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교육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로부터 한국이 낳은 교성(敎聖)이요 향토(鄕土)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성갑 현종은 국권을 찬탈당한 한.일합방 2년후인 1912년 음 6월 21일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웅곡마을에서 태어나 1950년 8월 2일 38세의 짧은 생애를 일기로 경남 창원군 대산면 수산교아래 낙동강변 모래벌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리어 애석한 죽엄을 맞았다.
38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암담한 농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배우면서 농촌사회 개혁만이 민족의 중흥을 가져올 것이며 이땅에 기독교적 이상을 구현해 보려고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향토교육에 뛰어들어 교사로 목회자(목사)의 길을 걸었다.
선생께서는 자신을 버린채 오직 조국을 부흥시키는 길은 과학교육을 통한 과학입국과 애토(愛土)애린(愛隣)정신이라는 선생의 철학을 흠모한 후학들은 선생 사후 20여년만에 선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이 낳은 교성으로 향토 교육의 선구자'로 높이 받들어 평가하고 있다.
고학으로 연희전문, 일본 동지사대학 신학부 졸업
성갑현종은 박사공 21세(대장군공, 창부 昌富의 큰아드님 재신공 황보 璜寶 후손)로 아버지 봉석(鳳錫)씨와 어머니 밀양손씨의 2남중 둘째 아들로 출생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고향 의령에서 사서(四書)까지 한학을 공부한 다음 열세 살의 나이로 의령보통학교에 입학 5개월을 배운다음 신학문(新學問) 사조(思潮)에 사려깊었던 어머니의 교육적 배려에 따라 마산 창신학교 4학년으로 전학해 17살에 졸업, 곧이어 1927년 4월 당시 4년제인 마산 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3월 졸업하였다.
이어 일본에 건너가 노동으로 생활하다 귀국, 김해군 장유금융조합 서기로 5년간 근무한 다음 학업을 계속해야 된다는 생각에 1937년 4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1941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일본 경도 동지사대학 신학부에 입학 고학으로 2년 과정을 마친후 1943년 태평양전쟁이 결정적 열세를 보이고 있을 때 귀국하였다.
선생은 연희전문과 동지사대학 재학중 고학을 하면서 이 나라의 농촌사회 개혁과 기독교적 이상을 구현해 보겠다는 불꽃 같은 정열을 품게 되었다.
1945년 11월 경상남도 교원양성소 교사직에 있으면서 1기생부터 4기생까지 길러내 교사 부족 공백상태를 메웠으며 1946년 9월 부산대학교를 만들어(국립 부산대학교 전신)교수로서 나라의 동량(棟樑)을 길러 냈다.
교육을 통한 민족중흥을 외친 선구자 선생은 학창시적부터 교육을 통한 농촌사회개혁으로 민족중흥의 이상을 구현시킨다는 신념으로 1946년 8월 고향 진영에 복음고등공민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진영 대흥국민학교내의 가교사(假敎舍)를 빌려 야간학교로 개교(開校)하고 자신은 설립자 겸 교장이 되었다.
1947년 6월에는 장차 대업(大業)을 위한 기초로 재단법인 삼일학원을 설립하고 같은해 8월에는 부산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1948년 1월 재단법인 삼일학원 및 한얼 초급중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7월에는 진영읍 진영리에 교사부지 3,500평을 매수 흙벽돌로 교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1949년 3월에는 김해군 진례면에 분교를 설치(현 진례중학교)하였으며, 10월에는 김해군 동군 록산면에 분교를 설치(현 록산중학교) 운영하면서 이들 중학교를 토대로 하여 남녀별 고등학교와 농민대학을 설립할 것을 구상하고 생전에 벌써 대학설립을 위해 부지까지 구해두었다.(진영읍 공정리 고개밑에 대학 예정부지 푯말을 세웠음.)
성갑현종은 해방이후 이 나라의 교육방향이 그릇되어 고등유민(高等遊民)만 길러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의 교육 실천을 통해 그릇된 교육방향을 바로 잡아보려고 부산대학교 교수직을 버리고 암담한 실정에 놓여 있는 농촌의 소읍인 진영이란 향토사회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맨손으로 '한얼중학교'란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통한 농촌사회 개혁으로 민족 중흥의 황금시대'의 이상을 구현시키려다 선생의 꿈인 구국구민을 위한 향토교육의 꽃은 봉우리를 맺다가 그만 피우지 못하고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이땅을 떠나고 말았다.
성갑현종이 이땅에 뿌린 씨앗이 헛되지 않아 님이 가신지 4년째인 1954년 그의 교훈을 길이 받들고 기념하기 위해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그가 세운 학교의 교정에 동상을 세워 스승의 한얼을 영원히 새기고 있다.
출처 : 홈페이지:http://www.jinjukang.org
자료제공 : 신백(信伯) 경남도종회 상임부회장 | |
첫댓글 훌륭하신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교육을 받게 된거겠지? 내가 알기론 진례중학교는 사단법인으로 맨처음에 자기재산을 넣은 이들이 있지..그 중에 송건복이네 것도 들어있고..대진에 담안교회 어느 장로님것도 있고..아뭏든 아버지가 계시면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텐데..건복이한테 물어보면 알수 있을거야..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듣네. 건복이가 내력을 말해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