 생활선이죠.
그러니까 앞으로 시대라는 것은 활선으로써 나가야지 지금은 모든 통신 관계도 휴대폰 가지고 다 하게 되고, 모두 인터넷으로 연락하게 되고, 대중을 모으지 않아도 전부 그런 것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서 옛날 그 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이 모든 종교라는 것은 이세상보다 앞서가야 하는데 앞서가지 못하고 옛날 옛적 그런 것은 그대로 가지고 해 가지고는 언제 이것이 현대 과학문명이 앞으로 가는데에 이놈을 잡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냐말이여.
그러니 앞으로 나가는 그것은 딱 포용해서 자유로 활용할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할 것 아니여, 그래서 활선법이 되는 것이예요. 아주 좋은 법이 나왔다 하더라도 내 앉아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든가 선만 하는 것은 절대 시대에 용납할 수 없어, 추상적인 것도 안되는 것이여, 추상이라는 것은 그냥 말하는 것 보다 더 못해. 현실 그대로 말하는 것 보다 더 못해요.
실지로 그집에 가서 거기에 바탕해서 이렇게 솟아져 나오 버려야 그것이 진리설이 되는 것이라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활선법으로써 선에 바탕해서 해야한다. 진리를 설할 때는 반드시 선을 해야한다. 그러면 활선을 하면 선경을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짧은 시간에 전부를 말할 수 없지만,
첫째 無空空이여, 공아닌 공이다. 선경이라는 것은 공아닌 공이라는 것은 무슨말이냐 처음에 공이라는 것은 모든 사심 잡념을 없애 버렸다. 다 없어져 버렸다. 하나도 없이 깨끗이 청산해 버렸다. 이것이 공이라 말이여.
공했는ㄷ 공한 그 깨끗한 바탕이 또 있다말이여. 깨끗한 바탕이 또있어 마치 청소를 할 때에 청소를 싹 했는데 모든 오물을 치워 버렷어 그러니 싹 비워 버렸지 그다음에 빗자루테가 남아 있어. 이것은 공이 아니다 그말이여. 빗자루 테도 없어져 버려야 한다.
그것이 공마저 공해 버렸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빗자루 테가 없어져 버렸으니 또 무엇이 있지 않느냐 그것마저 없애라 이러한 진경을 선경이라 그래. 선을 하지 않고는 그런 진경의 맛을 못봐. 기다 아니다 이런 상대적 빈 것 가지고는 진리설이 될 수 없고, 성리설이 될 수 없다. 이렇기 때문에 활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또 無圓圓이여. 두렷함이 없는 두렷함이다. 두렷한 것이 아니여. 두렷이 없는 두렷이다. 이말은 하나의 종이에 비하면 두렷하게 그림을 그렸거든 그러니 그림이 아니다. 그림이 아닌 그림이여 두렷한 것이 없어져 버리니까 하얀 백지가 남아 있다말이여. 종이가 종이도 없애 버려야 한다. 종이도 없다 그것이 참 두렷한 자리다. 그것이 무원원이여. 두렷함 없이 두렷한 것이다. 이걸 이해하신다면 제가 말씀드린 이 과정에 따라서 마음 세계가 그렇게 되어지고 계시다면 상당히 근기가 높으신 분이여.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 하여도,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고 멍하면 아직 십년은 더 듣고 공부해야해.
그다음에는 無正正이여. 바름이 없이 발라야 한다. 이것 역시 선경을 말한거여. 이건 무엇을 말하냐면 바름이 없다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죄 아닙니까.
죄가 없다는 소리거든 죄가 없으니까 바름이 없는, 죄가 없으니까 죄인이 없다. 죄인이 없으니까 감옥이 필요없다. 죄가 없는 것은 무정정이고 감옥도 없다 감옥없다 감옥이 없으면 감옥이 아닌 세상이 있을 것 아니냐, 그것도 없다 이것이 무정정이여.
바름이 없이 바른 것이다. 이것만 저녁에 들으시고 가만히 연마하셔 가지고 고개 끄덕 끄덕 하게 되면 진리를 설하실 수 있는 분이여. 그러니 어떤 분들이 이런 법문을 듣고는 남의 등을 닥 치고는 내가 너를 때린 것이 아니여, 내가 때린 것이 아니니까 니가 맞은 것도 아니잖냐, 괴변이다말이여.
아파서 죽겠는데 이렇게 말한다말이여. 그럼 때린 사람도 없고, 맞은 사람도 없는 자리아니냐, 본래 한자리도 없는데 뭐 그것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 이렇게 괴변을 할 수 있다. 남의 물건을 훔쳐 가지고 니 물건과 내물건이 둘이 아니잖냐 본래 한물건도 없는 자리인데 그걸 가지고 니물건 내물건 삼아 가지고 왜 남이 가져 갔니 안가져 갔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에게 있는 것이 너에게 있는 것이고, 너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것 아니냐. 본래 그 물건이 어디 있는 것이 아니잖느냐 이러한 괴변설이 나오기 싶다. 이건 추상으로 하는 소리여, 그러니 선사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많이 나가거든 잘못하면 이런 것도 극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선경이라는 것은 한마로 말하면 한량없이 비어있는 자리다. 한량없이 비어있기 때문데 한량없이 밖으로 포용하고 있다.
또 한량없이 저장되어 있다. 무엇인가 그 안에 있다.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무엇인가 다북차 있다. 감추어져 있다. 한량없이 빈자리는 우주만유 삼라만상이 이대로 있지마는 전부 그 품안에 벗어날 수 없이 되어 있다. 전부 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 한까지 개미 한 마리까지 전부 그안에 있다. 그것 포용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무진장이다. 그 속에 다북차 있다. 이것이 무한공자리영. 지극히 빈자리.
두 번째는 한량없이 두렷한 것이다. 두렷하기 때문에 무한히 열려있다. 누구든지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게 한정없이 열려있다. 열려있기 때문에 한량없이 통하고 있다. 그러데 이렇게 한량없이 열려 있고 통하고 있지마는 선을 안하는 사람은 다 막혀 있다. 다 막혀 있고 통하지 못해.
말한마디에 좌우가 되어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안되는 것이거든 그것보고 원공이라 두렷한 공이라. 아까는 처음에 말한 한량없이 공한 자리는 眞空이라. 眞이 다북찼다. 세 번째는 한량없이 바른 것이다. 無限 正이다. 바를정자 이것은 한량없는 의여 옳을의자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있지마는 하나도 그른 것이 없이 그대로 옳은 것이다.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게 갊아 있는 것이다. 또는 한량없는 법이 되는 것이다. 바를정자가 두가지이다. 그래서 이것을 正空이라 한다. 이것이 활선의 진경이다. 적어도 이런 심경이 되어야 일원의 진리를 설할 수 있다. 말을 들으면 아 그런 것이야 다 알만도 하지 그런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하지마는 이 진경에 가지 않고 먼 산을 쳐다 보면서 저 금정산은 부산에서는 경치 좋은 산이다. 형상으로 아는 것 하고 반드시 발아래 딛고서 좌우를 보면서 어디 가닥은 어떻게 생겼고, 어디 가닥은 어떻게 생겼고 옆가닥은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확인해야해.
그래야 참으로 금정산을 아는 것 아니여. 그래야 진리를 설할 수가 있어요. 그냥 추상으로 무엇인가 바라만 보고 한량없이 빈 것이다. 한량없이 두렷한 것이다. 한량없이 바른 것이다. 이정만으로는 어렵다. 알멩이가 들어야 해. 꽃이 아무리 좋아도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는 것이예요.
이것이 일원상의 진리이다. 대강 말하자면 그래서 꼭 선, 활선부터 해야한다. 선을 하지 않고 그냥 말로만 하는 성리설을 한다거나 진리를 설한다거단 이해 할 수 없는거여. 그것보고 도지적이라 도를 훔치는 도적이다. 그 발딱하는 재주가지고 재주로 풀어내면 안된다.
재주로 풀어낸 것은 얼마 안가면 사람들이 가치없이 알아, 힘이 없어 그 진경에 바탕해서 풀어낸 진리설이라야 무게가 있고, 갈수록 참고가 되고, 참 거기에 마음이 와 닿고 말이여, 두고 두고 봐도 간단한 말 같지마는 상당히 중요한 것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가 본원의 자리예요. 바로 우주만유 본원이라 그랬제. 그러니가 성리적으로 진리적으로 설하니까 이렇지마는 그냥 평범하게 심성적으로 볼 때는 본원의 자리에 합할 줄 알아야 해, 내 마음이 합해야 하고, 본원의 자리에 통해야 하고, 본원의 자리와 똑같이 되어 버려야 한다.
합한다는 소리와 통한다는 소리와 되어지는 것 이것 삼대력 아닙니까. 이 속에 무한공, 무한원, 무한정이 다 들어 있는 것이예요.
꽃한송이 그냥 이렇게 턱 들었지만 남이 볼때에는 꽃한송이를 손에 이상하게 들고 있지마는 벌써 우주만유 근본자리를 들고 있다. 크게 빈자리를 들고 있다. 크게 두렷한 자리를 들고 있다. 크게 바른자리를 들고 있다. 더크게 말하면 우주 전체를 잡고 있다.
또 우주만유 전체를 꿰뚫어 통하고 있다. 우주 만유 전부를 쓰고 있다. 바르게말이여. 꽃한송이를 잡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거 진리설이고, 성리설이예요 그런 것이 내마음의 흉금을 통해서 나와야 진리설을 설할 수 있는거예요, 그 자리를 간 사람이 그렇게 된 사람은 본원의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우주만유 본원, 본원은 그렇게 생긴 것이다. 본원이라고 했기 때문에 우주 만유 본원이다 그랬으니까 원자는 근원이다는 원자여 물도 근원이 있어야 물줄기가 있고 맥이라는 원자거든 이자가 근원이라는 뜻이예요, 그냥 뿌리와는 달라요.
그 근원 맥줄을 타고 연해 가지고 졸졸졸 흘러 가는 것 같이 한량없이 연해 갖기ㅗ 간다. 이것은 제불제성뿐만 아니라 범부중생뿐만 아니라 일체만유가 다 전부 근원에 바탕해서 맥을 이었다말이여.
그래서 우주만유의 본원이다. 그러면 우주만유의 본원이면 우주만유의 고향이다 그소리인데 전부 자기 고향인데 고향이라면 똑같은 모두 사람몸으로만 도이ㅓ야 할텐데 왜 개미가 되고, 벌레가 되는 것이냐, 그렇게 구분이 있냐 그러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여, 자기가 지은 되로 따라서 처음에는 다 똑같이 이렇게 본원의 자리 똑같은 형태로서 되었지만 그 자체가 전전긍긍 나가면서 자꾸 마음작용이 달라 행동이 달라져 버려.
행동이 달라져 가지고 자꾸 떨어져 가는거여. 자꾸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서 한량없는 세계로 떨어져 가지고 먼지가지 되어버려 먼지세계가지 떨어져 버려 먼지 고향도 되니가 수억만년전 전생에는 먼지도 본원의 자리에 있는 그자체거든 홀연 일유 경치다말이여. 하나 하나가 그런데 그 작용 따라서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서 한량없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그네가 발버둥치며 그 자리 본원의 자리를 떠니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이 부처님들이여, 제불제성이라 제불제성은 발버둥치고 그 본원의 자리 떠나지 않고 그것이 이제 내마음 대중해서 노력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심인이라는 것이여. 심인이라는 그말은 다른말이 아니라 마음도장을 받았다.
마음도장이면 공각, 텅빈자리를 깨친 도장이여, 원각 두렷한 자리를 깨친 도장이여, 정각 똑바른 자리를 깨친 것이여, 하나로 통잡아서 인이라 그래. 심인. 대원정각의 인이여, 대원정각이라는 것은 대각하면 통체로 깨쳤다는 소리고, 원각하면 두렷이 걸리고 막힘이 없이 깼다는 것이고, 정각하면 개개물물 형형색색 그대로 그 자체를 바르게 깼다는 말이거든 그래서 대원정각이여.
그래서 하나의 각인이라 말이여, 각인을 갖기 때문에 진리께서 제불제성을 향해서는 말과 말이 없지마는 너희들은 우주만유 일체생령들을 제도할 능력이 있다. 띄워주는거여.
우주만유를 포용할 권한이 있다. 일체생령을 결렬시킬 권한이 있다. 인연을 맺어주는 권한이 있다. 본원 자리를 대행 시켜주는 권한이 있다. 여려분 힘으로써 견성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양성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솔성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또 영통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도통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법통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을 대행시키는거여. 그것을 일러서 심인이라 그래. 옛날에 사람이 사는 세계에 암행어사가 어사패 그것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삼천이 떠들석 하지 않아 지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도 못봐 무서워서.
그런데 심인을 가져 놓으면은 일체생령이 머리를 못드는거여 무서워서 하지만 사람들이 철이 없으니까 아기들이 무슨 철이 있습니까 어른 수염도 잡지 아기들은 그냥 함부로 해 버리고 그러지만 아주 무서운 것이거든 심인, 대원정각의 심인 각인이다.
그러니가 그 심인 중에 각인을 가지고 성리설을 하는거여. 남이 성리설을 할 때에 성리에 대한 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견성인가도 시킬 수 있는 것이고, 도통인가도 하고, 너는 솔성인가는 되지마는 법통은 아직 못 되었다. 이럴 수 있는것이고, 너는 견성은 했지마는 도통은 아직 안되었다. 너는 양성을 잘하지마는 영통은 안되었다. 너는 삼성 삼통을 다했다. 인증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이 세상에 어는 회상이나 물론하고 사람들은 그 그릇을 인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모자라요, 문제예요. 모든 것을 심인을 인증할 수 잇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요, 인증을 못하고 있으니 전부 아닌 것을 맞다하고 있으니 이 세상이 허수아비 세상이 되어 버려요. 형식공부가 되어 버리고 참 공부가 안돼요.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거예요.
여러분 국제선원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합니다. 얼마 모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참 이것은 인위적으로 된 것이 아니여, 다 진리가 시켜서 되는 것이거든 이것도 심인의 하나의 증거여,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여러분들이 공부해 가지고 참 주세불이 되어라 주세불이 대종사님 꼭 한분뿐입니까. 대종사님 정신 가지고 그대로 하는 분들이 다 주세불이여.
그 세상에 주인되는 부처들이다. 주세불 중에 제일 큰 주세불은 대종사님이지마는 우리는 그다음 작은 주세불이다, 손자 주세불이다, 동생주세불이다, 조카 주세불이다, 형님 주세불이다 이렇게 모두가 다 주세불이여. 주세불 사람이 따로 잇고, 못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공부해서 진리자리. 마음 본원자리에 합해 가지고 거기에서 법계에 심인만 얻어 버리면 되어요, 심인을 얻는 때에 그냥 내가 얻었다하면 안되는거여. 옛날에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께서 저 허공에서 성성식을 하고 불보살들이 모엿는데 우담발화를 서로 주고, 받고 하다가 우담발화 속에 큰 여의주가 하나 있는데 그놈을 그 누구를 주었다말이여. 누구한테 전했어. 그런데 전해 밪고 그분이 인제 이튿날 법설을 했어. 그러니까 참 상상밖의 과거 같은 법설이 아니고 다른 법설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대종사님께서 어젯밤 꿈에 내가 이러이러 했는데 그 아무개가 견성을 했다.
그렇게 인가를 할 수 있는 분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예요.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해. 그러니까 그 심인이라는 것은 형상이 없는 도장이여. 도장이라도 진흙에다 찍은 도장은 비치지 흔적이 있어 그것보고 이인이라 그래.욕심의 세상에서 주고 받고 하는 것은 이인이여.
또 수인이여. 물에다가 찍어 물에다 찍은 것은 찍을 때는 있어 들어 버리면 없어져 버려 그것보고 수인이라 그래. 심인은 공인이거든 허공에다 딱 찍으면 찍을 때도 없고, 찍고 난 후에도 없잖아. 공인이여 이것이 정식 심인이다.
그러니까 또 본성이라 그랬는데 본원의 자리와 심인의 자리는 알았죠, 본원의 자리를 그대로 진공, 원공, 정공을 그대로 이어 받은 분들이 부처님이거든 본원의 자리 그 진경 그대로 당신들 마음 가운데 이어 받은 것이 심인이제 부처님께서는 또 어떻게 되냐면 모든 중생들을 본성의 세계로 이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니까 범부중생은 본성이다 그랬어, 우주 만유는 유정무정 전체는 본원이다 그랬고 제불제성은 심인이다 그랬고, 그러니까 본원의 자리나. 심인의 자리나, 본성의 자리나 똑같은 것이여.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다르냐. 본원은 우주만유 전체를 통 잡아서 말하는 것이고, 심인은 제불제성만이 본원의 자리를 그대로 체득한 분들을 말하는 것이고, 본성자리는 범부중생은 만유는 아니여, 이거는 범부중생은 다 본성이 있다. 있으니가 너도 하면된다는 말이 들어 있어.
너도 하면 부처님같이 심인을 얻을 수가 있고 본원에 합할 수가 있다. 이것을 이 렇게 추켜 올려서 희망을 주셨어요. 범부중생의 본성이라 그말이 심인이다 본원이다. 그리고는 그냥 쳐다만 보고 있지 나는 죽어도 안된다. 후생에도 틀렸다. 좀 죄성스러운 말이지만 이 종교가 너는 안된다. 반드시 어디에 매달려 살아서 그분한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래 버리면 지금 시대에 안맞거든 바로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 가라, 자기가 바로 부처다. 너도 바꾸면 된다. 이래야 자신이 있고 새로운 삶을 사는 힘이 나는 것이지 전부 매달려서 하라는 데로 해라. 거기에다 바치고 해 버려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종교노예라 말이여.
이렇게 信이 들어가 버리면 죽어라 하면 죽어야 한다말이여. 어느 어느때 이때 돌아오면 그때 죽으니까 그냥 내말대로 이때 죽어 그래야 천당에 간다. 이때 죽지 못하면 천당에 못간다. 해 버리면 안된다말이여. 그러니가 노예처럼 딱 얽매여 있으니가 천당에 갈려면 내가 죽어야 할란다보다 하고 죽는거여.
이런 종교가 있잖냐말이여. 예를 들어서 쉽게 해결 되겠어요. 뚝 열려 있는 법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다. 자기가 바로 부처다 자기가 바로 우주 본원의 자리이고, 자기가 바로 심인을 갖고 있는 자리이고, 그마음이 바로 본성이다. 한마음만 개치면 본성자리이다.
이렇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가 본성을 회복시키는 방법이여. 사람이 희망이 있다말이여. 아무리 다녀도 나는 안된다. 다 소용없는 것이. 거기에 매달려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러다말아버려.
그러기 때문에 희망을 공부할려니까 이 자리를 갔다가 신앙의 대상을 만들어 놓고, 수행의 표본을 시켜 놓았어 본성이 있다 모두 하면된다. 그렇게 믿어라 그것이 신앙의 대상이여 진리의 대상이여 하면된다 이것이 수행이여, 수행의 표본을 삼는 것이여. 그런 의미가 들어 있는거여. 본성이 있으니까 너도 하면 되는데 그렇게 않고 있냐 하면되는데 꼭 믿어라 믿고, 믿고 믿어서 뿌리없는 뿌리까지 확연히 믿어 버리면 일은 절반이 된 것이여 거기에다 닦아 버리면 되어가는 거라 말이여.
본성이 비쳐 날마다 본성자리에 가서 살 수 있는 것이여. 그러니가 본성자리 공부 시키니까 불리자성이다 그러지 자성을 떠나지 마라 불리자성이다, 불리법성이다, 불리개성이다, 불리공성이다 해 가지고 본성품을 떠나지 마라.
이런 공부를 하면 일취월장이여 날마다 사람이 달라져 나는 소용없어 상대방에게 매달려 가지고 그사람 하자는 데로 하고 살아야 해. 그러면 백살 먹어도 천살 먹어도 항상 어린애여 자력이 없어.
그러고 죄만 온통 지어 놓았으니 후생에 살 때에 그사람 천도하고 이끌어 내겠어 아하 내가 사기를 당했구나 큰일났구나 나는 어떤 종교에 대고도 높은 종교를 대고도 이말해요, 지금은 다르다 그런 교육은 말아라 그러면 안된다. 모든 신도들이 불쌍하지 않냐 그렇게 해 버리면 감탄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교리가 그런 것을 어쩌겠냐 그러니까 중간 시조가 나와야 할 것 아니냐 중간 시조가 나와서 턱 뜯어 고칠 수 있는 그런 성자가 나와야지 일곱 살 여덟살 먹었을 때 하도 울고 하니까 호랑이하면 울음을 뚝 그쳐 곶감 준다하면 뚝 그처 지금 어른이 우는데 곶감 줄테니 울지마시오, 호랑이 오니가 울지 마시오하면 되겠냐 안되는 것이다.
유치원 때 어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했지마는 지금 이세상은 안된다말이여 왜 종교인들이 모든 국민들을 노예화 시키냐 나는 국제선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말하는 거예요. 올바로 이끌어라고, 아무리 성리설을 해도 바탕이 없는 성리설이라는 것은 뜬구름과 같이 되어 버려. 듣기는 좋게 훌륭한 성리설 같지마는 바탕이 없다 뿌리가 없다. 그러면 결국 안되는 거여. 자기가 지쳐 버려 한도가 있으니가 그리고 사람도 없어져 버려.
그래서 본성이라는 것은 수행상으로 볼 때 항상 표준을 어떻게 갖냐 첫째 무심심성이여 마음 없는 마음성품이다. 무청청성 맑음 없이 맑은 성품이다. 또 무명명성이여 밝음 없이 밝은 성품이다. 무지지성이여 지혜로움이 엇이 지혜로운 성품이여. 무취취성이여 취함이 없이 취해지는 성품이다. 무행행성 행함이 없이 행하는 성품이다 이것이 이제 본성이여.
한말로 말하면 심성, 청성, 명성, 지성, 취성, 행성인데 이걸 종합하여 말하면 무심심성과 무청청성은 마음의 집을 말한거여. 내마음 자성의 집을 말한 것이여. 자성의 심궁, 성궁 또 명성, 지성은 심도 마음의 길을 말한 것이여. 취성, 행성은 내 마음이 살아있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첫째 마음의 집이다. 이 인간이 몸이 사람들이 내 몸이 사는 집 없는 것을 걱정을 해. 집을 구할려고 애를 쓰고, 접방살이 면할려고 애를 쓰고, 접방살이 면하면 어쨋든지 집한채 살려고 애를 쓰고, 집한채 딱 사 놓으면 더 좋은 집 살려고 애를 쓰고, 또 좋은집 살면 돈 여유가 있으면 한집 또 더 사서 키울려고 애를 쓴다고 자꾸 집을 장만한다고.
그러니까 아무리 해도 집을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내집 한체 없이 전세도 못 해 가지고 살아. 돌아다니다 보면 좋은 집도 많아요 부산시내도 좋은 집도 많고, 좋지 못한 집도 많아 좋은 집은 돈이 많은 사람이 지은 집이고 그래. 저 다리 밑에 사는 사람은 거지들이여. 거기를 집 삼고 살고 있어 그와 같아요. 사람은 지금 이 육신이 내마음 집입니다.
내 몸둥이가 내 마음 집이여. 또 마음속에 자성의 집이 있어 마음의 집은 여기 있으니까 살고 있는데 성품의 집 본성의 집이 없으니까 집이 없어 버리면 후생에 이제 이 몸은 못 가져 버려 마음씨를 못 가져요, 짐승 몸짓으로 떨어져 버려요. 짐승 보세요. 다 몸집은 있잖아요, 짐승들은 마음작용하는 집이예요. 마음을 작용하고 나타난 집이 짐승 몸둥이여 그것 보고 몸집이라 그래요.
그것 뿐입니까 벌레 같은 것 보세요. 꾸물꾸물 배를 대고 기어 다니는 벌레들 그것이 마음집이거든 나무도 속에서 기운만 통하고 있지 나무도 집이여. 그 집도 천층만층이여 한정이 없어.
그중에서 최상급이 사람 몸집이여 사람 몸집속에서도 부처님 몸짓이 얼마나 좋습니가 마음이 확 트이고 몸은 툭 드러나고 덕스럽게 나타나고 그냥 그 몸짓 하나를 가지고도 천하를 턱 싸주는 그런 것이 있잖아 부처님들은 그러니까 육신의 집 내 몸이 사는 이 집을 잘 짓고 살기 위해서 온갖 죄를 다 짓고 살아 세상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보니까 마음집을 자꾸 상하고 내 성품의 집을 상해 가지고는 후생에 그것이 못돼.
여러분은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국제선원 하나 잘 만들어 내면 후생에 마음ㅈ비을 좋게 만들죠, 좋은 몸짓을 만들어 낼수 있는거여. 나는 이렇게 선방을 할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복짓게 할려고 하는 것이여. 좋은 집을 장만 시킬려고 하고, 영생에 좋은 집을 가지고 살게 할려고 하는거여.
대통령이 하는 일도 중요하고 모든 장관들이 하는 일이라든가 모든 회사 사장들이 하는 일도 다 중요하지마는 나는 자부심을 자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좋은 일이 국제선문화원을 발전시키는 이 집을 잘 지으면 참 큰 일이다. 어떤 사람은 십년간을 기술을 배워 가지고는 십년간을 기술자로 해서 수십억을 벌었대요. 나는 육십년 가까이 이 선공부 해 가지고는 여태 집한채 엇이 이렇게 사느냐.
이제 부터 선방을 하나 만들어야 겠다. 이래서 시작한 것이거든 혼자는 안돼. 다같이 그래야겠다고 여러분들이 전부 나같은 입장이 되어 가지고 내 마음이 되어 가지고 이 사람과 여러분과 내가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한 번 해 내자.
이렇게 하면 다같이 하기 때문에 가면 다같이 똑같이 가서 좋게 살아야지 한사람만 살면되냐말이여.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가가 잘되나 안되나 애를 써서 하기 때문데 절대 후생에 가서 좋은 몸짓 받습니다. 자신있습니다. 하지만 혼자는 싫다말이여. 다같이 해야해. 그러니까 禪房하나 잘 만들어 선방집 禪하는 집을 만들어 내야 좋은 몸집을 받는거여. 이 심궁이 바로 수양이여 사람의 마음이 집이 없으면 마음이 둥둥 떠 가지고 좋지 못하게 되어요. 죽은 후에 몸을 못 받고 수라보로 령만 떠다녀 환영도 못 받어 귀신들이 몸집을 못 받아 놓으니가 둥두 떠 다니는 수라보, 아귀보, 지옥보나 받고말이여. 도산지옥, 요탄지옥, 화탄지옥 이런 세계에서 산다말이여.
남이 볼때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령 자체는 전생에 그마음 그몸 그대로 사는 거여. 사람이 볼때는 아무 것도 없는 형상이제. 좋은 몸집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활선을 잘해서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 잡된 마음이 싹 청산이 되어 버려야만이 거기에 좋은 자리가 생겨.
자성의 집이 생겨, 자성의 집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계 딱 돌아오면 턱 안주하면 안정이 딱 되어 버리거든 자성에 집이 없는 사람은 마음 들어 갈 곳이 없으니가 누가 무어라고 하면 그냥 쏘아 부치고 같이 욕을 퍼붓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면서 눈은 뒤집어져 가지고 그래 가지고 병이 나버려 저녁내내 끙끙 앓고 드러누워서 그사람을 내일 아침에 어쩔것이냐 홧병이 생겨, 집이 없어 마음에 들어가서 살 집이 없어 내 성품이 그러니 둥둥 떠 돌아 다니는 마음, 뜬마음이 되어요.
그래서 이 선공부를 하고 이 활선 여기 참석만 해도 선이 돼. 여기 다녀만 가도 선이 되어서 달라지는 거여. 녹아나는 것이고, 그래서 마음집을 장만하는 것이고, 또 무명명성, 무지지성은 그것도 마음의 집이다.
아침 부터 저녁가지 도로를 다니면서 가만히 보면 이것 전부 길 아닙니까 전부 왔다 갔다하거든 자가용을 타고 그 도로에 길이 막히도록 빡빡하게 간다말이여. 어디를 가는지를 모리겠어. 얼디로 가냐고 물어 볼 수 없는거여. 전부 가는데 전부 바빠서 빵빵하고 이리가고 저리가고 어디는 사고를 내고 하여튼 갑니다.
산에 가면 호랑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담 밑에는 쥐들이 왔다 갔다하고 말이여. 강물에는 오리가 쾍 쾍하고 왔다 갔다하고 말이여. 전부 길이라말이여. 그 길인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디를 가든가 나는 익산에서 여기가지 올대에 내가 가는 길이 제일 큰길이다. 왜 그런지 압니까.
국제선문화원 여러 동지들을 만나 가지고 내가 성리설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간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이 참 큰길이다. 그러니 참 기분이 좋더라말이여.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칼들고 남의 집 금고를 털러 가는 사람은 생각해 보니까 너는 무엇하러 가냐 남의 집 금고 털러 간다. 그것은 지옥길이라말이여.
아주 무서운 길 아닙니까. 영생에 아주 무서운 지옥길로 가는 길이거든. 죽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서 지금도 그래요. 당장 잡혀 봐라말이여. 어디로 가냐 감옥으로 갈 길밖에 더 있어 감옥 길 밖에 못가는 것이여. 그러니까 사람이 발 한 번 턱 옮길려고 할 때는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한 번 멈추어서 생각해 봐. 누구한테 대들고 싸우러 가는 것이냐 누구한테 참 좋은 말을해서 그분한테 지도 받으러 가는 것이냐 저녁에 여기 와야 할 분이 영화보러 간다말이여. 그래 버리면 벌써 길이 어긋나는거여.
안빠지고 다녀야 해. 앞으로 계속해서 나와 가지고 자꾸 하다보면 달라질테니까 계속해서 나와야 해. 같이 그것이 길인데 여러분들은 오늘 저녁에 이 큰길을 왔는데 평소에는 어떤 길을 많이 다니시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가만히 모르게 도박을 하고 다니시는지. 가만히 모르게 춤이나 추고 다니는 길인다, 가만히 모르게 담을 넘어 가지고 세상을 장난치러 다니는가. 한 번 생각해 봐야해. 그런 길은 가지 말아야 해. 여러분 집 안에서 기쁘게 웃는 일 더러 있습니까. 집안 식구끼리 웃으면 웃고 사는 분들이 많이 있다면 손한번 들어봐요.
어거지로 웃으면 안돼. 웃음이 좋은거여. 하여간 만이레 부부간에 계신분들은 남편되신 분들은 부인한체 참 수고하십니다. 당신이 있으므로써 세상 기쁘게 산다고 안그렇습니까하면서 우스개 소리를 한 번 턱 던지면 그러면 부인이 아 이양반봐라 하고 웃거든 그러면 같이 웃어 거기에서 모든 것이 무엇이 풀어져 액이 쫙 풀어져 그러면 길이 확 열리는 거여. 거기에서 살 길이 열려, 길을 여는 방법이 웃는거여. 꽉 막힌 길을 여는 방법이 웃는거여.
그러니가 오늘 내가 집에 가서 어떻게 하면 집안 식구들을 웃게 할꼬하고 한 번 꼭 연구해야 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반드시 하나씩 만들어서 들어가야 해. 그러고 나한테 한 번 보내주세요. 웃음꺼리를 만들어 가지고.
예를 들어서 흉년에 떡을 만들어서 떡을 들여 놓았는데 시골에 사랑방에 학자들이 가객들이 모여 들었는데 모처럼 아주머니가 찰떡을 맛있게 해 가지고 들여 놓았는데 호롱불이 딱 꺼지거든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손바닥 치자, 손바닥 치면 손바닥 치는 사람은 못 먹거든 다 치고, 불을 켜고 보니가 떡이 하나 없어 손바닥을 쳤는데 그래서 한놈을 가만히 보니까 얼굴이 빨개 이마를 치면서 먹었다말이여.
이마를 치면서 먹어 버렸으니 얼굴이 빨개요.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고 집안 식구들에게 한 번 하면 다 웃어요. 그러니가 웃음꺼리를 만들어야 해. 이렇게 반갑고 좋은 인연들이 모여 가지고 인상쓰며, 이렇게 기분 나쁘게 앉아 있으면 그 꼴이 무엇이냐고, 설령 좋지 못하더라도 오늘 다녀오시라고, 수고하셨다고 하면 되는거여. 이래 버리고 허허 웃어 버리면 그냥 되는거여.
그래서 웃음으로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니까 큰길을 열려는 것은 거짓말을 안해야 해. 속이면 길이 어두워져. 이달에 들어서 거짓말 한 번도 안한 사람 손들어 봐요. 여기는 거짓말 하실 분들이 한분도 없어요. 저 시골에 가면 담 밑에 손가락만한 길이 있어. 번질 번질한 길이 있는데 그집 쥐가 다녀. 쥐가 누가 보는가 안보는가 살짝 다니는 담 밑, 울타리 밑 길이 있다말이여.
탄탄대로 고속도로 두고도 왜 하필 그렇게 다녀야 하냐 왜 그런지 압니까. 거짓말 잘하고, 남 둘러 먹고 도적질 하다가 쥐몸을 받아 그러니가 나쁜 사람 보고 도적 같으면 쥐새기 같은 놈이라 그래. 쥐들은 숨어서 다니거든 쥐보고 물어보면 나같이 부자가 없다고그래. 곡간에 들어 있는 다북찬 것이 다 내것 아니냐 입으로 구멍만 뚫으면 자기가 먹을 수 있다말이여. 그런 것이 쥐야. 이 얼마나 불량한 행동입니까.
그러면 그것 보고 산에 가면 짐승들이 다니는 길, 바다속 흙을 파고 다니는 길, 그냥 이렇게 사는 길이면 길인 것 같아도 탄탄대로, 다니는 길도 있고, 꼬불꼬불 길도 있고, 사람들이 죄짓고 도망다니는데 보니가, 가시덤불 엉성한데 그런 곳으로 도망을 가거든 거기는 길이 아니제 그것은 지옥길이여 그런 길을 향하면 안된다.
사리연구 공부를 잘한다. 이 선으로써 연구공부를 잘한다 이것이 본성자리여. 탄탄대로의 길을 가야한다. 누가 보던지 양심에 가책이 없는 길을 가야해. 길을 항상 속이지 않을려면 마음을 밝게 가져야 한다. 밝은 마음이라는 것은 밤에도 밝고, 낮에도 밝아 낮에는 해가 있어서 밝고, 밤은 달이 있어 밝고, 해와 달이 합해서 밝다 그러니 양심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은 그늘진 곳을 밤에 달이 밝혀 주는 것이고, 어두운 세계는 밤에는 달이 밝혀 주는 것이고, 밝은 세계 낮에는 해가 밝혀 주는 것이고, 그러니까 양심을 속이고 살면 밤에 달이 없는 것과 같다. 낮에 속이면 해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낮에나 밤에나 언제나 내 마음이 훤하고 밖의 일이 훤해 양심에 가책이 없고 밖으로도 모든 일이 투명하다 밝다 이런 사람을 일러서 밝은 사람이다그래요.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도 양심이 어둡고, 밖에 일이 어두우면 무식쟁이여 어두운 사람이여. 도학문명의 시대를 어느 때를 말하냐 마음도 밝고, 나타난 면도 밝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도 밝고, 눈에 보이는 일속에도 밝고 다 밝다 이러한 세게를 도학문명의 세계라 그래. 이런 사람은 땅에 무엇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를 않아 자기 것 안삼아. 이것이 밝은 세상아닙니까.
어두운 사람이란 것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 가지고 비싸게 팔아 먹어 그러니까 밝은 마음 밝다는 것은 서로 가정식구끼리 서로 밝아야 해. 속이는 것이 있으면 안돼. 누나는 동생을 속이고, 동생은 누나를 속이고, 아버지는 딸을 속이고, 딸은 어버지를 속이고, 어머니는 남편을 속이고, 남편은 어머니를 속이고 안되거든 늘 서로 속여 먹다보면 나중에는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이여.
그것이 망해져 버려 거짓말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있으면 아주 얌전한 사람 같이 보이지 그러다가 보면 깜깜해져 버려. 밝지 못해져 버려. 길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탄탄대로 후생에 가도 일원대도 대도회상에 태어나고 큰 대도를 가지고 억조창생을 올바른 길로 천도하는 것이고 또 많은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 것이고 내 심성에 길이 있어야 하고 내 自性에 길이 있어야 하고, 自心에 길이 있어야 한다. 마음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마음이 살아 있어야 해. 生心.
사람보면 꼭 죽을 짓을 해 하지마라는 일은 기어이 하고 해야할 일은 안하는 것이 죽을 짓인거여. 파리떼들 벌레들을 보면 꼭 더러운 곳만 찾아가거든 이왕이면 개끗한 곳을 찾아가면 좋지만 왜 더러운 데를 찾아가냐 그러니까 너는 별 수 없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꼭 죽을 짓을 하는거여. 자기 신세를 망칠 짓만하고 있어. 어느 거지 하나가 차표를 끊으러 가는데 다리 쭉 펴고 손만 벌리고 돈좀 달라고 이러고 있더라말이여. 그래서 제가 아 앉아서 돈을 달라고 하지 하필이면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옷이랑 좀 입고 그러지 내가 옷 한벌 갖다 드릴까요. 하니까 아 괜찮다고 무릎에다 고무를 대로 무릎으로 문지르며 다니는 거여.
그래서 앉아서 서서 쪼그릴 수도 없냐고 그렇게 하면 나 죽으라고요. 그렇게 하면 죽을 것이여. 안되는 것이여.
몸을 바르게 하고 건강한 분들과 같이 할려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거여 차라리 내가 딱 느낀 것이 전생에 얼마나 죽을 짓을 했으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제 살아 가지고 죽을 고통을 당하고 사냐 취할 것도 못 취하고, 안취할 것을 취하고 살다가 그렇게 되는 것이거든 예를 들어서 주먹질 잘한다고 남을 치기를 좋아 한다든가 유도, 십팔기를 잘한다고 남을 차기를 좋아 한다든가 하면 반드시 후생에 다리 병신이 되는 것이고, 반드시 어깨 병신이 되어요.
운동선수로써 나라 대표로써 하는 것은 죄가 안되지요. 우악스럽게 자기 개인 기분에 못이겨서 함부로 하는 것은 내 보내면 큰일나요, 그러니가 항상 마음은 살아야 한다. 죽은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남을 이렇게 꾹 누르고 한 번 어떻게 해보자고 마음을 시험헤 그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여. 이미 산사람이 아니여.
산사람은 남을 살리려는 마음을 가져요. 진리라는 것이 참 묘해요. 남을 살리는 마음 가지면 내가 사는 것이고, 남을 죽일려는 마음 가지면 내가 죽는거여. 그러내까 내가 주어서 남이 잘살아 그것은 나도 잘사는 것이거든 이것이 사는 것이여. 우주만유에 다북찬 생생약동하는 진리가 살아 있잖습니까.
살아 있는 기운 그자체가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그것이지만 그 자체가 죽은 마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죽는 되로 되어 버리고, 살아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살아 있게 되어 버려요. 이것이 그러니까 항상 살아야 한다. 생생약동 꿈틀 꿈틀 하는 진리와 더불어서 내마음도 살았다.
살아야 크는 것이고, 커야 힘이 있는 것이고, 힘이 있어야 성리도 솟을 수 있는 것이고, 큰일 할 수 있는 것이고, 큰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만하죠, 본성까지만 하고, 이다음에 대소유무를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