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2025 덴마크 오픈 여자 단식 준결승전 영상 및 안세영과 야마구치 아카네의 경기 후 인터뷰 영상은 이 글 맨 하단에 첨부
어제(18일 토요일) 경기의 점수만 놓고 보면 제2, 제3 게임은 안세영이 손쉽게 따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최근 연속된 대회 출전으로 야마구치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던 안세영의 공격과 수비가 맞물렸기에 가능했던 결과일 뿐, 한 점 한 점 따내는 과정들은 안세영이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피를 말리는 여정이었다. 그만큼 최근의 야마구치는 극강의 체력과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고, 비록 어제의 야마구치가 지친 야마구치였다 해도 안세영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선수도 이길 수 없었으리라.
먼저 안세영의 승인(勝因)을 분석해 보자면 이렇다.
첫째, 곧바로 득점으로 이어지는 강스매시는 별로 없었지만, 안세영이 날리는 하이클리어와 드라이브들이 충분히 빠르고 정교했기에 야마구치는 좀처럼 특유의 대포알 스매시를 때릴 기회를 갖지 못하며, 되레 수비하느라 급급한 상황에 내몰렸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어느 위치에서 어떤 자세로든 상대 코트의 원하는 지점에 다양하고 정확한 샷을 날릴 수 있는 완벽한 기술들을 갖추었지만, 어제는 안세영이 한 수 위였고, 그 차이가 승리로 이어진 것이다...... (안세영의 팬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그동안 긴 랠리 위주의 경기 운영을 해 온 안세영을 꺾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체력과 수비력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안세영은 박주봉 감독 취임 이후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공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제 미야자키와의 8강전에서 승리한 직후 있었던 아래 안세영의 인터뷰는 그래서 꽤 흥미롭다.
https://www.youtube.com/watch?v=4_ZOnBEoyiA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야자키도 안세영의 스매시를 경계하며 때릴 기회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 그리고 너무 스매시에만 집착하다 보면 본래의 장점인 스트로크 위주의 경기 운영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인데, 어제 야마구치와의 경기에서는 안세영이 추구하는 바로 그런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강력한 스매시만이 공격 옵션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안세영은 어제의 승리로 다시금 보여준 셈이다.(안세영의 스매시 파워가 약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물론, 야마구치나 천위페이보다는 아직 약하지만, 미야자키와 야마구치가 모두 경계할 정도로 파워 향상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박주봉 감독 취임 이후 안세영뿐만이 아니라 여자 복식조들의 스매시 파워도 많이 올라갔음을 필자는 느낀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나라 여자 복식조들은 고질적으로 안세영보다도 심각한 스매시 파워 부족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번번이 중국이나 일본의 벽에 가로막혔던 것인데, 어제 경기를 보니 지난 코리아 오픈 때보다도 더 파워가 향상된 것이 보였고, 중국과 일본을 꺾고 우리끼리 결승에서 맞붙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둘째, 미야자키와의 8강전에서도 그랬지만, 놀라운 순발력과 지구력을 앞세워 상대가 날린 완벽한 공격들을 여러 차례 방어해 냄으로써 이후 상대에게 좀 더 구석을 노려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중시켜 실수를 연발시킬 수 있었다. 즉, 코리아 오픈 때와는 달리 체력이 뒷받침되는 정상 컨디션의 안세영이 완벽하게 돌아왔음이 수비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셋째, 제3게임 3대1 상황에서의 랠리는 지금 두 선수가 공격과 수비 모두 다른 선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에 있음을 보여주는 엄청난 랠리였는데, 이런 여러 차례의 긴 랠리에서 대체로 다 안세영이 승리한 것이 컸다. 안세영의 집중력은 경기 내내 좋았고, 야마구치는 체력적 부담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다시 말하지만, 상대가 안세영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지친 야마구치였다 해도 어제 경기를 승리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전후좌우로 완벽하게 코트 구석 구석을 찌르는 안세영과의 대결은 상대 선수 입장에서는 다른 경기보다 2~3배 더 많은 체력을 소진하는 법이다. 그 과정에서 근육에 무리가 오고 있는 걸 무시한 채 어떻게든 안세영을 이겨 보려다가는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복귀하긴 했지만 이제는 대포알 스매시를 잃어버리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인도네시아의 툰중이 그랬고, 지금처럼 체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전의 천위페이나 야마구치도 안세영과의 치열한 접전 이후엔 종종 후유증에 시달렸다. 랭킹 2위 왕즈이가 안세영과의 대결에서 왜 항상 역전패를 당하고, 경기 막판에 맥을 못 추는지에 대한 해답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안세영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부분이 아닐까?)
코리아 오픈은 안세영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 어제는 야마구치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둘 중 누가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이번 주에 있을 프랑스 오픈에서는 천위페이와 야마구치가 먼저 8강에서 맞붙고 그 승자가 안세영과 4강에서 상대하게 될 텐데, 야마구치는 체력이 떨어져 있고(어제 안세영과의 대결이 결정타가 될 것이다.), 천위페이는 세계선수권에서 입은 발목 부상에서 아직 충분한 회복이 안 되었기에 둘 중 누가 올라오더라도 안세영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세 라이벌이 충분한 휴식 이후에 맞붙는 11월 쿠마모토 마스터스와 12월 월드 투어 파이널스에 가서야 누가 가장 강력한 여왕 중의 여왕인지가 가려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i_wkqugm_U
https://www.youtube.com/watch?v=eRl9m4ruUiE
https://www.youtube.com/watch?v=YrENe_A_UOI
https://www.youtube.com/watch?v=6JDE3FFc0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