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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서재에서 자연의 기운을 누리다
도산구곡가(陶山九曲歌) 이유원(李裕元, 1814~1888)
壁立陶山函席開 우뚝 솟은 도산에 훈도할 자리를 열었으니 先生遺躅九溪回 선생의 발자취 낙천의 아홉 굽이에 전하네 月明星槪凝然寂 달은 밝고 별은 반짝이고 응결된 듯 조용하니 春服成時弟子來 봄철의 의복이 이루어지면 제자들이 몰려오네
퇴계 선생의 말씀에, “달은 밝고 별은 반짝이고 강산은 광대무변하니[月明星槩, 江山寥廓], 아담하고 조용하여 아직 천지가 갈라지기 이전의 혼돈 기상이 있다.” 하였다. (출전: 李裕元, 임하필기(林下筆記) 권38, 해동악부(海東樂府))
*退溪先生言行錄 卷2, 類編, 先生平日。在家在山。非講學應接之時。則左右静無人焉。嘗言。某(滉)獨寢玩樂齋。中夜而起。拓窓而坐。月明星槩。江山寥廓。凝然寂然。有未判鴻濛底意思 [李德弘] 퇴계 선생은 평소에 집에 있거나 산에 있을 때, 글을 강하거나 사람을 응접할 때가 아니면 주위에 아무도 없이 조용하였다.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혼자 도산서당 완락재(玩樂齋)에서 자다가 밤중에 일어나[中夜而起] 창을 열고 앉았으니[拓䆫而坐], 달은 밝고 별은 풍치가 있는데[月明星槩], 강산은 텅 비어[江山寥廓] 얼어붙은 듯이 조용하여[凝然寂然], 갑자기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의 홍몽(鴻濛)한 세상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셨다.
*이덕홍(李德弘, 1541~1596), 艮齋先生文集 卷5, 溪山記善錄上, 記退陶老先生言行 先生平日寢處及讀書之所。不與人同。故在家在山。非講學應接之時。則左右靜無人焉。嘗言其獨寢玩樂齋。中夜而起。拓䆫而坐。月明星槩。江山寥廓。凝然寂然, 忽然有未判鴻濛底意思。 선생께선 평소에 잠자는 곳과 책을 읽는 곳이 다른 사람과는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집에 있거나 산에 있을 때, 글을 강하거나 사람을 응접할 때가 아니면 주위에 아무도 없이 조용하였다.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혼자 도산서당 완락재(玩樂齋)에서 자다가 밤중에 일어나[中夜而起] 창을 열고 앉았으니[拓䆫而坐], 달은 밝고 별은 풍치가 있는데[月明星槩], 강산은 텅 비어[江山寥廓] 얼어붙은 듯이 조용하여[凝然寂然], 갑자기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의 홍몽(鴻濛)한 세상 같은 생각이 들었다.
乃出巖栖軒。眼前無別㨾底貌象。忽有大搥聲起於坐前。心雖恠之。略不驚動。思其所以。則必是陰陽之氣壅鬱相激。不能順行故也。凡人每於家中。若有鳴底物。便驚惑。多般問卜。可歎。 이에 암서헌(巖栖軒)으로 나오니, 눈앞에 별로 다른 모습이나 형상은 없었다. 그 때 갑자기 큰 망치 소리가 앉은자리 앞에서 일어났다. 마음으로 비록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조금도 놀라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반드시 이는 음양의 기운이 꽉 막혀 서로 부딪치고 순조롭게 유행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매양 집안에 울리는 물건이 있으면 곧 놀라고 미혹되어 흔히 점쟁이에게 물으니 통탄할 일이다.” 하였다.
*무이는 주희의 무이정사(武夷精舍), 도산(陶山)은 이황(李滉)의 도산서원(陶山書院), 고산(高山)은 이상정(李象靖)의 고산정사(高山精舍)를 가리킨다. 주희는 무이산에 은거하며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와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는데, 이 시는 조선 학자들에게 단순한 서경시(敍景詩)가 아니라 주희의 도학적 사유가 담긴 시로 인식되었다. 이황은 주희의 정신을 계승하여 〈도산잡영(陶山雜詠)〉, 〈도산구곡가(陶山九曲歌)〉를 지어 자신의 뜻과 학문적 삶을 노래하였다. 또 이황의 학통을 이은 이상정은 안동에 고산정사를 짓고 주희와 이황의 정신을 계승하여 〈고산잡영(高山雜詠)〉을 남겼다. 《悔菴集》 卷9, 《退溪集》 卷3, 《大山集》 卷3 참조.
오늘 새벽 도산구곡(陶山九曲) 10수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유원의 해동악부에 나오는 성개(星槩: 별의 정경)와 요확(寥廓: 아득히 멀고 텅 빈 모양)이란 단어가 궁금하여 자료를 찾다가 퇴계 이황 선생의 일상에서 양정(養靜)하는 생활을 조금 찾아보았다. 정무인(靜無人)은 지정(至靜)과 같은 말이다. 마음은 정숙함에서 안정을 찾아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대상과의 접속에는 단서가 있다.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인문학자는 간단없이 독서와 사색을 병행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예술가도 사실관계와 미의식을 탐색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한다. 그 단초는 가끔 자연에서 터득하는 경우가 있다. 하늘의 밝은 달빛과 빛나는 별, 지상의 강물과 산은 고요함 속에 기운을 보여주는 것인가? 정아신(靜我神)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아 수양에 활용할 수 있을까? 겸재 정선이 그린 보물 585호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맛난 만남
만남은 맛남이다. 만남은 너와 나 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고, 고였던 물을 흐르게 하는 일이다. 꽃이 피어나고 새소리가 들린다. 그렇다고 모든 만남이 다 맛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치명적인 독이 되는 그런 만남도 있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춘 그런 만남도 있다.
옛 친구가 쓴 편지를 보니 마치 얼굴을 마주하고서 경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고, 시내와 산에 이르고 보니 마치 옛 벗을 만난 것만 같다.
見故交之手札, 如對面談經; 已到之溪山, 如逢舊友. 《元邱素話》
정갈하게 써내려간 곡진한 사연, 마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 같이 노닐 던 그 시내, 그 산에 나 혼자 노닐어도 곁에는 그 친구가 있는 것만 같구나. 그는 이미 가고 없고 남은 것은 편지 뿐인데, 그는 흐르는 물소리, 솔바람 소리로 내 곁에 남아 있구나.
상자 속에서 생각 없이 갑자기 옛 친구가 손수 쓴 글을 얻었을 때,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篋中無意忽撿得故人手迹, 不亦快哉! 《快說》
무심히 책상을 정리하다가 문득 옛 친구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 하여 그 사연 속에서 내 젊은 날 의 까마득한 기억이 되살아 날 때 대체로 삶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홍싸리에 둘러싸인 노란말의 부귀영화를 집에 들인 후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오, 대단한 위력입니다...^^ 서울갔다가 귀여운 투덜이 얼굴도 못보고 왔습니다. 자식을 지척에 두고도 그냥 오다니요. 부지런히 움직여 며느리에게 노을빛 비단치마 해 줄 겁니다.
섬에서 살다 보면 꽃조차도 해녀를 닮아 뭍으로 밀려오던 물결은 넘어져도 한담의 제주수선화 물가로 향한다.
발디딜 곳 먼저 알아 알뿌리 내려 놓고 고비를 넘길수록 향기 또한 짙어져서 아, 저런 수선화도 파도향을 풍기네
숨비소리 그 조차도 아련한 한담해변 오늘은 물에 들어 초록파래나 뜯어올까 봄전령 도착하던 날 바다 앞에 선 그 꽃
오랭 벗
새로운 친구와 교제하기 보다 옛 벗과의 우정을 돈독히 함이 좋다. 새로운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느 니 묵은 빚을 갚는 것이 낫다.
與其結新知, 不若敦舊好. 與其施新恩, 不若還舊債. 《岩栖幽事》
술은 해묵은 술이 좋고, 벗은 오랜 벗이 편하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것 같은 벗, 어제 헤어지고도 오늘 간절히 그리운 벗. 베푸는 기쁨도 좋지만 내가 갚아야 할 것은 없는지부터 곰곰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추위와 더위는 일정함이 없나니 더위가 왔다 해서 솜옷을 버리진 말라. 귀하고 천함은 항상됨이 없 나니 귀하게 되었대서 옛 친구를 버리지 말라.
冷暖無定, 驟暖勿豈綿衣; 貴賤何常, 驟貴勿捐故友. 《荊園小語》
여름에 솜옷은 귀찮고, 가난하고 천할 때의 벗은 성가시기만 하다. 그러나 여름은 바뀌어 겨울이 되니 어찌 솜옷을 다시 찾을 날이 없으랴. 부귀는 빈천과 붙어 다니니 언제까지나 일신의 부귀가 따라 다닐 줄 아는가? 다시 본디 자리로 와 섰을 때 한 때 마음을 나누던 옛 벗의 외면을 받을 일 을 해서야 되겠는가?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엊그제까지 내내 만났던 사람처럼 다정한 사람이 벗입니다. 곁에 있을 때 물처럼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도 벗이지요. 저도 얼마 전 오랜 벗과 꽃이 환하게 피는 철이나 아니면 신록이 무르익는 초여름이나 아무 때나 하루 동행하여 마음 편히 놀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루를 온전히 동행할 생각만 해도 즐거운 사람이 벗입니다.
안도현 / 벗
벗’이라는 말은 고색창연하다. 비슷한 말로 ‘우인’이나 ‘동무’가 있지만 ‘우인’은 결혼식 같은 예식에서나 겨우 듣게 되었고, ‘동무’는 이데올로기 대립 과정에서 거의 죽은 말이 되었다. 지금은 ‘친구’가 폭넓게 쓰이지만 아쉽게도 한자어다. 옛 책에는 ‘벋’이라는 표기가 자주 나타나는데 바로 ‘벗’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계가 확대되어 벋어나간다는 의미, 혹은 가까이 손을 벋을 수 있는 사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이덕무의 문장을 뽑아 번역한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열림원)에 벗에 관해 음미할 만한 구절이 나온다. 정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생긴다면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벗을 위해 적어도 11년에다 50일 더한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오, 그 상대가 벗이 아니라면 이런 호탕한 꿈을 어디에다 발설할까.
김윤아 - Flow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대로 영원히 나의 그리움, 나의 위안
그리운 곳에 그리운 곳에 언젠가 또다시 나의 외로움, 나의 슬픔
사람도 시간도 바람 사이로 구할 수 없이 허무하게 사라져 가네, 나의 공허, 나의 우울
푸른 물 깊은 곳 마음은 흐르고 피할 수 없이 잔인하게 나를 비추는, 나의 공허, 나의 우울
그리운 날에 그리운 날에 누군가 또다시 나의 설레임, 나의 위안.
그런 벗은 어디에
마음에 맞는 벗과 백 척 높은 누각에 올라 술잔을 잡아들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내 마음 속 품은 생 각을 묻는다. 술이 거나해 귓볼이 붉어지면 냉소 섞인 시선으로 티끌 세상을 바라보고, 밭 두둑 사 이의 집을 찾아보기를 마치 말똥구리가 말똥 굴리듯하여 아득히 정한 곳이 없이 한다. 그러다간 손 뼉을 치면서 크게 한 번 웃는다.
與良友登百尺樓, 把酒問靑天. 酒後耳熱, 白眼視紅塵中, 求田問舍, 如蜣螂轉丸, 茫無定所. 因鼓掌發 一大噱. 《散花庵叢語》
아마득한 누각에 함께 올라가 티끌 세상 굽어보며 말똥구리가 굴리는 말똥만도 못한 부귀니 명예니 를 웃어볼 그런 벗은 정녕 어디에 있을까?
벗의 집에 동산과 연못, 솔숲과 대밭이 있고, 또 내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날마다 걸어 서 그곳에 간다. 주인이 집에 있으면 나를 붙들어 술상을 내오고, 외출하고 없으면 나 혼자 즐기 며 홀로 읊조리고 노래할 뿐이다. 집사나 하인들도 내가 주인옹의 친구인 줄을 알기에 따로 신경 쓰지 않는다.
朋友有園池松竹之地, 離予居復不遠, 每每步去. 主人在, 留我便膳; 它出, 則聽我獨自行樂, 獨自吟 嘯. 園丁蒼頭識我是主人翁知友, 不待照顧.《貧賤快話》
아무 때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벗이 가까이에 있고, 주인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편안히 즐거워 한다. 나와 너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다.
자동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친구가 사는 것도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한 가지에 든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일단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 긴 말 하지 않아도 내 속내를 알아주는 사람 진정한 벗이지요.
한낮에는 덥기까지 합니다. 여기저기 꽃들이 폭폭 터지느라 세상이 소란스러워요. 큰 나무 아래 하얀별꽃도 피고 시장에서는 찹쌀 반죽에 쑥잎 얹어 전도 부쳐 팝니다. 이천원에 세 개랍니다..ㅎ
그런 벗이 한사람
우리의 벗을 사귐은 그 재능이 좋으면 그 재능을 벗삼고, 인품이 좋으면 인품을 벗 삼으며, 의기 가 좋으면 의기를 벗 삼고, 성정이 좋으면 성정을 벗 삼는다.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지기知己인 가에 이르러서는 말하기가 매우 쉽지 않다.
吾輩交友, 才好友才, 品好友品, 意氣好友意氣, 性情好友性情. 至于知己二字, 甚未易言. 《散花庵 叢語》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벗이야 세상천지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으랴. 만날 수 없는 벗을 마음으 로 그리워하기 보다 그의 한 부분만이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를 벗 삼으리라. 그가 바 둑을 잘 두면 바둑으로 친구를 삼고, 그가 산을 좋아하면 그것으로 친구를 삼을 것이다. 그의 마 음 씀과 말하는 태도가 좋다면 나는 그를 말벗으로 삼을 것이다. 그가 나를 마음으로 알아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티끌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말 없이도 마음 이 서로 통할 그런 벗이 한 사람 저 만치 쯤에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오늘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집에 오자 마자 비누거품 듬뿍 묻혀 세수를 하고 나니 개운합니다. 바람부는 3월... 말 없이도 마음이 서로 통할 그런 벗이 한 사람 저 만치 쯤에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제주수선화 / 고봉선
애월에서 나고 자란 봉선이가 사진과 함께 보내 온 시입니다. 며칠 후면 한담 해안길의 수선화는 철이 지났을 것 같습니다. 사라진 얼굴에 아직 남아있는 향기라도 만날 수 있다면... `정갈하게 써 내려간 곡진한 사연`이라도 들려 줄 텐데요. 수선화 향기처럼 맑은 봉선이와 커피 마시며 맛난 만남을 하고 싶습니다.
-정민의 청언소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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