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만나본 졸업 앨범이다.
사진을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얼마나 반갑웠는지 모른다. 나중에 다시 앨범원본을 볼수가 있겠지만.
이사진 한장으로도 만감이 교차하고 기억이 새롭다.
이 사진을 보내준 허우범회장과 이추도총무외 지금까지 영선일칠회를 이어온
모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 봉래산 기슰이에 자라는동산.. 이곳에 자라나는 무궁화송이...."
내가 기억하는 교가의 앞소절이다. (만약에 틀리면 친구들이 연락해다오)
봉래산이 좁다고 무지하게 올라 다녔다.
크~은 바위(이름은 모르겠다)가 있었고 암자가 있었는데. 왼쪽으로 왼쪽으로 전진하면
아리랑 고개가 나왔고. 청학동을지나 계속가면 태종대에 다다른다.
지금의 해양대학이 당시 내 기억에는 없다. 내가 몰랐든가......
돌아올때는 다시 2송도 방향으로 오면(지명이 기억이 않나네) 지금의 목장원을 지나 2송도에서
로타리를 지나고 학교앞 대로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했다
엄청 먼길이였는데 신나게 놀다오면 해가 뉘엇뉘엇 지기도했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을텐데.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이 없다.
여름방학이 되면 2송도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하루종일 놀다보면 쌔까맣게 그을린 등어리가
따가워 밤새 잠을 못잔 기억이있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물집이 생기고 허물이 벗겨지면 그담부터는 괜찮았다.
형들이 그랬다 "허물 벗겨지면 감기 않걸려"
그덕인지는 몰라도 아파서 누워 본적은 없었다. 마음이 아파 눈물은 많이 흘렸지만.........
부모를 일찍 여윈탓 이였는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탓인지 몰라도.
어린(소년)시절의 추억이. 아름답다거나. 누구를 흠모했다거나. 한 기억이 별로 없는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기억도 없고 그냥 시간만 나면 하루종일 놀러 다닌것 같다.
이걸 무슨병이라고하지?
암튼 이병은 지금까지 완치 되지도 않고 직업으로 자리잡아 버린것같다.
내 처지를 누구보다 잘알고 계셨든 분이 담임 이셨든 송 선생님이다.
인자하셨고. 실력도 겸비 하셨든것같다. 여늬 선생님같이 학생들에게 매 를 때리신 기억이 없다.
리더쉽도 있으셔서 1반 학생은 모두 교복에 교모를 착용했고 그게 그렇게 학교에서 자랑스러웠다.
항상 내게 힘을 주시는 말씀과 장래의 희망을 제시해 주셨다.
지금까지 잊고 지냈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선생님 이셨다.
지금까지 살아 계실까?
" 선생님 정말 죄송 합니다. 뵙고싶읍니다. 사랑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의. 특히 국민학교시절은 가슴속에 남아있는 마음의 고향이려니.....
또한 내게도 당연히 소중한 시간이였고 마음의 고향을 찿아가는 이정표 이리라....
이 길을 찿게해준 영선 일칠회의 친구들에게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의 마음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우리의 부산영선국민학교 는 영원하리라. !!!
첫댓글 이번 9월 월례회때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우리 일칠회 회원중 6학년 1반 출신 친구는 이성우,정수창 두명이 있다
아!!!! 그래 고맙다. 고마버...!!! 성우야. 수창아. 내가 이번에 꼭 보러갈께 기다리그라.....
나는 우리동네 반경500미터 이내 ,전차종점. 영도다리 ,이송도 , 고갈산 복천암절, 그정도 기억뿐이넹 ㅉㅉㅉ.
아!!!! 맞다 고갈산 이다. 그절이 복천암인가??? 땜쟁이 방패연 만드는집 그위에 있는절인가??? 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