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은혜로
나를 굳게 세우소서 !
(시30:1-12)
시작하는 말씀
본 시편은 다윗의 “성전 낙성가(落成歌)”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다윗의 잘못으로 유다 왕국이 전염병으로 비참한 형국을 맞았을 때에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집을 짓고 살며 이 영혼의 노래를 불렀다고 말합니다(삼하24:25, 대상21:26).
다윗은 시30:7절에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세우실 때에는 우리가 태산같이 굳게 서지만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고 은혜를 거두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곡식으로 말하면 쭉정이와 깜부기에 불과합니다.
88올림픽때 “벤 존슨”이 100m 우승을 했습니다.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며칠 후 약물복용파동으로 판명되어 우승 메달을 박탈당하고 쓸쓸히 공항을 빠져 나갈 때는 한 사람의 초라한 흑인에 불과했습니다.
초패왕(超覇王) 항우(項羽)의 시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란 말이 나옵니다. 산을 뿌리째 뽑아 던질만한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사사 삼손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는 불레셋 천하를 호령했지만, 그러나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이 떠나시니 불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을 다 뽑히고 다곤 신당에서 연자멧돌을 돌리는 초라한 짐승 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를 고쳐
세우셨나이다.
“80야드의 질주(The Eighty Yard Run)”이란 책에 등장하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식축구 첫 연습경기에서 상대편을 따돌리고 80야드를 내리 달려 터치타운에 성공합니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코치는 그에게 미래를 약속합니다. 금발미녀인 그의 여자 친구는 연습이 끝난 후 그를 차에 태워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습니다. 그는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이며, 밝은 미래가 펼쳐진 듯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그의 앞길에 다시는 그와 같은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생활까지 실패했습니다. 좌절감에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불행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고 자기의 인생은 늘 장밋빛처럼 순조롭게 풀려 나갈 거라고 믿은 것은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 속는 속임수임을 몰랐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인적인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고쳐 펴 주실 때”에 일어 날 수 있었습니다.
위스콘신의 낙농업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하여 공급하는 우유병에 “우리 소들은 자만하지 않고 더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붙이고 있다고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야훼, 나의 하느님, 살려달라 외치는 내 소리를 들으시고 병들었던 이 몸을 고쳐주셨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윗은 병들어 무덤에 내려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30:3)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➀스올(무덤)에서 끌어내셨습니다. ➁살려 주셨습니다. ➂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삼상20:3)고 말했습니다.
삼상25:29절에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라고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게 세우셨나이다.
성경 주석가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의 성지를 무려 백번이나 여행을 할 정도로 확실한 근거와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서 성경을 자세히 해석하는 훌륭한 저술가로 평가됩니다.
한번은 어떤 여행가가 “당신은 어떻게 그 귀한 책들을 그토록 많이 쓸 수 있었습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귀에서 보청기를 꺼내 보였습니다. 저는 이 보청기가 아니면 전화벨 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만큼 귀가 어둡습니다. 이것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열심히 책을 봅니다. 성경을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집중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꼭 저술을 합니다. 또 제가 출강하는 어느 대학, 어느 강의 시간에도 지각이나 결석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어두우니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6)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형통할 때에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오면은 자주 흔들립니다.
일단은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26:2-3)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믿을 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라고 하나님께 신뢰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시잠간(only a moment)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for a lifetime)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찾아와도 아침에는 기쁨이 옵니다.
히브리인들이 홍해 앞에서 저녁에는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이 밤새도록 동풍을 불게 하셔서 바다를 갈라 놓으셨습니다. 밤새도록 바다를 건넌 히브리인들은 아침에는 소고치며 춤추며 노래했습니다.
주의 은혜로
굳게 세우셨나이다.
18세기 유럽대륙을 정복한 나폴레옹이 사관학교를 다닐 때의 일입니다. 교관이 사관생도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제군들, 똑같은 병력, 똑같은 지형조건에서 똑같은 무기를 가진 두 군대가 싸운다면 어느 편이 이길 것인가?”...
이때에 나폴레옹이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5분까지 버티는 자가 이길 겁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인내로써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마지막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39:4)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종말을 잘 모릅니다. 자기의 연한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더 연약한 존재요, 그릇들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시39:5)라고 말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물여덟 살 때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에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 묶었는데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였습니다. 사형집행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위에 살아 있을 시간이 단 5분남아 있었습니다.
28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렇게 금쪽같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2분을 쓰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2분을 쓰기로 했습니다. 남은 1분은 자연을 한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했습니다. 이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려는데 문득 3분 후 어디로 갈것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 지고 아찔해졌습니다. 28년이란 세월이 너무 헛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시작 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탄환을 총에 장전하는 소리가 났고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며 달려 왔습니다. 그는 황제의 특사 사면령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형직전에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후 시간을 생명처럼 귀하게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여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은 한 뼘의 길이, 일생은 주앞에 제로(0), 인간적으로 든든히 선 것은 허사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인생관입니다. 즉 하나님이 든든히 세워 주셔야 인간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모세는 120평생을 살았습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라고 기도했습니다. 인간의 천년이 하나님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9-10)라고 모세의 인생관을 피력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시30:10)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살아남을 자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세상을 감당할 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굳게 세워 주신 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입니다(히11:38).
끝맺는 말씀
이사야는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
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42:2-4)고 했습니다.