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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뿌리를 찾아서 스크랩 한글과 한자는 배달국의 녹도문자에서
주임교수 추천 8 조회 227 14.03.03 06: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리』지에서는 1994년 04월,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 독창성이 매우 높으며, 과학적이고 기호 배합 등 효율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했다.

  한편, 1994년 05월 25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레어드 다이어먼드 학자는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라며 한글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이며 ‘대지’의 작가인 펄벅은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라고 극찬했다.

  우리말은 표현력도 세계 으뜸이지만 어감(語感), 정감(情感), 음감(音感) 등도 으뜸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 한국말이 외국어로 번역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말은 다양하고 매우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말의 어감(語感)과 정감(情感)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 말을 할 때 흔히 제스츄어(몸짓, gesture)를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의 표현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습관이다. 우리는 말로써 충분히 표현되기 때문에 제스츄어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제스츄어 쓰는 것이 세련된 문화인 것처럼 인식되어, 한 때는 흉내 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은 순정음(純正音), 즉 잡음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음성기호 체계이다. 지구촌의 어떤 언어나 어떤 음성도 한글을 응용해 완벽하게 문자화할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 환경에서 한글은 전기적 신호로 완벽한 전환이 가능하다. 로마자의 경우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져 있지만 발음 기호는 무려 100개가 넘는다.

  한글은 28자 자체가 발음기호여서 몇 개의 유성음 기호만 추가하면, 모든 음성과 언어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앞으로 컴퓨터를 비롯한 우리 생활의 모든 기계들은 음성으로 통제될 것이므로, 컴퓨터와 통신 및 인터넷 등에서, 모든 언어에 응용 가능한 한글이 국제 공용문자로서 적합하며 한글의 국제화 가능성은 매우 밝다고, 국제 정음기호 사업 위원회 (IPH)에서 밝혔다.

 배달국의 제1세 배달 환웅(B.C 3,898~3,804년, 94년 재위)께서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령하여 녹도문자(鹿圖文字: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만듦)를 만들게 하고, 천부경(天符經)을 편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시대의 제1세 배달 환웅(B.C 3,898~3,804년 재위) 시절에 창제된 이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이집트 상형문자(B.C 3,000년경), 수메르 설형문자(楔形文字, B.C 3,000년경)보다 몇 세기 앞서는 세계최초의 문자이다.

 배달국의 녹도문자는 고조선에 이르러 가림토 문자로 계승 발전되고, 고조선 시대의 가림토 문자는 조선 시대의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한글)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자(漢字)의 뿌리가 된 배달국의 녹도문자
 


녹도문자 

  녹도문자는 주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다가 배달국 14세 치우천황(B.C 2,707년 즉위)시절에 창힐이 배달국의 자부 선생으로부터 녹도문자를 배워갔고, 녹도문자를 계승 발전시켜 창힐문자를 창안했다.

  그리고 창힐은 창힐문자를 중국에 널리 보급시켰다. 이로써 중국에 최초 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창힐문자는 다시 은나라 시대에 이르러 갑골문자(甲骨文字)로 발전했다. 그리고, 갑골문자(甲骨文字)는 다시 한자(漢字)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문자가 발달되어 온 역사가 그렇게 전개 된 것이다. 지금도 창힐의 고향인 산동반도 지역에서는 창힐문자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환단고기』『단군세기』의 다음 기록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고조선 시대 3세 단군이신 가륵(嘉勒)단군 2년(B.C 2,181년) 때의 일이다. 아직 풍속은 하나 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전하는 녹도문자(鹿圖文字)가 있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100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하인 삼랑(三郞, 삼신상제께 천제 지내는 관직)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셔서 정음 38자(字)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 하니 그 글자는 다음과 같다.”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38개를 가지고 운용하였고, 지금부터 4,183년 전(2002년 현재)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과거 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에는 지금도 가림토 문자 비석이 우뚝 서 있다.

 배달국 시대의 녹도문자는 고조선시대에 이르러 제3세 단군이신 단군 가륵 2년(B.C 2,181년)무렵에 가림토 문자로 계승 발전되고, 고조선 시대의 가림토 문자는 조선 시대의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한글)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다.

 

 

 

<일본(日本)으로 건너간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는 일본의 쓰시마섬과 큐우슈우의 신궁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히루문자  즉 신대문자(神代文字)에게 건너가 영향을 주었다. 고조선 3세 단군이신 단군 가륵(嘉勒) 2년(B.C 2,181년) 무렵에 창제된 가림토 문자는 고조선 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 한민족이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건너갔다.

  일본 역사의 초창기를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신대(神代)라고 부르는데, 신대(神代)시대에 일본으로 전파된 문자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신대문자(神代文字) 즉 아히루 문자 라고 부른다. 일본의 수많은 신사(神社)에는 신대문자가 새겨진 명문(銘文)과 비석(碑石)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인도(印度)로 건너간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

  가림토 문자가 인도로 건너간 것은 기원전 2,000~2.100년경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3세 단군이신 단군 가륵(嘉勒) 2년(B.C 2,181년) 무렵에 창제된 가림토 문자가 인도로 건너간 계기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신라인 박제상이 썼다는 『부도지(符都誌)』라는 사서(史書)가 전해 오는데, 부도지 17~18장의 기록을 보면, 우임금 시대 때, 고조선의 제후였던 순임금의 부친 유호(有戶, 고수)씨는 월식생성(인도)의 땅으로 들어가 그 지방 사람들을 교화시켰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을 끈다.

 

 

 삼라만상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글에도 음양(陰陽)의 짝이 있다. 한글은 양(陽)이요, 한자는 음(陰)인 것이다. 한글은 한글로서의 장점이 있고, 한자는 한자로서의 장점이 있다.

 한글의 사용과 함께 기본적인 한자(漢字)를 합하여 쓸 때 가장 합리적이고 완벽한 언어가 된다. 다시 말해 한글과 기본적인 한자의 혼용(混用)은 음양(陰陽)의 합덕(合德)인 것이다. 한민족이 만들어낸 한글과 한자(漢字)는 음양(陰陽)의 짝이며, 한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오늘날 우리는 왜 ‘한글’이라고 할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이란 자를 애용해 왔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국호가 한국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한”의 뜻은 왕, 수장, 우두머리, 하나, 크다, 바르다, 많다, 밝다, 훌륭하다, 하느님 등 여러 가지 좋은 뜻이 담겨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28자를 반포할 당시 훈민정음이라 이름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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